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부터 계륵까지' 이동국, 대표팀 영욕?

개마기사단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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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011-10-11]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 3차전에서 후반 조커로 나서는 이동국이 ‘조광래호’에서 결국 제1스트라이커를 놓고 거센 경쟁 구도에 놓였다. 그와 태극마크에 얽힌 영욕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10일까지 A매치 85회 출전에 25골을 넣은 이동국은 ‘라이언킹’이란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대표에선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했다.

시작은 말그대로 창대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끈 1998 프랑스월드컵에 열아홉의 나이로 승선해. 네덜란드전에서 교체멤버로 출전했을 때만 해도 미래는 장밋빛 인생인 줄 알았다. 1998 방콕아시안게임과 2000 레바논아시안컵에서 그는 허정무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주전 공격수로 내내 출전했다.

2001년 1월엔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임대선수로 진출하며 유럽무대에 서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면서 아픔이 찾아왔다. 분데스리가에서 6개월만에 귀국길에 오른 그는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승선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막판 2002 한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황선홍 최용수에 밀려 제외됐다. 2003년 2월 출범한 움베르트 코엘류 감독의 대표팀 체제에서도 이동국은 좀처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코엘류 감독은 “스피드가 떨어진다”면서 이동국 대신 2002 월드컵 4강 주역인 안정환을 중용했다.

대표팀에서 이동국에게 제2의 전성기는 2004년 6월 조 본프레레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찾아왔다. 2003년 발가락 피로골절 수술을 받는 등 부상의 늪에 빠졌던 그는 2004 중국아시안컵과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빠짐없이 출전하며 킬러 대접을 받았다. 이 기간 22경기에서 11골을 쏘아올려 아시아 무대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검증을 받았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6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도 눈에 들어 주전 공격수로 낙점받았다. 그러나 독일월드컵을 2개월 앞둔 2006년 4월 오른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월드컵 꿈을 접었다.

이후 핌 베어벡 감독 체제에선 독일 월드컵에서 떠오른 조재진에 가려 경쟁자로 떨어진 그는 2007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기간 동안 음주 파동에 휘말려 오점을 남겼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위해 출범한 ‘허정무호’에서는 차출을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허 감독은 이동국의 움직임 부족을 지적하며 차출을 꺼리다 2009년 8월 파라과이전을 앞두고 첫 발탁했다. 이동국은 2010년 1월 잠비아전까지 출전시간상 45분 이상을 뛴 적이 없을 정도로 중용되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가까스로 들었지만 개막을 앞두고 오른 허벅지 뒷근육을 다치는 시름을 겪었고. 본선 무대에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전에서 후반 교체멤버로 쓰였다.

‘조광래호’에서도 발탁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7일 폴란드전에서 첫 발탁 후 선발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45분만 뛰고 교체됐고. UAE전에서는 일찌감치 후반 조커로 역할이 확정됐다.

〈스포츠조선 오광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