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그리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서글픕니다.

탱이탱이vo~ov2011.10.08
조회1,446

제가 회사를 불명예스럽게 퇴직한지 어느 덧 5개월이 넘어 서고 있습니다.

회사를 관두게 된것은 사장의 성추행 때문이지요.

그것으로 지금 형사재판 1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증인도 없거니와 증거도 없지요.

5개월이란 시간이 저에게는 고통이였고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법무부외 여러 곳에 저의 억울함을 호소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처음 경찰서에 찾아가 그 날을 진술하는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성추행 경험이 없는것도 아니여서 이번도 참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저의 남편도 같이 있었기에 참고 넘기기에는 저는 너무 수치 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몇일은 기다렸지요.

사과하기를 말입니다. 그러면 적당선에서 합의보고 끝낼 생각이였죠.

하지만 사과는 커녕 회사 지인에게 들은 말로는 그 일 있은 후 다음날 법조인을 만났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날 이야기 하자면 참 긴 이야기이겠죠.

 

5월 19일 그날 회사에 직원들은 다 출장 갔습니다.

오전에 저도 출장가는 인원에 납품 물품을 챙기느라 본사에 갔었습니다.

갑작스레 맡겨진 일이라 정황을 파악해서 물품을 챙겨야 되는 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오전에 급하게

서둘러 맡겨진 일이고 이미 출장간 인원들에게 물품을 보급하는것이라 여기고 물품을 챙겼으나

그것이 아니고 납품이여서 그 날 저의 일은 엉망이였습니다.

미리 하달 받았다면 미리 미리 준비했을 일이였지만 다른이가 그 일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가 담당이였으나

그는 생초보였죠. 부품이 먼지도 모르는 사람이였고 그런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도 저는 그날 출근하고

그가 말하기 전에는 몰랐죠 그래서 실수가 많아 뒤늦게 일을 마무리 하고 본사와 떨어진 회사에 사장과

복귀를 하였죠.

실지 저는 년수로 따지자면 5~6년이나 되는 기계 설계자 이지만 이쪽 계통이 워낙 여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떨어지는 직업이라 실력이 그렇게 늘지 못해 설계외에 업무들만 할뿐입니다.

실력으로 따지면 남자로 치자면 설계2년차와 비슷한 실력이지요.

 

처음엔 본사에 취직을 했죠.

면접도 3번 봤습니다.

면접 볼 당시 면접관이였던 이사님이 원래는 잔업수당과  특근수당이 없었으나 올해 부터 추진할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그 후 사장한테도 한번 더 들었죠.

해서 이미 다른 회사 취직이 되어 있었으나 회사 규모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조건으로 보나 참 괜찮다고

여겨 이 회사를 택했죠. 하지만 거짓말 이였습니다. 잔업수당 특근 수당이 연봉에 포함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죠. 해서 면접볼때 면접관으로 있던 이사님에게 물었더니 그런말 한적없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날 제가 무슨말을 들었는지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음에도 그런말 한적이 없다 말하였죠.

당장 회사를 관두기도 무리였고 하는 수없이 취업시즌이 오기만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죠.

 

그 회사를 다니면서 욕만 나왔습니다.

제자리는 감시 카메라 앞이였고 도면도 사장과 부사장의 철저한 감시로 넘겨 받는것도 몰래 받아야만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것이 곤욕이였습니다.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 장비를 선임과 같이 둘이서 조립하게 되었죠. 여자로써 하기 힘든 일이지만

조립경험이 없는것도 아니여서 무리없이 샘플로 한대를 조립하였지만 장비 자체가 비중이 나가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장비여서 무거운것을 많이 들어야 했죠.

조립을 다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허리 디스크에 걸렸고 이로 인해 들어간지 한달도 안되서 년차를 7일이나 빼야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는 원래 허리가 않좋았다고 말했고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되서

미안한 마음에 허리에 복대를 차고 다 낳지도 않은 허리의 통증을 안고 출근을 하였더니 들리는 말로는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부사장이 선임에게 "아 이래가 일하겠나? 니가 어떻게 좀 해봐라."라고 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직 다 낳지도 않은 허리에 부담이 가는것을 감안하고 출근했는데 퇴근시간은 다른 여직원들 보다 늦게 가야했습니다.

 

제가 가장 불만이였던 것이 이 점이였습니다 아침 8시 30분 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기본 근로 시간이였습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오후 5시 30분까지나 사무실은 7시 30분까지고 연봉에 2시간이 잔업 수당으로 들어 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몇몇 사무실 여직원은 7시에 퇴근 하여도 아무도 토다는 이가 없었읍니다. 하지만 저는 사장이 저의 퇴근 시간을 감독하고 있더군요. 직접 선임에게 지시할 정도 였습니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오래 앉아 있는게 힘든 정도 였는데도 꼬박 꼬박 7시 30분에 퇴근을 하였고 그 밤길을

혼자 걸어 가야 했죠. 여자 혼자 공단을 걸어 퇴근한다는 것이 위험하다는건 다들 아시죠?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따라 와서 당시 남편이 마중나오지 않았다면 위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특근도 있었죠. 사장이 직접 특근수당 챙겨 준다고 하였죠. 하지만 제가 받은건 하루 일당도 않되는 상품권

한장이였죠. 연봉도 설계초년생이 받는 수준이고요.

 

그리고 여직원들의 냉대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죠.

 

이유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라인이 있었습니다.

사장 라인

부사장 라인

사장 라인은 제가 속한 장비 사업부를 제외한 사람들이고

부사장 라인은 제가 속한 장비 사업부 사람들이죠.

제가 속한 부사장 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보다 어린 동생들에게 냉대를 받아야 했죠.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친분이 쌓이면서 이유를 들어 보니 그럴만 하더군요.

 제가 속한 부서에 여성분이 한분 더 있었는데 러시아어 통역이였습니다.

통역 실력은 프로 였지만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욕먹을 짓만 하더군요.

한마디로 나이만 믿고 깝치는 철없는 여자 였습니다. 자기 실력만 믿고 사람을 무시하는 여자라고 보면 되죠. 이여자와 부사장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편애를 하는 것이였고 여자 본인도 사람을 무시하기 일수여서 여자직원들 사이에 따돌림을 받았고 입사 당시 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여자와 친하게 지냈지만 동생들하고 친분이 쌓이고 나서 그여자가 저를 무시하더군요.

제가 그여자 꼭두 각시도 아니고 저또한 그여자를 멀리하게 되었죠.

 

한 일화를 들자면 부사장이 그여자를 따돌림하는게 못마땅해서 새로 들어온 여자 직원에게 그여자와 어울릴것을 직접적으로 명령할 정도 였답니다.

 

해서 동생들이 그여자와 부사장을 엄청 싫어 하였고 새로 들어오는 부사장 라인의 여직원을 멀리 하게 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나서 사장도 부사장도 저는 피해 다녔습니다. 괜시리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요.

 

이외에 여러 다른 욕나올 일들이 많아 사장도 부사장도 저는 엄청 싫어 하였습니다. 그들도 저를 싫어 하였고요. 

 

2011년 5월 19일 그날 이야기를 지금 부터 할까 합니다.

간추려 이야기 하겠습니다.

장비사업부는 올 초 사무실을 따로 얻어 사업장을 하나 개설하고 운영하였죠

당시 본사 부사장이였던 사람이 사장으로 업무를 보았죠.

 

앞서 말했듯이 그날 다른 직원들은 출장 중이였고 일부는 그날 저녁에 대구에 복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후에 회사에 사장과 둘이서 복귀한후 사장이 면담을 하자고 요청했고 둘이서 꽤 오래 이야기를 하였죠

대체로 저의 불만을 이야기 하였죠.

그러다 손님이 와서 이야기가 중단 되었고 손님이 가고 난 후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사장이 저에게

저녁을 먹자고 하였지만 저는 남편이 마중나오기로 했다고 처음 거절하였지만 사장이 남편보고 늦게 마중나오라고 하고 저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마져 하자는 것이였죠. 간곡한 요청에 거절하는것이 미안해서 그러기로 하고 남편에게 8시 까지 마중 나오라고 하였죠.

 

퇴근이 저녁 7시 30분인데 사장이 6시 조금 지난 시간에 퇴근하고 밥먹으로 가자고 했죠

회사 근처 쌈밥집에가서 고기와 소주 3병을 마시면서 그동안에 쌓이고 쌓였던 앙금을 풀었죠.

사장이 저에게 충성서약을 강요하였죠. 잠시 머뭇했죠. 황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충성서약을 하면 의심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고 일하는것도 믿어 보겠다 하여 못할것도 없다 싶어 찜찜했지만 충성서약을 했죠. 서로 서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남편이 마중나오기로 한 시간보다 30분이 지난 저녁 8시 30분이였고 자리를 파하고 싶었으나 사장이 남편을 동석하기를 원해서 쌈밥집으로 남편을 불러 사장에게 소개 시켰죠.

소주 한병을 더 시켜 사장과 남편이 기분 좋게 나눠 마셨죠.

 

자리가 마무리가 되어 갈 쯤 사장이 노래방에 가자고 하였죠. 밥도 얻어 먹었으니 제가 쏜다고 했죠.

그랬더니 사장이 그건 말이 안된다고 '비와 당신'이란 노래점수로 지는 사람이 노래방을 쏘자고 하였고

남편과 저는 그러자고 하였죠

그리고 바로 쌈밥집 건물 바로 옆에 있는 2층 노래방에 갔죠. 그때 시간이 저녁 9시 30분이 넘은 시간이였습니다.

노래방 쇼파 배치가 ㄷ자로 되어 있었고 가운데 사장이 않고 사장 기준으로 해서 좌측에 제가 앉고 우측에 남편이 앉았죠.

처음 셋팅을 맥주와 과일 안주로 했죠.

그리고 처음 노래 스타트를 제가 하고 그담 남편 그리고 사장이 했죠.

맥주를 다 먹고 나니 사장이 술이 약하다고 해서 제가 인터폰으로 양주를 시켰고 아주 맛있게 남편과 사장이 나눠 마시며 정말 즐겁게 어울려 즐겼습니다. (이때 저는 쌈밥집에서 먹은 술이 과음한 상태라 한번 오바이트 한 후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양주 한병을 다 마시고 한병을 더 시켰을 무렵 평소 술이 약했던 남편이 노래방에 딸린 남성 전용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저의 자리 테이블 밑으로 쓰러져 뻗었습니다.

 

그때 부터 였습니다.

사장이 저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집도 얻어 줄수 있고 일도 편하게 할수 있다고.

해서 저는 거절했죠. 제가 한 만큼만 인정 받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장이 계속 저를 안을려고 했습니다. 얼굴도 쓰다 듬고 손도 쓰다듬고 손등에 키스하게 하고 또 제손에 키스하고 러브샷을 강요하기도 하였죠.

 

뛰쳐 나오고 싶었지만 남편이 뻗은 상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죠.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건 사장을 설득시키는게 다였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이 얼추 성추행 한 시간은 아마도 밤 11시간 조금 넘은 시간부터였을 겁니다.

 

계속해서 안을려고 하는 사장을 피해 노래 부르자고 권하였더니 노래 부르는 저의 뒤로 와서 저를 끌어

안고 자칫 잘못하면 가슴을 만질수도 있는 상황이라 급히 벗어 났죠 그랬더니 어깨 동무를 하길래 밀쳐 냈더니 쇼파에 걸터 앉아 자기 무릎에 저를 앉힐려고 하였습니다.

 

노래방 기기를 끄고 "사장님 술이 과하신것 같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하고 남편에게 가서 흔들어 깨웠더니 꿈쩍도 안했습니다. 다시 본인 자리로 돌아온 사장이 또 저를 자꾸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고 저는 계속 해서 뿌리 쳤습니다. 그렇게 사장을 피해 자리를 계속해서 도망 다녔고 남편을 계속해서 흔들어 깨울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뿌리치는 저에게 사장은 성적 수치심을 느낄수있는 말들을 남발하였씁니다.

"나 너랑 섹스 안해, 나는 너랑 섹스할 생각없어."

"내가 너 보고 내 자지를 빨라고 하는거 아니자나."

"왜? 내가 섹스를 잘해서?"

등에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였고 제가 만류하는 말로

"내일 저 어떻게 보실려고 이러십니까." 했더니

"내일 부터 너 않보면 돼 괜찮아." 이러더군요

또 제가

"다른 분들한테 이러시지 않잖아요?"라고 했더니

"그래서 니가 기분나빠 니는 먼데 맨날 이래?"라고 하더 군요.

 

세번이나 무릎을 꿇고 애원하였습니다.

저의 남편이 저렇게 쓰러져 있지만 남편이 저기에 있다고 이러지 마시라고

또 어릴적 성폭행 경험이 있으니 손대는거 싫어하니까 손대지 마시라고

정말 간절하게 애원하였습니다.

 

그래도 사장은 막무간에로 저를 안을려고 하였고 마지막으로 저는 거의 발악 수준으로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반항하였죠.

 

그때 꿈쩍도 않하고 뻗어 있던 남편이 일어 났고 사장의 추행이 멈추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12시가 넘은 시간이였습니다.

 

울고 있던 저를 본 남편이 사장에게 시비를 걸었고 사장이 주먹으로 남편을 쳤죠.

이제껏 참고 있던 저는 눈이 뒤집혀 바로 사장의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습니다.

남편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사장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장이 저희에게 협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이 조폭이고 자기도 조폭이고 저희에게 별 별 이야기를 다하였죠.

 

저는 참 어리 석었습니다.

추행 당시 노래방 직원을 부를 것을..

추행 당시 경찰을 부를 것을...

추행 당시 사장과 거리가 먼 사람을 부를 것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않좋은 일은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날 경찰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 이고 또

 

저에게 몹슬짓을 한 사람이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고 남편이기에 참았던거죠.

 

그게 저의 어리석음입니다.

 

그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당시 회사 금융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던 사장의 여동생 남편이였습니다.

 

그 오전에 시행 착오를 격게 한 당사자기도 했지만 저보다 한살 많은 사람이였고  그 날 당일 출장 갔다와서 그 시간때에 집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 사람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사장이 협박하고 있을 당시 문자와 전화를 수차례 하였고 1시가 넘었을 쯤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상황이 이러니 데리러 와달라고 해죠.

 

약 40~50분이 지났을 무렵 그 사람이 노래방 앞에 와서 데리러 가면서 노래방 직원과 눈이 마주치고

그 사람을 노래방 입구 계단에서 만나 대충 상황이 이렇다고 말씀드리고 노래방 계산을 그사람이 하고

저희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니 사장이 벌떡 일어나 서둘러 방을 나갔습니다.  그 시간이 새벽 2시 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제가 저의 남편을 추슬려 저희 집으로 왔죠. 그 사람이 데려다 줬습니다. 오는 길에 서러워 한참을 울고 회사 출근을 못할것 같다고 말씀 드렸죠. 이해 하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5월 20일부터 출근은 하지 않았고 5월 25일쯤 경찰서에 가서 고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단 결근으로 퇴사 처리 되었죠.

 

사장은 제가 돈을 노리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맞대응 하고 있습니다.

 

저는요.

고아 입니다. 남편도 고아 입니다.

원래는 둘다 고아는 아닙니다.

저는 1남 3녀중 막내 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 나던 해에 돌아 가셨구요.

 

 저는 어릴적 삼촌에게 2~3년간 성폭행 당했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 할수 없었습니다. 어릴적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를 키웠는데 그때 벌어진 일이였죠. 그때 엄마는 대구에 돈벌려고 시골에 조부모님께 저희 4형제를 맡겨두고서 말이죠.

제가 성폭행을 당할때 저의 친 오빠가 망을 봤죠. 가끔 친 오빠도 저를 성폭행 하기도 하였구요.

 

그리고 초등학교 다닐때 엄마 아빠 없다고 따돌림도 받았더랬죠.

 

그리고 중학교 3학년때 대구 엄마한테 왔더니 자식이 보고 싶은게 아니라 식모가 필요했죠.

 

밥하고 빨래하고 손님 접대하고. 저희 어머니는 무속인이였거든요.

 

어릴적 부터 할머니를 도와 밥하고 빨래도 하고 밭일도 했던 저한테는 어려운 일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하거나 엄마를 화나게 하면 가차 없이 맞았죠. 심지어 언니들이나 오빠가 잘못해도

 

그 화가 저에게 왔습니다. 머리채를 잡고 온방을 끌고 다니거나 누워있는 저를 발로 사정없이 밟거나

 

대나무를 가지고와 얼굴을 제외한 곳을 사정없이 때리거나 식칼로 찌를려고 하였죠.

 

어릴적부터 계속해서 들어 왔습니다. 할머니한테도 엄마 한테도.

 

할머니는

"니 엄마가 니를 않낳을려고 하는거 내가 하나 더 놔라 놔라 해서 니가 태어 났지 낳기만 하면 내가 키운다고 했거든. 그래서 다늙어 아직도 손주 뒷바라지 하는게 참 처량하다."

 

어릴적에는 그 말에 의미도 뜻도 몰라 단지 듣기 싫었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저에게

"니는 않놨어야 됐어 니땜에 니 애비가 죽었어 니같은건 않놨어야 됐어 벼락맞아 뒤져야돼."

 

그게 엄마에게 맞는 이유였습니다.

 

저의 어릴적 희망은 엄마 였습니다. 

 

그 희망이 절망이 되었죠. 판자 촌 사글세 방 2칸 짜리 방에 살면서 그래도 엄마 곁에 있다는게 좋았는데

 

돈이 없는 엄마의 형편을 알기에 옷사달라 신발 사달라 용돈달라 맛있는거 사달라 한번도 말한적이 없었습니다.

 

촌에 살던 어린 시절에도 영세민이였던 조부모님께 그런 말들을 한적이 없었죠.

 

그래서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해서 집에 보탬이 되고 싶어 고 3때 취업을 했고 저의 용돈을 제외한

 

돈은 집으로 바로 보냈더랬죠.

 

하지만 저에게도 한계가 다가 왔죠 둘째 언니에 이유 없는 미움과 엄마의 히스테리에 저는 집을 나와 엄마와 형재들 어느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남편은 외동이였으나 그닥 좋은 환경이 아니였고 사정이 있어 집과 연락을 끊었죠.

 

둘이 어렵게 시작하였습니다. 5월달에 혼인신고만 하였죠.

 

저의 제안에 뒤늦게 남편이 2년제 야간대학에 올해 입학을 하였죠.

 

제가 버는 돈으로 생활비를 하였고 남편의 알바비로 학비를 충당 하였죠.

 

단칸방 월세 방에서 둘이서 생활하지만 제가 받는 월급은 적은 돈이 아니였기에 별 어려움없이 생활하고 있었죠.

 

6월달에 투룸에 이사갈려고 집도 알아 봤는데 이 일이 일어나고 취소하였죠.

 

그런 저에게 사장이 돈을 노리고 벌인 사기극이라고 맞대응 하고 있습니다.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아 빚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이도 차서 회사 옮기기도 쉽지도 않고 더군다나 혼인신고도 한 시점이라 남편이 졸업하고 자리 잡고 전세집이라도 얻을때까지 회사를 다닐려고 했는데 그래서 충성 서약도 했는데 ...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정말 후회 합니다.

 

경찰을 부르지 않은 것에 말입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는 부담감에.. 그리고 사장이 한 가정에 가장이라는 측은 지심에 약했던 저의 어리석음에 후회 합니다.

 

저에게는 가정이라는게 꿈이거든요.

 

하아 그날 어리석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죠... 정말 바보 같습니다.

 

재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그 날을 떠 올리며 말하는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사장이 얼마나 비양심적이고 가증스러운지 미칠것 같았습니다.

 

몇일전에 남편이랑 도가니 라는 영화를 보았죠.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대사중에 저희와 비슷한 내용들이 있더군요. 가해자들이 우기는 장면들 말입니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그리고 어릴적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리고 아팠습니다.

 

세상에는 비양심적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이일 때문에 일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에 알바비로 5개월을 버텼습니다.

 

이제 저도 일을 해야 될텐데요 .

 

몇일전에 면접을 봤더니 제 희망 연봉에서 500만원을 내려 제안 하더군요,

 

설계 경력이 3년이고 횟수로는 5~6년인데 말입니다.

 

같은 기계쪽이라고는 하나 하는 일이 다른 업종이지만 그 업종 사람들은 설계를 못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 쪽 계통이면 길면 3개월이면 적응할 만큼 식은죽 먹기 일인데 말입니다.

 

이쪽 일에 회의를 느낍니다.

 

여자라 연봉도 적게 받아야 되고 신뢰도 믿음도 얻기 힘들고 결혼하면 더이상 일하기도 힘들죠.

 

매일 야근해야 되고 그렇다고 성과도 뚜렸이 보이는 일도 아니고, 같은 실력이거나 저 못한 실력이라도

 

남자면 저보다 대우도 좋더군요 경력도 제가 훨 많은데 말입니다.

 

일에 한계를 많이 느껴 이리저리 옮겨 다녔죠....

 

제가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 대던 마냥 죽고 싶어던 시간에 지금에 남편을 만나 삶의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있지만 ..점점 미안해 지고 있습니다.

 

못난 저 때문에남편이 힘들어 하는게 보이지만 그래도 저 앞이라고 힘든 내색 않할려고 하는 남편때문에

더욱 한숨만 깊어 집니다.

 

이렇게 속시원히 이야기 할때가 필요했습니다.

 

삶 자체가 억울하고 불행한 이 박복한 년의 팔자가 한스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한 이 삶에 무게에 숨이 막혀 컥컥 거리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고 가슴부터 저리기 시작해 손끝까지 저려와서 고통스러워 했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지... 몇번이고 자살할려고 했었는지.... 외롭고 고독하지만 차마 자존심에 드러내지 못했던 저의 속마음을 .... 이렇게 들어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