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붕어빵을 팔아 경비를 마련하여 그해 마지막 겨울 전지훈련을 태국이 아닌 필리핀으로 보내고 해를 넘겨 2월 귀국한 아들에게 주문한것이 이번 제주도지사배대회에 제발 3등안에 들어 아시아-태평양 선수권전에 참가했으면.... 하는 얼토당토 않은 주문을 했습니다. 당근 기대는 안했죠. 그정도 야그해놔야 베스트 텐안이라도 들어줄까? 아니 솔직히 7위까지는 유자격으로 중고연맹과 대한골프협회 주관하는 모든 대회씨드를 받을수있으니까 7위까지가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맘뿐이였습니다. 말로는 무슨말인들 말로야 무슨 목푤 못 정하겠습니까? ************************************************** 경기도 안양 보육원 일인골프팀을 독자적으로 운영! 염치불구하고 각종 협조요청공문을 안양보육원 원장명의로 공문을 작성해서 보냈다. 과거 [부활]시절 방송국으로 홍보하듯이.... 관심을 보이는 대회 관계기관이 많지 안았다. 제주도 와는 사뭇 달랐다. 예선부터 면제해주는 대회관계자들의 회신은 아주 큰도움이였고,,, 예선은 자비로 통과해라 그러면 본선은 면제해주겠다라는 대회관계자가 많았다. (각종대회에서 예선통과한 예가 별로 없기에...그런 답신이 왔나?봅니다.추측입니다) 고1때도 빽에 걸려 예선 비용만 날리고 청해진 빼 타고 돌아왔다. 고2때도 역시 빽인데 바로 한명 차이로떨어졌다. 열불이 터졌다. 고3 마지막 제주도지사배대회 이번엔 큰맘먹고 비행기 태워보냈습니다. 표프로님 아카데미 팀에 합류해서 숙소도 모텔로 잡아주고,,, 최대한 컨디션 조절에 신경썼습니다. 고3때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ㅋㅋ 간발의차로빽카운터로 통과했다. 뭐 6홀이 평범한 홀이면 6홀이 위기의홀이고 나머지 6홀은 챤스홀이다 이건가봅니다. 33%의 확률은 준다 이겁니다. 그래도 전화를 받는 내심정은 별로 였습니다. '아빠겨우 통과 했어' '그래 다행이구나' 별로 길게 하고싶은말이 없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한숨만 나오네요~ 그래서... '푹쉬거라 푹쉬고 본선준비나 잘해라~' '알았어 아빠' 진짜 푹쉬길 바랬습니다. ^%^ -------------------------------------------------------------- 이제 주니어 아마추어 시절의 이상하다못해 희한한 사연으로 시작하게된 나와 아들녀석의 골프 도전기 그 마지막 글들 일것 같습니다. 요약 정리를하자면... 1997년 나의 이혼으로 인하여 좀 어지러운 상황이였을때... 신학공부를 하시던 형님께서 보육원 골프단을 창단합니다. 1999년 8월이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친척 외삼촌이 원장으로 계시는 논산의 계룡학사 보육원에 입소하여, 그해 무지하게 더운 여름부터 산악훈련과 20KM 왕복 달리기만 시작해서 ... 2000년 부터 골프클럽을 손에잡아봅니다. 아들넘의 첫번째 중고 골프클럽은 예민한 여성선수전용의 혼마클럽이였습니다.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쥐고 패대기를 쳐야했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쳐지가 아니였죠. 2000년에 제2팀 제주도 홍익보육원에 무임감독으로 가게되면서... 아들녀석과 제주로 가게됩니다. 한 1년반 정도 제주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라운딩 참 마니 했던것 같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티엎하기전에 새벽에 9홀을 돌았습니다. 제주씨씨. 파라다이스씨씨. 중문씨씨를 돌아가며 일주일에 3회 하프 란딩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쯤 부터 이상한 기류가 형성됐습니다. 이것도 나의 선입견 적인 오해일수도 있지만 ... 아니어도 괞챦고 그랬다면 더욱 잘됀 일이라 생각되는 일입니다만... 방송을 타고 세간에 이목을 받자 후원해주는 단체들이 생겨났던것 같습니다. (난 이런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추측만 할뿐) 그래서 글머리에 조심스럽게 쓸것이라고 했던부분 입니다. 최근에 형님댁에가서 자서전형식의 형님이 쓰신 책을 보니 ... 아! 내생각이 맞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 삼양초등학교를 억지 졸업하고 미련없이 골프포기하자~! 굳게 마음먹고 안양으로 올라온것입니다. 안양보육원에서 보육원 일인 골프팀을 하게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골프하란 운명인가보다~ 하고 .... 부모이자 감독이자 스승이자 매니져이자 일인 4역 역활을 하게된 사연입니다. 그리고 10년지났습니다. 서론을 요약해보니 대충 이렇군요,,,, ^&^ ***************************************************** 용인에서 한창 붕어빵을 팔고있는데..... ( 제주도지사배대회 본선 첫날~) 아들의 전화가 예상외로 일찍 울렸습니다. 어라~ (제법 쳤나보다..). 전화가 안오거나 늦게오면 별 볼일 없는거거든요. ㅋㅋ *********************************************************** 양명고 3학년 구력 7~8년차. 시합베스트스코어 75타 당시 나는 용인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온통 휴대폰 벨소리에 집중하고 있엇습니다. 이미 3월 말쯤되자 하루 2~30마넌정도 매출이 십마넌도 안오르고 있었습니다. 장사라는게 그렇더군요, 날씨가 점점 더워져 빙과류를 찿는계절이 되니 자연 손님이떨어지고 매출이 격감하니 힘은 힘대로 더 드는것입니다. 장사가 잘될때는 정말 힘드는줄 몰랐습니다. 바로 뒷 건물 스크린 골프장 사장님과 단골 손님들도 아들의 대회소식을 물어올정도로 용인(구성 경찰대 입구)지역내 주민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정말 그때가 즐거웠습니다. 마차 뒤에는 아들의 멋진 스윙포즈가 들어있는 액자를 걸어놓고 장사 했거든요... ^&^ "예 아들넘입니다" 딱 한마디에 하루 피로가 싹~ 이윽고 전화 벨리 울렸다. "아빠? 완오버야!" "뭐라고~ 정말이냐? 현재 순위는 ?" 나도 모르게 첨으로 등수를 물어봤습니다. (될수있는한 등수에 의미를 두느 발언은 가급적 피했었거든요...) "어 15등" "어 그러냐 수고했다! 정말 잘했다 !내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타만 줄여라!" 전화를 끊고 정말 내일 한타만 줄일수있을까? 아니면 정말 잘쳐보려는 맘이 앞서 무너지는 스코어...가 되지는 않는지? 79타나 80초반대로 들어오는것은 아닌가? 많은생각이 났습니다. 그동안의 주니어 성적들이라는게 완전 정상급 몇명을 빼놓곤 들쑥 날쑥이거든요, ^&^ 미친년 널뛴다는,,,,뭐 그런 상황이 종종 연출됩니다. 아마추어 쥬니어때는 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쥬니어때 잘친다고 기대를 너무 갖지도 말것이며,,, 주니어때 좀 못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게 저의 지론입니다.) 각설하고 본선 첫날 +1은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지사배 대회는 예선 성적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선 이틀 경기결과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본선 이틀째 ... 아들넘이 사고를 쳤습니다. 대형사고입니다... 한타 이븐으로만 들어오길 그토록 간절히 기도 했는데... 언더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시합에서 언더는 첨이였습니다. ~~~~~~~~~~~~~~~~~~~~~~~~~~~~~~~~~~~~~~~~~~~~~~~ *) 안봐도 훤한 서코스 입니다. 클럽하우스 코앞의 마지막홀 par4 입니다. 미틑날 본선 마지막 2라운드 ... 생전 저나 안하시던 표프로님이 저날 주셨습니다. 범이가 나인 하프를 완언더로 지나갔다고요. 사뭇 흥분된 음성이였습니다. 나도 용인에서 빵을 굽는건지 태우는건지 정신없었습니다. 제발 후반 나인도 이대로만 들어와라1 그리고 벨이 빨리 울려주길 바랬습니다. 전화벨이 늦으면 그건 꽝이라는 야그입니다. 울렸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신호가 왔습니다. '옳다 !구나 됐구나,,' (최소 이븐내지 완언더겠구나 했습죠..) '아빠 쓰리언더야!' '잉~ 뭐라꼬... 다시말해봐라~' '토탈 142 투언더야 4등이야 3등못해서 미안해' '얌마 장난하냐 장하다 수고했다 마이 선!' '근네 아빠 마지막홀에서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뭔생각했는데..' '완언더로 왔는데 딱 마지막 홀에서 아빠 말이 생각났어!' '무슨말...?' '항상 마지막홀은 버디를 잡으라는 아빠 잔소리..' '그랬냐? 그래서..' '그래서 소나무를 넘겨야겠다고 맘먹고 제대로 쳤어?' '그래서..' '한 300야드 나갔나봐..소나물 넘겨 그린이 다보였으니까! ' '그랬냐,,,잘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소나무가 쎈타에 딱 버티고있어 까따로운 그린입니다.' 소나무 밑둥이라도 들어가는날엔 골치아픈 상황이 종종 발생되곤하죠, 소나무를 무난히넘긴 결과! 훤히 보이는 그린을향해부드러운 샷 했을것이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한(마치 죽은 조카가 수호천사로 나타나 도와주지않았나?생각합니다) 투온 이글 샷 이였습니다. 처음으로 6자를 그려낸것입니다.라베입니다. 69타! 차후에 모 학부형으로 부터 들은이야기지만.... 팬서비스 확실히 하고 우뢰와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전해주더군요. 쑤근쑤근 대는 소리와함께... '쟤~ 양명고3인데 안양보육원소속이래...제법 치는데...' 아들의 귓가까지 이 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이때를 생각해보니... 올해2009년 4월 세미프로테스트에 통과했을때보다도 더 감격이였습니다. '그래 뉘들 몇놈 죽었어!' '몇놈은 골프채 놓게 만들어 놓겠다 ?라는 나의 오만함이 발동걸렸던때죠' ㅋㅋ 근데... 지금도 6살 연상의 이성문제로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지만... 동갑나기 여자아이와 최초의 이성문제로 날 미치고 팔짝 뛰게 할줄 그땐 알았겠습니까? 그래 이제 스포츠조선배 와 mbc 최강전을 목표로도전하자! 그랬는데... 스포츠조선배는 홈그라운드와같은 프라쟈 컨트리클럽입니다. mbc최강전은 중학교때는 특별 출전했지만 이젠 유자격으로 자력 출전할수있으니 중앙cc 관계자들 볼 면목도 생기고 얼마나 좋았었는지... 1~7위까지는 2007년 전대회 시드배정을 받아 유자격으로 출전할수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예 신청접수도 안하고 잠수를 하더군요, 참 ! 그땔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고 등골이 싸늘해 집니다요... 근데 또 세미가 된 이싯점에서 연상의 무려 6살 위 누나와 사귄다는 소리에 벌서 보름째 연락 두절입니다. 어제 2009/8/6 스카이72투어도 하늘 코스에서 이븐으로 2라운드 진출하지못한것도 맘에걸립니다. 최근 연습때 늘 투언더정도는 유지했는데... 정말 아쉬운 두 대회를 (스포츠조선배.엠비시 최강전)신청조차 안한것입니다. 프라쟈는 정말 홈그라운드거든요... 거기엔 약간의 사연이 또 있습니다. 형의 자서전 '널위해 울어줄 눈물이 없구나'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제 슬슬 총정리를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흔적#F
그렇게 붕어빵을 팔아 경비를 마련하여 그해 마지막 겨울 전지훈련을 태국이 아닌 필리핀으로 보내고 해를 넘겨 2월 귀국한 아들에게 주문한것이 이번 제주도지사배대회에 제발 3등안에 들어 아시아-태평양 선수권전에 참가했으면....
하는 얼토당토 않은 주문을 했습니다.
당근 기대는 안했죠.
그정도 야그해놔야 베스트 텐안이라도 들어줄까?
아니 솔직히 7위까지는 유자격으로 중고연맹과 대한골프협회 주관하는 모든 대회씨드를 받을수있으니까 7위까지가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맘뿐이였습니다.
말로는 무슨말인들 말로야 무슨 목푤 못 정하겠습니까?
**************************************************
경기도 안양 보육원 일인골프팀을 독자적으로 운영!
염치불구하고 각종 협조요청공문을 안양보육원 원장명의로 공문을 작성해서 보냈다.
과거 [부활]시절 방송국으로 홍보하듯이....
관심을 보이는 대회 관계기관이 많지 안았다.
제주도 와는 사뭇 달랐다.
예선부터 면제해주는 대회관계자들의 회신은 아주 큰도움이였고,,,
예선은 자비로 통과해라 그러면 본선은 면제해주겠다라는 대회관계자가 많았다.
(각종대회에서 예선통과한 예가 별로 없기에...그런 답신이 왔나?봅니다.추측입니다)
고1때도 빽에 걸려 예선 비용만 날리고 청해진 빼 타고 돌아왔다.
고2때도 역시 빽인데 바로 한명 차이로떨어졌다.
열불이 터졌다.
고3 마지막 제주도지사배대회
이번엔 큰맘먹고 비행기 태워보냈습니다.
표프로님 아카데미 팀에 합류해서 숙소도 모텔로 잡아주고,,,
최대한 컨디션 조절에 신경썼습니다.
고3때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ㅋㅋ
간발의차로빽카운터로 통과했다.
뭐 6홀이 평범한 홀이면
6홀이 위기의홀이고
나머지 6홀은 챤스홀이다 이건가봅니다.
33%의 확률은 준다 이겁니다.
그래도 전화를 받는 내심정은 별로 였습니다.
'아빠겨우 통과 했어'
'그래 다행이구나'
별로 길게 하고싶은말이 없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한숨만 나오네요~
그래서...
'푹쉬거라 푹쉬고 본선준비나 잘해라~'
'알았어 아빠'
진짜 푹쉬길 바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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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니어 아마추어 시절의 이상하다못해 희한한 사연으로 시작하게된 나와 아들녀석의 골프 도전기 그 마지막 글들 일것 같습니다.
요약 정리를하자면...
1997년 나의 이혼으로 인하여 좀 어지러운 상황이였을때...
신학공부를 하시던 형님께서 보육원 골프단을 창단합니다.
1999년 8월이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친척 외삼촌이 원장으로 계시는 논산의 계룡학사 보육원에 입소하여,
그해 무지하게 더운 여름부터 산악훈련과 20KM 왕복 달리기만 시작해서 ...
2000년 부터 골프클럽을 손에잡아봅니다.
아들넘의 첫번째 중고 골프클럽은 예민한 여성선수전용의 혼마클럽이였습니다.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쥐고 패대기를 쳐야했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쳐지가 아니였죠.
2000년에 제2팀 제주도 홍익보육원에 무임감독으로 가게되면서...
아들녀석과 제주로 가게됩니다.
한 1년반 정도 제주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라운딩 참 마니 했던것 같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티엎하기전에 새벽에 9홀을 돌았습니다.
제주씨씨. 파라다이스씨씨. 중문씨씨를 돌아가며 일주일에 3회 하프 란딩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쯤 부터 이상한 기류가 형성됐습니다.
이것도 나의 선입견 적인 오해일수도 있지만 ...
아니어도 괞챦고 그랬다면 더욱 잘됀 일이라 생각되는 일입니다만...
방송을 타고 세간에 이목을 받자 후원해주는 단체들이 생겨났던것 같습니다.
(난 이런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추측만 할뿐)
그래서 글머리에 조심스럽게 쓸것이라고 했던부분 입니다.
최근에 형님댁에가서 자서전형식의 형님이 쓰신 책을 보니 ...
아! 내생각이 맞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 삼양초등학교를 억지 졸업하고 미련없이 골프포기하자~! 굳게 마음먹고 안양으로 올라온것입니다.
안양보육원에서 보육원 일인 골프팀을 하게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골프하란 운명인가보다~
하고 ....
부모이자 감독이자 스승이자 매니져이자 일인 4역 역활을 하게된 사연입니다.
그리고 10년지났습니다.
서론을 요약해보니 대충 이렇군요,,,,
^&^
*****************************************************
용인에서 한창 붕어빵을 팔고있는데.....
( 제주도지사배대회 본선 첫날~)
아들의 전화가 예상외로 일찍 울렸습니다.
어라~
(제법 쳤나보다..).
전화가 안오거나 늦게오면 별 볼일 없는거거든요.
ㅋㅋ
***********************************************************
양명고 3학년 구력 7~8년차.
시합베스트스코어 75타
당시 나는 용인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온통 휴대폰 벨소리에 집중하고 있엇습니다.
이미 3월 말쯤되자 하루 2~30마넌정도 매출이 십마넌도 안오르고 있었습니다.
장사라는게 그렇더군요,
날씨가 점점 더워져 빙과류를 찿는계절이 되니 자연 손님이떨어지고 매출이 격감하니 힘은 힘대로 더 드는것입니다.
장사가 잘될때는 정말 힘드는줄 몰랐습니다.
바로 뒷 건물 스크린 골프장 사장님과 단골 손님들도 아들의 대회소식을 물어올정도로 용인(구성 경찰대 입구)지역내 주민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정말 그때가 즐거웠습니다.
마차 뒤에는 아들의 멋진 스윙포즈가 들어있는 액자를 걸어놓고 장사 했거든요...
^&^
"예 아들넘입니다"
딱 한마디에 하루 피로가 싹~
이윽고 전화 벨리 울렸다.
"아빠? 완오버야!"
"뭐라고~ 정말이냐? 현재 순위는 ?"
나도 모르게 첨으로 등수를 물어봤습니다.
(될수있는한 등수에 의미를 두느 발언은 가급적 피했었거든요...)
"어 15등"
"어 그러냐 수고했다! 정말 잘했다 !내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타만 줄여라!"
전화를 끊고 정말 내일 한타만 줄일수있을까?
아니면 정말 잘쳐보려는 맘이 앞서 무너지는 스코어...가 되지는 않는지?
79타나 80초반대로 들어오는것은 아닌가?
많은생각이 났습니다.
그동안의 주니어 성적들이라는게 완전 정상급 몇명을 빼놓곤 들쑥 날쑥이거든요,
^&^
미친년 널뛴다는,,,,뭐 그런 상황이 종종 연출됩니다.
아마추어 쥬니어때는 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쥬니어때 잘친다고 기대를 너무 갖지도 말것이며,,,
주니어때 좀 못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게 저의 지론입니다.)
각설하고
본선 첫날 +1은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지사배 대회는 예선 성적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선 이틀 경기결과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본선 이틀째 ...
아들넘이 사고를 쳤습니다.
대형사고입니다...
한타 이븐으로만 들어오길 그토록 간절히 기도 했는데...
언더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시합에서 언더는 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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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봐도 훤한 서코스 입니다.
클럽하우스 코앞의 마지막홀 par4 입니다.
미틑날 본선 마지막 2라운드 ...
생전 저나 안하시던 표프로님이 저날 주셨습니다.
범이가 나인 하프를 완언더로 지나갔다고요.
사뭇 흥분된 음성이였습니다.
나도 용인에서 빵을 굽는건지 태우는건지 정신없었습니다.
제발 후반 나인도 이대로만 들어와라1
그리고 벨이 빨리 울려주길 바랬습니다.
전화벨이 늦으면 그건 꽝이라는 야그입니다.
울렸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신호가 왔습니다.
'옳다 !구나 됐구나,,'
(최소 이븐내지 완언더겠구나 했습죠..)
'아빠 쓰리언더야!'
'잉~ 뭐라꼬... 다시말해봐라~'
'토탈 142 투언더야 4등이야 3등못해서 미안해'
'얌마 장난하냐 장하다 수고했다 마이 선!'
'근네 아빠 마지막홀에서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뭔생각했는데..'
'완언더로 왔는데 딱 마지막 홀에서 아빠 말이 생각났어!'
'무슨말...?'
'항상 마지막홀은 버디를 잡으라는 아빠 잔소리..'
'그랬냐? 그래서..'
'그래서 소나무를 넘겨야겠다고 맘먹고 제대로 쳤어?'
'그래서..'
'한 300야드 나갔나봐..소나물 넘겨 그린이 다보였으니까! '
'그랬냐,,,잘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소나무가 쎈타에 딱 버티고있어 까따로운 그린입니다.'
소나무 밑둥이라도 들어가는날엔 골치아픈 상황이 종종 발생되곤하죠,
소나무를 무난히넘긴 결과!
훤히 보이는 그린을향해부드러운 샷 했을것이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한(마치 죽은 조카가 수호천사로 나타나 도와주지않았나?생각합니다)
투온 이글 샷 이였습니다.
처음으로 6자를 그려낸것입니다.라베입니다.
69타!
차후에 모 학부형으로 부터 들은이야기지만....
팬서비스 확실히 하고 우뢰와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전해주더군요.
쑤근쑤근 대는 소리와함께...
'쟤~ 양명고3인데 안양보육원소속이래...제법 치는데...'
아들의 귓가까지 이 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이때를 생각해보니...
올해2009년 4월 세미프로테스트에 통과했을때보다도 더 감격이였습니다.
'그래 뉘들 몇놈 죽었어!'
'몇놈은 골프채 놓게 만들어 놓겠다 ?라는 나의 오만함이 발동걸렸던때죠'
ㅋㅋ
근데... 지금도 6살 연상의 이성문제로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지만...
동갑나기 여자아이와 최초의 이성문제로 날 미치고 팔짝 뛰게 할줄 그땐 알았겠습니까?
그래 이제 스포츠조선배 와 mbc 최강전을 목표로도전하자!
그랬는데...
스포츠조선배는 홈그라운드와같은 프라쟈 컨트리클럽입니다.
mbc최강전은 중학교때는 특별 출전했지만 이젠 유자격으로 자력 출전할수있으니 중앙cc 관계자들 볼 면목도 생기고 얼마나 좋았었는지...
1~7위까지는 2007년 전대회 시드배정을 받아 유자격으로 출전할수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예 신청접수도 안하고 잠수를 하더군요,
참 ! 그땔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고 등골이 싸늘해 집니다요...
근데 또 세미가 된 이싯점에서 연상의 무려 6살 위 누나와 사귄다는 소리에 벌서 보름째 연락 두절입니다.
어제 2009/8/6 스카이72투어도 하늘 코스에서 이븐으로 2라운드 진출하지못한것도 맘에걸립니다.
최근 연습때 늘 투언더정도는 유지했는데...
정말 아쉬운 두 대회를 (스포츠조선배.엠비시 최강전)신청조차 안한것입니다.
프라쟈는 정말 홈그라운드거든요...
거기엔 약간의 사연이 또 있습니다.
형의 자서전 '널위해 울어줄 눈물이 없구나'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제 슬슬 총정리를 마무리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