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호.......너야말로 적그리스도 영이구나

진짜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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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여러분의 세계에서, 드물게 얻어지는 결정으로, 성스러운 '깨달음'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몇몇의 위대한 영적 마스터들이 이 결정에 도달하였으며 그 지식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였습니다.

 

이 제자들의 대다수는 그들의 뒤죽 박죽된 생각 속에서 이 가르침을 잃어버렸고, 그리하여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승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깨달음은 전혀 정확하지 않은 거짓된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모든 역할이 그를 믿는 신앙인들을 그들의 죄 의식과 비참함, 그리고 사탄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킨 그의 죽음에 그 핵심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바울이 서신에 쓴 한 마디 말이 예수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며, 그는 심지어 그의 비유 가운데 어느 하나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의 철학과 사상만을 전개시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마귀의 자식들, 즉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쉬운 자녀로써 그 성격을 규정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희망도 없고, 하나님 없이 버림 받은 상태, 즉 우리는 사탄의 지배력 아래 있고, 사탄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천벌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따라다닙니다.

 

바울 때문에 기독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기독교도들이 두려움의 멍에 밑에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종교는 이미 친절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예수의 개념에서 벗어나 바울의 말에 의해 생성된 진노한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미숙함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핵심은 바울이 정확히 명시한 말,

즉 구원받기 위해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가장 가슴에 와닿게 됩니다.

 

바울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교리는 구원을 하나님을 위한 일방적인 일로 만듭니다.

즉 사람들은 지상에서 제한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것은 물론 매우 그럴 듯 합니다.

그것은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기독교 교회에 가입하기만 하면 구원은 자동적으로 보장받습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은 삶의 목표에 도달하는데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독교도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희생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이러한 교회에 참가하여 회비를 지불하기만 하면 영원한 천국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히 그러한 가르침은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였고,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믿기란 훨씬 더 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단지 개종하는 행위에 의해 속죄되었고,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완벽한 새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의 역할이 경시된 구원행위를 위해 개인 각자가 시도하는 모든 노력은 심지어 죽을 죄가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의 삶을 모범적이고 선하게 산다 해도 만약 그들이 십자가 위의 희생을 전적으로 그들 개인의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깊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버림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기독교의 위대함과 독특함이 이 가르침의 진리와 더불어 지탱되거나 쓰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런 생각은 예수의 실제 사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지는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소위 구원에 대한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없습니다. 예수의 메시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 안에나 또는 주기도문이나 예수의 전통적인 비유 안에도 없습니다.

 

실젤 그런 구원이 그토록 중요했다면, 예수는 희생적인 죽음이 인류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약간의 암시만이라도 주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사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억제를 한다 해도 그의 살아있는 윤리를 다 가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메시지나 길에 대한 학계의 이론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이론도 제시한 바가 없습니다. ㅡ 그는 단지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뿐이지요.

 

관용, 편견없이 남을 받아들이는 것, 주고 나누어 가지는 것,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무한한 사랑의 행위와 이웃을 위한 봉사 ㅡ 이런 것이 바로 예수가 구원으로 보여 준 일인 것입니다.

 

어찌 진리를 왜곡한 사람이 바울 뿐이었으리, 교황청은 윤회설을 말살하였고, 로마는 자신들의 정치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교리를 조작하였으며 어둠의 비밀세력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외 성경은 4번씩이나 번역되면서 본질과 달라졌고, 나운몽 목사는 정정해야할 곳이 무려 1만 군데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이러한 조작된 책을 기독교인들에게만 속하지 않고 영적 성장 단계에 따라 모든 이에게 영적 양식이니 하며 남에게 젖먹이 운운하며 스스로 딱딱한 것을 먹어보았다고 말하는가.

 

정말 딱딱한 것을 먹어보았다면 지금의 조작된 부분이 어디이며 예수님의 본래의 진리 말씀을 성경책과 관계없이 아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고, 구약의 게마트리아적 비의를 해석을 할 수 있기라도 하는가 되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