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가 개봉하고 한 달이 지났다. 이 한 달을 표현하자면 저 한 마디면 정확할 것 같다. 광주 인화학교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 그리고 그 소설을 극화하여 제작된 영화 '도가니'. 영화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건 기존의 성범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시민들은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어 온 인화학교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했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분노의 목소리를 표출했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가니를 보면서 제일 먼저 내가 아는 그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일섭이형, 상진이형, 영록이, 진연이, 민선이, 영관이, 희주. 기자일을 하면서 알게 된 많은 장애인 취재원들. 그리고 바쁜 학교 생활 속에서도 1주일에 한 번씩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의준이 나연이 태민이 혜민이 지철이 동진이 창한이 현수. 그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선생님"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 손잡고 함께 걸으며 조금이라도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배려해주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때묻지 않고 순수한 아이들을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얕잡아보고,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같이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지난 PD 수첩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해 나 역시도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제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다시 보면서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수치심,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집작해 볼 수 있었다. 07년도 때 PD 수첩의 영상, 그리고 최근에 시사매거진과 PD 수첩에서 다시 추가로 취재해서 방영한 내용까지.그동안 인화학교 대책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허공 속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대책위 담당자는 그렇게 말했다. "6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들의 진심어린 투쟁의 목소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이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많은 부분에서 허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공지영 씨의 소설도 인화학교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 들어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처음에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영화를 보고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있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시험기간에 서점에서 구입해서 시험 끝나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바로 '도가니'였다. 그리고 시험 끝나고 몇 시간만에 집중해서 다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봐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격한 감정들에 비해서 소설을 읽으면서는 아주 큰 동요는 없었다. 대충의 흐름이 영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압축적이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세세한 심리묘사나 사건의 정황들을 좀 더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사건이 이렇게 국가적으로 이슈화가 될지는 몰랐다. 인화학교사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2005년, 2006년이면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였는데 문득 그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니 PD 수첩 방영 등으로 인화학교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이슈화가 되었던 게 떠오른다. 하지만 정말 그 때의 이 사건은 아주 잠깐 반짝하고 사라졌던 것 같다. 판결이 나고,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무렵, 영화 도가니는 자칫하면 그냥 그들만의 답없는 싸움으로 이어질 문제를 쟁점화했다. 국회에서는 도가니 파장 이후 도가니 방지법 제정에 대해서 의견이 모아졌다. 성폭력 특별법 조항 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고 국정감사에서 인화학교 교감을 불러 진상을 추궁했다. 언론은 연일 이 문제를 대서특필했고, 시민들을 약자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보였다. 법조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법령 개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도가니 사건 이외에도 숨겨져 있던 여러 진실들을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구체적인 사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했던 우석재단과 학교 측.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온갖 차별에 시달리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감싸주고 지켜주어야 할, 마지막 보루여야 할 학교가 아이들을 성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오랜시간동안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묵인했다는 사실을 큰 충격이었다. 학교에서는 처벌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입을 막았고, 보호라는 명분하에 아이들의 저항권조차도 묵살해버렸다. 아이들의 인권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인화학교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졸업생의 인터뷰는 가슴을 찔렀다.
광주지법에 해당 판결문을 신청해서 당시 판사가 어떠한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지 그 논리를 살펴보고 싶었다. 장애인에 대한 강간, 배임수재, 13세미만미성년자강간, 장애인에대한준강간에 대한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해당 항목에 대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소권자가 아닌 자에 의한 고소로서 부적합하다, 고소기간이 경과된 후의 고소로서 부적합하다,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정신상의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추행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라고 판결문에서 적고 있다.
1심에서는 그래도 교장 및 행정실장, 교사 두 사람에 대해 징역 5년, 징역 8월, 징역 6월, 징역 10월의 실형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교장, 행정실장, 박보현 교사 세 명이 피고인으로 나오지만 말이다. 물론 청소년강간에 대한 공소기각, 장애인에대한준강간에 대해서는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말이다. 영화와 약간 다른 게 있다면 처음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항소심이었다.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과 합의를 하게 되면 피고인에 대한 고소가 취하된다는 점을 피고인 측에서 이용한 것이다. 실제 항소심에서는 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같이 선고한 것은 사실상 불처벌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법원에서는 성폭력 사실이 죄질이 나쁘고, 범죄 사실도 다 인정한다고 설시한다. 그런데 무죄란다. 이게 무슨 기가 막힌 코미디인지. 문제는 현행 법규정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와 소설에서는 전관예우를 통해 변호사가 승리한 것으로 묘사하여 법조계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법복을 벗은 변호사는 아니라고 하니 이 문제는 차치한다고 쳐도 나름 대한민국의 엘리트인 변호사가 이들의 성폭력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을 위해 변호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무죄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은 어찌됐든 또 한번의 분노를 자아낸다. 물론 세상이 다 피고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그들을 위해 변호해 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하긴 하지만 정상참작 수준이 아니라 이건 너무 한 것이지 않나.
인권위에서 인턴할 때 쌤들한테 부탁해서 인권위 직권조사 결정문의 원본도 받아서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시간날 때 인권위에 가서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 쌤들과 도가니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 많이 나누었고, 좀 더 깊이 있게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광주지법의 판결문과 인권위 결정문을 읽어보면서 어쩌면 영화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상황들보다도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의 결정문은 좀 더 포괄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실명으로 게재된 결정문이라 조심스럽지만 직권조사의 배경부터 사건의 전반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성폭력문제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책임에 대한 문제와 특수학교 성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문제, 청각장애학생의 교육권 문제까지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고 가해자 고발 조치 및 이사 및 감사의 교체, 여러 가지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이 후 인화학교 측이나 해당 지자체에서는 초기에만 따르는 듯 하면서 결국에는 편법 등을 동원해 족벌체제를 그대로 이어갔다. 인권위의 권고가 법적인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효력을 나타내는데 이마저도 무시한 행태는 참으로 씁씁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다. 문득 위안부 할머니와의 인터뷰 때가 떠오른다.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보이시면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사람이 살아 있지만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이 말은 인화학교 피해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영혼과 인격에 대한 살인도 엄연히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책과 관련 기사를 보고 도가니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각한 것은 영화 상영으로 국민적 관심이 '반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개개인들의 영향력은 미미할 지라도 하나로 모으면 얼마든지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우석법인의 법인 허가 취소를 이끌어내고, 사회복지법안 개정에 대한 요구를 하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고 믿으니까. 인권위 쌤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특히 변호사들은 장애인 인권 분야를 기피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것도 법조인들이 바꾸어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장애인은 진술을 잘 바꾸므로 공소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장애인 인권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향상될 수 없다고 본다.
처음에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였던 것 같다. PD 수첩처럼 묻혀질뻔한 문제를 이슈화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해야 겠다는 대단한 이념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불합리한 현실을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느끼고 겪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 혼자 간직하는 선에서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인턴기자를 하고자 할 때 사회부를 지망했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기자를 했고, 샘터에서 기자를 했던 것도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 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 따뜻한 건 낮은 자들을 향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가니 사태를 보면서 조금 염려스러웠던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복지법인들과 시설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을텐데 그들의 진정성과 노력들이 이러한 일부 사건들을 통해 평가절하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이게 될까봐 그게 좀 두렵다.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시설들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들은 조금 아쉽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나부터 가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트위터를 잘 하지는 않지만 팔로워 중 한 명인 공지영 작가. 가끔 트위터를 하며 공지영 작가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보면서 지식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의 집필작업도 일종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할 때 학문의 일차적 목적은 사실을 규명하고 지혜를 얻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나 공지영 작가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낫게 변화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국가권력 또는 거대한 집단의 음모로부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지식인이 해야 할 참된 역할이 아닐까. 공지영 작가를 보면서 에밀 졸라의 모습이 겹쳐졌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서 군부와 군사법원에 의한 진실 은폐에 대항하여 진실 규명을 위해 앞장섰듯이 인권의식을 갖고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지영 작가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는 꽁지 작가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
대법원에 들를 때마다 동문을 지나며 마주하는 세 단어가 있다. "자유, 평등, 정의" 이 세 단어를 보면 늘 가슴이 뛴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이라는 것이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주어야 한다는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이러한 큰 의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벌법들에서 사인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주장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타인의 위치에서 그를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법을 배울 때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고 양 쪽의 의견을 경청하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것도. 대법원에서의 시간들은 합리적인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해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소설 도가니 마지막 장에는 장미, 은혜, 지혜, 윤희, 명근, 세연, 강성, 문현. 실제 아이들의 이름이 나온다. 지금 어딘가에서 그 때의 상처를 치유하고 씩씩하게 성인으로서 성장해가고 있겠지. 아니면 그 때의 상처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는지.
영화의 끝 부분에서 서유진의 이메일 형식으로 내레이션되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재판장의 모습이 또렷이 그려진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음악을 틀자 살며시 손을 올리는 연두의 모습까지도 선명히.
[영화 '도가니'] 자유, 평등, 정의를 되새겨보다
분노의 도가니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고 한 달이 지났다. 이 한 달을 표현하자면 저 한 마디면 정확할 것 같다. 광주 인화학교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 그리고 그 소설을 극화하여 제작된 영화 '도가니'. 영화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건 기존의 성범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시민들은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어 온 인화학교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했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분노의 목소리를 표출했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가니를 보면서 제일 먼저 내가 아는 그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일섭이형, 상진이형, 영록이, 진연이, 민선이, 영관이, 희주. 기자일을 하면서 알게 된 많은 장애인 취재원들. 그리고 바쁜 학교 생활 속에서도 1주일에 한 번씩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의준이 나연이 태민이 혜민이 지철이 동진이 창한이 현수. 그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선생님"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 손잡고 함께 걸으며 조금이라도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배려해주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때묻지 않고 순수한 아이들을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얕잡아보고,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같이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지난 PD 수첩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해 나 역시도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제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다시 보면서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수치심,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집작해 볼 수 있었다. 07년도 때 PD 수첩의 영상, 그리고 최근에 시사매거진과 PD 수첩에서 다시 추가로 취재해서 방영한 내용까지.그동안 인화학교 대책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허공 속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대책위 담당자는 그렇게 말했다. "6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들의 진심어린 투쟁의 목소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이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많은 부분에서 허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공지영 씨의 소설도 인화학교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 들어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처음에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영화를 보고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있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시험기간에 서점에서 구입해서 시험 끝나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바로 '도가니'였다. 그리고 시험 끝나고 몇 시간만에 집중해서 다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봐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격한 감정들에 비해서 소설을 읽으면서는 아주 큰 동요는 없었다. 대충의 흐름이 영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압축적이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세세한 심리묘사나 사건의 정황들을 좀 더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사건이 이렇게 국가적으로 이슈화가 될지는 몰랐다. 인화학교사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2005년, 2006년이면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였는데 문득 그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니 PD 수첩 방영 등으로 인화학교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이슈화가 되었던 게 떠오른다. 하지만 정말 그 때의 이 사건은 아주 잠깐 반짝하고 사라졌던 것 같다. 판결이 나고,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무렵, 영화 도가니는 자칫하면 그냥 그들만의 답없는 싸움으로 이어질 문제를 쟁점화했다. 국회에서는 도가니 파장 이후 도가니 방지법 제정에 대해서 의견이 모아졌다. 성폭력 특별법 조항 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고 국정감사에서 인화학교 교감을 불러 진상을 추궁했다. 언론은 연일 이 문제를 대서특필했고, 시민들을 약자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보였다. 법조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법령 개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도가니 사건 이외에도 숨겨져 있던 여러 진실들을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구체적인 사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 그리고 그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했던 우석재단과 학교 측.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온갖 차별에 시달리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감싸주고 지켜주어야 할, 마지막 보루여야 할 학교가 아이들을 성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오랜시간동안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묵인했다는 사실을 큰 충격이었다. 학교에서는 처벌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입을 막았고, 보호라는 명분하에 아이들의 저항권조차도 묵살해버렸다. 아이들의 인권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인화학교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졸업생의 인터뷰는 가슴을 찔렀다.
광주지법에 해당 판결문을 신청해서 당시 판사가 어떠한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지 그 논리를 살펴보고 싶었다. 장애인에 대한 강간, 배임수재, 13세미만미성년자강간, 장애인에대한준강간에 대한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해당 항목에 대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소권자가 아닌 자에 의한 고소로서 부적합하다, 고소기간이 경과된 후의 고소로서 부적합하다,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정신상의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추행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라고 판결문에서 적고 있다.
1심에서는 그래도 교장 및 행정실장, 교사 두 사람에 대해 징역 5년, 징역 8월, 징역 6월, 징역 10월의 실형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교장, 행정실장, 박보현 교사 세 명이 피고인으로 나오지만 말이다. 물론 청소년강간에 대한 공소기각, 장애인에대한준강간에 대해서는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말이다. 영화와 약간 다른 게 있다면 처음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항소심이었다.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과 합의를 하게 되면 피고인에 대한 고소가 취하된다는 점을 피고인 측에서 이용한 것이다. 실제 항소심에서는 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같이 선고한 것은 사실상 불처벌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법원에서는 성폭력 사실이 죄질이 나쁘고, 범죄 사실도 다 인정한다고 설시한다. 그런데 무죄란다. 이게 무슨 기가 막힌 코미디인지. 문제는 현행 법규정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와 소설에서는 전관예우를 통해 변호사가 승리한 것으로 묘사하여 법조계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법복을 벗은 변호사는 아니라고 하니 이 문제는 차치한다고 쳐도 나름 대한민국의 엘리트인 변호사가 이들의 성폭력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을 위해 변호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무죄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은 어찌됐든 또 한번의 분노를 자아낸다. 물론 세상이 다 피고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그들을 위해 변호해 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하긴 하지만 정상참작 수준이 아니라 이건 너무 한 것이지 않나.
인권위에서 인턴할 때 쌤들한테 부탁해서 인권위 직권조사 결정문의 원본도 받아서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시간날 때 인권위에 가서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 쌤들과 도가니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 많이 나누었고, 좀 더 깊이 있게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광주지법의 판결문과 인권위 결정문을 읽어보면서 어쩌면 영화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상황들보다도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의 결정문은 좀 더 포괄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실명으로 게재된 결정문이라 조심스럽지만 직권조사의 배경부터 사건의 전반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성폭력문제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외에도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책임에 대한 문제와 특수학교 성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문제, 청각장애학생의 교육권 문제까지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고 가해자 고발 조치 및 이사 및 감사의 교체, 여러 가지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이 후 인화학교 측이나 해당 지자체에서는 초기에만 따르는 듯 하면서 결국에는 편법 등을 동원해 족벌체제를 그대로 이어갔다. 인권위의 권고가 법적인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효력을 나타내는데 이마저도 무시한 행태는 참으로 씁씁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다. 문득 위안부 할머니와의 인터뷰 때가 떠오른다.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보이시면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사람이 살아 있지만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이 말은 인화학교 피해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영혼과 인격에 대한 살인도 엄연히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책과 관련 기사를 보고 도가니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각한 것은 영화 상영으로 국민적 관심이 '반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개개인들의 영향력은 미미할 지라도 하나로 모으면 얼마든지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우석법인의 법인 허가 취소를 이끌어내고, 사회복지법안 개정에 대한 요구를 하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많이 성장했다고 믿으니까. 인권위 쌤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특히 변호사들은 장애인 인권 분야를 기피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것도 법조인들이 바꾸어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장애인은 진술을 잘 바꾸므로 공소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장애인 인권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향상될 수 없다고 본다.
처음에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였던 것 같다. PD 수첩처럼 묻혀질뻔한 문제를 이슈화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해야 겠다는 대단한 이념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불합리한 현실을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느끼고 겪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 혼자 간직하는 선에서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인턴기자를 하고자 할 때 사회부를 지망했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기자를 했고, 샘터에서 기자를 했던 것도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 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 따뜻한 건 낮은 자들을 향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가니 사태를 보면서 조금 염려스러웠던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복지법인들과 시설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을텐데 그들의 진정성과 노력들이 이러한 일부 사건들을 통해 평가절하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이게 될까봐 그게 좀 두렵다.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시설들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들은 조금 아쉽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나부터 가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트위터를 잘 하지는 않지만 팔로워 중 한 명인 공지영 작가. 가끔 트위터를 하며 공지영 작가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보면서 지식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의 집필작업도 일종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할 때 학문의 일차적 목적은 사실을 규명하고 지혜를 얻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나 공지영 작가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낫게 변화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국가권력 또는 거대한 집단의 음모로부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지식인이 해야 할 참된 역할이 아닐까. 공지영 작가를 보면서 에밀 졸라의 모습이 겹쳐졌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서 군부와 군사법원에 의한 진실 은폐에 대항하여 진실 규명을 위해 앞장섰듯이 인권의식을 갖고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지영 작가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는 꽁지 작가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
대법원에 들를 때마다 동문을 지나며 마주하는 세 단어가 있다. "자유, 평등, 정의" 이 세 단어를 보면 늘 가슴이 뛴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이라는 것이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주어야 한다는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이러한 큰 의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벌법들에서 사인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주장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타인의 위치에서 그를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법을 배울 때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고 양 쪽의 의견을 경청하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것도. 대법원에서의 시간들은 합리적인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해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소설 도가니 마지막 장에는 장미, 은혜, 지혜, 윤희, 명근, 세연, 강성, 문현. 실제 아이들의 이름이 나온다. 지금 어딘가에서 그 때의 상처를 치유하고 씩씩하게 성인으로서 성장해가고 있겠지. 아니면 그 때의 상처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는지.
영화의 끝 부분에서 서유진의 이메일 형식으로 내레이션되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재판장의 모습이 또렷이 그려진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음악을 틀자 살며시 손을 올리는 연두의 모습까지도 선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