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이원사상...프리메이슨 오걸트 영지주의 우주연합

글게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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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의 기독교 유입

 

 


교회 안에 들어와 형성된 신비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신비이기보다는
플라톤의 이원론에 기초한 상승 이론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비입니다.

신비주의의 뿌리가 세상 정신임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B.C. 5세기에서 4세기까지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플라톤의 철학 사상이 기독교에 끼친 위해성을 우리가 쉽게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플라톤 철학이 너무나 일찍 교회 안에 들어와 기독교화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해악을 미처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 해악에 물들었습니다.
그러면 이교적 사상이 널리 퍼져 있는 세상 정신의 일종인 플라톤 철학을 어떻게 그렇게 이른 시기에 기독교에서 수용할 수 있었을까요? 교회로 들어와 신비주의로 발전한 플라톤 철학은 구체적으로 이원론과 상승 사상입니다. 사실, 플라톤 이원론은 언뜻 보면 성경의 정신과 참 유사해 보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무장한 초기 영지주의자들이 1세기 성도들에게 접근해 왔을 때, 성도들은 쉽게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비교적 잘 대응하다가, 사도들이 죽고 난 뒤인 A.D. 200년대 이원론을 더 체계화하여 성경적인 사상과 외면상 유사한 형태를 띠고 접근하자,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소위 신플라톤주의자라고 하는 플로티누스입니다. 플포티누스는 A.D. 200년대, 플라톤의 이원론을 교회에서 수용할 만하게 다듬었고, 정교해진 이 사상은 교회 안에서 신비주의로 발전합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두 세계로 나뉘는데, 바로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입니다. 그런데 함께 존재하는 이 두 세계 중 정신세계가 물질세계보다 더 우월합니다. 정신세계에는 영혼 또는 신성, 신적인 것이 다 포함됩니다. 물질세계는 물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로, 인간으로 말하면 육체, 감각, 이성 등이 물질세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마땅히 두 개의 세계는 독립적입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인간 안에는 이 두 세계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 안에 영혼도 있고, 육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혼이라는 정신세계와 육체, 감각, 이성이라는 물질세계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씨름합니다. 정신세계가 열등한 물질세계에서 벗어나려고 갈구하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영혼은 자신의 근원인 영원한 존재와 재결합하기를 동경하고, 신성과 영원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성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 때문에, 금욕주의의 태도들도 나타납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 따르면, 영혼만이 참된 실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힘을 소유하기 때문에 영혼은 끊임없이 감각을 통한 세계에서 더 높은 실재의 세계로 상승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 상승 과정에서 물질세계에 속한 것들, 육체의 정욕 같은 것들을 경시합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의 기초이고 핵심 내용입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플라톤 사상을 근거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을 받아들여, 이에 따른 상승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는 곧 신비주의로 발전했습니다.
신비주의는 이후 낭만주의나 초탈주의, 심리학, 실존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계속 옷을 갈아입고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우리는 더욱 발전하고 교묘해진 플라톤 철학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신비주의를 모두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수많은 신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신비 자체이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행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구원의 길을 여시는 비밀스런 내용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행하시는 수많은 일들,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 등 수많은 신비들이 성경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 형성된 신비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신비이기보다는 플라톤의 이원론에 기초한 상승 이론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비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지 않는 신비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왜곡하는 신비주의를 배교의 한 단면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의 기독교 유입경로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의 특이한 점은, 우리의 속사람을 하나님의 씨앗으로 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앗이 자라서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이 얼마나 심각한 진리 왜곡현상입니까?

본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이 기독교로 유입된 경로를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양상만 바뀌었을 뿐이지, 지금의 우리 역시 이때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상승 사상은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과 초기 개종자들의 자발적인 수용으로 기독교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는 상승사상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와 외면적으로 약간의 유사점이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성경에서 세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들이 그러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세상’을 이원론에서 말하는 물질세계로 보는 오류가 생겨났습니다. 성경의 의미는 세상적 가치관과 세상적 생활 방식을 부정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아예 세상 자체를 부정하라는 뜻으로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약 150년쯤,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사도들의 시대가 간 후, 저스틴 마터라는 사람이 본격적으로 플라톤 사상을 기독교로 끌어들였습니다. 저스틴 마터는 회심 이전에 플라톤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후 3세기 무렵, 클레멘트, 오리겐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을 플라톤 사상의 체계로 해석했습니다. 이로써 플라톤 사상에 더욱 짙게 물들었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골로새서 3장 5절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사막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앉아 있거나 또 동굴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서 일종의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 위한 금욕적인 시도를 합니다. ‘사막의 교부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여기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어서 앞서 살펴본 플로티누스로 말미암아 플라톤 사상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발전해서, 이른바 신플라톤주의가 일어납니다. 이후 신비주의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여 신비주의의 기본틀을 만듭니다. 플라톤 철학에 의한 기독교 진리 왜곡은 이때부터 매우 심화되는데, 플로티누스는 관상의 중요성과 관상 생활 속에서 신과 인간의 영혼의 합일을 강조하며, ‘감각과 욕망과 모든 허망한 일을 버릴 때 신지식에 이른다.’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플로티누스는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이시다.”라고 했는데, 바로 여기서 신비주의자들의 침묵 기도, 관상 기도가 발원합니다.
아레오바고의 디오니시우스는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기독교 안으로 끌어 들여서 체계화했습니다. 500년대에 디오니시우스가 세운 신비주의의 틀은 이후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1500년대까지 기독교 안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중세 수도원주의와 여러 신비주의 종파 형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를 수용한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며, 플로티누스의 주장을 따라 하나님에 대한 언어의 한계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인 언어를 경시하는 성향을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앙 행위와 기도에 적용한 것입니다. 그 결과, 문자적인 기도나 말로 하는 기도가 수준 낮은 기도로 여겨졌고, 그 대신 침묵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침묵 기도나 관상 기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우리 영혼이 교합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술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게 접근하려면 언어를 포함해서 하나님보다 열등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의 사상적 배후에는, 끝없는 부정을 통해 저급한 단계의 존재에서 지고의 존재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상, 즉 상승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식 가능한 것들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감으로써 끝없는 부정을 하는 것은, 동양사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특별히 불교와 힌두교의 사상과 유사점이 많은데, 신비주의자들은 이 과정을 ‘무지의 길’ 혹은 ‘앎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곧 감각과 이성을 제거하고 불순한 존재뿐만 아니라 순수한 존재까지 포기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상은 오늘날 복음주의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관상 기도나 워치만 니 같은 사람의 자아 파쇄론에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디오니시우스 이후, 13세기 독일의 유명한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와 그의 제자 타울러가 신비주의 체계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특히 에크하르트가 신비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의 특이한 점은, 플라톤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씨앗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하나님의 씨앗으로 보고, 마치 배씨가 자라서 배나무가 되듯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앗이 자라서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게크하르트는 우리 영혼 속에서 신의 탄생을 말하기까지 이릅니다.
플라톤 철학을 수용한 기독교가 신비주의의 옷을 입고 왜곡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진리에서 빗나가게 됩니다. 이 얼마나 심각한 진리 왜곡현상입니까?
요컨대, 신비주의는 헬라 철학을 수용해서, 하나님과 하나였던 영혼이 물질적인 육체를 넘어 영혼의 근원인 하나님과 결국 합일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박순용
•총신대신대원 졸 •영국 에든버러 프리 처치 칼리지와 웨일스 복음주의 신학대학에서 영적 대각성과 청교도 연구 •전, 호주 퍼스 한인장로교회 담임 •현, 하늘영광교회 담임목사 •저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목마름」「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예수를 믿는다는 것은」「기독교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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