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연수영의 함대는 광록도에서 다시 전투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탐망선을 띄워 전황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시성을 포위했던 태종의 당군 주력 부대가 철군을 시작한 지 닷새 후인 9월 22일에 양만춘이 보낸 전령이 광록도에 도착했다. 오골성주 추정국의 군대가 안시성에 당도했으니 수륙병진(水陸竝進)으로 비사성을 탈환하자는 제의에 연수영은 즉각 호응했다.
장수들을 호출하여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연수영은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내 이세민이 철군을 시작했다고 하오. 당주의 철군 소식을 분명히 비사성의 당군도 접했을 것이오. 대막리지 합하께서는 이세민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이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장문간을 반드시 잡아 그의 목을 베어 먼저 간 전우들의 영전에 바칠 것이오!”
그러자 담열이 나서서 요청했다.
“원수님, 이번 싸움에서는 제가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꼭 장문간을 죽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비사성 전투에서 양희봉을 잃었던 담열은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이 아주 강했다. 연수영은 눈물이 고인 눈빛을 담열에게 보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수영은 해란봉에게 붉은색 깃발을 하나 가져오게 하여 장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필묵(紙筆墨)으로 글을 썼다.
‘검도수검(劍道收劍) 적침분멸(敵侵焚滅) 지란지과(止亂止戈)’
칼을 쓰는 자가 걸어가야 할 궁극적인 길은 적의 칼을 온전히 거둬내는 데 있으며, 적의 침략을 분멸하여 병란을 거두고 적의 창질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는 뜻으로 연수영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글귀였다. 글을 본 장수들은 하나같이 숙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각오한 결전을 다짐하였다.
마침내 전함 4백여척과 군사 3만여명으로 이루어진 연수영의 함대는 광록도를 출발하여 목자진(木字陳)을 펼치고 비사성으로 항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비사성에서는 강하왕 이도종의 병력마저도 태종을 호위하기 위해 주필산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수군과 성을 수비하는 군사들의 수효가 부족했던 터라 장문간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창려성에는 양만춘과 추정국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이 당도하여 연수영의 수군 병력과 함께 비사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총관, 이 전투는 우리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황제께서도 철군하시겠다고 결심하신 이 마당에 우리가 여기서 적에게 목숨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시지요.”
당 수군의 총사령관인 장문간에게 정명진이 퇴각을 건의하는 말이었다.
장문간의 생각도 기실 퇴각하자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그로서도 비사성에서 버텨본다고 한들 승산도 없을 뿐더러 개죽음만 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추격을 늦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장문간은 매우 비겁한 술수를 쓰게 된다. 즉 수뇌부와 친위군만 슬쩍 빠져나가고 군사들은 비사성에 남겨 놓아 고구려군의 사냥감이 되도록 하자는 철수 계략이었던 것이다. 장산군도해전의 패배로 수군 총관의 직책에서 파면되어 백의종군하고 있던 장량은 수만의 군사를 희생시키고 수뇌부만 도둑 고양이처럼 전장에서 빠져나가는 행위에 대해 장수답지 않다며 극력 반대했지만 장수들 모두 장문간의 계략에 동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9월 25일 밤, 장문간·구행엄·왕대도·정명진·설만철·장량 등은 3천여명의 호종 군사를 거느리고 대선 세 척과 중선 두 척에 몸을 실어 묘도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비사성에 남은 2만의 군사들과 중랑장(中郞將) 왕정형(王庭炯)·진장(鎭將) 조원각(曺源脚) 등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수된 자들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희들만 살자고 군사들을 전부 버리다니…!”
뒤늦게 수뇌부가 비사성에서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 중랑장 왕정형은 기가 막혀 한탄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연수영이 이끄는 고구려 수군이 상륙하고, 양만춘과 추정국의 고구려 육군이 후방에서 공격해오자 비사성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성문이 부서지고 고구려의 철기병(鐵騎兵)들이 앞장서서 성 안으로 쳐들어오자 당군은 전의를 잃고 아우성을 치며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비사성은 삼면이 절벽이었고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남문 밖에 없었기에 중랑장 왕정형은 어떻게든 병력을 수습하여 정면돌파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성청(城廳)까지 밀려 들어간 왕정형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양만춘이 쏜 궁시(弓矢)를 맞고 거꾸러져 전사했다. 그러나 진장 조원각은 부하들과 함께 무기를 버리고 고구려군에게 투항했다. 이렇게 해서 비사성은 다시 고구려의 수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후 연수영이 이끄는 고구려 수군의 새로운 본영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당 수군의 수뇌부가 수만의 군사를 비사성에 남겨둔 채 자신들의 목숨만 건져 묘도로 향하는 그 뱃길에서 장량은 요동 쪽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지었다.
“으하하하!”
“공은 무엇이 즐거워 웃으시오?”
설만철이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수만의 군사를 적지(敵地)에 남겨두고 퇴각하는 우리를 비겁한 장수라고 비난할 것이오. 그러나 그들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인간은 십중팔구(十中八九) 남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요. 세상에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마도 손에 꼽는 자가 될 것이오. 하하하…!”
그의 웃음은 차라리 전장에서 죽지 않고 비겁하게 도주하는 당 수군의 장수들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설 장군은 ‘아지과현비경(我之過顯非鏡) 피지과현조책(彼之過顯組責)’이란 구절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시오?”
설만철은 글을 모르는 문맹무장(文盲武將)이었기에 장량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허물은 거울에 비추어 나타내지 않고, 남의 허물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해도 나타내기를 서슴지 않으며 작은 것도 크게 짜서 꾸짖기 마련이라는 뜻으로『맹자(孟子)』의 문구(文句)였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심성에 대해 신랄하게 힐난하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장량은 막말을 늘어놓았다.
“폐하께서는 고구려를 정벌하시면서 연개소문에게 자신의 군주를 배반하여 죽인 역적이라고 하셨다지요? 그러나 폐하께서는 형제를 죽이고 부황을 협박하여 보위에 오르신 분이 아닙니까?”
“공은 말씀을 조심하시오. 황상을 모욕하면 곧 역모죄라는 것을 모르오?”
“따지고보면 우리 황상이나 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나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이오? 우리 황상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텐데……, 결국 권력을 좇은 속된 인간인 것은 다 같은 것 아니겠소?”
설만철은 장량의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 현무문의 변란을 생각한다면 연개소문의 정변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자신의 행동도 결코 드러내놓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도 아닌데 남의 허물을 탓하였던 것이니, 기실은 형론책(形論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태종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정복하여 천하의 주인임을 부각시키고 싶었는데 전쟁의 명분이 마땅하지 않아서 연개소문이 영류태왕과 대신 1백여명을 살해하고 군사독재를 벌이는 행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오히려 정적을 탄압하고 파멸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연개소문보다 태종이 더 확실하고 잔인했으며, 더구나 태종은 주변국을 복속시키기 위해 무력의 남용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전쟁의 모든 책임이 연개소문에게 있는 것으로 상황을 몰아세운 것은 얼마나 어이없는 형론책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사성을 탈환한 양만춘·추정국·연수영의 고구려 수륙연합군은 빠른 속도로 은산에 진출하여 요동성과 그 주위의 30여군데 산성을 탈환했다. 이렇게 되자 태종은 장손무기·위지경덕·계필하력 등과 함께 퇴각하면서 이세적과 이도종의 부대를 주필산에 남겨두어 연개소문과 고정의의 추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겼다. 연개소문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태종을 사로잡거나 죽여야 전쟁이 완전히 끝난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연개소문의 대규모 반격
9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이르러 당 수군은 완전히 묘도로 밀려나고 당 육군은 이세적과 강하왕 이도종이 거느린 4만의 군사가 주필산에서 연개소문과 고정의가 거느린 고구려 군사 12만명을 저지하고 있는 사이에 태종이 친솔하는 14만의 당군은 요하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 때에 양만춘과 추정국의 고구려군은 백암성도 되찾고 전속력으로 요동성으로 진출해 연개소문의 군대처럼 결진하게 되었다. 요하에 도착한 태종은 고구려군의 반격이 두려워 하루라도 더 빨리 한시라도 더 급히 강을 건너려고 군사들에게 뗏목을 만들라고 독촉했다.
연개소문은 고정의를 비롯한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계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군은 크게 두 갈래의 전선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수군은 비사성을 버리고 묘도로 퇴각했소. 연수영 원수가 요동 해안에서 당 수군을 완전히 몰아냈으니 정말 큰 공을 세운 것이오. 그리고 양만춘과 추정국 장군이 은산과 마미성 방면을 장악해 당주의 본군을 요하에 몰아넣은 활약을 펼쳤으니 이제 전세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소.”
고정의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총공세를 펼쳐 당군을 박살내는 일만 남지 않았소이까?”
“그러나 지금 당군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정면으로 공격하면 아군의 피해도 그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장수에게 병력은 목숨과도 같은 것, 우리는 우리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적군이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할 것이오.”
장수들은 모두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말에 공감하였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병력과 보급물자이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안정적인 요지와 수로향로이다. 고구려군으로서는 요동 일대에서 7개월간 전쟁을 수행하면서 황폐해진 상황에서 병력과 보급물자를 지켜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연개소문은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였다.
“적군이 서로 스스로 죽이게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략이오. 지금 첨병을 통해 정보를 입수해 보니 당군은 사기가 극도로 바닥나고 군심이 이반되어 스스로 분열상태를 보이고 있소. 저희들끼리 나는 싸움은 더욱 붙이랬다고, 이놈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야 하오. 고정의 원수께서는 목책을 더욱 높이 쌓고 안산을 완전히 틀어막도록 하시오. 적은 이미 군량이 한정돼 있으니 많이 굶주려 있을 것이오. 인간은 먹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적을 고사시켜야 하오.”
이 무렵에 당군은 식량부족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세적과 강하왕이 이끄는 당군은 벌써 10여일이 넘도록 쌀밥 한 숟가락도 입에 대지 못한 채 쫄쫄 굶어야 했고 게다가 추위가 엄습하면서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 고구려 군사들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구워 즐겁게 포식하고 있었다. 당군 병사들의 코끝에는 고기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다가와 사람의 본능적인 식욕을 자극했다. 며칠씩 굶주렸던 당군 병사들은 고기 냄새를 맡자 입맛을 다시며 눈물까지 찔끔찔끔 빼고 있었다.
“흑흑… 맛난 고기에 여아홍 한동아리 마시고 싶다.”
이세적은 고구려군이 일부러 당군 진영에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냄새를 진동시켜 당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기 위한 계략임을 간파하고 부장들을 보내 당군 병사들을 혹독하게 매질하도록 했다.
“모두 정신들 차리지 못할까! 너희들이 먹을 것에 한눈이 팔리면 모두 죽어! 알아 들어? 적군이 곧 병력을 정비하여 쳐들어오기 위해서 저러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게야? 정신들 차리라고!”
장수들이 곤봉으로 병사들을 구타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나 오랫동안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던 당군 병사들이 정신을 차릴 리 만무했다. 병사들이 창과 칼을 내려놓고 경계근무마저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이세적은 좌수(座手)들을 불러 명령했다.
“군령을 따르지 않는 놈들은 무조건 베어라!”
좌수들이 본보기로 10여명의 병사를 도끼로 찍어 죽였다. 갑자기 분위기는 냉랭하게 일었지만, 병사들은 곧 이세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집단행동의 기미를 보였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수천리 변방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먹고 아귀가 될 수는 없다!”
이세적과 강하왕은 더욱 진노한 표정으로 좌수들에게 소리쳤다.
“좌수들은 감히 장수에게 반항하는 병사가 보이지 않는가? 모조리 쳐 죽여버려!”
“먹을 것도 주지 못하는 놈이 무슨 장수냐!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병사들의 아우성은 더욱 커졌다. 좌수들도 병사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는지 차마 더는 죽이기 못하고 있었다. 이세적은 직접 장검을 빼어 들고 10여명의 병사들을 다시 베어 죽였다. 그러나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하는 병사들이 1백명에서 5백명으로… 다시 2천명으로 갈수록 불어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이세적과 강하왕을 잡아 먹을 기세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세적인 하는 수 없이 좌수들에게 극단적인 명령을 내렸다.
“부상병들을 모두 죽여라. 그리하여 그들의 살이라도 떼어 먹고 그들의 몫으로 쌀을 내어 성한 병사들을 먹여라.”
병사들의 불만이 극도로 거세지고 사기가 밑바닥까지 내려가자 좌수들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 억지로 틀어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간신히 이렇게 해서 상황을 무마시켰지만 그로 인해서 3천여명이 넘는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많은 병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강하왕이 이세적에게 퇴각을 건의한다.
“안되겠습니다. 이 상태로는 고구려군을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12만의 고구려군보다 훨씬 병력이 부족한 4만명입니다.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황상을 뒤따라 퇴각해야 합니다.”
이세적도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영채를 뽑고 퇴각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세적의 당군이 퇴각한다는 보고를 받은 연개소문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전군은 적진으로 쳐들어가 모조리 주살하고 이세적의 목을 베어라!”
마침내 고구려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고구려군의 기마궁수 5천여명이 당군의 진영으로 달려나가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댔다. 당군은 응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개소문의 측근인 두방루가 1만의 경갑 기병을 지휘하여 적진 한가운데로 돌격해 들어갔다. 고구려 군사들의 창과 칼이 빛을 발하며 번뜩일 때마다 당군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다른 쪽 군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잔혹한 살육극이었다. 이세적과 강하왕은 간신히 남은 1만의 군사를 수습하여 횡산 쪽으로 달아났으나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정의 휘하의 고구려군에게 다시 맹타를 받아 5천여명의 군사를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요하 방면으로 도주했다.
「 ‘바다의 여왕’ 연수영 」6조양대전 ⑶
● ‘검도수검(劍道收劍) 적침분멸(敵侵焚滅) 지란지과(止亂止戈)’
그 무렵 연수영의 함대는 광록도에서 다시 전투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탐망선을 띄워 전황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시성을 포위했던 태종의 당군 주력 부대가 철군을 시작한 지 닷새 후인 9월 22일에 양만춘이 보낸 전령이 광록도에 도착했다. 오골성주 추정국의 군대가 안시성에 당도했으니 수륙병진(水陸竝進)으로 비사성을 탈환하자는 제의에 연수영은 즉각 호응했다.
장수들을 호출하여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연수영은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내 이세민이 철군을 시작했다고 하오. 당주의 철군 소식을 분명히 비사성의 당군도 접했을 것이오. 대막리지 합하께서는 이세민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이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장문간을 반드시 잡아 그의 목을 베어 먼저 간 전우들의 영전에 바칠 것이오!”
그러자 담열이 나서서 요청했다.
“원수님, 이번 싸움에서는 제가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꼭 장문간을 죽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비사성 전투에서 양희봉을 잃었던 담열은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이 아주 강했다. 연수영은 눈물이 고인 눈빛을 담열에게 보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수영은 해란봉에게 붉은색 깃발을 하나 가져오게 하여 장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필묵(紙筆墨)으로 글을 썼다.
‘검도수검(劍道收劍) 적침분멸(敵侵焚滅) 지란지과(止亂止戈)’
칼을 쓰는 자가 걸어가야 할 궁극적인 길은 적의 칼을 온전히 거둬내는 데 있으며, 적의 침략을 분멸하여 병란을 거두고 적의 창질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는 뜻으로 연수영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글귀였다. 글을 본 장수들은 하나같이 숙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각오한 결전을 다짐하였다.
마침내 전함 4백여척과 군사 3만여명으로 이루어진 연수영의 함대는 광록도를 출발하여 목자진(木字陳)을 펼치고 비사성으로 항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비사성에서는 강하왕 이도종의 병력마저도 태종을 호위하기 위해 주필산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수군과 성을 수비하는 군사들의 수효가 부족했던 터라 장문간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창려성에는 양만춘과 추정국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이 당도하여 연수영의 수군 병력과 함께 비사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총관, 이 전투는 우리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황제께서도 철군하시겠다고 결심하신 이 마당에 우리가 여기서 적에게 목숨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시지요.”
당 수군의 총사령관인 장문간에게 정명진이 퇴각을 건의하는 말이었다.
장문간의 생각도 기실 퇴각하자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그로서도 비사성에서 버텨본다고 한들 승산도 없을 뿐더러 개죽음만 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추격을 늦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장문간은 매우 비겁한 술수를 쓰게 된다. 즉 수뇌부와 친위군만 슬쩍 빠져나가고 군사들은 비사성에 남겨 놓아 고구려군의 사냥감이 되도록 하자는 철수 계략이었던 것이다. 장산군도해전의 패배로 수군 총관의 직책에서 파면되어 백의종군하고 있던 장량은 수만의 군사를 희생시키고 수뇌부만 도둑 고양이처럼 전장에서 빠져나가는 행위에 대해 장수답지 않다며 극력 반대했지만 장수들 모두 장문간의 계략에 동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9월 25일 밤, 장문간·구행엄·왕대도·정명진·설만철·장량 등은 3천여명의 호종 군사를 거느리고 대선 세 척과 중선 두 척에 몸을 실어 묘도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비사성에 남은 2만의 군사들과 중랑장(中郞將) 왕정형(王庭炯)·진장(鎭將) 조원각(曺源脚) 등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수된 자들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희들만 살자고 군사들을 전부 버리다니…!”
뒤늦게 수뇌부가 비사성에서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 중랑장 왕정형은 기가 막혀 한탄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연수영이 이끄는 고구려 수군이 상륙하고, 양만춘과 추정국의 고구려 육군이 후방에서 공격해오자 비사성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성문이 부서지고 고구려의 철기병(鐵騎兵)들이 앞장서서 성 안으로 쳐들어오자 당군은 전의를 잃고 아우성을 치며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비사성은 삼면이 절벽이었고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남문 밖에 없었기에 중랑장 왕정형은 어떻게든 병력을 수습하여 정면돌파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성청(城廳)까지 밀려 들어간 왕정형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양만춘이 쏜 궁시(弓矢)를 맞고 거꾸러져 전사했다. 그러나 진장 조원각은 부하들과 함께 무기를 버리고 고구려군에게 투항했다. 이렇게 해서 비사성은 다시 고구려의 수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후 연수영이 이끄는 고구려 수군의 새로운 본영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당 수군의 수뇌부가 수만의 군사를 비사성에 남겨둔 채 자신들의 목숨만 건져 묘도로 향하는 그 뱃길에서 장량은 요동 쪽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지었다.
“으하하하!”
“공은 무엇이 즐거워 웃으시오?”
설만철이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수만의 군사를 적지(敵地)에 남겨두고 퇴각하는 우리를 비겁한 장수라고 비난할 것이오. 그러나 그들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인간은 십중팔구(十中八九) 남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요. 세상에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마도 손에 꼽는 자가 될 것이오. 하하하…!”
그의 웃음은 차라리 전장에서 죽지 않고 비겁하게 도주하는 당 수군의 장수들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설 장군은 ‘아지과현비경(我之過顯非鏡) 피지과현조책(彼之過顯組責)’이란 구절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시오?”
설만철은 글을 모르는 문맹무장(文盲武將)이었기에 장량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허물은 거울에 비추어 나타내지 않고, 남의 허물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해도 나타내기를 서슴지 않으며 작은 것도 크게 짜서 꾸짖기 마련이라는 뜻으로『맹자(孟子)』의 문구(文句)였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심성에 대해 신랄하게 힐난하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장량은 막말을 늘어놓았다.
“폐하께서는 고구려를 정벌하시면서 연개소문에게 자신의 군주를 배반하여 죽인 역적이라고 하셨다지요? 그러나 폐하께서는 형제를 죽이고 부황을 협박하여 보위에 오르신 분이 아닙니까?”
“공은 말씀을 조심하시오. 황상을 모욕하면 곧 역모죄라는 것을 모르오?”
“따지고보면 우리 황상이나 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나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이오? 우리 황상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텐데……, 결국 권력을 좇은 속된 인간인 것은 다 같은 것 아니겠소?”
설만철은 장량의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 현무문의 변란을 생각한다면 연개소문의 정변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자신의 행동도 결코 드러내놓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도 아닌데 남의 허물을 탓하였던 것이니, 기실은 형론책(形論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태종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정복하여 천하의 주인임을 부각시키고 싶었는데 전쟁의 명분이 마땅하지 않아서 연개소문이 영류태왕과 대신 1백여명을 살해하고 군사독재를 벌이는 행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 오히려 정적을 탄압하고 파멸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연개소문보다 태종이 더 확실하고 잔인했으며, 더구나 태종은 주변국을 복속시키기 위해 무력의 남용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전쟁의 모든 책임이 연개소문에게 있는 것으로 상황을 몰아세운 것은 얼마나 어이없는 형론책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사성을 탈환한 양만춘·추정국·연수영의 고구려 수륙연합군은 빠른 속도로 은산에 진출하여 요동성과 그 주위의 30여군데 산성을 탈환했다. 이렇게 되자 태종은 장손무기·위지경덕·계필하력 등과 함께 퇴각하면서 이세적과 이도종의 부대를 주필산에 남겨두어 연개소문과 고정의의 추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겼다. 연개소문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태종을 사로잡거나 죽여야 전쟁이 완전히 끝난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연개소문의 대규모 반격
9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이르러 당 수군은 완전히 묘도로 밀려나고 당 육군은 이세적과 강하왕 이도종이 거느린 4만의 군사가 주필산에서 연개소문과 고정의가 거느린 고구려 군사 12만명을 저지하고 있는 사이에 태종이 친솔하는 14만의 당군은 요하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 때에 양만춘과 추정국의 고구려군은 백암성도 되찾고 전속력으로 요동성으로 진출해 연개소문의 군대처럼 결진하게 되었다. 요하에 도착한 태종은 고구려군의 반격이 두려워 하루라도 더 빨리 한시라도 더 급히 강을 건너려고 군사들에게 뗏목을 만들라고 독촉했다.
연개소문은 고정의를 비롯한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계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군은 크게 두 갈래의 전선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수군은 비사성을 버리고 묘도로 퇴각했소. 연수영 원수가 요동 해안에서 당 수군을 완전히 몰아냈으니 정말 큰 공을 세운 것이오. 그리고 양만춘과 추정국 장군이 은산과 마미성 방면을 장악해 당주의 본군을 요하에 몰아넣은 활약을 펼쳤으니 이제 전세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소.”
고정의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총공세를 펼쳐 당군을 박살내는 일만 남지 않았소이까?”
“그러나 지금 당군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정면으로 공격하면 아군의 피해도 그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장수에게 병력은 목숨과도 같은 것, 우리는 우리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적군이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할 것이오.”
장수들은 모두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말에 공감하였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병력과 보급물자이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안정적인 요지와 수로향로이다. 고구려군으로서는 요동 일대에서 7개월간 전쟁을 수행하면서 황폐해진 상황에서 병력과 보급물자를 지켜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연개소문은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였다.
“적군이 서로 스스로 죽이게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략이오. 지금 첨병을 통해 정보를 입수해 보니 당군은 사기가 극도로 바닥나고 군심이 이반되어 스스로 분열상태를 보이고 있소. 저희들끼리 나는 싸움은 더욱 붙이랬다고, 이놈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야 하오. 고정의 원수께서는 목책을 더욱 높이 쌓고 안산을 완전히 틀어막도록 하시오. 적은 이미 군량이 한정돼 있으니 많이 굶주려 있을 것이오. 인간은 먹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적을 고사시켜야 하오.”
9월 22일쯤 되자 연개소문은 고정의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대원수께서는 군사들에게 고기를 구워 넉넉히 먹이도록 하십시오. 구수한 냄새가 당군의 진영까지 파고 들게끔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이 무렵에 당군은 식량부족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세적과 강하왕이 이끄는 당군은 벌써 10여일이 넘도록 쌀밥 한 숟가락도 입에 대지 못한 채 쫄쫄 굶어야 했고 게다가 추위가 엄습하면서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 고구려 군사들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구워 즐겁게 포식하고 있었다. 당군 병사들의 코끝에는 고기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다가와 사람의 본능적인 식욕을 자극했다. 며칠씩 굶주렸던 당군 병사들은 고기 냄새를 맡자 입맛을 다시며 눈물까지 찔끔찔끔 빼고 있었다.
“흑흑… 맛난 고기에 여아홍 한동아리 마시고 싶다.”
이세적은 고구려군이 일부러 당군 진영에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냄새를 진동시켜 당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기 위한 계략임을 간파하고 부장들을 보내 당군 병사들을 혹독하게 매질하도록 했다.
“모두 정신들 차리지 못할까! 너희들이 먹을 것에 한눈이 팔리면 모두 죽어! 알아 들어? 적군이 곧 병력을 정비하여 쳐들어오기 위해서 저러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게야? 정신들 차리라고!”
장수들이 곤봉으로 병사들을 구타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나 오랫동안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던 당군 병사들이 정신을 차릴 리 만무했다. 병사들이 창과 칼을 내려놓고 경계근무마저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이세적은 좌수(座手)들을 불러 명령했다.
“군령을 따르지 않는 놈들은 무조건 베어라!”
좌수들이 본보기로 10여명의 병사를 도끼로 찍어 죽였다. 갑자기 분위기는 냉랭하게 일었지만, 병사들은 곧 이세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집단행동의 기미를 보였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수천리 변방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먹고 아귀가 될 수는 없다!”
이세적과 강하왕은 더욱 진노한 표정으로 좌수들에게 소리쳤다.
“좌수들은 감히 장수에게 반항하는 병사가 보이지 않는가? 모조리 쳐 죽여버려!”
“먹을 것도 주지 못하는 놈이 무슨 장수냐!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병사들의 아우성은 더욱 커졌다. 좌수들도 병사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는지 차마 더는 죽이기 못하고 있었다. 이세적은 직접 장검을 빼어 들고 10여명의 병사들을 다시 베어 죽였다. 그러나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하는 병사들이 1백명에서 5백명으로… 다시 2천명으로 갈수록 불어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이세적과 강하왕을 잡아 먹을 기세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세적인 하는 수 없이 좌수들에게 극단적인 명령을 내렸다.
“부상병들을 모두 죽여라. 그리하여 그들의 살이라도 떼어 먹고 그들의 몫으로 쌀을 내어 성한 병사들을 먹여라.”
병사들의 불만이 극도로 거세지고 사기가 밑바닥까지 내려가자 좌수들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 억지로 틀어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간신히 이렇게 해서 상황을 무마시켰지만 그로 인해서 3천여명이 넘는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많은 병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강하왕이 이세적에게 퇴각을 건의한다.
“안되겠습니다. 이 상태로는 고구려군을 저지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12만의 고구려군보다 훨씬 병력이 부족한 4만명입니다.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황상을 뒤따라 퇴각해야 합니다.”
이세적도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영채를 뽑고 퇴각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세적의 당군이 퇴각한다는 보고를 받은 연개소문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전군은 적진으로 쳐들어가 모조리 주살하고 이세적의 목을 베어라!”
마침내 고구려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고구려군의 기마궁수 5천여명이 당군의 진영으로 달려나가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댔다. 당군은 응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개소문의 측근인 두방루가 1만의 경갑 기병을 지휘하여 적진 한가운데로 돌격해 들어갔다. 고구려 군사들의 창과 칼이 빛을 발하며 번뜩일 때마다 당군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다른 쪽 군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잔혹한 살육극이었다. 이세적과 강하왕은 간신히 남은 1만의 군사를 수습하여 횡산 쪽으로 달아났으나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정의 휘하의 고구려군에게 다시 맹타를 받아 5천여명의 군사를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요하 방면으로 도주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