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의 동맹에 관련된 내용은 커녕 고구려 자체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들(물론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이
사실처럼 믿고 있었던 이야기가 완벽한 날조였던 것이네요.
완전 뜻밖의 일이어서
매우 당황 스럽고, 씁씁함이 없지야 않지만
생각해보면 뭐 그리 기분 나쁜 일도 아니니까요
사실이 이렇다 한들
대한민국 국민들과 터키 국민들 서로 간에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ㅎ
제가 조사해서 알아본 결과
사실 터키인들이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로 부르게 된 배경에는
이슬람권 특유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슬람권인 터키인들에게 피를 나눈 형제,
즉 칸 가르데쉬라는 표현은 굉장히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사람 뿐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관계되는 나라들에게는 사이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모두 칸 가르데쉬로 부른다고 하는데요,
터키와 인접한 주변국들은 물론 유럽 국가, 중국, 일본에게도 이러한 표현을 자주 쓴다네요.
현실적으로 바라 보게 되면
터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6.25에 참전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성과
당시 터키는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키프르스문제 그리스와의 영토분쟁, 쿠르드 난민등) 절대적으로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미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참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참전 이후 터키는 미국의 도움으로 국경지대에 있던 쿠르드족 난민을 이라크로 밀어냈고, 이에 반발하는 이라크를 미국이 조용히 시켜주었죠. 또한 그리스와의 영토 문제도 미국이 터키편을 들어 주면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터키를 섭섭하게 했다고 하는데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터키는 순전히 자국의 실익을 위해 움직인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나라 정부가 나서서 터키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어쩌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치만 아무리 자국의 실익이라 하더라도 정말 보잘 것 없었던 나라까지 와서
큰 희생을 해주셨잖아요.
감사한건 정말 감사한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50년동안 처음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국민을 대표로 터키를 방문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두 자세히 알아보기 전 까지만 해도
이런런 큰 도움을 받고도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50년간 대체 뭘 한거지?
왜 터키에 대한 아무런 정책이 없는거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하고 답답해 하고 있었던 찰나에 드디어 정리가 되었네요ㅎ
형제국가라는 말도 위에서 설명했드렸듯이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여러 다른 나라들에게도 사용하는 말인데요
쉽게 설명 하자면
한국말이 서툰 미국인 친구에게 " 우리집에 놀러갈래?" 라고 하면 미국인 입장에선.. "우리? 우리? 그건 너의 집이지..나의 집은 아닌데.. 우리..라고? 내가 너한테 그정도로 소중한 존재구나... 와... 고마워... 날 가족처럼 생각해 줘서..이제 거긴 내 집도 되는거야?"
이거랑 같은 상황..?
터키인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이익을 주거나..
뭐 무튼 그러면 누구에게나 " 오~ 나의 형제~" " 오~ 우린 피를 나눈 형제~"라면서
그냥 하나의 속담이나 명언처럼 막 사용하는 말을
우리가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죠.
또
터키가 파병왔을 때에
무수히 많은 몹쓸 짓을 했다고 비판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실텐데요
저희도 과거 월남전 참가 하셨을 때
정말 무참한 행돌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거랑 똑같은 거랍니다.
한국에도 초등학교던, 중학교던, 고등학교던, 대학교던, 군대건, 사회건 간에
꼭 양아치 같은 행동을 하는 몇몇의 다수가 있잖아요?
그런 것 처럼
터키가 파병와서 강간 같은 몹쓸 짓을 하는 일들이 물로 있었죠
하지만 모든 파병온 병사들이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양아치 행동을 하는 것들이 따로 몰려서 한걸
크게 터키를 싸잡아 욕하는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저런 양아치들도 있었던 반면에
전쟁을 하면서
전장 한곳 한곳 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을 한명 한명 모아서
고아원, 학원 등 먹여주고 재워주며 정말 좋은 일들을 많이 해 주셨죠.
진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터키 뿐만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많은 파병군인들께서 도와주셧죠)
전쟁으로 인한 터키군의 희생은 안타까운 일이죠.
정말 안타깝고, 감사합니다.
이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한 미국의 태도를 보면 국제사회에서 동맹,혈맹이란 생각과는 정말 다르죠
국익에 이익이 있을때나 존재하는 말이라는 것
이게 현실이겠죠?
몇달 전 우리나라로 치면 파코즈하드웨어에 해당하는 터키의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 Donarim Haber에서 "터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제국가는?(En sevdi?iniz karde? ulke hangisi?) 이란 주제로 설문조사가 실시되었는데요.
터키 힘내세요!!! 터키와 한국의 관계에 대하여(한국과 터키가 형제국?)
뉴스기사를 보니 터키 동부에 7.2~3의 강진이 나서 많은 인명피해..
뉴스에 따르면 현재 사망자가 1000명에 육박..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안타까운 참사.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라며,
빠른 복구와 많은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최근에 일본에 대참사로 인하여 국민들과, 연예인, 정부 등 수 없이 많은 사람들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성금은 모아서 일본에 기부를 하였는데.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죠.
이번에도 역시 똑같은 모습이 보여지길 바랍니다.
지금 터키정부에서 다른나라의 원조를 요청한적이 없어요.
터키정부도 자국내에서 해결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런상황에서 방송사나 각 NGO단체에서 모금활동을 할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불법이니까요. 원조 요청이 없으면 도와줄수가 없는겁니다.
이대통령도 위로서한보내고 지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라라라라님의 뎃글 -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인 터키를 기억하며
아주 먼 옛날,
터키의 선조인 돌궐, 대한민국의 선조인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
돌궐과 고구려가 아주 단단한 동맹국가였던 것이 지금 까지 혈맹국가로 이어져 왔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요.
현재 많은 사람들이 터키는 형제의 나라?, 혈맹국가?라고 하시잔아요
저는 이것에 대해 의문이 생겨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고,
제가 알아본것을 여러분들과 같이 공유하고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터키가 형제국이 된 것은 고구려와 돌궐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터키가 한국을 형제국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붉은악마란 단체가 터키 응원을 주도하면서 퍼뜨렸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네요.
당시 주위엔 중국, 일본, 북한 등 우리 역사에 아픔을 주었던 이웃들 뿐이었고,
가장 강력한 우방이라는 미국도 당시 벌어진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하여
반미감정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라 한국인들은 꽤나 고립감을 느끼던 찰나에
마침 등장한 터키가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아주 반갑게 다가왔을 것이며,
가깝지는 않더라도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지지해주는 국가가 존재를 한다는 소리니까요.
방송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게 된 이 이야기는
급기야 한국과의 터키의 3,4위전 관중석에 대형 태극기와 터키기가 동시에 펼쳐지게 만들었고,
이는 방송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터키까지 전해져 터키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에 이르었으며
그 덕분에 터키인들이 터키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들은
이미 익숙하시죠?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얼마 안돼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왜 터키가 우리를 형제국으로 생각하는가에 집중을 했죠
그것도 그냥 형제가 아닌 터키어로 "칸 가르데쉬" 즉 피를 나눈 형제로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6.25 전쟁때 터키가 미국, 캐나다에 이어 3번째 규모로 파병을 단행했던 것이
그 첫번째 이유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검색해보니
1위는 미국,
2위는 영국, 5만7천명정도
3위 캐나다, 2만5000명정도
4위가 터키 14,936명 2만5천명정도 규모도 컸습니다.
15000명 정도를 파병한 터키군에서는
3500명이나 되는 전사자가 발생했는데 대단한 희생이었죠.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또
사람들의 호기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체 왜 터키가 한국에 파병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되었는데요
그래서 나온 주장이
'원래 터키는 고구려 때 부터 우리를 형제로 생각해왔고,
그 때문에 형제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파병을 하게 된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 자세한 내용을 보면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 시절
고구려와 터키의 전신인 돌궐이 동맹을 맺고 중국에 대항을 했었고,
터키에서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자국의 역사교과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것.
IT 강국 답게 이 그럴듯한 내용은 순식간에 각종 게시판과 커뮤니티에 옮겨져
지금까지 사실인 양 굳어지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이러한 주장을 무한적으로 Ctrl+v 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수 없이 많이 볼 수 있죠.
저는 위에 퍼 다니는 글들을 보고
과거 고구려와 돌궐 사이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고구려와 돌궐이 형제를 운운할 정도로 깊은 동맹관계였던 적이 있었는가?
과연 터키교과서에 그러한 내용이 기술되고 있는가?
제가 가진 역사지식 속에서는 어려운 일이므로
관련 자료들을 뒤지며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는데요.
이 설명은 좀더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부터 설명을 하게 되면 지루해 하시다가 가실까봐..)
지금 위에 글처럼 터키 교과서를 본다면
돌궐이 고구려와 피를 나눈 형제라 수,당과 함께 맞서 싸웠었고,
이런 역사를 현재에도 터키에서 교육을 하여
아직 까지도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국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양 퍼지고 있어서
정말 터키 교과서에서 그러한 내용을 실었나 궁금하여 조사를 해 보았더니,
이미 터키 대사관에 누군가 질문글을 올려놓은것이 있었으며,
이미 대사관측의 답변도 되어있더군요ㅎ
http://www.mofat.go.kr/incboard/minwondetail.jsp?txtBoardId=M0023&txtBoardSeqNo=142505&txtCurrPage=1&txtLineNo=10&txtSerItem=TITLE&txtSerStr=고구려&txtPwd=&Category=tur-ankara&txtResultURL=sciconfirm.jsp
대사관 링크 위에 글과 링크에 들어가보시면
고구려와의 동맹에 관련된 내용은 커녕 고구려 자체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인들(물론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이
사실처럼 믿고 있었던 이야기가 완벽한 날조였던 것이네요.
완전 뜻밖의 일이어서
매우 당황 스럽고, 씁씁함이 없지야 않지만
생각해보면 뭐 그리 기분 나쁜 일도 아니니까요
사실이 이렇다 한들
대한민국 국민들과 터키 국민들 서로 간에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ㅎ
제가 조사해서 알아본 결과
사실 터키인들이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로 부르게 된 배경에는
이슬람권 특유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슬람권인 터키인들에게 피를 나눈 형제,
즉 칸 가르데쉬라는 표현은 굉장히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사람 뿐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관계되는 나라들에게는 사이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모두 칸 가르데쉬로 부른다고 하는데요,
터키와 인접한 주변국들은 물론 유럽 국가, 중국, 일본에게도 이러한 표현을 자주 쓴다네요.
현실적으로 바라 보게 되면
터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6.25에 참전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성과
당시 터키는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키프르스문제 그리스와의 영토분쟁, 쿠르드 난민등)
절대적으로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미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참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참전 이후 터키는 미국의 도움으로 국경지대에 있던 쿠르드족 난민을 이라크로 밀어냈고,
이에 반발하는 이라크를 미국이 조용히 시켜주었죠.
또한 그리스와의 영토 문제도 미국이 터키편을 들어 주면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터키를 섭섭하게 했다고 하는데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터키는 순전히 자국의 실익을 위해 움직인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나라 정부가 나서서 터키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어쩌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치만 아무리 자국의 실익이라 하더라도 정말 보잘 것 없었던 나라까지 와서
큰 희생을 해주셨잖아요.
감사한건 정말 감사한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50년동안 처음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국민을 대표로 터키를 방문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두 자세히 알아보기 전 까지만 해도
이런런 큰 도움을 받고도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50년간 대체 뭘 한거지?
왜 터키에 대한 아무런 정책이 없는거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하고 답답해 하고 있었던 찰나에 드디어 정리가 되었네요ㅎ
형제국가라는 말도 위에서 설명했드렸듯이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여러 다른 나라들에게도 사용하는 말인데요
쉽게 설명 하자면
한국말이 서툰 미국인 친구에게 " 우리집에 놀러갈래?" 라고 하면
미국인 입장에선..
"우리? 우리? 그건 너의 집이지..나의 집은 아닌데.. 우리..라고?
내가 너한테 그정도로 소중한 존재구나...
와... 고마워... 날 가족처럼 생각해 줘서..이제 거긴 내 집도 되는거야?"
이거랑 같은 상황..?
터키인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이익을 주거나..
뭐 무튼 그러면 누구에게나 " 오~ 나의 형제~" " 오~ 우린 피를 나눈 형제~"라면서
그냥 하나의 속담이나 명언처럼 막 사용하는 말을
우리가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죠.
또
터키가 파병왔을 때에
무수히 많은 몹쓸 짓을 했다고 비판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실텐데요
저희도 과거 월남전 참가 하셨을 때
정말 무참한 행돌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거랑 똑같은 거랍니다.
한국에도 초등학교던, 중학교던, 고등학교던, 대학교던, 군대건, 사회건 간에
꼭 양아치 같은 행동을 하는 몇몇의 다수가 있잖아요?
그런 것 처럼
터키가 파병와서 강간 같은 몹쓸 짓을 하는 일들이 물로 있었죠
하지만 모든 파병온 병사들이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양아치 행동을 하는 것들이 따로 몰려서 한걸
크게 터키를 싸잡아 욕하는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저런 양아치들도 있었던 반면에
전쟁을 하면서
전장 한곳 한곳 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을 한명 한명 모아서
고아원, 학원 등 먹여주고 재워주며 정말 좋은 일들을 많이 해 주셨죠.
진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터키 뿐만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많은 파병군인들께서 도와주셧죠)
전쟁으로 인한 터키군의 희생은 안타까운 일이죠.
정말 안타깝고, 감사합니다.
이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한 미국의 태도를 보면
국제사회에서 동맹,혈맹이란 생각과는 정말 다르죠
국익에 이익이 있을때나 존재하는 말이라는 것
이게 현실이겠죠?
몇달 전
우리나라로 치면 파코즈하드웨어에 해당하는 터키의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 Donarim Haber에서
"터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제국가는?(En sevdi?iniz karde? ulke hangisi?) 이란 주제로 설문조사가 실시되었는데요.
http://forum.donanimhaber.com/m_28302100/mpage_2/tm.htm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한국,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알바니아,
이탈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기타의 항모중
한국은 17%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태극기보다 큰 대형 터키기를 흔들며 형제를 반겼던 한국인들에겐
굉장히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국민들의 대다수가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지경까지 무관심한 상태를 50년을 동안 지내왔는데도
17%면 정말 높은 거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저희를 잊지않고 있다는거니까요.
정말 감사하죠.
저는 터키에 대해서 정말 감사한 감정과
친구같은 나라라고 생각 하고 싶네요.
절대로 터키에 대해 흠 잡을려고
이 글을 쓴게 아니라는 점 알아주셧으면하네요
부정적으로 이 글을 읽으시게 된 분이 있으시다면,
실제론 터키랑 대한민국이랑 혈맹 국가가 아니더라도
지금 터키가 큰 지진으로 인하여 상황이 안좋은데
굳이 이런 글을 써야겠냐고 생각을 하시는 분도 분명히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터키라는 나라가 정말 좋아하는 나라라서
지진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안타까워 하는 도중에
터키랑 혈맹국가라는걸 어중간하게 알고있을게아니라
이번 기회에 형제의 나라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냉정한 현실은
지금까지 들어보고, 생각해왓던 것 과는 달라서
정말 많이 당황했고, 받아들이기가 싫어져서 씁씁했습니다.
사실이 이렇다 하들
저도 역시 여러분들과 똑같이
터키에 대한 좋은 마음은 여전히 전혀 변함 없습니다.
다만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요
터키라는 글만 검색해도
제가 조사해본 정보와는 엇갈린 출처도 없는 루머 같은 내용들이 너무나 많이 떠돌아 다니길레
혼자만 알고 있는 것 보다는
여러분에게도 알려드리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되어 글을 써 보았습니다.
여기서 위에 글들을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터키는 자국의 실익을챙기기 위하여 6.25에 참전을 하게 되었구요
터키의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
"과거 대한민국과 터키는 혈맹국이었다." "아직도 형제의 나라다."라는 말은 개소리라는 걸
인증 해드렸구요
형제의 나라라는 건 없다는게 현실입니다.
이제
위 글 초반쯤에
과거 고구려와 돌궐이 혈맹국 이었다라는 것에 대해 조사한걸 설명해 드릴게요
정말 고구려와 돌궐이 형제를 운운할 정도로 깊은 동맹관계였던 적이 있었는가? 에
대하여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Theophylactus Simocatta가 613년에 저술한 <Historiam>이란
역사서의 <VII. Origin of the Avars>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는데요
이 당시 고구려의 상황을 기록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양원왕은 7년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는데요.
9월에 돌궐이 와서 신성을 에워 쌌다가 이기지 못하고 백암성으로 옮겨 공격하므로
왕이 장군 고흘을 시켜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대항하게 하여 이기고 적 1000여명을 살획하였다.
누가 봐도 돌궐과 전투한 기록으로 볼 수가 있겠죠?
양원왕 7년은 A.D 551년으로 552년 초
돌궐이 지금의 하북성 북단인 회황진 북쪽에서 유연을 격파하였으므로
551년에 돌궐이 신성까지 진출하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수서> 권84 돌궐전 문제 개황 2년(A.D 582)의 조서내용에
"왕년에 돌궐의 이계찰이 고려 말갈에 크게 격파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시기가 정확히 맞지 않더라도
돌궐의 동방진출 초기인 582년 이전에
돌궐과 고구려간에 어느정도의 충돌이 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 진흥왕이 함흥까지 진출하는 상황에서도 고구려가 그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서북방의 돌궐이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 위에 돌궐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돌궐을 방패 삼아 함흥까지 마음 먹고 진출을 했겠죠?
또, 당시 고구려 주변국들의 동향을 살펴보아도 돌궐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구당서> 권199 말갈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기존에 대체로 고구려의 세력권 안에 있던 말갈의 일부 세력이 돌궐에 신속했다는 것입니다.
(후에 발해를 세운 말갈인 대조영의 출신부, 구당서 권 39 지리지 2 하북도 신주 및 여주조에
속말갈을 부유말갈로도 적고 있고,
후에 속말말갈의 돌지계가 부여후로 책봉된 것으로 보아
속말말갈은 멸망한 부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당시 돌궐의 영역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말갈은 속말말갈로
마침 돌궐이 실위에 지방관인 토둔을 두며 고구려 서북방면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6세기 후반
고구려를 자주 침공하기 시작 합니다.(수서 권81 동이 말갈전)
그런데 동시기 속말말갈은 돌궐과는 싸운 기록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속말말갈의 북쪽에 위치한 실위까지 남진한 돌궐에 속말말갈이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돌궐에 신속했다는 말갈은 이 속말부가 된 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583년 돌궐이 양분되어 수에게 대파되는 시기,
속말말갈은 고구려에게 패하여 돌지계 등이 속말말갈의 8부 승병 수천명을 이끌고
수나라에 내부하게 되는데요
(태평환우기 권 73 하북도 연주조 인용 북번풍속기),
이는
속말말갈이 그간 돌궐의 후방지원에 힘입어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었다는것을 짐작케 해주죠.
또한 547년 이후
물길의 퇴조와 함께 끊겼던 중국에 대한 조공이 563년부터 말갈이란 이름으로 다시 시작 되는데
(위서, 북제서, 책부원구 조공문에 의해 노태돈이작성한 표 참고)
고구려사의 권위자 노태돈교수는
물길과 말갈의 고음운이 똑같이 Mat-kat으로
같은 민족을 지칭한다고 해도 그 음사의 변동은 그 정치적 주체가 봐뀐데서
멀미암은 것이 아닌가 한다며
그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고구려와 극렬한 항쟁을 한 속말말갈로 꼽았습니다.
노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속말말갈이 조공을 하러 가기 위해선
고구려의 세력권인 요동을 거쳐
현재의 랴오닝성 차오양 지역인 유성에 진입하는것이 가장 빠르나
고구려가 이를 허락할리가 없고,
거란을 통과하자니
당시 속말말갈과 거란은 해마다 전투를 치루는 적대적 관계(수서 말갈전)에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거란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우회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곳은 돌궐의 영역이었으므로 돌궐을 우방으로 두지 않았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또 수서 거란전에 의하면
거란 역시도 고구려와 돌궐의 핍박을 받으며 각각에 차례로 복속되다
수가 강해지자 수에 내부하게 되는데요,
즉 고구려와 돌궐이 전쟁을 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두개 뿐이지만,
속말말갈과 거란의 당시 동향을 보았을 때
돌굴과 고구려는 계속해서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돌궐이 우호적인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당서> 권75 위운기전과
<신당서> 권116 위운기전,
<자치통감> 권180 수기 4 양제 대업
원년(A.D 605)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요
거란이 동돌궐과 고구려 사이에 벌어진 2만명 규모의 교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전에도 이러한 교역이 몇차례 행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구려와 돌궐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죠.
그로부터 2년 후인 607년,
수나라 양제는 동돌궐의 수장 계민가한이 고구려 사신과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18년,)
두 나라의 연합 가능성에 격분한 양제는 고구려에게 위협을 가하고
결국 4년 후 고구려를 친다는 조서를 내리게 되는데요,
고구려가 수나라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계민가한의 태도와
돌궐이 고구려를 도운 흔적이 없는것을 볼 때
돌궐과 고구려의 연합은 시도 단계에서 끝나버린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수나라가 내부분열을 일으켰을 때
돌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강성해져 고구려따위(?)와 연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곧이어 중국에 새로이 등장한 당 왕조에 굴복해
당의 고구려 원정에 다수의 돌궐인들이 동참하게 됩니다.
즉, 고구려와 돌궐이 우호적, 혹은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였던 기간은 길어봤자
돌궐이 수나라에게 굴복하기 시작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의 20여년 뿐이었고,
이 기간 내에서도 동맹이라고 까지 불릴 만한 관계가 형성된 적은 없었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위에 사진이 있으니 사진 없이 총 정리 볼게요ㅎ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 시절
고구려와 터키의 전신인 돌궐이 동맹을 맺고 중국에 대항을 했었고,
터키에서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자국의 역사교과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것.
정말 고구려와 돌궐이 형제를 운운할 정도로 깊은 동맹관계였던 적이 있었는가?
과연 터키교과서에 그러한 내용이 기술되고 있는가?
이미 터키 대사관에 누군가 질문글을 올려놓은것이 있었구요,
이미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대사관측의 답변도 되어있다는걸 위에 확인 시켜드렸죠ㅎ
이슬람권인 터키인들에게 피를 나눈 형제,
즉 칸 가르데쉬라는 표현은 굉장히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사람 뿐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관계되는 나라들에게는 사이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모두 칸 가르데쉬로 부른다고 위에서 설명을 드렸죠,
터키와 인접한 주변국들은 물론 유럽 국가, 중국, 일본에게도 이러한 표현을 자주 씁니다.
터키인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이익을 주거나
뭐 무튼 그러면 누구에게나 " 오~ 나의 형제~" " 오~ 우린 피를 나눈 형제~"라면서
그냥 하나의 속담이나 명언처럼 막 사용하는 말을
우리가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터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6.25에 참전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성과
당시 터키는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키프르스문제 그리스와의 영토분쟁, 쿠르드 난민등)
절대적으로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미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참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참전 이후 터키는 미국의 도움으로 국경지대에 있던 쿠르드족 난민을 이라크로 밀어냈고,
이에 반발하는 이라크를 미국이 조용히 시켜주었죠.
또한 그리스와의 영토 문제도 미국이 터키편을 들어 주면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정말 고구려와 돌궐이 형제를 운운할 정도로 깊은 동맹관계였던 적이 있었는가?
돌궐 과의 상황에 대한 고구려의 상황을 기록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양원왕은 7년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는데요.
9월에 돌궐이 와서 신성을 에워 쌌다가 이기지 못하고 백암성으로 옮겨 공격하므로
왕이 장군 고흘을 시켜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대항하게 하여 이기고 적 1000여명을 살획하였다.
<수서> 권84 돌궐전 문제 개황 2년(A.D 582)의 조서내용에
"왕년에 돌궐의 이계찰이 고구려 말갈에 크게 격파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시기가 정확히 맞지 않더라도
돌궐의 동방진출 초기인 582년 이전에
돌궐과 고구려간에 어느정도의 충돌이 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 진흥왕이 함흥까지 진출하는 상황에서도 고구려가 그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서북방의 돌궐이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 위에 돌궐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돌궐을 방패 삼아 함흥까지 마음 먹고 진출을 했겠죠?
또, 당시 고구려 주변국들의 동향을 살펴보아도 돌궐과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구당서> 권199 말갈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기존에 대체로 고구려의 세력권 안에 있던 말갈의 일부 세력이 돌궐에 신속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돌궐의 영역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말갈은 속말말갈이었죠
마침 돌궐이 실위에 지방관인 토둔을 두며
고구려 서북방면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6세기 후반
고구려를 자주 침공하기 시작 합니다.(수서 권81 동이 말갈전)
그런데 동시기 속말말갈은 돌궐과는 싸운 기록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속말말갈의 북쪽에 위치한 실위까지 남진한 돌궐에 속말말갈이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돌궐에 신속했다는 말갈은 위에 말한 이 속말부가 된 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년 후인 583년
돌궐이 양분되어 수에게 대파되는 시기,
속말말갈은 고구려에게 패하여 돌지계 등이 속말말갈의 8부 승병 수천명을 이끌고
수나라에 내부하게 되는데요
(태평환우기 권 73 하북도 연주조 인용 북번풍속기),
이는
속말말갈이 그간 돌궐의 후방지원에 힘입어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었다는것을 짐작케 해주죠.
또한 547년 이후
물길의 퇴조와 함께 끊겼던 중국에 대한 조공이
563년부터 말갈이란 이름으로 다시 시작 되는데
(위서, 북제서, 책부원구 조공문에 의해 노태돈이작성한 표 참고)
고구려사의 권위자 노태돈교수는
물길과 말갈의 고음운이 똑같이 Mat-kat으로
같은 민족을 지칭한다고 해도 그 음사의 변동은 그 정치적 주체가 봐뀐데서
멀미암은 것이 아닌가 한다며
그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고구려와 극렬한 항쟁을 한 속말말갈로 꼽았습니다.
노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속말말갈이 중국에 조공을 하러 가기 위해선
고구려의 세력권인 요동을 거쳐
현재의 랴오닝성 차오양 지역인 유성에 진입하는것이 가장 빠르나
고구려가 이를 허락할리가 없고,
거란을 통과하자니
당시 속말말갈과 거란은 해마다 전투를 치루는 적대적 관계(수서 말갈전)에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거란의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우회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곳은 돌궐의 영역이었으므로 돌궐을 우방으로 두지 않았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죠.
또 수서 거란전에 의하면
거란 역시도 고구려와 돌궐의 핍박을 받으며 각각에 차례로 복속되다
수가 강해지자 수에 내부하게 되는데요,
즉 고구려와 돌궐이 전쟁을 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두개 뿐이지만,
속말말갈과 거란의 당시 동향을 보았을 때
돌굴과 고구려는 계속해서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와 돌궐이 우호적인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당서> 권75 위운기전과
<신당서> 권116 위운기전,
<자치통감> 권180 수기 4 양제 대업
원년(A.D 605)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요
거란이 동돌궐과 고구려 사이에 벌어진 2만명 규모의 교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전에도 이러한 교역이 몇차례 행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구려와 돌궐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죠.
그로부터 2년 후인 607년,
수나라 양제는 동돌궐의 수장 계민가한이 고구려 사신과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18년,)
두 나라의 연합 가능성에 격분한 양제는 고구려에게 위협을 가하고
결국 4년 후 고구려를 친다는 조서를 내리게 되는데요,
고구려가 수나라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계민가한의 태도와
돌궐이 고구려를 도운 흔적이 없는것을 볼 때
돌궐과 고구려의 연합은 시도 단계에서 끝나버린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수나라가 내부분열을 일으켰을 때
돌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강성해져 고구려따위(?)와 연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고,
돌궐은 곧이어
중국에 새로이 등장한 당 왕조에 굴복해
당의 고구려 원정에 다수의 돌궐인들이 동참하게 됩니다.
즉, 고구려와 돌궐이 우호적, 혹은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였던 기간은 길어봤자
돌궐이 수나라에게 굴복하기 시작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의 20여년 뿐이었고,
이 기간 내에서도 동맹이라고 까지 불릴 만한 관계가 형성된 적은 없었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고구려와 돌궐의 혈맹관계는 전혀 사실 무근인 것이 현실인 것이죠.
제가 조사한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징하게 많이 썻네요;
저가 글솜씨가 없다보니까
보시다가 중간에 스크롤을 내리신 분들이 많으신데요
글 후반 정도에 총 정리 해놨으니 거기서 부터 보셔도 될 것 같네요
글들, 사진들 다 일일이 캡쳐하고,
메모장에 적어서 수정 하고,
다시 정리 해서 올린거에요~
별 볼일 없는 글 보시느라 지루하셨을텐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터키 힘내세요!!
칸 가르데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