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시절, 부대안에는 성당, 사찰 그리고 교회가 나란히 있었다. 매주 번갈아 가며 초코파이를 나눠주었기에, 종교가 없는 부대원들은 그것을 받기위해 매주 종교시설을 옮겨 다녀야 하는 즐거움(?)을 감수해야 했다. ㅎㅎ 제대를 몇주 남긴 말년병장의 어느 주말... 사방은 눈으로 쌓여 있었고, 제법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날은 사찰에서 나눠주는 차례였기에, 나는 동기녀석과 법당쪽으로 향했다. 애시당초 종교행사는 관심도 없었기에, 오로지 초코파이 하나 받아들고는 어린애 처럼 행복해하며 처마끝 풍경(風鏡) 밑으로 나왔다. 한입에 먹어 치운 동기녀석은 연신 담배연기로 도너츠를 만들고 있었고, 나는 딱딱하게 얼어붙은 쵸코파이를 조금씩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청명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띵~ 짤랑짤랑~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나는 곳을 찾아보니, 바로 머리위의 풍경(風鏡) 소리였다. 와~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삭막해질대로 삭막해진 육군 말년병장의 가슴에 빗줄기가 주루룩 흘러 내린 기분이랄까. 그때부터 종소리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제대후 인사동에서 풍경(風鏡)을 구입했다. 벌써 20년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때 구입한 풍경은 지금도 베란다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언젠가 KBS에서 한국의 종 (Korean Bel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모두 범종을 만드는 나라이지만, 각 나라마다 고유 디자인이 있고, 소리 또한 다른데...우리나라의 종은 "Korean Bell" 이라는 독립된 학명을 갖게 될 정도로 아름답고 독자적이다. 특히 종의 윗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용과 대나무는 다른 나라의 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Korean Bell"만의 특징으로, 용장식 부분을 용뉴(龍紐), 대나무부분을 음통(音筒)이라 한다. 일본에 살면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한국의 종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때 반입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대부분의 종들은 높이 1m 이상의 중대형 종이지만, 관련책자를 보면 고려시대때는 높이 30Cm 전후의 것들도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골동품점에서는 수많은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들이 거래되고 있는데, 찾아본다면 이런 소형 범종도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회수한다는 의미도 있고, 30Cm 전후라면 집안에서 놓아두는데 별다른 부담도 없기에, 골동시장에 나오는 적당한 한국의 종을 찾아 보기로 했다. 틈틈히 골동시장도 돌아다녀 보고, 인터넷상에서도 범종을 검색해 보았지만, 일본 범종은 있어도 한국 범종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얼마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소형 범종을 시마네현 소재 골동상이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연락을 취해 사진을 받아보았는데, 첫 눈에 반해 버렸다. 이것을 놓치면 두번 다시 기회가 찾아 오지 않을 것 같은 조바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판매자에게 노출시키면 가격만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오랫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을 억누르며 나는 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대는 의외로 완고한 할아버지였다. 몇번의 결렬상황을 넘기는 우여곡절끝에 이 범종은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용뉴와 음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종이 분명했는데, 종의 모양만으로 판단한다면 신라종 또는 고려종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용이 5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종의 2곳에 새겨진 태극기. 현재의 태극기와는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1880년을 전후하여 고종이 직접 도안했다는 태극기와도 사뭇 달랐다. 이 종은 어느 시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된 것일까? 재일교포 강건영(姜健0
신라, 고려때도 태극기가?? 태극문양 소형 범종
군시절, 부대안에는 성당, 사찰 그리고 교회가 나란히 있었다.
매주 번갈아 가며 초코파이를 나눠주었기에, 종교가 없는 부대원들은 그것을 받기위해
매주 종교시설을 옮겨 다녀야 하는 즐거움(?)을 감수해야 했다. ㅎㅎ
제대를 몇주 남긴 말년병장의 어느 주말...
사방은 눈으로 쌓여 있었고, 제법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날은 사찰에서 나눠주는 차례였기에, 나는 동기녀석과 법당쪽으로 향했다.
애시당초 종교행사는 관심도 없었기에, 오로지 초코파이 하나 받아들고는
어린애 처럼 행복해하며 처마끝 풍경(風鏡) 밑으로 나왔다.
한입에 먹어 치운 동기녀석은 연신 담배연기로 도너츠를 만들고 있었고,
나는 딱딱하게 얼어붙은 쵸코파이를 조금씩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청명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띵~ 짤랑짤랑~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나는 곳을 찾아보니, 바로 머리위의 풍경(風鏡) 소리였다.
와~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삭막해질대로 삭막해진 육군 말년병장의 가슴에 빗줄기가 주루룩 흘러 내린 기분이랄까.
그때부터 종소리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제대후 인사동에서 풍경(風鏡)을 구입했다.
벌써 20년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때 구입한 풍경은 지금도 베란다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언젠가 KBS에서 한국의 종 (Korean Bel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모두 범종을 만드는 나라이지만, 각 나라마다 고유 디자인이 있고,
소리 또한 다른데...
우리나라의 종은 "Korean Bell" 이라는 독립된 학명을 갖게 될 정도로 아름답고 독자적이다.
특히 종의 윗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용과 대나무는 다른 나라의 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Korean Bell"만의 특징으로, 용장식 부분을 용뉴(龍紐), 대나무부분을 음통(音筒)이라 한다.
일본에 살면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한국의 종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때 반입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대부분의 종들은 높이 1m 이상의 중대형 종이지만, 관련책자를 보면 고려시대때는
높이 30Cm 전후의 것들도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골동품점에서는 수많은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들이 거래되고 있는데,
찾아본다면 이런 소형 범종도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회수한다는 의미도 있고, 30Cm 전후라면 집안에서 놓아두는데
별다른 부담도 없기에, 골동시장에 나오는 적당한 한국의 종을 찾아 보기로 했다.
틈틈히 골동시장도 돌아다녀 보고, 인터넷상에서도 범종을 검색해 보았지만,
일본 범종은 있어도 한국 범종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얼마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소형 범종을 시마네현 소재 골동상이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연락을 취해 사진을 받아보았는데, 첫 눈에 반해 버렸다.
이것을 놓치면 두번 다시 기회가 찾아 오지 않을 것 같은 조바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판매자에게 노출시키면 가격만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오랫만에 느끼는 두근거림을 억누르며 나는 냉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대는 의외로 완고한 할아버지였다.
몇번의 결렬상황을 넘기는 우여곡절끝에 이 범종은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용뉴와 음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종이 분명했는데, 종의 모양만으로 판단한다면 신라종 또는 고려종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용이 5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종의 2곳에 새겨진 태극기.
현재의 태극기와는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1880년을 전후하여 고종이 직접 도안했다는
태극기와도 사뭇 달랐다. 이 종은 어느 시대, 어떤 목적으로 제작된 것일까?
재일교포 강건영(姜健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