9월 17일. 작년과 다르게 하향세를 타던 두산베어스가 경기를 치루기위해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를 2:10으로 크게 이긴날이다. 그날은 아나운서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두산베어스의 마무리투수 임태훈이 복귀한 날이기도 했다. 각종 여론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왔었다. 인터넷에는 100일도 안되어 그라운드를 다시 찾은 그를 두고 옹호하는 팬들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여론이 한창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9월 17일 그날은 임태훈 선수에게나 나에게나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나에게는 2년간 사귄 다섯살 어린 여자친구가 있었다. 차분하고 나긋한 분위기인 나와는 다르게 그 어린 여자친구는 첫눈에 외향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 그래서 연애초반에는 나이차이에서 혹은 성격차이에서 오는 충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허나 차츰 시간이 지날 수록 다혈질에 모난 성격이었던 그 아이는 유해지고 나는 점차 활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닮아가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부딪히는 일이 크게 줄었다. 비록 나이차는 났지만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우리들은 어여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아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사귄지 1년쯤 못되어서 기말고사 기간 몸살로 끙끙 앓게 되었다. 하루종일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나오질 못했다. 얼음장같은 겨울 밤에 텅빈 거실의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리었다. 한손에는 뜨거운 죽을 들고 나타난 여자친구. 그녀가 조용히 부르던 내 이름에는 차가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지 못하는 나는 힘들게 옅은 미소로 대신 답하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가야한다는 여자친구. 차가운 몸 좀 녹이게 좀 더 있다가라는 내 말을 뒤로 한채 현관문이 둔탁하게 닫히었다.
방안에서 김이 모락나는 죽을 떠먹으며 감기의 기운을 다스리려 하였다. 좀처럼 졸음이 가시지 않는 나는 여자친구에게 12시에 깨워달라는 문자를 보내었다. 그리고 얼마후 '푹 쉬어^^'라며 답장이 왔다. 열한시께나 되었을까? 갑작스레 눈이 번뜩 뜨였다. 다음날 시험의 중압감이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딱딱한 펜을 집어본다.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 뭔가 이상한 기분에 사로 잡혀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생각해보니 12시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자친구에게 이제 난 이미 깨었으니 자도 좋겠다라는 말을 하려 늦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지난 후 약간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지금은 친구와 김밥천국에서 라면을 먹고있다는 말을 한다. 알았다고 끊으려하는 찰나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지만 영 받질 않았다.
몇분후 친오빠와 이마트를 가고 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차안인듯 네비게이션의 익숙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구나 잘갔다와" 대수롭지 않게 넘기었다. 그렇지만 전화를 끊어도 엄슴해오는 불안감을 나를 다시 펜 대신 핸드폰을 집게 만들었다. '그럼 오빠 사진좀 보내줘' 일전에 한번 본적이 있기에 얼굴을 알고 있었다. 답장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그 날 새벽 그녀는 택시를 타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술집에서 만난 남자와 몇번 만났었고 그날은 차를 타고 일산으로 향하고 있었단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졌다. 별의별 생각이 촌각에 지나갔다. '그녀는 내게 싫증 났을까?', '앞으로 어떻게 하지' 유리알 같은 눈물을 뚝뚞 흘리며 비는 여자아이를 매정하게 내칠 수 없었다. 그런 그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안고 말했다. " 다신 이러지마 " 그 이후로 그녀는 나에게 보고하는 일이 많아졌다.
800일이 어떻게 지나갔을까? 시간은 무심히도 그렇게 지나갔다. 주말에는 강남에 한 스크린 골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방은 6개인데 일단 손님이 게임을 시작하면 두시간에서 세시간있다가 나오기 때문에 일 자체는 바쁘지 않아 내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평소에는 공부를 하지만 좋아하는 두산팀의 경기가 있어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 날은 여자친구가 2주전부터 친구와 야구장을 간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 날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카메라 잡힐까?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촉'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지않은 기류를 느끼며 확신을 갖고 서둘러 발을 얼릉 빼고나면 막상 그 좋지 않은 일이 닥치고나서 안심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하던 중 자신이 야구장임을 보고하듯 경기중인 그라운드를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었다. 그런데 정말인지 감이 좋지 않았던 것은 항상 사진을 보낼때에는 자신이 잘 보이도록 인증샷과 같이 보내고는 하였는데 그 날은 무척 이상하였다. 나는 괜시리 같이 간 친구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었다. 그러나 자꾸만 화제를 돌리려는 것 같아 맹수가 사냥감을 성기듯이 집요하게 파고들어 친구 사진을 보내보라는 메시지를 보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다시 한번 두절이 되었다. 여자친구의 전화는 다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듯 통화 중 아니면 신호가 잘가는 도중 맥없이 끊기어 버렸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일 같은 것은 이미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자 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급히 잠실구장으로 향하였다. 붉은 신호를 몇개나 지나쳤을까?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반절만에 와버렸다. 도착한 후 그녀에게 온 메시지는 핸드폰이 이상해서 연락이 되질 않는다는 얼토당토않는 뻔한 변명이 이어졌다. 한번 거짓말하면 끊이없이 하게 되나보다. 당장 티켓창구를 뛰어가 표를 끊고 입장을 하였다. 수백만의 관중 속에 그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와 야구장을 올때 그녀가 좋아하는 응원단장이 잘보이는 곳에 앉아왔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발견 할수 있었다.
그 순간 오재원의 안타. 나의 여자친구는 왠 남자와 마주보며 행복한 웃을 짓고 있었다. 마냥 행복해보였다. 그들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이 나에게도 보였으니까. 남자는 정장바지에 검은 셔츠를 입었었다. 단추는 두개정도 풀어헤쳤고 탄탄한 근육이 보였다. 짧은 머리는 윤이 반짝반짝하게 났고 눈은 작아 약간 찢어진 눈에 붉으스름한 얼굴빛을 가졌었다. 늘상 나에게 근육있는 남자가 좋다며 취업준비로 바쁜 내게 근련운동을 권하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는 헬스트레이너였다. 여름부터 그녀는 그와 1:1레슨을 받았었는데 가끔 문자도 주고받는걸 보았지만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를 무한히도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계단에 주저 앉아버렸다.
가서 그녀를 확 데리고 나올까도 생각해 봤었지만 아무래도 그 남자와도 트러블이 생기게 되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눈물을 지을까봐 또 마음이 약해질까 입장권을 한손으로 꽉 쥔채 집으로 향했다. 한강을 건너며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이 아무 이유없이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그녀의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가방안에 야구티켓과 이별의 메시지를 넣어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향하였다. 괜히 카메라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마주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카메를 받아주셨다. 오느라 고생 많았을텐데 물 한잔 하고 가라고 하셨지만 왠지 연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죄송스러워 급히 나오려하였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는데 그녀가 오늘 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씀을 건네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화의 감정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내가 그렇게 둔한 녀석이었다니 속으로 감이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밤은 정말인지 길었다. 임태훈 선수에게도 길었던 게임시간이었을까?
그렇게 그녀는 사과의 말한마디 없이 나의 곁을 훌쩍 떠났다. 모래성이 파도에 한순간에 부서지듯 지난 2년간의 사랑은 산산히 분해되어 어딘지 모를 바다로 휩쓸려갔다. 당분간은 혼자만의 생활을 지내려해본다. 외로움도 느끼어보고 고독도 잔뜩 느끼어봐야지.
여자친구의 두번의 바람..
9월 17일. 작년과 다르게 하향세를 타던 두산베어스가 경기를 치루기위해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를 2:10으로 크게 이긴날이다. 그날은 아나운서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두산베어스의 마무리투수 임태훈이 복귀한 날이기도 했다. 각종 여론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왔었다. 인터넷에는 100일도 안되어 그라운드를 다시 찾은 그를 두고 옹호하는 팬들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여론이 한창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9월 17일 그날은 임태훈 선수에게나 나에게나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나에게는 2년간 사귄 다섯살 어린 여자친구가 있었다. 차분하고 나긋한 분위기인 나와는 다르게 그 어린 여자친구는 첫눈에 외향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 그래서 연애초반에는 나이차이에서 혹은 성격차이에서 오는 충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허나 차츰 시간이 지날 수록 다혈질에 모난 성격이었던 그 아이는 유해지고 나는 점차 활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닮아가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부딪히는 일이 크게 줄었다. 비록 나이차는 났지만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우리들은 어여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아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사귄지 1년쯤 못되어서 기말고사 기간 몸살로 끙끙 앓게 되었다. 하루종일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나오질 못했다. 얼음장같은 겨울 밤에 텅빈 거실의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리었다. 한손에는 뜨거운 죽을 들고 나타난 여자친구. 그녀가 조용히 부르던 내 이름에는 차가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지 못하는 나는 힘들게 옅은 미소로 대신 답하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가야한다는 여자친구. 차가운 몸 좀 녹이게 좀 더 있다가라는 내 말을 뒤로 한채 현관문이 둔탁하게 닫히었다.
방안에서 김이 모락나는 죽을 떠먹으며 감기의 기운을 다스리려 하였다. 좀처럼 졸음이 가시지 않는 나는 여자친구에게 12시에 깨워달라는 문자를 보내었다. 그리고 얼마후 '푹 쉬어^^'라며 답장이 왔다. 열한시께나 되었을까? 갑작스레 눈이 번뜩 뜨였다. 다음날 시험의 중압감이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딱딱한 펜을 집어본다.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 뭔가 이상한 기분에 사로 잡혀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생각해보니 12시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자친구에게 이제 난 이미 깨었으니 자도 좋겠다라는 말을 하려 늦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지난 후 약간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지금은 친구와 김밥천국에서 라면을 먹고있다는 말을 한다. 알았다고 끊으려하는 찰나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지만 영 받질 않았다.
몇분후 친오빠와 이마트를 가고 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차안인듯 네비게이션의 익숙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구나 잘갔다와" 대수롭지 않게 넘기었다. 그렇지만 전화를 끊어도 엄슴해오는 불안감을 나를 다시 펜 대신 핸드폰을 집게 만들었다. '그럼 오빠 사진좀 보내줘' 일전에 한번 본적이 있기에 얼굴을 알고 있었다. 답장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그 날 새벽 그녀는 택시를 타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술집에서 만난 남자와 몇번 만났었고 그날은 차를 타고 일산으로 향하고 있었단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졌다. 별의별 생각이 촌각에 지나갔다. '그녀는 내게 싫증 났을까?', '앞으로 어떻게 하지' 유리알 같은 눈물을 뚝뚞 흘리며 비는 여자아이를 매정하게 내칠 수 없었다. 그런 그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안고 말했다. " 다신 이러지마 " 그 이후로 그녀는 나에게 보고하는 일이 많아졌다.
800일이 어떻게 지나갔을까? 시간은 무심히도 그렇게 지나갔다. 주말에는 강남에 한 스크린 골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방은 6개인데 일단 손님이 게임을 시작하면 두시간에서 세시간있다가 나오기 때문에 일 자체는 바쁘지 않아 내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평소에는 공부를 하지만 좋아하는 두산팀의 경기가 있어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 날은 여자친구가 2주전부터 친구와 야구장을 간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 날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카메라 잡힐까?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촉'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지않은 기류를 느끼며 확신을 갖고 서둘러 발을 얼릉 빼고나면 막상 그 좋지 않은 일이 닥치고나서 안심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하던 중 자신이 야구장임을 보고하듯 경기중인 그라운드를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었다. 그런데 정말인지 감이 좋지 않았던 것은 항상 사진을 보낼때에는 자신이 잘 보이도록 인증샷과 같이 보내고는 하였는데 그 날은 무척 이상하였다. 나는 괜시리 같이 간 친구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었다. 그러나 자꾸만 화제를 돌리려는 것 같아 맹수가 사냥감을 성기듯이 집요하게 파고들어 친구 사진을 보내보라는 메시지를 보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다시 한번 두절이 되었다. 여자친구의 전화는 다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듯 통화 중 아니면 신호가 잘가는 도중 맥없이 끊기어 버렸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일 같은 것은 이미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자 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급히 잠실구장으로 향하였다. 붉은 신호를 몇개나 지나쳤을까?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반절만에 와버렸다. 도착한 후 그녀에게 온 메시지는 핸드폰이 이상해서 연락이 되질 않는다는 얼토당토않는 뻔한 변명이 이어졌다. 한번 거짓말하면 끊이없이 하게 되나보다. 당장 티켓창구를 뛰어가 표를 끊고 입장을 하였다. 수백만의 관중 속에 그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와 야구장을 올때 그녀가 좋아하는 응원단장이 잘보이는 곳에 앉아왔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발견 할수 있었다.
그 순간 오재원의 안타. 나의 여자친구는 왠 남자와 마주보며 행복한 웃을 짓고 있었다. 마냥 행복해보였다. 그들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이 나에게도 보였으니까. 남자는 정장바지에 검은 셔츠를 입었었다. 단추는 두개정도 풀어헤쳤고 탄탄한 근육이 보였다. 짧은 머리는 윤이 반짝반짝하게 났고 눈은 작아 약간 찢어진 눈에 붉으스름한 얼굴빛을 가졌었다. 늘상 나에게 근육있는 남자가 좋다며 취업준비로 바쁜 내게 근련운동을 권하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는 헬스트레이너였다. 여름부터 그녀는 그와 1:1레슨을 받았었는데 가끔 문자도 주고받는걸 보았지만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를 무한히도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계단에 주저 앉아버렸다.
가서 그녀를 확 데리고 나올까도 생각해 봤었지만 아무래도 그 남자와도 트러블이 생기게 되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눈물을 지을까봐 또 마음이 약해질까 입장권을 한손으로 꽉 쥔채 집으로 향했다. 한강을 건너며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이 아무 이유없이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그녀의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가방안에 야구티켓과 이별의 메시지를 넣어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향하였다. 괜히 카메라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마주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카메를 받아주셨다. 오느라 고생 많았을텐데 물 한잔 하고 가라고 하셨지만 왠지 연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죄송스러워 급히 나오려하였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는데 그녀가 오늘 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씀을 건네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화의 감정보다는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내가 그렇게 둔한 녀석이었다니 속으로 감이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밤은 정말인지 길었다. 임태훈 선수에게도 길었던 게임시간이었을까?
그렇게 그녀는 사과의 말한마디 없이 나의 곁을 훌쩍 떠났다. 모래성이 파도에 한순간에 부서지듯 지난 2년간의 사랑은 산산히 분해되어 어딘지 모를 바다로 휩쓸려갔다. 당분간은 혼자만의 생활을 지내려해본다. 외로움도 느끼어보고 고독도 잔뜩 느끼어봐야지.
그렇지만 마음은 자꾸 그리움에 손을 들기에 가을이 미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