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 전기』3.독립군에 입대하다 ⑵

대모달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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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산 유격대(天摩山遊擊隊)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흡수되다

 

천마산 유격대의 역량을 보존하고 일본군의 포위로 전멸되는 것을 모면하기 위해 총대장 최시흥은 부대를 중국 동북 지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부대가 압록강을 건넌 후 최시흥은 강변에서 모든 대원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했다. 그는 일본 국왕과 내각총리를 비난하고 조선총독부의 악행과 민족반역자 이완용(李完用)·조중응(趙重應)·송병준(宋秉畯) 등을 성토한 뒤, 대원들과 더불어 선서를 했다. 그가 한 문구를 읽으면 병사들이 따라 하고, 마지막에는 모두 자신의 이름을 읽었다.

 

선서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나는 독립군의 전사로서 붉은 마음으로 독립군에 충성하며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왜놈들과 끝까지 혈전할 것을 맹세한다. 대한민국 5년 2월.’

 

최시흥은 병사들과 함께 선서를 끝낸 후 혼자 조국을 향해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했다.

 

그는 동지들에게 말했다.

 

“이는 조국 영토를 향해 절하는 것이고, 희생된 종지들을 향해 절하는 것이며, 왜놈들에게 피살당한 동포들을 향해 절하는 것이오.’

 

이어 양세봉을 비롯한 대원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 조국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병사들은 모두 통곡했다.

 

양세봉이 길을 익숙히 알기에 최시흥은 대오의 길잡이를 맡겼다. 모두들 눈보라를 무릅쓰고 며칠 동안 행군한 끝에 마침내 양세봉의 집이 있는 남만주의 금구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구자의 촌장이 나와 천마산 유격대를 환영했다. 최시흥은 특별히 과자 두 봉지를 사들고 양세봉과 함께 그의 식구들을 찾아갔다. 양세봉의 어머니는 집을 떠나 반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 너무 기뻐 눈물을 흘렸다. 최시흥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아주 훌륭한 아들을 두었노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저녁에 최시흥과 최지풍을 포함한 천마산 유격대 용사들은 양세봉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가장 맛있는 반찬을 내오고, 특별히 원봉을 시켜 술도 받아 오게 했다. 술을 마신 최지풍이 흥이 나서 재순과 해원에게 춤을 추라고 시켰다. 양세봉도 부추기자 재순과 해원이 고향의 춤을 곱게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흥이 오른 독립군의 몇몇 대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다. 원봉이 가야금을 타며 반주를 했고, 이어 모두 독립군가를 한목소리로 불렀다.

 

밤이 깊어지자 양세봉은 대원들을 여러 집에 나누어 자도록 배치하고, 동생 원봉과 자신을 보러 지주 집에서 돌아온 시봉과 원봉으로 하여금 부대를 위해 보초를 서도록 했다.

 

재순은 세봉과 더불어 방에 들어오자, 그동안 겪은 일들을 물었다. 세봉은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떠나온 고향 마을 얘기와 독립군에 입대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라가 있어야 가정이 있고, 나라가 없으면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독립군으로서의 도리를 덧붙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달콤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튿날 최시흥을 비롯한 유격대원들은 마을 남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독립운동의 중요성과 애국적인 일에 대해 긴 연설을 한 뒤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양세봉의 가족을 부탁했다. 만일 양세봉의 가족을 밀고하는 자가 있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란 위협도 했다.

 

대원들은 이날 하루 시간을 내어 각 가정의 밭일을 도왔다. 마을 사람들과 대원이 한데 어울려 유쾌하게 일을 함으로써 독립군은 이곳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겼다.

 

사흘째 되던 날, 최시흥은 현재의 상황에 근거하여 북쪽인 유하현 방향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세봉의 어머니는 울면서 최시흥에게 세봉을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했다. 남편의 큰 뜻을 이미 알고 있는 재순이 나서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떠나기에 앞서 세봉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자고로 충성과 효도는 같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없지만 저 대신 재순이 할 겁니다.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양세봉의 식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그들은 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천마산 유격대는 꼬박 이틀을 걸어서 유하현 화사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가세했다. 광복군총영의 총영장(總營長)인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 장군은 조선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이들 전투부대를 뜨겁게 환영했다.

 

광복군총영의 장병들과 천마산 유격대원들은 함께 친목 모임을 가졌다. 모두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부대에 합류한 것을 축하했다. 그들은 큰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오동진 장군과 최시흥 총대장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다. 최시흥은 광복군총영이 3백여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대규모 부대로 병력이 5, 6개 대대로 나뉜 것을 보고 이 부대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리하여 광복군총영은 천마산 유격대의 인원과 소지한 총기의 수효를 근거로 천마산 유격대를 광복군철마별영(光復軍鐵馬別營)으로 개편하고 최시흥을 별영장(別營長)으로 삼았다.

 

광복군총영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철마별영은 임강현에 가서 활동하게 되었다. 최시흥은 양세봉이 집에 젊은 아내가 있고 자상한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고려하여, 무척 아쉬웠지만 오동진 장군에게 양세봉의 집이 이 부근에 있으니 그를 총영에 남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양세봉이 아주 용감하고 총명한 대원이므로 소대장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철마별영은 임강현으로 출발하고 양세봉은 유하현에 남게 되었다. 양세봉은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최시흥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그 해 5월에 임깅현에서 최시흥은 동북 군벌 관헌이 보낸 헌병들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되기는 했지만 일본 경찰대가 보낸 밀정 김덕기(金德基)에 의해 납치되어 다시 국내로 압송된 최시흥은 결국 평양형무소에서 사형당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양세봉은 매우 비통해했다.

 

광복군총영에서는 양세봉을 검찰관으로 임명했다. 주로 부하 대원들의 군기를 검사하는 일이었다. 대원들의 불량 행위를 발견하면 이를 고쳐 주고, 규칙을 어기고 소란을 피우는 대원들은 조사를 통해 처벌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일을 했다.

 

양세봉은 워낙 착실한 데다 인정에 구애됨 없이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였기에 오동진 장군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