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1

닉네임2011.10.07
조회88

http://www.jbch.org/kor/sermon/view.php?sCode=10r10r10&psId=5817&strKeyword=&page=1

 

 

 

로마서 8:14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 2 3 4 5 6 7 우리가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양보하고 다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 신앙 관계를 올바로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생활만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빼앗기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양보하지 말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지켜나가다가 멀지 않아 주님 앞에 설 때에 칭찬과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영은 마귀의 영입니다. 그런데 그런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신 영,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결혼한 사람 보고 한 몸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영적으로 합해져서 한 영이 되어 주님의 영과 내 영을 분리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 5절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네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 하는 말씀을 헛된 줄 생각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시기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주님보다도 다른 것을 사랑하면, 세상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그것은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0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 구속의 날까지 그 안에서 인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로 죄를 짓고 우리 행동으로 죄를 짓고 잘못하면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시편 78편 4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한 것이 몇 번인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그 성령을 시기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심케 하지 말고 슬프시게 하지 말고 탄식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령이야 시기하든지 말든지 자기 좋을 대로 살고 성령이 슬퍼하시든지 근심하시든지 탄식하든지 말든지 자기 맘대로 살면 되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오신 성령을 우리는 편안하게 모셔야 됩니다. 기쁘게 모셔야 됩니다. 내가 가는 곳에 성령이 같이 가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님이 거기에 같이 계십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다 주님이 보시고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인격자보다도 더 훌륭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완전한 인격자가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 주님을 우리가 결코 푸대접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나도 싫어하고 주님이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아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도 원하고 주님이 원치 않는 것은 나도 하지 말며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 ~ 17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어서는 안 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이 계신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도 성전이고, 구원받은 성도들 무리도 성전입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범죄치 말아야 됩니다. 입으로 죄를 지어도,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행동으로 나쁜 짓을 해도 성령은 슬퍼하시고 근심하십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세상 것을 사랑하면, 주님은 시기하십니다.
시편 139편 8, 9, 10절을 보면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내 마음을 아시나이다. 어디로 가든지 주님이 거기 계시고 멀리서도 내 마음을 통촉하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고 사실은 가까이 계십니다. 내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내 눕는 것을 아시고 다 아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 기자는 ‘그러니 내가 어떻게 주님께 범죄할 수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성령이 계신 줄을 알면 염려, 두려움, 근심, 걱정 그런 것도 없습니다. 성령이 계신데 뭐가 걱정이 됩니까. 무슨 염려가 있습니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시편 23편 3, 4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가 양떼를 지키고 인도하듯이 주님이 내 영혼을 먹이십니다. 시편 23편 1, 2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망의 음참한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함께 계신데 무슨 걱정입니까? ‘군대가 나를 둘러 진을 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손가락질할지라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신데 무슨 걱정입니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담대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머니에 돈 떨어 졌다고,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 안 해주고 자기를 왕따 시킨다고 힘이 쭉 빠져가지고 “아이고, 내 신세야!” 비 맞은 장독처럼 왜 그럽니까? 보리죽을 먹고 포대를 입고 살아도 ‘곧 죽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목에 힘을 딱 주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교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어떤 경우에도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낙망할 것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전도하다가 잡혀서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차서 깊은 옥중에 갇혔습니다. 쥐가 우글거리고 곰팡이 핀 지하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울면서 탄식했습니까? 기도하고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왜? 주님이 거기 갇히게 했으니까. 바울이 옥에 깊이 갔을 때 주님이 나타나서 ‘바울아 담대하라. 내가 너와 같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신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3장 5, 6절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난해도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며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1장 10절에도 보면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도와주신다고 하면서 왜 가난하게 두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바울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헐벗고, 굶주리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춥고, 떨고……. 왜? 주님이 같이 계시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그 가난한 중에, 고난 중에, 환난 중에도 주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을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납니다. 주님이 일으킵니다. 오뚝이처럼.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힘이 납니다. 용기가 납니다. 생동감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금 어려운 것이 있다고 힘이 쭉 빠져가지고 실망하고 낙망하고 안 되는 겁니다. 주님이 싫어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계시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세상에 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무슨 부러운 것이 있습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신데 주님이 계신 걸 믿으면 함부로 행동 못합니다. 함부로 죄짓지 못합니다. 함부로 나쁜 말 못합니다. 같이 계신 주님이 시기하고 탄식하고 슬퍼하시면 어쩝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을 잘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