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이민규 교수의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소제)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92년 10월 28일 24시 천국의 나팔소리가 울리면서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선택받은 자는 하늘로 들려올림(휴거:携擧)을 받게 된다는 날이었다. 우리니라의 50여개 선교회들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도 휴거되는 사람은 없었으며, 주동한 다미 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는 구속됐다.
이와 맞물려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신앙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 어떤 신앙을 갖든 다른 사람이 관여하거나 비난할 거리는 못된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은 사회 윤리를 파괴하거나 개인의 안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각도에서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런 현상은 오늘의 정치판과 맞물려 보면 상당히 흡사해서 흥미롭다.
보도에 의하면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 후보에게 응원 메시지와 함께 자필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여성 인권운동가의 말을 인용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선거는 참여의 상징"이라며 "이념과 정파를 넘어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또 상식과 원칙론을 거론하며,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선거는 참여의 상징' 수긍한다. 그러나 이념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 그것도 이념의 장본인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박원순 후보에게 과연 대립이 아닌 화합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묻는 선거라고 언급한 대목에 이르면 역시 자존심 고양인가? 낮과 밤이 다른 궤적으로 위선의 진수를 보여준 박 후보에게 과연 진실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립대 교수의 신분으로 공무원의 중립규정을 지키지 않고 특정인을 공개 지지 선언하는 안 교수나 박 후보나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어쨌든 박원순 후보 입장에서 보면 오매불망 학수고대 했던 안철수 협찬이 이루어진 셈인가? 믿는대로 이루어 진 것인가? 지옥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천국을 추구하는 성향도 감소된다고 했다. 누군가 말했다. '죽어봐야 지옥을 안다.' 누가 무엇을 믿건, 누구를 믿건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다. 막연히 정치적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종교가 내세의 천국을 추구한다면 정치는 차라리 현세에서 지옥을 없애는 편이 낮지 않을까?
10⋅26 그날에 박원순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휴거는 종말을 전제한다. 그들의 특징은 종말의 날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그것을 바꾸기 보다는 신념이 현실로 입증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마음이 굽으면 몸도 굽고,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는 법이다.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에서 일당독재 김일성 만세주의자를 선지자 대접 받도록 주문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국가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가치관이 편향적인 후보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순진한 국민들입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심장부 서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겠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仞斷崖)의 나락입니다' 어느 평론가의 절규다.
박원순 국가보안법 폐기에 '그럼요'
박원순 국가보안법 폐기에 ‘그럼요’
대한민국 심장 서울에서 ´김일성 만세’ 외쳐도 방관해야 하나?
-박원순,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
심리학자 이민규 교수의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소제)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92년 10월 28일 24시 천국의 나팔소리가 울리면서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선택받은 자는 하늘로 들려올림(휴거:携擧)을 받게 된다는 날이었다. 우리니라의 50여개 선교회들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도 휴거되는 사람은 없었으며, 주동한 다미 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는 구속됐다.
이와 맞물려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신앙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 어떤 신앙을 갖든 다른 사람이 관여하거나 비난할 거리는 못된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은 사회 윤리를 파괴하거나 개인의 안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각도에서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런 현상은 오늘의 정치판과 맞물려 보면 상당히 흡사해서 흥미롭다.
보도에 의하면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 후보에게 응원 메시지와 함께 자필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여성 인권운동가의 말을 인용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선거는 참여의 상징"이라며 "이념과 정파를 넘어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또 상식과 원칙론을 거론하며,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선거는 참여의 상징' 수긍한다. 그러나 이념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 그것도 이념의 장본인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박원순 후보에게 과연 대립이 아닌 화합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묻는 선거라고 언급한 대목에 이르면 역시 자존심 고양인가? 낮과 밤이 다른 궤적으로 위선의 진수를 보여준 박 후보에게 과연 진실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립대 교수의 신분으로 공무원의 중립규정을 지키지 않고 특정인을 공개 지지 선언하는 안 교수나 박 후보나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어쨌든 박원순 후보 입장에서 보면 오매불망 학수고대 했던 안철수 협찬이 이루어진 셈인가? 믿는대로 이루어 진 것인가? 지옥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천국을 추구하는 성향도 감소된다고 했다. 누군가 말했다. '죽어봐야 지옥을 안다.' 누가 무엇을 믿건, 누구를 믿건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다. 막연히 정치적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종교가 내세의 천국을 추구한다면 정치는 차라리 현세에서 지옥을 없애는 편이 낮지 않을까?
10⋅26 그날에 박원순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휴거는 종말을 전제한다. 그들의 특징은 종말의 날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그것을 바꾸기 보다는 신념이 현실로 입증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마음이 굽으면 몸도 굽고,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는 법이다.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에서 일당독재 김일성 만세주의자를 선지자 대접 받도록 주문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국가관이 뚜렷하지 못하고 가치관이 편향적인 후보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순진한 국민들입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심장부 서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겠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仞斷崖)의 나락입니다' 어느 평론가의 절규다.
오을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