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진시황의 흔적을 밟다-시안(화청지/병마용)

Lulu2011.10.26
조회459

 시안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공기가 달라져서(북방의 공기..?) 그런가 잠을 제대로 못 잔 느낌..

그래도 오늘은 또 무엇을 보게될까 하는 기대를 안고 길을 나섰다 

 

 

서안역.

굉장히 크다, 사람도 정말정말 많고.

오래된 역이라는 느낌이 딱 든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병마용박물관을 가야해서 왔는데,

그 전에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  서있는중.

다음 날 우리도 떠나야 했기에..

햇볕 좋은 날 개운

 

 

줄도 길다 ㅜㅜ

방학이라 표 구하기가 힘들다, 티엔슈이(天水)로 가는 기차표는 다행히 있었으나

남은 게 시간이 마뜩치 않았다. 뭐 할 수 없다 그걸루 갈 수 밖에.

 

기차표를 사들고 버스 탑승!

병마용박물관을 가기 전에 먼저 한 곳을 들렀다.

 

 

바로 화청지( 화칭츠 华清池 )

시안에서 3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무려 3천여 년 간 온천 휴양지로서 유명하다고.

 

644년에는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탕취안궁[汤泉宫]을 지었고

현종(玄宗)이 이를 증축한 뒤 화칭궁[华清宫]이라 개칭하였다.

이 곳이 관광지로 떠오른 이유는 다름아닌

현종과 양귀비의 연애장소로 대표되는 곳이기 때문.

함께 목욕을 했다는..부끄

물론 그냥 연애장소는 아니고 정치 중심지이기도 했고^^;

(본래 역대황제들의 별장인 행궁이었으나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무대가 된 후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언제고 어디서고 로맨스는 피어나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다사랑해

비록 두 사람의 사랑의 끝은 나라의 멸망으로 치달았을지라도.

 

 

요것이 양귀비 전라상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인 그녀,

실제로 저렇게 생겼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현재 미인상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삐질

당나라 때는 살집이 있는 것이 부유의 상징이고 곧 미의 상징이 되었다고.

 

 

현종과 양귀비의 일화가 벽에 쭉 장식되어있다

목욕탕이 참으로 크구나

 

실제로 두 사람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마치 소설 속에서나 읽은 것 같은, 실존했던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여기서 사랑을 키워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문득 묘하다황당

 

 

중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구룡탕 (九龍湯)

 

 

 

소담하게 피어있는 연꽃

언제봐도 고고한 자태행복

 

 

 

 

따오 나 케이 희경

미소

 

 

화청지를 둘러본 뒤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자

시안 관광, 중국 관광지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바로 병마용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고고씽

 

39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자기의 덕성이 3황(皇) 보다 높고 공로가 5제(帝) 보다 크므로

 3황과 5제를 묶어 황제(皇帝)라 부르기로 하고 시황제(始皇帝)라 지칭했다고 한다.

 

병마용은 그의 장례 때 사용되었던 테라코타.

책에서 영상으로만 보았던 그 모습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들어가며.

케이는 이미 가봤다고 우리끼리만 들감ㅎ

진시황병마용갱박물관

 

 

이 곳에서

간단한 영상을 본 뒤

 

 

규모가 제일 작은 3호갱부터 둘러봤다.

병마용은 현재 총 7호갱까지 발굴된 상태이고

가장 먼저 발굴한 1호갱의 규모가 가장 크다,

병마용이 발견된 갱은 1,2,3호갱이고 이렇게 3개의 갱이 개방되어있다

 

 3호갱 먼저 보고 나중에 큰 1호갱을 보라는 조언에따라 3호갱부터ㅎ

 

 

3호갱에는 전차 1대와 테라코타가 47개였던가? 한눈에 들어오는 규모였다

3호갱에는 비교적 계급이 높은 테라코타가 발견된다고 한다.

 

간단히 보고 2호갱으로 갔다

 

 

3호갱보다 일단 크고

요렇게 복원이 잘 된 테라코타를 자세히 볼 수 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무릎꿇은 테라코타.

사진찍기 정말 힘들다, 사람이 너무 많아 ㅠㅠ

 

 

 

 

 

모습들이 제각각이다,

한 두개도 아닌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자세도 얼굴도 다르게 만들었나 몰라.

그리고 본래는 채색이 되어있었단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빛을 잃은 것. 

 

 

 

인증샷?^^;

 

 

2호갱에서 빠져나온 뒤

두근두근

1호갱 보러 파이팅

 

 

뚜둥

엄청난 크기와 엄청나게 많은 용사들.

1호갱에는 6천여개의 테라코타가 잠들어있었다,

책에서 보던것과 같지만

또 같지않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백 번 들었어도 내 눈으로 보니 생생하다.

 

 

 

요즘 평균 키나 체구보다도 큰 병사들,

당시에 사람들이 정말 이 만했다는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병마용갱(兵馬俑坑)은

 1974년 봄, 우물을 파던 그 곳의 이(李) 씨라는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지방은 연중 강우량이 500mm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가뭄이 심한 곳이기 때문에

 집집마다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했다.

이 씨가 동네 앞 감나무 밭을 4m 정도 팠을 때

모양을 확실히 알 수 없는 도기 조각과 항아리 같은 모양의 깨진 유물이 나와

이를 관청에 신고함으로써 병마용의 발굴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这是发现秦俑的井地"

 '이 곳이 병마용을 발견한 우물 자리'라는.

 

발견한 농부는 이 곳 기념품점에서 일을 하신단다,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실까 ㅎㅎ

 

 

 

진나라가 무너진 다음 항우가 진나라의 모든 흔적을 없애는 과정에서

이 병마용도 부수고 불태웠다,

그래서 발견 당시 모두 머리가 없고 조각조각 부서진 채였다.

복원을 위해 여전히 노력중이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병마용도 많을 것이라 추측한다고.황당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지 100여년 뒤에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릉 내부는 왕궁도 같단다.

수은으로 만든 강이 흐르고 인어기름으로 켜진 불이 꺼지지 않으며

엄청난 양의 보석이 있다고..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그 어마어마한 유산에 자칫 손상이 있을까 엄두를 못내어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얼마전 로봇을 이용해 촬영한 결과로는 수은 성분이 발견되었다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거나, 13세 즉위 후 바로 시공에 들어가 70여만명의 노동력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진시황릉.

 

 

호기심을 일게 하는 숱한 이야기들로 발걸음을 잡지만

정작 발굴되거나 공개된 것이 거의 없다고 봐야된다,

그저 작은 산, 이라고.

시안에서의 일정이 짧은 우리는 병마용 본 걸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색색의 사리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박물관을 못 본것이 아쉽다.

 

 

돌아오는 버스.

내 디카는 셀카전용

 

 

케이와 작별할 시간.

오래 못 볼 줄 알고 항주에서 굉장히 아쉬운 인사를 했는데

한 달만에 시안에서 보게 된 케이.

이 날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못 보고 있다.

싱가폴에 언제 올거냐는 물음을 지금 몇 번 들었나 모르겠다,

안 가고 싶어서 안 가는게 아님을,

그는 모르는가...

슬픔

 

 

케이를 보내고

조금 아쉬운 밤,

던킨에서 ㅎㅎ

 

근데 케이가 방 카드를 갖고가버리셨다,

마지막 이벤트인가 ㅜㅜ

우리가 돈 물어줬다는ㅋㅋ

 

 

유스호스텔과 가까운

남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도시임을 보여주는 듯 불을 밝히고 있다.

 

실크로드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시안,

한 때 모든 길은 장안에서 뻗는다라고 하여

교역의 중심이었던 곳.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위엄이 지금은 비록 그 때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자부심만은 살아있는 듯하다.

 상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