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3코스 이야기2 - 고마운 아저씨들

이진호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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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로 가는 길에 만난 고마운 아저씨들

 

1. 중국집 주방장님

 

 

비오는 저녁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식당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추어탕이 유명한 남원, 시내에는 추어탕 집이 많았지만 밥때가 아니었다.

막상 인월면에 도착해 안먹던 추어탕 도전!을 외쳤으나

정육점이나 마트 등은 많았는데 저녁 시간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

이래저래 돌아보니 중국집이 있었다.

자장면을 좋아하는 나는 산행 전 날 든든하게 배를 채우자는 욕심을 버리고 곧장 들어갔다.

'외팔이 아저씨네 집'이었다. 한쪽 팔이 없으신 분이 사장님이셨나 보다.

식사를 하시는 단체손님, 그쪽 분들을 조카라고 부르며 단체 손님들 값까지 계산하시던 어르신 그리고 나.

주문한지 5분 쯤 지났을까? 주방에서 빨간 옷을 입으신 주방장 아저씨께서 사장님께 말을 거신다.

"저 사람은 뭐여?"

/"자장면 하나"

 

주문이 이제 들어간 것이다. 손님은 많이 없었는데 두 분이 일하시니 바쁘실 것 같았다.

사장님은 현란한 솜씨로 어느 요리에 쑥갓을 일미터 전방에서 툭 하고 던져 넣으셨다.

쑥갓이면, 짬뽕인가? 여전히 내것은 아니다.

보통 중국집처럼 자장면과 단무지,양파, 깍두기가 나왔다.

그런데 맛은 특이했다. 매콤하다고 할까?

고추기름을 넣어 만든다는 사천자장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자장면을 주문했는데 그럴리 없다.

시크하신 두 분이 친절을 베푸실리가 없었다.

 

한참 먹다가 8시에 막차라며 주방장 아저씨도 나오셨다. 혼자 계시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진도처럼 다 건너 건너 아는 사이이신가보다.

몇번을 마음속으로 연습한 내가 여쭈었다.

"저기, 이 자장면 매콤한 맛이 나는데 특이하네요?"

/" 왜 맛이 없어요?"

"아니요 보통 자장면하고 틀려서요.고추가루 같기도 하고 생강 매운맛 같기도 하고."

/"고추가루를 좀 넣었지. 그래야 맛있어."

생각해보니 자장면 시켜먹을때 선배들이 '고추가루 많이 주세요'하고 많이 뿌려 먹던 기억이 난다.

그 아저씨 갑자기 나를 보시더니

"좀 더드리까?"

 

깜짝 놀랬다. 곱배기가 500원이 아니라 1000원 더 비싼 집, 시크한 두 아저씨가 운영하는 중국집이었는데

주방장 아저씨는 무척이나 말을 부드럽게 하셨다.

여행 하느냐며 힘든데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막차를 놓치게 하면 안될 것 같아 괜찮다고 했다. 서운하셨을까.

 

매우 인자하신 미소로 좋은 여행 되라며 거스름 돈을 주셨다.

그런데 4천원이다. 자장면 6천원이었나? 귀찮아서 가격표를 안 고치셨나? 하다 조심스레 여쭈니

"아이고 내가 실수했네. 정신이 없어. 4천원만 생각하다가 4천원을 줬네 허허."

하며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도 아저씨가 허리를 굽힐 때마다 따라 굽히며 괜찮다고 했다.

 

자장면은 평범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먹은 자장면 중에 두번째로 맛있었다.

 

2.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밤 11시, 순간 서울로 착각하고 버스나 택시를 타고 찜질방에 가려고 했다.

아이폰으로 검색해보니 4km정도, 3천원 쯤 나올 거리였다.

초저녁부터 혼자 찜질방에 가서 멍하니 벽보고 있으니 피시방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밤 11시, 인월에는 차가 한대도 안다녔다.

아이폰으로 검색해서 걸었다. 분명 지리산 IC 앞이었는데 이쪽에 또 있나? 하고 더 가까운 곳으로 갔다.

아뿔싸, 검색해서 나온 ABCD 중에 A로 가야되는데 내가 B로 가고 있었다.

조금 무서웠다. 19년 동안 맞은 시골비와 시골바람,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그것들인데 무서웠다.

다시 돌아 치안센터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길을 꺾어 지리산 IC 방향으로 갔다.

절대 히키하이킹은 하지 않으리라. '그곳이 알고싶다'에 나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나가는 차들이 혹시 나를 못 볼까봐 뒤돌아 확인해야 되는데 그러면 혹시나 태워줄까봐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지만 드문드문 오는 차들은 감속 없이 쌩쌩 지나갔다.

마지막 건물로 보이는 곳은 마침 여행사, 길도 묻고 혹시나 민박이 되려나 해서 갔는데

아줌마는 친절하게 찜질방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앞으로 계속 직진"

 

그랬으면 큰일날 뻔 했지.

일단 쭉 뻗은 도로로 직진하는 코스다. 아 정말 무서웠는데 멀리 높은 곳에 불빛이 보인다.

찜질방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힘이 났다. 그 순간 차 한대가 쌩 가다가 급 브레이크를 밟는다.

흰색 옵티마. 창문이 열린다. 전형적이다. 어디까지 가냐는 목소리만 들린다. 한마디도 안하고

1초 2초 3초,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앞으로 갔다. 얼굴을 확인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다.

몇 년전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도 침착했다.

"찜질방 갑니다. 저기요." 지리를 훤히 아는 척 했다. 하지만 난 등산화를 신고 가방을 두개나 매고 있었다.

"타요, 나는 담배사러 가는 길인데."

'딱 걸렸구나. 담배 사러 무슨 여기까지 오셨을까 아까 마트 엄청 많던데.'

그런데 1초도 멈추지 않고 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탔다.

차로는 5분쯤 걸리는 거리, 걸었으면 30분쯤 걸었을 거리였다.

 

'K대를 나왔다고 S전자를 다녔다. 연구원이었는데 한마디로 짤렸지뭐. 지금은 농사지어.' 등등

본인인증을 하시고는 내게 물으셨다. 졸업한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아마 할아버지의 연구원 생활을 모두 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찜질방 가는 길이 이상했다. 자연스럽게 아이폰을 다시 보았는데 그길이 아니었다.

침착했다. 불빛은 하나도 없었다.

"장사장 내가 잘 아는데 내가 데려왔다고 하면 싸게 해줄라나."

돌연 나타난 찜질방. 아저씨는 지름길로 오셨다.

 

정말 죄송했다. 나 혼자 왔으면 길도 헤매고 오래 걸렸을텐데 덕분에 편하게 왔는데

나는 속으로 계속 경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사를 여러번 했다.

다음날 아침 그아저씨가 왔던 길로 걸어 갔다. 대각선으로 농지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덕분에 둘레길 가는 시간을 조금 아꼈다.

 

 

 

3. '나눔' 앞에서 만난 버스 기사님 

 

 

찜질방 사장님은 이시간에 버스도 없고 택시도 안다니고 비도 온다고 했다.

주무시는데 깨워서 불편하시다는 말투였다. 다시 누웠다. 하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3시간 쯤 잔 것 같은데 소풍가는 기분 때문에 다시 자기 힘들었다.

자판기 식혜 하나 딱 마시고 길을 나섰다.

어제 데려다주신 아저씨가 오셨던 길로 가려는 순간 지리산 IC쪽으로 버스 한대가 간다.

버스번호에 불이 켜진 것을 보니 운행중이었나보다. 찜질방 아저씨 미웠다. 잠결에 말하셨구나.

이슬비에 옷 젖을까봐 우산을 펴는 순간 버스는 50m쯤 더 가더니 갑자기 선다.

"         "

/"네?"

"  ........  가세요?"

 

앞으로 갔다.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냐고 큰 소리로 물으셨다.

"지리산이요. 아니 인월 터미널."

운전석 바로 앞까지 갔다. 남원 시내로 가서 출발하는 차량인데 혹시 가는 길이면 태워주실려고 했단다.

어둠이 막 가신 이른 아침 홀로 비맞고 걷는 내가 불쌍하셨나보다.

운전하는 일은 힘들어서 친절하신 분보다 불친절하신 분들이 더 많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라 그 심정을 이해했다. 그런데 이 분은 매우 친절하실 것 같은 인상이셨다.

"조심히 다녀와요. 좋은 여행 되고."

아침밥을 안먹었는데도 배불렀고 조금 두려웠던 강행군의 첫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렇게 기사님은 직진해서 지리산 IC 방면으로, 나는 농지 따라 난 대각선 방향 도로로 걸었다.

 

 

 

 

 

4. 라면좀 끓이세요.

 

금계에서 인월로 가는 길에 길을 두 번 헤맸는데 그 중에 한 번이 장항마을에서이다.

생각없이 큰 도로 따라 난 옥수수며 고구마며 그것들이 익을 가을을 생각하다 도로 따라 쭉 가버린 것이다.

점심 시간은 지났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왕복 1시간을 버렸기 때문에 시간은 이미 1시 50분.

이곳에서 또 길을 잘못 들 뻔 했는데 걷다보니 생긴 요령 덕에 마을로 가면 안될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그쪽 아닌데." 누군가 말을 거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마을 쉼터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아저씨 한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네. 고맙습니다. 이쪽이 인월 방면이죠? 그런데 이 동네 민박집에서 식사 되나요?"

대부분 민박집에는 '식사됩니다'라는 문구가 써졌다. 알아보고 온 정보에 의하면 동네에 들어가 백반 식사를 하면

맛도 좋고 쉬었다 가고 구경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없어요. 혼자 무슨 식당엘 가. 반가워 하나. 2인분이 기본인데."

아침 식사가 그랬듯이 '여기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아저씨는

"이제 다음 마을은 두시간 반 더가야돼요."

마침 물도 파는 것 같아 가방을 내려 놓고 얼린 생수 하나 초코렛맛 쭈쭈바 빠 흥흥 이라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물 많은거 좋아요?"

"네 좋아요."

아저씨는 팔도, 걷는 것도, 말도 불편하신 분이었다.

 

 

 

엄청나게 큰 냄비에 물을 주고 계셨다. 줄줄줄줄 한참을 주시더니 흐뭇하게 뚜껑을 닫으셨다.

'그래요 그 라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제 배를 채우겠지요.땀도 흘렸으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감사히 생각했다. 더군다나 야외에서 먹는 라면은 2007년 여름 낚시 이후 처음이었다.

침이 고였다. 빠 흥흥을 열심히 빨아 절반이나 먹었을 때였다.

"물 끓으면 라면좀 넣고 끓여요."

기절하는 줄 알았다. 3천원이나 되는 라면인데 셀프라니. 그말하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내 사라지셨다.

화장실이라도 가시나 싶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나는 물을 버리지 않았다. 이따가 한 번 보시면 다음 손님 물은 좀 잘 해주실 것 같았다.

물 부족한 것 보다는 국수가 낫지 싶었다. '매울'  라면은 그렇게 조금 매콤한 쌀국수가 되었다.

 

 

두 젓가락 정도 떴을까.

"왜 접시도 없고 거기서 먹나 상에서 먹어야죠."

"아 미안해요. 이게 뚜껑이 금방 열렸어요. 방금까지 잘 왔는데."

 

아저씨는 밥을 가져오셨다. 댁에 가셔서 나를 주시겠다고 밥을 한공기 덜고는 접시로 덮어 오셨다.

 

 

 

저 냄비만 올려도 꽉차는 상, 기어이 올려 주신다는 걸 억지로 말렸다.

냄비, 김치, 밥그릇, 접시가 올라가기엔 부족했었다.

그런데 정말 고마웠다.

 

지나가던 커플이 다가와 파전이 되냐고 물었다. 아까 라면 끓이다보니 후라이팬이 있었다.

아저씨는 아줌마가 10분이면 온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더 다가오면서 이것저것 있느냐며 묻던 커플은 갑자기 그냥 가자고 했다.

"다음에 오실거에요?"

/"네 다음에요."

말이 길어졌기 때문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앞으로 두시간, 아니 그정도 걸음이면 세시간을 버티려면 힘들텐데,

라면을 오물오물 씹으며 "그쪽 아니고 저쪽이요" 라고 내가 말을 걸었다.

나는 주인 아닌데, 나 지금 잘 먹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나 혼자 라면 끓일때부터 보던 사람들이라 나를 주인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여자가 속삭였다. "아닌가봐."

내 가방들과 내 꼴을 본 것이다.

 

남자 셋이 순방향으로 왔다. 또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말이 길어진다.

그들이 발길을 돌리려는데 아저씨가 뭐 안사도 좋다며 쉬었다 가란다. 그들은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런데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아저씨는 야구 이야기로 젊은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데 대답은 시원찮았다.

잘 먹었다며 둘레길에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더니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시며 또 계절별로 설명해주신다.

그러다 그와 관련된 매출까지 말해주신다. 액수는 빼고 많다 적다로 표현하셨다.

마을에 150만원을 낸다고 하셨는데 아마 수입은 그보다 당연히 많을 것 같았다.

 

라면 끓이느라 절반 밖에 못 먹은 빠흥흥을 다시 냉장고에서 꺼내 먹었다. 남겨두길 잘했다.

5분 쯤 올라가니 큰 소나무가 있었다. 장항마을 당산나무였다. 그런 것은 내게 참 반가운 요소들이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이 또 있었다. 아까 그 커플이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랜다.

"벌써 오셨네." 이번에도 말은 여자 혼자 한다.

'요'가 안 붙은 것을 보니 나를 보고 말했음에도 나한테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나도 말을 안걸었다. '어린' '커플'이었기 때문에.

가파른 오르막 길인데 셋이 가기엔 좁았다. 무엇보다도 참 어색했다.

맨몸인 그들과 가방 두개를 멘 나는 어색한 1분을 보냈다.

안되겠다 싶어 빠흥흥 먹은 에너지로 '터보!'하며 속도를 냈다.

여자의 헉헉 소리와 남자의 긴 한숨소리가 안들릴때까지 10분쯤 걸렸다.

그 10분이 그때까지 걸어 온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에서 그들이 완전히 안보일때까지 나는 마음속으로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태양은 뜨거운데, 그들은 뒤에 있고, 조금 쉬자니 또 만날 것 같아서 숲 속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그 힘들었던 길, 라면만 달랑 먹고 왔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았다.

 

 

 

 

지리산에서 만난 고마운 아저씨들, 다시 뵐 수 있는 분은 한 분이지만

네 분 모두 꼭 다시 뵙고 또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