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을 시료로 이용, 납/우라늄의 비율로 지구의 나아를 알아냈다.후에 납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1970년 미국에서 청정대기법 제정, 1986년 유연(有鉛)휘발유 판매 금지를 이루어 낸 사람이다. 하지만 당시 유연휘발유를 생산하는 초거대기업 에틸사에 의해 환경운동을 시작한 후 많은 난점을 겪었고 압력을 받았다. 그 결과 백과사전 등에서 존재성이 희박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많은 수의 백과사전에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구의 나이를 알아내기 까지의 과정.
지구의 나이가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은 과거 지질학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였다. 과거 지질학 초기에는 성경에 따라 지구의 나이가 6000년 가량 되었다고 믿었었고 프랑스의 뷔퐁 백작은 뜨거운 공의 열 손실 정도로 7만 5천에서 16만 8천년이라고 주장했다. 새뮤얼 호턴은 23억년이라고 주장했지만 지적을 받자 재계산으로 1억 5천만년이라고 했다. 아서 홈스가 우라늄이 납으로 변하는 과정의 속도를 이용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 했지만 당시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매우 고전했고 그 결과 30억년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자들은 그것은 지구의 생성물질의 나이일 뿐, 지구의 나이가 아니라고 믿었다.
시카고 대학의 해리스브라운이 열로 인해 만들어진 화성암에 들어 있는 납 동위원소의 양을 알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 검사과정이 매우 긴 것을 깨닫자 1948년, 그 문제를 젊을 때의 클레어패터슨에게 박사학위 과제로 주어버렸다.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시료가 오염되면(시료 그 자체에 다른 물질이 묻으면 결과가 극도로 갈리게 된다. 공기중의 납 성분이 닿는 것은 그 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현상이다.)실험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로 깨끗한(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없는)공간이 필요했던 패터슨은 세계 최초의 청정 실험실을 만들게 되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받았던 문제를 1952년 칼덱으로 옮겨갈 때까지 7년간 청정 실험실에서 납/우라늄의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매달렸다.
지구의 나이를 알기 위해서 길거리에 널린 돌을 검사할 수는 없는 바, 그는 지구만큼 오래된 암석 시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구상에서 발견되기가 매우 어렵다.(판 구조론에 따르면 새로 생성된 지각에 밀려 지각 속으로 밀려들어가기 때문에 지표(특히 해저)에는 새로 생성된 지각이 대부분이다. (여담이지만 판 구조론도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충분히 오래된 시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패터슨은 운석을 시료로 사용하자는 매우 천재적이자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이론은 이랬다. 태양계의 수많은 운석(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나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에서 행성들이 만들어지고 남은 것들이라는 설이었다.(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운석시료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운석 구하기는 매우 힘든 것이었다. 거기다 그의 측정법은 위에서 말했듯이 시료가 오염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까다로운 것이었다. 위의 7년간의 연구기간은 시료를 분석하는 준비기간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는 1953년 일리노이의 아르곤 국립 연구소를 찾아가서 오래된 결정 속에 갇혀 있는 극미량의 우라늄과 납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최신형 질량 분석기를 사용하기 위한 허가를 받았다. 그 결과 그는 지구의 나이가 정확히 45억 5천만년(±7천만년)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이를 보고 맥그레인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변함 없는 숫자."라며 감탄했다. 실로 200년간의 투쟁의 종지부였다.
환경운동가로의 전환, 고난, 그 후의 세계.
그의 실험은 납의 영향을 받으면 안되는 매우 정교한 실험이었다. 당시 미국은 산업이 극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리고 납을 이용한 산업 또한 매우 발달해 있었다. 많은 제품들이 납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통조림 캔. 물탱크. 치약튜브. 살충제 등 세상 모든 제품에는 납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납은 산업제품으로 매우 효과가 높다.
지금은 모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문방구에서 파는 초등학교 과학세트에는 납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고 납 장난감은 넘쳤다. 납은 녹는점도 낫고 무르기 때문에 가공하기가 쉽다. 납에 독성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납은 바닥날 때까지 가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는 휘발류에 TEL(테트라에틸 납)을 첨가한 에틸사(社)의 유연휘발유였다.
이 유연휘발유는 엔진의 노킹현상(가솔린과 공기의 혼합가스는 실린더 속에서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미연소 혼합가스에 불꽃이 전해지며, 이때 미연소 혼합가스의 압력과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여 자연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노킹을 일으키면 내연기관의 출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또 기관의 과열, 배기밸브나 피스톤의 고장, 피스톤과 실린더가 녹아 붙는 등의 원인이 된다.)을 막아주었다. 1923년 2월 1일부터 판매된 유연휘발유는 경제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환경과 인간에는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 테트라에틸 납을 만들던 공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문제가 발생되었다. 공장 노동자가 마구 죽어나갔던 것이다. 많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듯이 납은 신경독성 물질이다. 인간이 만들어질 때 납이란 물질이 필요하지 않았는지 난 0.1ppm의 납도 인체에는 치명적이다.(물론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다만 눈꼽만치도 좋은 점은 없다.)
패터슨은 지난 40년간 납의 위험여부에 대한 연구를 후원한 곳이 납 첨가제 생산 업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엉터리 결과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패터슨은 대기 중에 상당한 양의 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납은 십게 사라지지 않으므로 당시에 공기 중으로 배출된 납은 아직도 있다. 그리고 그 중 90%는 자동차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테트라에틸 납이 판매되기 시작한 1923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야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알 수는 없었다. 그 때 패터슨은 얼음에서 정보를 얻어낼 생각을 한다.
그린란드와 같은 지역은 그 해 내린 눈에 의해 얼음이 층층이 쌓이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알맞은 얼음의 층을 조사하면 그 해의 납의 농도나 다른 결과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것이 현대 기후학 연구의 기초가 된 빙핵 연구의 시초였다. 패터슨은 1923년 이전에는 대기중 납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계속 증가해서 결국은 이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휘발유에 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평생의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납 산업계와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집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로서 매우 무모하고도 미친 짓이었다. 당시 에틸 사는 고위직에 많은 후원자를 가진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이었다.(이사중에는 대법원 판사였던 루이스 파월(!)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길버트 그로스베너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패터슨의 연구비가 취소되어 버림에 따라 연구자금 확보에 난점을 겪었다. 아메리칸 석유협회는 그와의 연구계약을 파기해 버렸고, 정부기관인 미국 공중보건청도 마찬가지였다.
납 산업계는 그가 재직중이던 대학의 이사들에게 그를 해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제이미 링컨 키트먼이 2000년에 '네이션'지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에틸의 경영자들은 칼덱에 석좌 교수직을 위한 기금을 주는 조건으로 패터슨을 해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연구위원회는 1971년 대기 중 납에 의한 중독 위험을 조사하기 위한 실무진에서 패터슨을 해임하기도 했다.(그는 그 분야에서 더할 나위 없는 전문가였다.)
그가 포기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납에 비틀거릴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포기안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결국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에는 미국에서 모든 유연 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었다.(유연 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자 MTBE-메틸t-뷰틸에터-라는 유기물질을 첨가한 무연 휘발유가 개발되었다.
덕분에 자동차에는 배기 가스에서 환경 오염 물질인 산화질소와 일산화탄소를 제거해주는 삼중촉매전환 장치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연 휘발유는 이 장치의 금속 촉매의 표면을 오염시킨다.)그러자 미국인 혈액의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납의 대부분은 대기중에서 사라지지 않았기에 지금 사람들은 한 세기 전 사람들보다 납의 농도가 625% 많다.
고로 법 제정 전에는 2500%라는 얘기가 된다.)그러나 아직도 채광이나 제련같은 법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곳에서 납이 끊임없이 배출되기에 매년 수십만 톤씩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맥그레인이 지적하기를 "대부분의 유럽국가들 보다 44년이나 늦게"실내 페인트에 납 사용을 금지한 것이 1993년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에틸사는 아직도 TEL을 생산하고 있다. 맥그레인에 따르면 2001년 까지도 유연휘발유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를 못 찾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생산되는 TEL은 아직 납 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국가들에게 팔리고 있다. 에틸사는 영국의 어소시에이티느 옥텔 사와 제휴해서 TEL 판매고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클레어 패터슨은 1995년에 사망했다. 그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우리는 많은 환경적인 이득을 본 셈이다. (미국이 하면 우리나라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질학자는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다. 패터슨도 예외가 아닌 듯 그도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명성을 얻지도 못했고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그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질학자였다.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지만 클레어 패터슨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의 조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지질학 교과서는 그의 이름을 누락하고 있고 얼마전 발간되었다고 하는 지구 연대 측정의 역사를 소개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철자인 Clair 를 Claire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고 2001년 초 권위있는 학술지 네이쳐 지에서는 그가 여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그의 이름이 여성같은 느낌이 드는건 동양 만이 아닌 듯 하다.) 그의 업적으로 1953년 지구의 나이를 알아냈고 지구의 대기는 상당수 구원받았다. 그의 업적은 지질학과 환경 역사 양 쪽에서 매우 큰 것이다. 그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길 바라는 바이다.
클레어 패터슨(clair patterson)에 관하여
지질학자. 환경운동가.
운석을 시료로 이용, 납/우라늄의 비율로 지구의 나아를 알아냈다.후에 납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1970년 미국에서 청정대기법 제정, 1986년 유연(有鉛)휘발유 판매 금지를
이루어 낸 사람이다.
하지만 당시 유연휘발유를 생산하는 초거대기업 에틸사에 의해
환경운동을 시작한 후 많은 난점을 겪었고 압력을 받았다.
그 결과 백과사전 등에서 존재성이 희박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많은 수의 백과사전에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구의 나이를 알아내기 까지의 과정.
지구의 나이가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은 과거 지질학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였다.
과거 지질학 초기에는 성경에 따라 지구의 나이가 6000년 가량 되었다고 믿었었고 프랑스의 뷔퐁 백작은 뜨거운 공의 열 손실 정도로 7만 5천에서 16만 8천년이라고 주장했다.
새뮤얼 호턴은 23억년이라고 주장했지만 지적을 받자 재계산으로 1억 5천만년이라고 했다. 아서 홈스가 우라늄이 납으로 변하는 과정의 속도를 이용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 했지만 당시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매우 고전했고 그 결과 30억년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자들은 그것은 지구의 생성물질의 나이일 뿐, 지구의 나이가 아니라고 믿었다.
시카고 대학의 해리스 브라운이 열로 인해 만들어진 화성암에 들어 있는 납 동위원소의 양을 알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 검사과정이 매우 긴 것을 깨닫자 1948년, 그 문제를 젊을 때의 클레어 패터슨에게 박사학위 과제로 주어버렸다.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시료가 오염되면(시료 그 자체에 다른 물질이 묻으면 결과가 극도로 갈리게 된다. 공기중의 납 성분이 닿는 것은 그 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현상이다.)실험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로 깨끗한(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없는)공간이 필요했던 패터슨은 세계 최초의 청정 실험실을 만들게 되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받았던 문제를 1952년 칼덱으로 옮겨갈 때까지 7년간 청정 실험실에서 납/우라늄의 비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매달렸다.
지구의 나이를 알기 위해서 길거리에 널린 돌을 검사할 수는 없는 바, 그는 지구만큼 오래된 암석 시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구상에서 발견되기가 매우 어렵다.(판 구조론에 따르면 새로 생성된 지각에 밀려 지각 속으로 밀려들어가기 때문에 지표(특히 해저)에는 새로 생성된 지각이 대부분이다. (여담이지만 판 구조론도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충분히 오래된 시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패터슨은 운석을 시료로 사용하자는 매우 천재적이자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이론은 이랬다. 태양계의 수많은 운석(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나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에서 행성들이 만들어지고 남은 것들이라는 설이었다.(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운석시료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운석 구하기는 매우 힘든 것이었다. 거기다 그의 측정법은 위에서 말했듯이 시료가 오염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까다로운 것이었다. 위의 7년간의 연구기간은 시료를 분석하는 준비기간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는 1953년 일리노이의 아르곤 국립 연구소를 찾아가서 오래된 결정 속에 갇혀 있는 극미량의 우라늄과 납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최신형 질량 분석기를 사용하기 위한 허가를 받았다. 그 결과 그는 지구의 나이가 정확히 45억 5천만년(±7천만년)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이를 보고 맥그레인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변함 없는 숫자."라며 감탄했다. 실로 200년간의 투쟁의 종지부였다.
환경운동가로의 전환, 고난, 그 후의 세계.
그의 실험은 납의 영향을 받으면 안되는 매우 정교한 실험이었다. 당시 미국은 산업이 극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리고 납을 이용한 산업 또한 매우 발달해 있었다. 많은 제품들이 납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통조림 캔. 물탱크. 치약튜브. 살충제 등 세상 모든 제품에는 납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납은 산업제품으로 매우 효과가 높다.
지금은 모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문방구에서 파는 초등학교 과학세트에는 납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고 납 장난감은 넘쳤다. 납은 녹는점도 낫고 무르기 때문에 가공하기가 쉽다. 납에 독성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납은 바닥날 때까지 가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는 휘발류에 TEL(테트라에틸 납)을 첨가한 에틸사(社)의 유연휘발유였다.
이 유연휘발유는 엔진의 노킹현상(가솔린과 공기의 혼합가스는 실린더 속에서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미연소 혼합가스에 불꽃이 전해지며, 이때 미연소 혼합가스의 압력과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여 자연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노킹을 일으키면 내연기관의 출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또 기관의 과열, 배기밸브나 피스톤의 고장, 피스톤과 실린더가 녹아 붙는 등의 원인이 된다.)을 막아주었다. 1923년 2월 1일부터 판매된 유연휘발유는 경제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환경과 인간에는 전혀 성공적이지 않았다. 테트라에틸 납을 만들던 공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문제가 발생되었다. 공장 노동자가 마구 죽어나갔던 것이다. 많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듯이 납은 신경독성 물질이다. 인간이 만들어질 때 납이란 물질이 필요하지 않았는지 난 0.1ppm의 납도 인체에는 치명적이다.(물론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다만 눈꼽만치도 좋은 점은 없다.)
패터슨은 지난 40년간 납의 위험여부에 대한 연구를 후원한 곳이 납 첨가제 생산 업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엉터리 결과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패터슨은 대기 중에 상당한 양의 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납은 십게 사라지지 않으므로 당시에 공기 중으로 배출된 납은 아직도 있다. 그리고 그 중 90%는 자동차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테트라에틸 납이 판매되기 시작한 1923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야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알 수는 없었다. 그 때 패터슨은 얼음에서 정보를 얻어낼 생각을 한다.
그린란드와 같은 지역은 그 해 내린 눈에 의해 얼음이 층층이 쌓이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알맞은 얼음의 층을 조사하면 그 해의 납의 농도나 다른 결과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것이 현대 기후학 연구의 기초가 된 빙핵 연구의 시초였다.
패터슨은 1923년 이전에는 대기중 납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계속 증가해서 결국은 이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휘발유에 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평생의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납 산업계와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집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로서 매우 무모하고도 미친 짓이었다. 당시 에틸 사는 고위직에 많은 후원자를 가진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이었다.(이사중에는 대법원 판사였던 루이스 파월(!)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길버트 그로스베너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패터슨의 연구비가 취소되어 버림에 따라 연구자금 확보에 난점을 겪었다. 아메리칸 석유협회는 그와의 연구계약을 파기해 버렸고, 정부기관인 미국 공중보건청도 마찬가지였다.
납 산업계는 그가 재직중이던 대학의 이사들에게 그를 해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제이미 링컨 키트먼이 2000년에 '네이션'지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에틸의 경영자들은 칼덱에 석좌 교수직을 위한 기금을 주는 조건으로 패터슨을 해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연구위원회는 1971년 대기 중 납에 의한 중독 위험을 조사하기 위한 실무진에서 패터슨을 해임하기도 했다.(그는 그 분야에서 더할 나위 없는 전문가였다.)
그가 포기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납에 비틀거릴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포기안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결국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에는 미국에서 모든 유연 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었다.(유연 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자 MTBE-메틸t-뷰틸에터-라는 유기물질을 첨가한 무연 휘발유가 개발되었다.
덕분에 자동차에는 배기 가스에서 환경 오염 물질인 산화질소와 일산화탄소를 제거해주는 삼중촉매전환 장치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연 휘발유는 이 장치의 금속 촉매의 표면을 오염시킨다.)그러자 미국인 혈액의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납의 대부분은 대기중에서 사라지지 않았기에 지금 사람들은 한 세기 전 사람들보다 납의 농도가 625% 많다.
고로 법 제정 전에는 2500%라는 얘기가 된다.)그러나 아직도 채광이나 제련같은 법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곳에서 납이 끊임없이 배출되기에 매년 수십만 톤씩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맥그레인이 지적하기를 "대부분의 유럽국가들 보다 44년이나 늦게"실내 페인트에 납 사용을 금지한 것이 1993년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에틸사는 아직도 TEL을 생산하고 있다. 맥그레인에 따르면 2001년 까지도 유연휘발유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를 못 찾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생산되는 TEL은 아직 납 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국가들에게 팔리고 있다. 에틸사는 영국의 어소시에이티느 옥텔 사와 제휴해서 TEL 판매고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클레어 패터슨은 1995년에 사망했다. 그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우리는 많은 환경적인 이득을 본 셈이다. (미국이 하면 우리나라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질학자는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다. 패터슨도 예외가 아닌 듯 그도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명성을 얻지도 못했고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그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질학자였다.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지만 클레어 패터슨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의 조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지질학 교과서는 그의 이름을 누락하고 있고 얼마전 발간되었다고 하는 지구 연대 측정의 역사를 소개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철자인 Clair 를 Claire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고 2001년 초 권위있는 학술지 네이쳐 지에서는 그가 여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그의 이름이 여성같은 느낌이 드는건 동양 만이 아닌 듯 하다.)
그의 업적으로 1953년 지구의 나이를 알아냈고 지구의 대기는 상당수 구원받았다. 그의 업적은 지질학과 환경 역사 양 쪽에서 매우 큰 것이다. 그의 이름 정도는 기억하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