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3코스 이야기1 - 든든한 동행, 산이

이진호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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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마을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힘차게 출발한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그러나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아직 어색한 이정표 보기와 걷는것 자체 등 전체적인 어색함 때문에

출발 후 30분 동안 온 동네를 헤맸다.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어디어디로 가란다. 갔다.

그러나 그곳은 둘레길이 아니라 둘레길을 만나게 되는 길이다.

경사도 가파른 산을 타야했고, 무엇보다도 우회하거나 지름길을 가지 않겠다는 원칙에서 벗어났다.

다시 돌아오니 이제서야 이정표가 보였다.

분명 보고 왔는데 애매한 각도 때문에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분명히 길은 T자형 삼거리인데

 

저 애매한 이정표 각도 때문에 내가 올라가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강아지들. 30분 동안 참 많은 강아지들을 만났다.

줄에 묶인 백구를 빼고는 모두 나를 반겨 주었다.

그중에서도 이 어린 백구! 이 아이가 나와 둘레길을 함께 걷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6개월 쯤 되었을까

이 백구는 주둥이가 무척 크고 얼굴보다 크게 벌어진 가슴, 날씬한 S라인 배선 등을 보아하니

보통 야무진 놈이 아니었다. 귀가 조금 토끼귀 같지만 이만하면 전체적으로 잘생겼다.

 

 

한참 헤맨 다음이라 와서 인사하니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나도 너같은 백구도 키우고 누렁이도 키웠어. 사실 내가 키웠던 건 황구 하나고 나머지는 다 아빠가 키우지.'

아니 근데 이놈이 계속 따라온다. 그러다가 이내 앞서간다. 허허.

'이 동네 사는 강아지인 것 같은데 그래 나랑 10분만 걷자. 걷다가 때되면 보내줄께' 하고

이틀 가량 못한 말을 계속 한다. 어제 찜질방 찾는데 힘들었다며, 잠을 3시간 밖에 못잤다며 등등 주절대다

하소연까지 했다.

 

 

 

묘하게도 내가 가려는 길을 계속 앞서간다.

진도에서는 항상 목줄을 묶고 강아지가 앞서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어색했다.

그러나 예전부터 항상 꿈꿔왔던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줄을 묶지 않고 키운다 해도 나갈 때는 줄을 묶고 가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졌다.

어쩔 수 없이 어릴 때부터 줄에 묶어 커온 우리 강아지들은 풀어주기만 하면 미친듯이 뛰어다니다

집에 안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이렇게 같이 산책하는 모습이 잠깐이나마 좋았다.

 

내가 조금 뒤쳐지면 기다려주다 오나 안오나 돌아 보기도 했다.

차가 지나가면 내 뒤로 숨었다. 6개월 쯤 되었을테니 아직 어리니까.

앞서가다 갈림길이 나오면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갔다. 그런데 대부분 맞는 길이었다.

가끔 틀리면 매우 빠른 속도로 돌아와 다시 앞서갔다.

 

걷다보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좋은데 이녀석, 어디서 보내주어야 할까.

점점 마음의 짐이 되고 있었다. 나는 좋은데, 너 어디서 보내주어야 할까.

사실 보내주기 싫었다. 계속 같이 걸으면 좋겠다 싶었다.

역방향으로 걸어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가끔 순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을 봐도 그냥 인사 한 번하고 계속 나와 걸었다. 참 신기하게도 말이다.

 

한 시간 쯤 지났다. 창원마을에 도착했다. 금계마을에서는 3km 정도 떨어졌다.

오다가 똥을 두 번 정도 쌌으니까 잘 찾아서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믿고

해바라기씨를 먹였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쫒아냈다.

안갔다. 안가면 어떡해 빨리 가라고 발로 땅을 쳤다. 그래도 안간다.

나도 보내기 싫은데 이놈이 안가니 난 모른다 했다. 그렇게 또 같이 걸었다.

 

 

 

 

한 시간 쯤 더 걸었다.

힘든 등구재를 넘어 이제 숨 좀 돌리나 싶었다.

올라갈 때 계속 앞에서 기다려준 이놈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기억하건데 둘레길 3코스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몇분 후, 이놈이 갑자기 어디론가 막 뛰어간다. 사람들 다 지나치더니 어떤 사람한테 잡힌 모양이다.

뭘까. 저 아저씨가 귀엽다고 잡아서 만져주나보다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산이가 왔네, 산이 찾았어."

 

오자마자 물을 벌컥 벌컥 마시던 이 강아지 이름은 산이었다. 산.

 

 

 

 

알고보니 지리산 둘레길을 같이 걷는 개로 유명한 우탄이의 아들이었다.

우탄이가 이제 나이가 들어 뜸한데 요즘엔 산이가 자꾸 이런단다. 역시 피는 못속인다.

우탄이가 잘생겨서 어느 사람이 암컷을 데려왔고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에 한마리를 고맙다며 준 것이 산이란다.

 

 

나도 블로그에서 지리산 둘레길 백구, 우탄이를 본 적 있다. 너가 그 아이구나.

 

 

주인아저씨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산이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고마웠다고.

 

 

산이는 주인 아저씨 옆에 앉아 쉬었다. 이제 나한테는 오지도 않는다. 진돗개스럽게.

 

 

밥을 먹고 물을 한 번 더 먹고

그리고는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고맙다며 잠시 쉬어가라고 의자를 닦아 주신 아저씨는 물이 좋다며 담아 가라고 했다.

안그래도 큰 고비를 넘겼다며 남은 물을 모두 마신 후라 참 고마웠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저 나눴다.

그리고 산이에게 다시 인사 하려는데, 맞다 자고 있다.

 

아저씨는 또 고맙다며 음료수를 하나 주셨다.

나 콜라 안마시는데, 내려오면서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량감만큼은 최고였다.

콜라보단 기분이.

 

 

 

 

 

내려오는 길 콜라를 거의 비워갈 때 쯤이었을까

산이가 깨갱한다. 깨갱 깨갱. 두어번 울었다.

우탄이 소리는 아니었다. 뭐였을까. 더이상 간섭하면 안될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을테니 나쁜 일은 없겠지. 믿는다.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어인데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이라는 뜻이다.

우탄이도 산이도 그렇게 산의 이름으로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힘든 구간에서 만나 함께 걸어준 산이

그 야무진 성격과 체격, 데려가고 싶었던 산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기억 못할테고, 또 누군가에게 든든한 동반자로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테지.

 

산이야 건강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