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오봉산 "누구에게나 수호천사가 있다"

박교빈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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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正道라 생각하고 선택한 길이 실제 걸어보니 내 길이 아닐 때.

친구처럼 믿을 만한 지인이 실은 내 맞수였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리고 그 둘이 예고 없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은 내게 떠나라 했다.

나는 등산을 하며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고, 하산 지점에 볼거리가 많은 청평사라는 절이 있고, 절 구경도 끝나면 여객선을 타고 소양호를 건너는 매력을 가진 오봉산을 택했다.

 

동네 성미산에 오르는 편안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지만 인적이 드문 평일에, 여자 혼자,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까다로운 산을, 그것도 낮 12시에 시작한 등반은 초반부터 불안불안했다.

 

나처럼 오봉산에 가기 위해, 춘천역에서 내가 탄 버스에 오른 두 쌍의 부부가 처음이자 마지막 본 사람이었다. 그나마도 배후령 정상에서 하차하여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버스에서 내다 본 배후령길

 

 

 

 

 

가파른 잡목 숲길을 지나 완만한 길을 걷는데 발밑에서 삭삭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가 있다.

 

‘조금 가면 아까 그 사람들이 있을 거야. 잠시 동안만 나 혼자 걷다가 그 사람들 뒤에서 가야지.’

 

등반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게 된다.

 

‘내가 이 번민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숨을 쉬고 살지.’

 

생각을 않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의식하고 나무를 보고 나뭇잎을 보았다.

 

한참을 가도 아까 그 부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등산객들도 없다.

사색을 하며 나 자신을 찾는 산행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 보다는 호젓함과 적막감이 엄습해 온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나는 인생을 살면서도 자꾸 지나간 일에 얽매여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배후령길을 내려다보다

 

 

 

 

 

청솔바위 못 미쳐 아까 그 부부들이 있다.

그들보다 약간 앞서 걸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들을 지나 청솔바위가 잘 보이는 급경사 길 한가운데 앉았다.

 

 

 

청솔바위

 

‘어쩜 소나무가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저리 잘도 자랄까?’

청솔바위 뿐만이 아니라 오봉산 곳곳의 소나무는 ‘바위 틈에서 살기’의 달목達木 같았다.

‘말 못하는 소나무도 메마른 바위 틈에서 살기 위해 저리 용쓰건만...’

 

 

 

위: 진혼비

 

 

춘천 시외버스터미널 옆 이마트에서 구입한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걸을 채비를 하는데 가파른 길을 오르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보인다.

 

혼자 왔냐고 서로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는 같이 등반을 제안하셨지만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안심하고 가는 것으로 해요.”

 

나보다 앞선 아주머니는 저 앞 가파른 암릉에서 등산스틱을 접어 가방에 정리하고 있다.

 

내가 다가가니 아주머니는 절벽 아래로 탐스럽고 곱게 물든 단풍을 일러준다.

 

“요즘 머리가 아파서 남편도 떼어놓고 나오긴 했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무섭더라니까요. 내가 미쳤지, 왜 나왔을까 했다니까요.”

 

아주머니도 인적없는 산길이 나만큼이나 무서웠나 보다.

 

“저는요, 아주머니...”

 

나는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처음 본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고 그 일이 의도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연계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크나큰 아픔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이다.

 

아주머니는 내 말 끝마다 호응해 주고 내 편을 들어준다.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내실을 다져봐요.”

 

“그래야겠지요? 네! 저 그럴래요. 이 산에서 내려가면 다 잊고 저만 생각할래요.”

 

“내가 이 산을 이 늦게 왜 왔나, 했는데 자매님 만나려고 성모님이 보내셨나 보네.”

 

“저두요, 계획했던 것 보다 늦게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뭔가에 끌리 듯 후다닥 여기에 온 게 신기해요.”

 

 

 

 

홈통바위: 흰 줄을 따라 저 좁은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소나무 사이로 소양호가 보인다

 

 

 

 

 

 

 아주머니와 저 멀리 '소양호'

 

 

 

아주머니가 밧줄을 잡고 암릉을 내려가고 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주머니를 밀어냈다면 난 구급 헬기를 불렀거나 아무도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갔을 지도 모르겠다.

하산길의 암릉지대는 주변에 나무나 풀이 있는 등산로와는 확연히 다르게 길의 흔적이나 발자국이 없었던 것이다. 아주머니를 따라 암릉 위를 걸으니 절벽에 쇠말뚝과 밧줄만 보이는 것이었다. 운동화 차림에 초심자인 나는 끄응끄응 앓으며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며 겨우 내려왔다.

 

아주머니는 정말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수호천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왜 남편 분은 떼어놓고 오셨어요? 전 부부가 같이 산에 다니면 다정해 보여 부럽던데..”

 

“귀찮아서. 젊을 때는 나 혼자 외롭게 버려두고  밖으로 돌았거든. 부부로 같이 살아도 외로울 때가 많아.”

 

“둘이어도 외롭다면 더 슬플 거 같아요.”

 

 

 

 

하산하면 만나는 청평사

 

 

 

일주문(一柱門)역할을 하는 잣나무 아래에서 잣을 까먹고 내빼는 다람쥐 

 

 

 

 

낙엽을 걷어내고 겨울에 보면 더 멋지다는... 이름은 모르겠다.

문화해설사가 아주머니 무리를 이끌고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 보았다.

청평사 화장실 앞을 지나 왼쪽에 있다 

 

 

 

원래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구송폭포라 불렸던 것이 구성폭포로 와전되어
아홉 개의 소리가 들리는 폭포로 알려졌다고 한다

 

 

 

옛날 당나라 태종에게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공주를 짝사랑하는 청년이 평민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총각은 상사병에 걸렸고, 분노한 왕은 그를 죽인다.

     

하지만 죽어서도 공주와 함께 하겠다는 총각은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온갖 처방에도 뱀은 떨어지지 않았고 공주는 야위어가자, 부처님에게 빌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곳이 고려의 청평사. 밤이 늦어 동굴에서 노숙을 하고 이튿날 잠깐 불공을 드리고 오겠다는 공주의 말에, 어찌된 일인지 뱀은 10년 만에 떨어져 주었다. 하지만 기다리다 조바심이 난 상사뱀은 공주를 찾아 절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고 폭우에 떠밀려 죽었다. 공주는 부처님의 은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3층 석탑을 세웠다.

당시 공주가 은거했던 굴은 공주굴, 3층 석탑은 공주탑으로 불리는데, 회전문은 상사뱀이 돌아나갔다고 해서 회전문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84194

 

 

 

공주 상

 

 

 

청평사에서 소양강 댐으로 가는 5시 여객선

10분 소요, 요금 3000원  

 

 

 

오봉산

 

오봉산(五峰山)은 높이는 779m로, 소양강댐 건너 청평사 뒤에 솟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를 말한다. 배후령 방면부터 1봉(나한봉)~2봉(관음봉)~3봉(문수봉)~4봉(보현봉)~5봉(정상·비로봉)의 순서로 늘어서 있다. 이중 제5봉이기도 한 정상에서 청평사 방면으로 뻗어내린 암릉이 특히 빼어난 풍광을 지녔다. 이 암릉을 따라 소양호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길이 산행의 백미이다.

 

이 암릉길의 아름다움에 선동계곡에 자리한 청평사, 고려정원, 구성폭포 등 명소가 즐비하여 명산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배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표고차가 크게 나지 않아 쉽게 정상을 밟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내가 오봉산에 간 방식

 

상봉역 경춘선 전철: 남춘천역 하차 → 도보로 10분 거리의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구’행 버스 승차(18번 시내버스는 1시간 정도 소요) → 30분 후 ‘배후령’ 하차

 

등산화, 장갑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