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23살인 한 청년입니다. 현재 저는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꼭..좀 읽어보시고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이 좀 긴편입니다. 그냥 읽기싫으시다면 그저..나가주시고 정말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신분들은 꼭 좀 읽어주시고..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 21여 년 정도를 술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시달린 가정에서 자란 저와 17살 어린 나이의 그녀가 만난곳은 친구소개로 알바 하러 간 주유소입니다. 전 그곳에서 5개월 정도 일한 상태였고 월드컵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전 주유소 실장 누나가 먹던 미숫가르를 입에 가득물고 검게 변한 이를 들어내 친구들과 웃으며 기름묻은 검은 발에 슬리퍼를 신고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떄 그녀가 제 모습을 보며 입을 막고 웃으며 나타났죠.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직 여자를 잘 모르는 남자였지만, 그 날은 솔직히 17살의 소녀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보란 듯이 절 좋아한다는 눈치를 여러 번 주었고, 전 말할 용기가 없어서 술의 힘을 빌려 그녀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귀기 시작한 어느 날 친구들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야, 임마! 너 여자 너무 일찍 만나면 인생 망친다." "맞아 너 아직 전셋집 얻을 돈도 없으면서 좀 더 기다리지 그래?" 하지만 전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그녀를 차가운 세상에 내버려 두기싫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여인숙에서 월세를 내고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주유소 수입으론 너무 부족했던지라 전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마침 그떄 PC방이 호황기라 친구에 소개로 PC방 주임으로 들어가 한달 120원이라는 큰돈을 벌수있었고, 그녀는 주유소에서 잦은 실수(혼유, 기름넘치기)등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이 끝나면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잘못하는 그녀는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얼마 후 저희는 약간 더 시설이 좋은 원룸으로 옮겨가게 되었죠. 거기서 악착같이 전세금을 모아보자 결심하고 있을때, 신은 제게 또 하나의 가족을 보내주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둘, 아내 나이 열여덟 에 아이가 생긴거죠. 전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서로 요리 재주도 없고 해 먹을 수 있는 여건도 안되어 항상 배달을 시켜먹어야 해서 아내의 건강이 너무 우려되었습니다. 아내가 만삭이 되어갈 즈음 전 아버지가 살고 있는 그 동네로 갔습니다. 동네 앞 어귀에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항히 집 전화번호는 그대로더군요. 제가 "아버지 저 예요." 라는 한마디를 하자 아무말도 없으시더니 흐느껴 우는 아버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 사정을 모두 얘기하고 방을 얻을 떄까지 며칠만 아내와 지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하셨고 그날 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서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울고 아버지께 위로 받고, 저녁땐 아버지와 맥주도 한잔하고 너무 기뻤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키워주신 할머님이 건강하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집을 알아보러 간 사이 아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2.5킬로의 건강한 남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진통 없이 빠른 순산을 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기뻤지만 옆에서 아내 손을 잡아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그날 전 그녀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린 딸을 그렇게 만든 저를 혼 내기는 커녕 그저 잘 살아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가시더군요. 그런모습을 보고서는 그녀는 제게 "오빠 집이나 우리 집이나 비슷하지?"라며 우리 둘이 의지해서 행박하게 살자고 하더군요. 다음 날은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너무 사랑하는 그녀와 나의 첫 분신을 꼭 우리집에서 생활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항상 배달시켜먹고 해서 해프게 쓴 돈 때문인지 돈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버지가 새벽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아침에 다 돼서야 어딘가에서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만취돼서 저와 아내에게 안 좋은 말들을 퍼붓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전 괜찮았지만 너무 놀란 제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어제 막 낳은 핏덩이를 않고 우린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왜 내가 아닌 내 아내와 아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를 모텔에 하루 묵게하고 전 집을 구했습니다. 보증금 100에 월18만 원짜리 방이었습니다. 새 사족이 살기엔 너무 좁은 곳이었지만,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오빠 우리 이제 시작인 거지? 나 열심히 할게!!" "하하하,..그래 우린 이제 시작인 거야!" 라고 말한 후 저는 문을 열고 나가서 담배를 물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와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진작 돈을 모아두었으면 이런 고생 시키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날 이후 비록 부족하였지만 냄비도 사고 이것저것 생활 도구도 사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았고 아이도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효자였습니다. 저희는 200에 월20인 좀 더 좋은 방으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만 월세 생활이 그렇더군요. 아이에게 돈 들어가고 월세 빠지고 하니 돈 모을 새가 없더군요. 그리고, 제가 아주 사소한 일로 사장과 싸우고 이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전 그때 그게 저에게 화근이 될 줄은 전혀 몰랐죠. 그간 모아둔 돈은 제 병원비로 다 날려버리고, 월세도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원한 후엔 아기 기저귀 값조차 암울했습니다. 우리 둘은 굶어가며 아기 분유 사는 일에 열중했고, 기저귀 살 돈이 없던 때애는 아기가 볼일을 볼때마다 직접 씻겨줘야 했습니다. 아내는 한 달에 3~4번을 몸살에 시달렸죠. 너무 힘든 하루하루였고, 도움 받을 곳조차 없던 우리는 너무 암울했습니다. 결국 며칠 후 저는 자존심을 버리고 동네 슈퍼아저씨에게 한 달간 외상하고 월급 받아서 줄테니 어떻게 안되냐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아기 얼굴 봐서 해준다고 했지만 전 외상 하러 갈 때마다 너무 눈치 보이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어느 날 전 정말 터무니없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제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어 일을 할 수 없다더군요. 집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아버지는 냉정하게 얘기했습니다. "나도 일 할 처지가 안 되고 할머니 모시고 있는데 생활 보조비라도 받을까 해서 말소시켰다." 라고.. 너무 어이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혼인신고조차 못했는데 아기 출생신고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아기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온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전 사실을 말해주었고 아내는 내게 말소된 것을 살리자고 하였지만 제겐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릴 과태료 낼 돈조차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구하려 뛰어다녀보았지만 주민등록환인조차 되지 않는 저를 써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아기를 자기 앞으로 올리겠다고 말하고 동사무소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제 성인 박을 따지 않고 아내의 성인 김을 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면 제 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지만 졸지에 미혼모가 돼 버린 아내와 아빠없는 아들이 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암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와 심하게 싸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시간을 주게 되었고, 제 곁에만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떠나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꼐... 밀린 월세 200여만 원과 밀린 가스비 전기세 외상값만 남은 채. 아내 친구, 동생 그리고 재혼사힌 아내의 어머니 모든 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제서야 주민등록을 살리고 하루 일당 받는 일을 하고 있지만, 1분 사이에도 몇 번씩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 가슴이 메어옵니다. 가족이 이렇게 살가운 것인지 이렇게 애틋했던 것인지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아내에게 매일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냅니다. 읽지도 않는 것인지 답장조차 오지 않지만 전 아내에게 편지 쓸 떄가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아내와 아이 생각을 할때면 가슴이 꽉 막혀서 숨조차 안 쉬어지지만,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막혀버린 가슴을 추스리고 오늘도 힘겨운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아내를 찾고 싶어도 지금은 빚진 것을 다 갚지 못해 이곳을 떠날수 없습니다. 그 돈이 다 갚아지고 다면 전 아내와 아들을 찾으러 아마 전국을 누비게 되겠지요. 부디 어디에 있더라도 둘 다 건강히만 있어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너무 힘든 하루하루, 보고싶은 두 사람,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둘을 찾아서 이 가슴 막히는 병이 사라질 떄 즈음이면 아내와 아들에게 꼭 이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너무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젠 지키겠다고... -- 긴을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실분들은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혹시..아주 혹시라도 이글이 퍼지고 퍼져 아내가 보게 된다는 바램입니다.. 4
누가 좀 제 사연을 들어주실래요..?
안녕하세요. 현재 23살인 한 청년입니다.
현재 저는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꼭..좀 읽어보시고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이 좀 긴편입니다. 그냥 읽기싫으시다면 그저..나가주시고 정말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신분들은
꼭 좀 읽어주시고..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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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여 년 정도를 술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시달린 가정에서 자란 저와 17살 어린 나이의 그녀가 만난곳은
친구소개로 알바 하러 간 주유소입니다.
전 그곳에서 5개월 정도 일한 상태였고 월드컵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전 주유소 실장 누나가 먹던 미숫가르를 입에 가득물고 검게 변한 이를 들어내 친구들과 웃으며 기름묻은
검은 발에 슬리퍼를 신고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떄 그녀가 제 모습을 보며 입을 막고 웃으며 나타났죠.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직 여자를 잘 모르는 남자였지만, 그 날은 솔직히 17살의 소녀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보란 듯이 절 좋아한다는 눈치를 여러 번 주었고, 전 말할 용기가 없어서 술의 힘을 빌려 그녀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귀기 시작한 어느 날 친구들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야, 임마! 너 여자 너무 일찍 만나면 인생 망친다."
"맞아 너 아직 전셋집 얻을 돈도 없으면서 좀 더 기다리지 그래?"
하지만 전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그녀를 차가운 세상에 내버려 두기싫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여인숙에서 월세를 내고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주유소 수입으론 너무 부족했던지라 전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마침 그떄 PC방이 호황기라 친구에 소개로 PC방 주임으로 들어가 한달 120원이라는 큰돈을 벌수있었고,
그녀는 주유소에서 잦은 실수(혼유, 기름넘치기)등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이 끝나면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잘못하는 그녀는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얼마 후 저희는 약간 더 시설이 좋은 원룸으로 옮겨가게 되었죠.
거기서 악착같이 전세금을 모아보자 결심하고 있을때, 신은 제게 또 하나의 가족을 보내주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둘, 아내 나이 열여덟 에 아이가 생긴거죠.
전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서로 요리 재주도 없고 해 먹을 수 있는 여건도 안되어 항상 배달을 시켜먹어야 해서 아내의 건강이 너무 우려되었습니다.
아내가 만삭이 되어갈 즈음 전 아버지가 살고 있는 그 동네로 갔습니다.
동네 앞 어귀에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항히 집 전화번호는 그대로더군요.
제가 "아버지 저 예요." 라는 한마디를 하자 아무말도 없으시더니 흐느껴 우는 아버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 사정을 모두 얘기하고 방을 얻을 떄까지 며칠만 아내와 지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하셨고 그날 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서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울고 아버지께 위로 받고, 저녁땐 아버지와 맥주도 한잔하고 너무 기뻤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키워주신 할머님이 건강하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집을 알아보러 간 사이 아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2.5킬로의 건강한 남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진통 없이 빠른 순산을 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기뻤지만 옆에서 아내 손을 잡아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그날 전 그녀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린 딸을 그렇게 만든 저를 혼 내기는 커녕 그저 잘 살아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가시더군요.
그런모습을 보고서는 그녀는 제게 "오빠 집이나 우리 집이나 비슷하지?"라며
우리 둘이 의지해서 행박하게 살자고 하더군요.
다음 날은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너무 사랑하는 그녀와 나의 첫 분신을 꼭 우리집에서 생활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항상 배달시켜먹고 해서 해프게 쓴 돈 때문인지 돈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버지가 새벽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아침에 다 돼서야 어딘가에서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만취돼서 저와 아내에게 안 좋은 말들을 퍼붓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전 괜찮았지만 너무 놀란 제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어제 막 낳은 핏덩이를 않고 우린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왜 내가 아닌 내 아내와 아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를 모텔에 하루 묵게하고 전 집을 구했습니다.
보증금 100에 월18만 원짜리 방이었습니다.
새 사족이 살기엔 너무 좁은 곳이었지만,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오빠 우리 이제 시작인 거지? 나 열심히 할게!!"
"하하하,..그래 우린 이제 시작인 거야!" 라고 말한 후
저는 문을 열고 나가서 담배를 물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와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진작 돈을 모아두었으면 이런 고생 시키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날 이후 비록 부족하였지만 냄비도 사고 이것저것 생활 도구도 사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돈도 어느 정도 모았고 아이도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효자였습니다.
저희는 200에 월20인 좀 더 좋은 방으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만 월세 생활이 그렇더군요.
아이에게 돈 들어가고 월세 빠지고 하니 돈 모을 새가 없더군요.
그리고, 제가 아주 사소한 일로 사장과 싸우고 이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전 그때 그게 저에게 화근이 될 줄은 전혀 몰랐죠.
그간 모아둔 돈은 제 병원비로 다 날려버리고, 월세도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원한 후엔 아기 기저귀 값조차 암울했습니다.
우리 둘은 굶어가며 아기 분유 사는 일에 열중했고, 기저귀 살 돈이 없던 때애는 아기가 볼일을 볼때마다 직접 씻겨줘야 했습니다.
아내는 한 달에 3~4번을 몸살에 시달렸죠.
너무 힘든 하루하루였고, 도움 받을 곳조차 없던 우리는 너무 암울했습니다.
결국 며칠 후 저는 자존심을 버리고 동네 슈퍼아저씨에게 한 달간 외상하고 월급 받아서 줄테니 어떻게 안되냐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아기 얼굴 봐서 해준다고 했지만 전 외상 하러 갈 때마다 너무 눈치 보이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어느 날 전 정말 터무니없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제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어 일을 할 수 없다더군요.
집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아버지는 냉정하게 얘기했습니다.
"나도 일 할 처지가 안 되고 할머니 모시고 있는데 생활 보조비라도 받을까 해서 말소시켰다." 라고..
너무 어이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혼인신고조차 못했는데 아기 출생신고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아기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온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전 사실을 말해주었고 아내는 내게 말소된 것을 살리자고 하였지만 제겐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릴 과태료 낼 돈조차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구하려 뛰어다녀보았지만 주민등록환인조차 되지 않는 저를 써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아기를 자기 앞으로 올리겠다고 말하고 동사무소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제 성인 박을 따지 않고 아내의 성인 김을 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면 제 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지만
졸지에 미혼모가 돼 버린 아내와 아빠없는 아들이 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암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와 심하게 싸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시간을 주게 되었고,
제 곁에만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떠나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꼐...
밀린 월세 200여만 원과 밀린 가스비 전기세 외상값만 남은 채.
아내 친구, 동생 그리고 재혼사힌 아내의 어머니 모든 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제서야 주민등록을 살리고 하루 일당 받는 일을 하고 있지만,
1분 사이에도 몇 번씩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 가슴이 메어옵니다.
가족이 이렇게 살가운 것인지 이렇게 애틋했던 것인지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아내에게 매일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냅니다.
읽지도 않는 것인지 답장조차 오지 않지만 전 아내에게 편지 쓸 떄가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아내와 아이 생각을 할때면 가슴이 꽉 막혀서 숨조차 안 쉬어지지만,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막혀버린 가슴을 추스리고 오늘도 힘겨운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아내를 찾고 싶어도 지금은 빚진 것을 다 갚지 못해 이곳을 떠날수 없습니다.
그 돈이 다 갚아지고 다면 전 아내와 아들을 찾으러 아마 전국을 누비게 되겠지요.
부디 어디에 있더라도 둘 다 건강히만 있어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너무 힘든 하루하루, 보고싶은 두 사람,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둘을 찾아서 이 가슴 막히는 병이 사라질 떄 즈음이면 아내와 아들에게 꼭 이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너무 너무 사랑한다고...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젠 지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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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을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실분들은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혹시..아주 혹시라도 이글이 퍼지고 퍼져 아내가 보게 된다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