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톡에 올리면 많은 분들이 보게 되실지 모르겠네요.. 카테고리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사는얘기로 했습니다.
글이 깁니다.. 정말 진지하게 도움을 바랍니다..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전체에.. 반말투의 단어가 나와도 이해해주세요..쓰다보니 고백하듯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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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얘기도, 낚는 얘기도 아닙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여기 한 가정이 있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온 아버지를 맞는 딸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귀여운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우리 작은 딸이야?, 부비적대는 딸아이를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아버지. 용돈을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용돈까지 쥐어주며 뽀뽀까지 해줍니다. 행복한 아이는, 방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안겨 듬뿍 사랑을 받는 한 아이를 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합니다. 용돈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스러운 손길로 안겨주는 아버지의 손길을 10년이 훌쩍 넘게 느껴보지 못해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부비적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뒤로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하게, 그리고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봅니다.
.. 저는 진심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합니다. 모든 가정에는 행복만이 깃들 수 없고,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집 가정들에게 관심을 둘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 가지 길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차저차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도와달라고만 외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로만 쓰면 어느 누구도 읽어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네이트판을 늘 즐겨보는 한 사람으로서.. 네이트판을 이용해 저의 이야기를 쓰려 하고 도움을 요청하려 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곳 보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쉽지 않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게요.
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아직 생일도 지나지 않아서 만 18살인 여자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많은 얘기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게 되네요..
저희 집은 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네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절대 기억나는 한에서는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지 않았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기억하는 불행의 시작을 쓰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을 가까이 보고, 느끼고 살았습니다. 초등학생이 채 되기 전쯤에도 아주 자세하진 않지만 이불 밑에 깔려서 아버지란 자에게 밟혀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맞고 살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울거나, 맘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늘 그렇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아버지를 남자라고 하겠습니다. 불효녀에, 폐륜아라고 해도 저는 절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초등학교 때 대충으로만 알았던 남자의 도박 사실에 알았을 때에도, 도박하러 나가는 남자는 신발장 위에 걸려있던 배드민턴 채로 저의 명치를 퍽퍽 쳐가면서 니 애미에게 말하면 죽여버릴 줄 알아, 하는 말을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의 기억력의 문제는, 가정폭력과 직접적인 저에 대한 폭력, 그리고 전반적인 분위기나 상황에서 유발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저 기억력이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겠지만요. 저의 추측일 뿐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술을 몰랐던 분입니다. 연애 때였는지 동거 때였는지 (남자 마음대로 어머니가 자취하던 곳에 무작정 짐 풀었답니다.) 그 때 처음 소주라는 단어를 들어본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남자와 늘 싸우는 이유중의 하나가 술이고, 태클 걸며 꼬투리 잡히는 것도 술이고, 뺏으려고 하면 화를 내고 날카로워 지는.. 하루하루를 알코올에 의지하면서 사는 분입니다. 꼭 손이 떨리고 환청이 들리고 뭐 그래야 알코홀릭이라던가요, 저는 그렇지 않은 중독자도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내 스스로 기억하기 싫어서 지워버린 기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확한 것은 남자 때문에 어머니의 정신 상태와 인격마저도 모두 난도질 되었고, 저에 대한 남자의 폭력은 비교적 일찍 끝이 났지만, 그 뒤로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남자에게 욕을 듣고 폭력을 당하면 모두 저에게 풀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도 남자는 도박에 미쳤었고, 매일 돈을 요구했고, 주지 않으면 벨트로 몸을 강박하여 구두굽으로 얼굴을 찍고, 때리고, 닥치는 대로 집어서 때렸습니다, 멍이 들어서 일도 못 나갈 상태였지만 도박에 모든 돈을 쏟아버리는 남자 때문에 그 몸으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저를 출산했을 때에도, 도박장에 있다가 뒤늦게 왔습니다. 그리고 절개수술을 한 어머니는 퇴원수속도 밟지 못하고 실밥이 터지는대도 일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 시간에도 남자는 도박장인지 어딘지를 가 있었지만, 추측하기로는 도박장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몇 살 때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집은 의류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직원들의 월급도 줘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입을 모두 도박장에 써버리는 탓에 금이란 금은 모두 갖다 팔아서(할머니께서 주신 예물도 모두 남자가 훔쳐 갔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줬고, 공장은 망했습니다. 그 뒤로도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어서도 저의 기억은 모두 싸움, 폭력 뿐이었습니다. 늘 울었으며 그런 저를 좋아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 납니다. 속상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어린 저에게 모두 풀었던 어머니의 모습도..
주식으로 몇천만원씩 몇 번에 날리고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악착같이 세상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겨우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어머니는 싸우는 모습은 숨기지 않아도 생활고는 굳이 말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그 때의 자세한 정황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 쓰고 남아서, 겨우겨우 어머니께서 모은 돈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집이 재개발이 돼야 하며 그게 언젠지는 몰라도 임대아파트가 될지, 이주비 얼마 받고 다시 전셋집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임대아파트가 좁다는 남자의 의견을 겨우 설득해서 다시 임대아파트로 재신청 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 전셋집은 겨우 6000만원이고, 모은 돈도 아버지 때문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돈을 가져가는 남자 때문에. 저희 집 문은 모두 잠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닫히지도 않아서 문과 문틈 사이에 빌어먹을 경륜장 경마장 잡진지 뭔지를 껴놓습니다.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장에서, 경마장, 이제는 경륜장까지 하네요. 이제 뭐가 더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울때마다 칼로 찍어서 문이 다 갈라지고 소름돋게 찍힌, 볼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칼들이 찍힌 문들을 겨우 부여잡고 자야 합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은 너덜너덜해서 문틈에 종이를 껴도 닫히지도 않습니다. 매일 24시간 집에 붙어서 먹고 놀기만 하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다 듣고 살아야 합니다. 닫는다고 해서 안들리는 것도 아니지만..
돈을 주지 않으면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밤새 문을 팍 열어재끼면서 누워있는 어머니를 치고 때리고, 언젠가는 기절을 시킨적도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취한건지 기억은 못하시고.. 옛날에만 폭력을 가한 줄 알았더니 여전히 때리더군요, 주먹으로 여자의 얼굴을 힘껏 내리치고 발로 차고 밀고 뺨을 때리고.. 그냥 몸 전체를 가격합니다. 겨우 제가 뜯어 말리려고 막아서고 욕을 하면서 저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비틉니다. 등산부터 배드민턴, 이것저것 몸을 키워왔고 40대 초 까지만 해도 배에 왕(王)자가 있었던, 그래도 과거에는 의류공장에서 거친 일들만 해온 성인 남자의 힘을 제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대신 제가 죽더라도 절대 그렇게 못 하니까, 있는 힘을 다 해서 막고 깨물고 몸부림 쳤습니다. 155의 키에 50정도 되는 왜소한 저지만, 있는 힘을 다해서 막고 때리고 밀쳤습니다. 그러다 제가 맞아도 저는 아프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희 친가쪽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안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정신병이 시작돼서 큰아버지, 둘째아버지 셋째 아버지.. 모두 폭력이 심하고, (자식들도 기피할 정도입니다.) 다들 도박이나 의처증이 심해서 이혼을 당한 분도 계십니다. 고모들은 그럭저럭 자세힌 모르겠지만 막내 아들이자 총 막내인 저희 아버지도.. 이쯤 되면 유전자를 그대로 고스란히 되물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고로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는 정신병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을 많이 불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출소이며 제가 아주 어렸을때에는, 경찰들이 오면 베란다에 남자를 숨기고 집에 없다고 거짓말하던 어머니가 생각합니다. 벌벌 떨면서 베란다에 몸을 사리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데려갈 생각을 하니 또 덜컥 겁이 나서 거짓말을 하는 어머니.
그 뒤로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세네번 정도 부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쪽팔리고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저 조차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모두 부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용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내 앞에서 뺨을 가격하는 남자를 보아도, 왜이러세요, 하며 적당히 말리고 적당히 훈계하고 적당히 가정폭력으로 취급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찰들. 그냥 대놓고, 아무리 이래도 가정폭력으로 밖에는 안돼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경찰 두 명이 어김없이 그 날도 밖으로 남자를 데려가 적당히 훈계를 했고, 그 중간에 경찰 한 분이 저희 화장실을 쓰더군요. 그 다음에 남자가 들어와서, 너희들이 경찰에 연락한다고 걔들이 뭐 해줄 줄 아냐, 어디 한 번 계속 해봐.. 이런 말들과 함께 어머니와 나에게 계속 아까와 다름없는 위협적인 욕을 하고, 경찰을 비하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화장실에서 경찰이 나왔고, 나는 분명 그가 남자의 말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그대로 갔습니다. 가버렸습니다. 순간 남자도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찰에 대해서 다시 살인자같은 웃음을 보였습니다. 나는.. 그 뒤로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 사는 같은 반아이에게 쟤네 집 매일 싸운다, 식으로 늘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했기도 했구요.
그 뒤로 또 한번, 이번에는 형사계까지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내내 싸우고(이 동네 시장, 옆 집, 모든 사람들은 우리 가족, 특히 부모님을 잘 알죠..) 칼까지 들고 죽이네 마네, 어머니가 갑자기 달려가서 주방으로 가면 움찔하며 몸을 막아가던 그 밤에, 나 역시 그들을 말리고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울었습니다. 이전에도 유리를 깨서 어머니 발바닥에 온통 피가 나는데도, 자신만은 화장실에서 슬리퍼를 가져오는 이기적인 행동. 창문 열고 온 동네에 욕을 하고 죽여봐, 죽여봐를 외치고..
나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온 몸으로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그러한 밤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달랐습니다. 나의 기억력이 이럴 때에 아주 원망스럽지만.. 가끔 이런 살의적인 기운이 들고 슬픈 날에는 핸드폰에 메모를 할 때가 있었고, 이 날도 역시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날은, 늘 내가 듣던 ㅅ발년, ㅅ팔년, ㄱ같은 년, ㅈ같은 년이 아닌, 패륜아, 호로ㅅ끼, 부모도 없는 말종.. 갖가지 욕을 다 들어서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찜질방으로 잠시 피해있던 사이에, 진정이 잠시 된 그 상황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큰 짐가방 하나와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걸 편지라고 여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네요. 대략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의 어머니도 네가 나가길 원한다. 이 집을 나가서 다시 들어오지 말고, 우리의 부녀지간은 슬프지만 여기서 끝이다. 자식과 부모의 연을 끊고 살아가자. 다시는 집에 오지 말아라 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모두 믿고, 어머니에게도 슬펐습니다. 모두 내가 잘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인터넷으로 숙박이 되는 일들을 알아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왔고 자초지종을 물어 모두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도 제가 나가길 원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고, 저를 내쫓은 다음, 어머니마저 내쫓으려던 남자의 거짓말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화가 났고 그게 다시 난장판, 싸움으로 벌어졌습니다.
그 날의 모든 일들을 쓰기엔 부족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파출소에서 사람이 왔고 어머니는 저 사람을 접근금지 시켜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나는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리 눈만이 아니었는지 거칠게 나오고 욕을 해대는 아버지를 2명이서 제압하려 했지만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 쳐댔고 한 명이 더 투입돼 총 3명이 겨우 제압해서야 수갑을 채웠습니다. 나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견디기 힘들었고 혼란스러웠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이 지경까지 온 것도 내 책임이고, 내가 마무리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경찰에 그 남자를 태웠고, 경찰은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신고하실겁니까. 어머니는 또 다시 예전처럼, 베란다에 남자를 숨겼던 그 때처럼 다시 안절부절했고, 저는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이렇게 하면 벌금도 결국 당신네들 집으로 들어가는 건데 괜찮냐, 이런 말들을 했고 돈 걱정을 하는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봐주세요..
나는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혐오하고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이대로 다시 풀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집에와서 우리를 어떻게 괴롭힐지,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단호하게 같이 경찰차에 탔고, 그렇게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늘 가던 파출소가 아닌 경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차를 탔으며, 경찰서에 가봤습니다.
가는 내내 남자는 실성한 미친놈처럼 이 수갑좀 빼주세요, 안됩니다, 그럼 느슨하게라도 해주세요, 아 거 참 조용히 좀 하세요 되게 시끄럽네, 내가 아파서 그래요 말 잘 들을 테니까 조금만 풀어주세요, 그럼 조금만 풀어줄 테니까 조용히 해요 가만 있어봐요..
나는 무표정이었습니다. 동시에, 저 남자가 인간인지 악마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갑이 느슨해진 순간부터, 남자는 떠들었습니다. 아니, 지껄였다고 해야하나요..
호루라기야, 저거는.. 지 애비를 신고해서 수갑을 채우고. 패륜아 새끼..
더 이상 적기에는 제가 싫어지네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에, 그러나 혐오감이 더 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늘어놓다가 어머니를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이것 역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한에서는,
형사님들, 제가 저 여편네(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랑 한 이불에서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난 지가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술 퍼마시고, 자식새끼 물건 다루듯이하며 때리고, 잠자리도 거부하고, 내가 좀 하자고 하면 해야지, 남편이 하자고 하면 해야지..
그런 얘기를.. 하다가 섹ㅅ라는 단어가 나오는 지경에 나왔고, 경찰들은 제 눈치를 보며 이 양반이 조용히 좀 하시라니까!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고, 나는 진심으로 살의를 느꼈습니다, 어떠한 말도 변명도 필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살의라는 단어도 아까울정도로 그저 죽이고 싶었습니다.
파출소에서도 내가 무슨 일을 당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썼었고, 경찰서에서도 말 했습니다. 그러나 형사들 눈에는 그저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볼 뿐이었습니다. 적당히 완료하고 보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가해보였지만 우리에게 관심은 없었고, 남자는 저쪽에서 자숙하는 시간을 가진답시고 술에 취해 자고 있었으며, 대충 얘기를 끝낸 저를 형사는 먼저 보내려고 했습니다. 가면서 아버지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의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속으로 외치며 한심하게 잠이나 자고 있는 인간을 보고 나왔습니다. 눈물이 갑자기 흘러서 그치지도 않았고 나는 혼자였으며,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온 연락은 모두 어머니였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늘 취해 있었지만 그 날도 역시, 소리를 질러대며 내게 욕을 해댔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거기까지 데려가, 너 미친년이냐, 니가 아빠말대로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어떻게 지 애비를 신고해, 싸가지 없는 년 돌아오지마, 니 아빠 찾아 데려와..
등등.. 벌금에 대한 걱정부터 이것저것.. 그냥 나를 무작정 욕했습니다. 제 정신이었든 아니었든, 어쨌든 진심이었던 거고 나는 슬펐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랬는데, 더 이상 우리가 힘들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었고, 이게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도 몰랐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벌금이었겠지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끊임없이 욕을 먹었습니다. 나가 죽어라 나가서 니 애비 데려와라..
그 술취한 와중에도 또 술을 마시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미친 듯이 맞고 살았습니다. 제가 잘못을 했건, 안 했건. 하루는 칼빵이라고, 한창 초등학교 고학년 때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이 팔목 윗 부분 쯤에 칼로 아주 깊게는 아니지만 욕이나 이름 따위들을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그 아이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칼빵을 했습니다. 깊지 않은 상처였고 약간은 호기심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지워져서 뭐라고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 놓고도 걸리면 맞아 죽을까봐, 싸인펜으로 덧칠했지만 결국 남자가 알게되고 바로 어머니가 알게돼서 그날은 죽도록 맞았습니다.
나는 나를 걱정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깨를 잡고 닥치는 대로 발로 차고 머리를 박고 때리는 어머니의 옆에서 남자는, 그냥 아주 죽여버려, 라는 말을 하며 담배를 뻑뻑 피워댔습니다. 나무 빗자루, 옷걸이, 잡히는 대로 죽도록 맞고 발로 까이고 쓰러지고 다시 일으켜 세워지며 맞았습니다.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이유가 정확히 뭔지 헷갈릴정도로.
차라리 나는 내가 잘못한 만큼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길 바랐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받는 모든 스트레스를 술을 마시며 나에게 화내고 욕하고 때리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오히려 더 감정만 악화되었지만요.
너무 많아서 전부 기억은 안 나지만, 상처를 보면 기억나는 것은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주 사소하고 말도 안되는, 그러니까 남들이 보면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이유로 내게 욕하고 때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두꺼운 참고서 몇 권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고개가 꺾이는 고통도 당했고, 가만히 앉아서 어머니의 주정을 들어주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예를 하나 들자면 오른손을 거의 쓰는 제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미숙해서 흘리는 것도 아닌데) 숟가락으로 때리다가, 그것을 막고 반항하는 저에게 젓가락으로 허벅지를 찍은 적도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안 나오는 저에게 계속 욕과 폭력을 해댔고, 기억을 못합니다. 다음 날 쯤 이었나, 상처에 대해서 물어 보길래 사실대로 말하면 자책감에 슬퍼하실까 둘러댔지만 결국 말하게 되었고, 술 마시지 말아야지, 끊어야지 했지만 한 번도, 끊으신 적이 없습니다. 늘 머리를 맞고 싸대기에 머리 잡혀서 다 뽑히고 온 몸이 나무빗자루로 맞아서 퉁퉁 붓고, 멍이 들어도 나는 두통에 절은 머리를 싸매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가야 했고, 밤새 울어서 부어버린 얼굴은 그저 라면 먹고 잔 얼굴로 위장됐습니다.
너 왜 그래, 하고 물으면 늘 변명하느라 바빴고 그런 내가 너무 서러워서 하루 종일 고개도 못 들고, 1교시부터 하교 할 때까지 책 속에 얼굴을 묻기도 여러 날이었습니다.
밤새 울고 소리 지르고 정신 없이 학교를 가면 너무 졸린데도 머리가 아파서 자지도 못하고 엎드려만 있었습니다. 어쩌면, 순수하게 나의 지능이 약한 것 외에도 이런 일들로 인해서 나의 기억력도 나빠졌으며, 학업에도 열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변명이지만, 수능때 마저도 집에선 난리가 났고, 나는 다시 잤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으니까요.
저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도 없고 옷도 없어서 왕따도 당해봤고, 그게 저에겐 늘 서러움과 한스러움이었습니다.
초기엔 학교 끝나고 고3때까지 하교 후에 바로 달려가서 고기 집과 술집들을 전전하면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그래봐야 한 달에 3,40만원이었지만 차라리 집에서 그런 고통을 겪는 것보다, 변태 같은 사장이, 악덕 같은 참모가, 술주정하고 난리피우는 손님들이 나았습니다. 늘 발이 붓고 힘들고 때려치고 싶어도 집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이 너무 슬퍼서 울기만 했습니다. 누구에게 힘들다 말해도 그들은 내 고통을 짐작만 할 뿐, 공감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나는 늘 혼자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애인이 생겨도, 그 이상은 도와주지 못할, 감히 위로도 못할 고통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애인은, 분명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줬던 그 애인마저도, 넌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무언가에 빠져있는 것 같아, 내가 도와 줄 수가 없는 거 같아. 라고 했습니다.
나는 늘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나의 사소한 잘못에서 시작 된 난리였든, 부모끼리의 싸움에서 시작 된 난리였든지 간에, 무조건 나에게만 화살이 꽂히고 날 욕하고, 이렇게 니 애비가 나한테 욕하고 때리면 니가 나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살의의 발길을 나에게 돌리며 욕을 퍼부으며 작정하며 나를 정신없게 때리면.. 말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로 하고 집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내가 많이 참고 살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유없이 아주 어릴 때부터 맞아도 나는 가만있었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싸워서 그 상황이 뭔진 잘 몰라도 무서워서 울어도 가만히 맞고만 있었고 돌아가는 세탁기 옆에서 뒤를 틀어막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단 무조건 참았습니다. 내가 옳았고 내가 바른 얘기를 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날 욕하고 때려도 무조건 참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욕먹고 맞아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말리기도 힘들 때에는 왜 나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켜, 왜 나를 낳았어 같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삼류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도 했습니다. 죽여 봐, 엄마 죽이고 나도 죽여 봐, 때려도 돼 안 아프니까 때리라고 매일 그 돈으로 어딜 가서 다 쏟아 붓고 또 이렇게 와서 지랄인데, 그만해. 돈 주니까 바로 사리는 거 봐. 더러워. 추잡해. 미친놈. 같은 말들을 해왔습니다. 절대로 내가 잘 한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말했고, 그것이 절대로 해선 안될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았습니다.
남자에게 받는 스트레스, 같은 스트레스를 받은 어머니에게 또 다시 받는 스트레스, 이 분위기, 상황.. 나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갔고, 어머니는 내 이름을 표독하게 외치며 욕을 하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신발도 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추운 겨울이면 겨울, 여름이면 여름 마다하지 않고 나가며 울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심장을 움켜쥐면서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자해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것은 후에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로 인해서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도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 위해 참은 것입니다. 또한 남자나 어머니로 인해서 이런 피해를 입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머릿속으로, 이 가족이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서 내 기억력이 나빠지고 나의 학창시절을 망치고, 나의 모든 정신을 난도질 한 것에 대해서 피해보상 받고 싶어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리고, 철이 들지 않았지만 그 때처럼 그런 생각은 조금 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슬픔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욕하고 때리는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욕하고 나를 자책했지만, 바깥에서 일주일이면 일주일, 몇날며칠을 꼬박 밤을 새고 돌아와서, 나를 다시 가엾게 맞아주는 어머니를 보다가도, 다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때리고 욕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 나는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남자와 싸우면서 다시 나를 끌어들이고, 술을 마시면 방에 있는 나를 불렀다 보냈다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반복하고 옆에서는 애새끼를 물건 다루듯이 하지마라, 니 맘대로 하지 마라 하는 남자를 보면서.. 그리고 난리 중에 더 이상 욕짓거리들과 행패를 참지 못해서 주먹으로 문과 벽을 치는 나를 어머니마저도 싸움을 멈추고 저거 완전 또라이네, 미친 거 아니야? 정신병자가 여기 또 있네, 저거 완전 또라이네 또라이..하고 욕을 할 때에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참는 것은 참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늘 집안에 불만밖에 없고 반항적인 반항아로 비춰지는 나를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4시간 술에 절어있고, 단 1초도 온화하고 평화가 깃들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 고쳐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나약해진 때를 이용해서 공격하는 남자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울다 잠도 못자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졸업 한 뒤에) 두통이 따르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아르바이트를 가고, 끝나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피시방에 가있고, 살려달라는 어머니의 전화가 오면 일하는 중이라고 회피해버리는 나 자신도 너무 싫습니다.. 가서 도와 줄 수도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꼭 인문계나 특고를 가라는 담임의 말도 거절해가면서 상고를 고집했지만 결국 인문계로 와버렸고, 늘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으로 기억되는 저는, 몇 몇 수업이나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별 거 아닌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고1, 고2 모두 야자 전 시간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도 그 교육비와 교재비가 만만찮아 항상 잠만 자고 어차피 공부는 안 할 거라는 변명만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 모두 공부에 집중하고 대학 갈 걱정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늘 잠만 자고, 고1,2 담임 모두 같았는데 그 선생님도 제게 대학교를 꼭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해야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어차피 가지 않을 테니 돈이라도 버는 심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실음과 쪽으로 가라는 말에도 거절했고 그저 공연 때문에 방과 후 수업은 듣지 못한다고만 했습니다. 그 때는 밴드활동 자체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고, 나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거절해왔고, 늘 담임과는 틀어졌습니다. 그렇게 서로 싫어하던 고3 담임과도 대학 얘기가 나왔을 때, 역시나 저는 밴드나 하면서 살 거라고, 대학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게 싫어했던 담임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중에 담임이 제게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아 나는.. 네 눈을 보면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보인다고.
저는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 가려서 가려지는 눈물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슬픔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남들처럼 대학 가고 싶고, 열심히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 포기하는 이유마저도 거짓말하게 되는 환경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언어 쪽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늘 숨겼던 노래도 장기자랑시간에 어쩌다보니 하게 됐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담임 샘들 모두 실음과를 가라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와 울게 됐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인생을 포기해도 어머니 인생은 제대로 살아야 하니까요. 나중에라도 내가 열심히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머니는 아직도 가끔 대학얘기를 하면 미안하다고만 하십니다. 저는 늘 괜찮다고 해요. 제가 머리가 아주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오늘도 나는 바깥에 있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밖에서 만났습니다. 여태껏 농 안에 잘 숨겨두었던 집 문서와 어머니가 힘겹게 모든 돈이 적혀있는 통장과 카드를 남자가 알게 됐고, 오늘 30만원을 주지 않으면 집문서도 주지 않고 사채를 쓰겠다는 남자를 겨우 진정시키고 돈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해서 겨우 가져온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치킨 집에 들어가서 만사천원도 비싸다고 하는, 그러면서도 또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시며 말을 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가면 비싸서 추운 겨울에 옷 하나도 제대로 못 사입고, 늘 싸구려만 사오면서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 엄마. 어디만 가면 다 돈이고 비싸다고만 하는 우리 엄마. 내가 사주고 싶어도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는 엄마..
그러면서도 술은 늘 붙잡고 살아야 단 1초라도 안정이 되는 엄마..
여태껏 저 모르게 남자 빚을 갚아 준 것도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여태 남자가 허투루 날려버린 돈만 아니었으면 벌써 집을 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 만큼 어머니께서 몸 사리지 않고 희생해왔으니까요.
이혼하지 않는 이상은, 사채를 썼던 경험이 있는 남자가 다시 사채를 쓴다면 그건 도로 어머니 몫이 되겠지요. 결국은 30만원을 주고 싶지 않아도, 이미 집문서와 한 푼도 없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난 상황에서는 줘야 합니다. 우선은 제가 갖고 있기로 했어요.
그렇게 치킨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갔지만, (원래 같으면 무서워서 여관에서 자자고 했을 텐데 오늘 하루 눈 뜨자마자 여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돈도 아까워하는 어머니는 30만원을 주기로 했으니 별 일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간 겁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열쇠로 열었지만, 평소에는 쓰지 않는 잠금장치는 안에서 잠궜고, 열쇠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계속 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누구냐고 소리를 질러서 저는 딸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좋게 말하며 나 혼자 온 것처럼 해야 열어줄 것 같았고, 살짝 열더니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그 조그만 틈으로 빨리 안 들어와, 하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또 이웃집이 다 알겠구나, 그러나 그건 이미 예전 일입니다. 이제는 신경 쓸 겨를 도 없이.. 정말 죄송하네요.
내가 왜 이러냐며 문을 잡아당기면서 어머니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고 저도 들어갔는데 들어오라면 빨리 들어와야 할 것 아니냐며 빨갛게 눈이 충혈 되어 욕질을 해대는 남자가 정말.. 한심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또 말싸움을 하다가 어머니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을 테니까 가라앉히고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방에 각자 1분정도 있었더니 남자가 ***(어머니 성함)소리치며 불렀습니다. 아마도 돈 갖고 오라는 거겠지요. 문을 잠근 것도, 우리가 밖에 있는 동안 10통이 넘게 전화한 것과 같은 이유였겠지요. 나는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가서 저래도 줘야겠어? 라고 화를 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땅만 보시며 주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났지만 돈을 줘야 진정이 되기에 잠시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돈을 쥐어줬습니다. 계속해서 어머니를 불러대더니 돈을 보고 쥐자마자 아무 말도 않더군요. 참, 치사하고 간사하고 더럽다고 느꼈습니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는 도박사실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집으로 들어가, 니가 왜 따라 나와, 아니 그냥 궁금해서 가보려고, 뭐가 궁금한데, 니가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 할 것도 아니야, 니 애미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엄마가 하라는대로 할 나이야, 내가?, 집에 들어가, 집에 들어가 라는 소리만 몇 번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속 따라갔고, 중간중간 들어가라고 했지만 따라갔습니다. 택시를 타려고 해서 뒷 자석에 앉으려고 문을 열면 다시 닫고, 다시 열고 닫고를 반복하다가 차가 갔고, 니가 왜 타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 차가 왔고, 저는 뒷 차에 타서 저 차 따라가 주세요, 했지만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남자는 차에서 내렸습니다. 끈질기게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다시 택시를 탔고, 이번엔 5초 정도 뒤에 저도 차를 잡고 따라갔지만, 남자는 다시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돈을 지불하고 나왔는데, 아주 웃겼습니다.
현수막에 숨어서 저인지, 아닌지를 보더니 발각되니까 숨기느라 굽혔던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헛기침을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니가 왜 따라오는데, 하고 확성기를 쓰는 듯한 고함을 치며 계속 소리 질러대며 욕했습니다. 저도 또한 계속, 뭐에 미쳤길래 30만원을 쓰러 가는 건데,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하고 집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같이 집에 가면 안 돼? 뭐 하러 가는데, 도박 하러 가? 도박 아니랍니다. 그럼 여자 만나러 가? 진심으론, 계집질 하러 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요.
귀찮다는 듯이 아 맘대로 생각해, 하더라구요. 도박 아니면 여자 아니야? 그럼 여자 만난다고 생각해도 돼? 맘대로 하라고! 알았어. 여자 만난다고 생각할게.
더러워.
한 마디 하고 갔습니다. 정말 더러웠으니까요. 도박이든 여자든, 그 사람 자체가.
뭐에 미쳐서 그 말에 반응도 안 하는건지, 가려고 참는건진 모르겠지만 그것도 너무 우스웠습니다.
제가 집에서 남자를 따라 나간 뒤로 어머니에게 계속 전화가 왔었지만 처음 한두번만 잠깐 나갔다 오는 거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고, 계속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받고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화가 났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 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어머니는, 이혼은 나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용기도 없고 니 애비가 거리에 나앉아서 거지될까봐 못하겠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나와서 살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것은 예전부터 마찬가지였지만요. 그래서 남자에게 방 구해지는 대로 나간다고 한 거고, 반신반의한 남자가 농을 뒤져서 어떻게든 돈을 끌어 모으려는 거였습니다. 도박에도 미쳤지만. 한마디로 막장 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인거죠..
저는 아직 어립니다. 법에 대해서도 모르고, 인터넷으로 뒤져봐도 정확한 설명은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상담을 해야 하는데 무작정 찾아가는 것 보다는 미리 알아놔야 할 것 같고, 증거도 있어야 나중에 어머니에게 유리하게 판정이 가서 집이나 가구 모두, 그리고 피해보상금 까지 뜯고 싶은데 (어머니는 전세금도 남자에게 주고 그냥 나오고만 싶다고 하셨지만 저는 피땀 흘려 모은 돈 그렇게 절대 못 합니다.) 증거도 못 잡고. 아니 솔직히 이 집 재산만 그냥 받고 싶습니다. 그 외의 돈은 바라지도 않을 욕심일 뿐이지요..
그렇다고 때려달라고 하면서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고. 얼마 전에도 말리다가 뺨 두 대를 맞고 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증거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루 이틀 맞은 것도 아니고..
어린 애가 찾아가는 거라고 제대로 안 해줄 것도 같고 돈도 바가지 씌울 것도 같고.. 이래저래 무지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남자를 따라가서 증거를 잡으려다가 실패하면서 오는 길에도, 나쁜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전부터 그랬지만, 칼 들고 남자 앞에서 손목을 그어볼까, 그러나 그건 너무 극단적이고 누가 보면 연민도 갖다 주지 못할 멍청한 행동이기에, 그냥 죽이면 될 거 같은데, 내가 남자 죽이고 감옥 들어가서 평생 썩어도 그렇게 하면 응어리 하나는 풀릴 것 같은데..
엄마는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내 입장에선 그게 최선인 것 같고, 내 인생보다 어머니 인생을 놓게 해주고 싶고.. 이런 말 하면 다들, 자기 낳아준 아비 죽이고 감옥 간 딸 두고 어떻게 편히 살겠냐 하시겠지만 제 입장에선 이미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그냥 죽이면 끝나는 거. 아니면 나 죽고 다 죽을까. 불 지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응급실 실려 갈까..그러나 그 상황에서마저도 어머니에게 모든 죄와 책임을 떠밀 남자를 생각하니 못하겠고..
지난 몇 번간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을 하고, 죽일 생각을 하고,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다가 남자가 나의 심장에 칼을 꽂는 상상이 갑자기 나서,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립니다.
숨 쉬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점점 더 힘들어질까봐, 하는 나약한 변명도 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생각하자 해서 지금 이 글을 올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와 싸우거나 이런 난리들이 나면, 불과 이틀 전쯤에도 난리 나고.. (남자에게 뺨 두 대 맞은 날에) 앉아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기만 하니까 어머니께서 돌부처처럼 울지만 말고 그만 울고 눈물 그치라고.. 너가 그러면 엄마는 어떡하냐고.. 그렇게 세 번을 방을 들어와서 위로해주시다가 문 닫고 나면, 문 앞에서 아직도 제가 우는지 확인하는 엄마.. 이제는 웬만해선 폭력 안 쓰려고 노력하는 엄마. 아니, 사실은 이젠 제가 너무 많이 커서 무섭답니다. 옛날같이 맞기만 하지 않고 막으니까. 표독스럽고 독하다고 하더군요..
엄마한테 못된 말 하고 나서 계속 밤마다 아는 언니와 통화하면서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고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는 자식이 너무 한심하고, 내가 아닌 다른 딸이었으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하고 자책하고 그냥 계속 눈물만 나왔어요. 그 착한 언니는, 너는 네가 어머니께 늘 부족하게 대하고 잘 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모자른 딸 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네가 길 가다가 저거 우리 엄마한테 어울리겠다, 사주고싶다, 이런 말 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하고 어른스럽다고. 한참 나이 많은 나도 그런 생각 못하고, 솔직히 내가 네 상황이라면(힘들 때 이런 저런 얘길 해서 적당히 저의 상황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렇게 못 한다고..
그러면서도 저는 이기적이게도, 나는 아직 20살인데 마지막으로 온화하고 인자한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고.. 나도 사랑받고 살고 싶다고..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거 알지만.. 맨 정신으로.. 똑바른 정신으로.. 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저도 알아요, 대부분 갖고 있는 애정결핍에서 더 심하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욱 하게 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꼭 내가 고통 받는 모습 같으니까 더 그렇게 되는 거 같고.. 성격 장애가 생기고, 심해지고.. 트러블 메이커가 돼 가고..
어머니께서 2,3년 전 쯤에 저를 심하게 때리시고 기억을 못하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한 번은 일주일 정도 금주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정말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정말 딴 사람처럼, 이리와서 티비 봐, 엄마랑 같이 티비 보자.. 했던 그 모습이 너무 그리운거에요.. 처음부터 엄마가 무섭고 독한 사람이었으면 그립지나 않았을 텐데.. 원래 엄마의 모습을 너무 잘아니까.. 이렇게 만든 남자가 너무 싫고 밉고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되고..
제가 이 상황에서 바라는 도움이 너무나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응원도 너무 감사하지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법 쪽에 대해서 잘 하는 분과의 상담, 저의 집 같이 협의이혼이 안 되고, 어머니 혼자(제가 같이) 서류 준비를 다 해서 남자 앞에 딱 내놓고 도장만 찍으면 이혼이 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줄 분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어머니 일 다니시는 게 방해되지 않게..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언제 또 사채를 쓸지 모르고 또 피땀 흘린 돈 그것으로 퍼부어어야 하고 또 돈 달라고 하고 또 때리고 악몽이 시작되고 환청이 들리고..
집에서 음악도 못 들어요, 술 취하고 스트레스 받은 어머니께서 또 저를 부르고, 그걸 못 들으면 맞아야 하니까.. 그러다가 환청이 생겼습니다. 가만있다가도 불렀어? 하고 물어보는 저. 병신 같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자기연민적인 말들을 너무 많이 늘어놓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냥 적당히 힘든가보네, 인터넷 찾아보면 이혼 서류 필요한 거 나옵니다, 하는 답변들만 달릴까 봐 긴 얘기를 그나마 간략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아직도 억울하고 못 다한 얘기들이 너무 많지만..
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시거나 상담 해 주실 분에게 도움 받고 싶습니다.
무료로 해달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갚을 수 있고, 갚을 거고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속 까지 할 수 있고 사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간이 거의 다 망가져서 매일 헛구역질에 장기능도 거의 없어지고 약에 의존하며 밥은 둘째 치고 음식은 거의 먹지도 않고 술만 먹고 사는 우리 엄마.. 내가 조금만 마시라고 건강 좀 챙기라고 해도 이러다가 죽어 버릴거라고, 내가 벌써부터 혼자 되는 상상을 하게 하는 엄마.. 이 상황에서도 엄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만 하는 나..
술에 절어서 150정도 되는 키에 36,37키로 나가는 비쩍 마른, 오직 일만을 해왔다는 듯이 말해주는 몸에 술로만 채워진 우리 엄마와 저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도와주고 구원해주실 분... 제발 도와주세요.
신을 믿지 않는 제가, 늘 울면서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밤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도록.. 밤새 싸우고 울어서 퉁퉁 부운 눈에 어디도 나가지 못하는 어머니와 저를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단 한 분만이라도.. 절실하게 부탁드립니다. 글이라서 딱딱하게 보이고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내가 힘들고 우리 가정이 이렇다 하고 구구절절 썼다고만 느끼실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살고 싶어서 부탁드립니다. 사람답게, 저는 아직 어리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라도 제가 무슨 일을 다 해서라도 살게 해주고 싶어요, 사람답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너무..순서없게 구걸하듯이 글을 썼나요.. 부들부들 떨면서 정신없게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이 글에 혹시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시거나 안 좋아진 분이 계신다면 미리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이제 날씨도 곧 추워지는데.. 다들 옷 따듯하게 입고 다니시길 바랄게요..
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고.. (욕 나오는 게)당연한 거지만, 무조건적인 남자에 대한 욕은.. 댓글로는 남겨주지 마세요.. 무조건 욕만 하시는 거라면..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모두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한 겨울에도.. 서로의 사랑에 따듯해지는, 그런 겨울 나시길 바랄게요. 너무 이르지만, 크리스마스도 잘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제발 읽어주세요. 도와주세요..
여기 톡에 올리면 많은 분들이 보게 되실지 모르겠네요.. 카테고리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사는얘기로 했습니다.
글이 깁니다.. 정말 진지하게 도움을 바랍니다..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전체에.. 반말투의 단어가 나와도 이해해주세요..쓰다보니 고백하듯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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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얘기도, 낚는 얘기도 아닙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여기 한 가정이 있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온 아버지를 맞는 딸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귀여운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우리 작은 딸이야?, 부비적대는 딸아이를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아버지. 용돈을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용돈까지 쥐어주며 뽀뽀까지 해줍니다. 행복한 아이는, 방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안겨 듬뿍 사랑을 받는 한 아이를 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합니다. 용돈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스러운 손길로 안겨주는 아버지의 손길을 10년이 훌쩍 넘게 느껴보지 못해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부비적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뒤로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하게, 그리고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봅니다.
.. 저는 진심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합니다. 모든 가정에는 행복만이 깃들 수 없고,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집 가정들에게 관심을 둘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 가지 길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차저차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도와달라고만 외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로만 쓰면 어느 누구도 읽어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네이트판을 늘 즐겨보는 한 사람으로서.. 네이트판을 이용해 저의 이야기를 쓰려 하고 도움을 요청하려 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곳 보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쉽지 않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게요.
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아직 생일도 지나지 않아서 만 18살인 여자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많은 얘기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게 되네요..
저희 집은 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네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절대 기억나는 한에서는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지 않았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기억하는 불행의 시작을 쓰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을 가까이 보고, 느끼고 살았습니다. 초등학생이 채 되기 전쯤에도 아주 자세하진 않지만 이불 밑에 깔려서 아버지란 자에게 밟혀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맞고 살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울거나, 맘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늘 그렇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아버지를 남자라고 하겠습니다. 불효녀에, 폐륜아라고 해도 저는 절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초등학교 때 대충으로만 알았던 남자의 도박 사실에 알았을 때에도, 도박하러 나가는 남자는 신발장 위에 걸려있던 배드민턴 채로 저의 명치를 퍽퍽 쳐가면서 니 애미에게 말하면 죽여버릴 줄 알아, 하는 말을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의 기억력의 문제는, 가정폭력과 직접적인 저에 대한 폭력, 그리고 전반적인 분위기나 상황에서 유발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저 기억력이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겠지만요. 저의 추측일 뿐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술을 몰랐던 분입니다. 연애 때였는지 동거 때였는지 (남자 마음대로 어머니가 자취하던 곳에 무작정 짐 풀었답니다.) 그 때 처음 소주라는 단어를 들어본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남자와 늘 싸우는 이유중의 하나가 술이고, 태클 걸며 꼬투리 잡히는 것도 술이고, 뺏으려고 하면 화를 내고 날카로워 지는.. 하루하루를 알코올에 의지하면서 사는 분입니다. 꼭 손이 떨리고 환청이 들리고 뭐 그래야 알코홀릭이라던가요, 저는 그렇지 않은 중독자도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내 스스로 기억하기 싫어서 지워버린 기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확한 것은 남자 때문에 어머니의 정신 상태와 인격마저도 모두 난도질 되었고, 저에 대한 남자의 폭력은 비교적 일찍 끝이 났지만, 그 뒤로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남자에게 욕을 듣고 폭력을 당하면 모두 저에게 풀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도 남자는 도박에 미쳤었고, 매일 돈을 요구했고, 주지 않으면 벨트로 몸을 강박하여 구두굽으로 얼굴을 찍고, 때리고, 닥치는 대로 집어서 때렸습니다, 멍이 들어서 일도 못 나갈 상태였지만 도박에 모든 돈을 쏟아버리는 남자 때문에 그 몸으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저를 출산했을 때에도, 도박장에 있다가 뒤늦게 왔습니다. 그리고 절개수술을 한 어머니는 퇴원수속도 밟지 못하고 실밥이 터지는대도 일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 시간에도 남자는 도박장인지 어딘지를 가 있었지만, 추측하기로는 도박장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몇 살 때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집은 의류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직원들의 월급도 줘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입을 모두 도박장에 써버리는 탓에 금이란 금은 모두 갖다 팔아서(할머니께서 주신 예물도 모두 남자가 훔쳐 갔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줬고, 공장은 망했습니다. 그 뒤로도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어서도 저의 기억은 모두 싸움, 폭력 뿐이었습니다. 늘 울었으며 그런 저를 좋아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 납니다. 속상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어린 저에게 모두 풀었던 어머니의 모습도..
주식으로 몇천만원씩 몇 번에 날리고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악착같이 세상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겨우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어머니는 싸우는 모습은 숨기지 않아도 생활고는 굳이 말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그 때의 자세한 정황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 쓰고 남아서, 겨우겨우 어머니께서 모은 돈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집이 재개발이 돼야 하며 그게 언젠지는 몰라도 임대아파트가 될지, 이주비 얼마 받고 다시 전셋집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임대아파트가 좁다는 남자의 의견을 겨우 설득해서 다시 임대아파트로 재신청 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 전셋집은 겨우 6000만원이고, 모은 돈도 아버지 때문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돈을 가져가는 남자 때문에. 저희 집 문은 모두 잠기질 않습니다. 그리고 닫히지도 않아서 문과 문틈 사이에 빌어먹을 경륜장 경마장 잡진지 뭔지를 껴놓습니다.
바다이야기 같은 게임장에서, 경마장, 이제는 경륜장까지 하네요. 이제 뭐가 더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울때마다 칼로 찍어서 문이 다 갈라지고 소름돋게 찍힌, 볼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칼들이 찍힌 문들을 겨우 부여잡고 자야 합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은 너덜너덜해서 문틈에 종이를 껴도 닫히지도 않습니다. 매일 24시간 집에 붙어서 먹고 놀기만 하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다 듣고 살아야 합니다. 닫는다고 해서 안들리는 것도 아니지만..
돈을 주지 않으면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밤새 문을 팍 열어재끼면서 누워있는 어머니를 치고 때리고, 언젠가는 기절을 시킨적도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취한건지 기억은 못하시고.. 옛날에만 폭력을 가한 줄 알았더니 여전히 때리더군요, 주먹으로 여자의 얼굴을 힘껏 내리치고 발로 차고 밀고 뺨을 때리고.. 그냥 몸 전체를 가격합니다. 겨우 제가 뜯어 말리려고 막아서고 욕을 하면서 저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비틉니다. 등산부터 배드민턴, 이것저것 몸을 키워왔고 40대 초 까지만 해도 배에 왕(王)자가 있었던, 그래도 과거에는 의류공장에서 거친 일들만 해온 성인 남자의 힘을 제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대신 제가 죽더라도 절대 그렇게 못 하니까, 있는 힘을 다 해서 막고 깨물고 몸부림 쳤습니다. 155의 키에 50정도 되는 왜소한 저지만, 있는 힘을 다해서 막고 때리고 밀쳤습니다. 그러다 제가 맞아도 저는 아프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희 친가쪽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안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정신병이 시작돼서 큰아버지, 둘째아버지 셋째 아버지.. 모두 폭력이 심하고, (자식들도 기피할 정도입니다.) 다들 도박이나 의처증이 심해서 이혼을 당한 분도 계십니다. 고모들은 그럭저럭 자세힌 모르겠지만 막내 아들이자 총 막내인 저희 아버지도.. 이쯤 되면 유전자를 그대로 고스란히 되물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고로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는 정신병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을 많이 불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출소이며 제가 아주 어렸을때에는, 경찰들이 오면 베란다에 남자를 숨기고 집에 없다고 거짓말하던 어머니가 생각합니다. 벌벌 떨면서 베란다에 몸을 사리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데려갈 생각을 하니 또 덜컥 겁이 나서 거짓말을 하는 어머니.
그 뒤로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세네번 정도 부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쪽팔리고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저 조차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모두 부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용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내 앞에서 뺨을 가격하는 남자를 보아도, 왜이러세요, 하며 적당히 말리고 적당히 훈계하고 적당히 가정폭력으로 취급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찰들. 그냥 대놓고, 아무리 이래도 가정폭력으로 밖에는 안돼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경찰 두 명이 어김없이 그 날도 밖으로 남자를 데려가 적당히 훈계를 했고, 그 중간에 경찰 한 분이 저희 화장실을 쓰더군요. 그 다음에 남자가 들어와서, 너희들이 경찰에 연락한다고 걔들이 뭐 해줄 줄 아냐, 어디 한 번 계속 해봐.. 이런 말들과 함께 어머니와 나에게 계속 아까와 다름없는 위협적인 욕을 하고, 경찰을 비하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화장실에서 경찰이 나왔고, 나는 분명 그가 남자의 말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그대로 갔습니다. 가버렸습니다. 순간 남자도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찰에 대해서 다시 살인자같은 웃음을 보였습니다. 나는.. 그 뒤로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 사는 같은 반아이에게 쟤네 집 매일 싸운다, 식으로 늘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했기도 했구요.
그 뒤로 또 한번, 이번에는 형사계까지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내내 싸우고(이 동네 시장, 옆 집, 모든 사람들은 우리 가족, 특히 부모님을 잘 알죠..) 칼까지 들고 죽이네 마네, 어머니가 갑자기 달려가서 주방으로 가면 움찔하며 몸을 막아가던 그 밤에, 나 역시 그들을 말리고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울었습니다. 이전에도 유리를 깨서 어머니 발바닥에 온통 피가 나는데도, 자신만은 화장실에서 슬리퍼를 가져오는 이기적인 행동. 창문 열고 온 동네에 욕을 하고 죽여봐, 죽여봐를 외치고..
나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온 몸으로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그러한 밤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달랐습니다. 나의 기억력이 이럴 때에 아주 원망스럽지만.. 가끔 이런 살의적인 기운이 들고 슬픈 날에는 핸드폰에 메모를 할 때가 있었고, 이 날도 역시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날은, 늘 내가 듣던 ㅅ발년, ㅅ팔년, ㄱ같은 년, ㅈ같은 년이 아닌, 패륜아, 호로ㅅ끼, 부모도 없는 말종.. 갖가지 욕을 다 들어서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찜질방으로 잠시 피해있던 사이에, 진정이 잠시 된 그 상황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큰 짐가방 하나와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걸 편지라고 여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네요. 대략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의 어머니도 네가 나가길 원한다. 이 집을 나가서 다시 들어오지 말고, 우리의 부녀지간은 슬프지만 여기서 끝이다. 자식과 부모의 연을 끊고 살아가자. 다시는 집에 오지 말아라 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모두 믿고, 어머니에게도 슬펐습니다. 모두 내가 잘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인터넷으로 숙박이 되는 일들을 알아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왔고 자초지종을 물어 모두 설명했습니다. 어머니도 제가 나가길 원한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고, 저를 내쫓은 다음, 어머니마저 내쫓으려던 남자의 거짓말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화가 났고 그게 다시 난장판, 싸움으로 벌어졌습니다.
그 날의 모든 일들을 쓰기엔 부족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파출소에서 사람이 왔고 어머니는 저 사람을 접근금지 시켜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나는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리 눈만이 아니었는지 거칠게 나오고 욕을 해대는 아버지를 2명이서 제압하려 했지만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 쳐댔고 한 명이 더 투입돼 총 3명이 겨우 제압해서야 수갑을 채웠습니다. 나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견디기 힘들었고 혼란스러웠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이 지경까지 온 것도 내 책임이고, 내가 마무리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경찰에 그 남자를 태웠고, 경찰은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신고하실겁니까. 어머니는 또 다시 예전처럼, 베란다에 남자를 숨겼던 그 때처럼 다시 안절부절했고, 저는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이렇게 하면 벌금도 결국 당신네들 집으로 들어가는 건데 괜찮냐, 이런 말들을 했고 돈 걱정을 하는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봐주세요..
나는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혐오하고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이대로 다시 풀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 집에와서 우리를 어떻게 괴롭힐지,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단호하게 같이 경찰차에 탔고, 그렇게 경찰서까지 갔습니다. 늘 가던 파출소가 아닌 경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차를 탔으며, 경찰서에 가봤습니다.
가는 내내 남자는 실성한 미친놈처럼 이 수갑좀 빼주세요, 안됩니다, 그럼 느슨하게라도 해주세요, 아 거 참 조용히 좀 하세요 되게 시끄럽네, 내가 아파서 그래요 말 잘 들을 테니까 조금만 풀어주세요, 그럼 조금만 풀어줄 테니까 조용히 해요 가만 있어봐요..
나는 무표정이었습니다. 동시에, 저 남자가 인간인지 악마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갑이 느슨해진 순간부터, 남자는 떠들었습니다. 아니, 지껄였다고 해야하나요..
호루라기야, 저거는.. 지 애비를 신고해서 수갑을 채우고. 패륜아 새끼..
더 이상 적기에는 제가 싫어지네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에, 그러나 혐오감이 더 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늘어놓다가 어머니를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이것 역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한에서는,
형사님들, 제가 저 여편네(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랑 한 이불에서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난 지가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술 퍼마시고, 자식새끼 물건 다루듯이하며 때리고, 잠자리도 거부하고, 내가 좀 하자고 하면 해야지, 남편이 하자고 하면 해야지..
그런 얘기를.. 하다가 섹ㅅ라는 단어가 나오는 지경에 나왔고, 경찰들은 제 눈치를 보며 이 양반이 조용히 좀 하시라니까!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고, 나는 진심으로 살의를 느꼈습니다, 어떠한 말도 변명도 필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살의라는 단어도 아까울정도로 그저 죽이고 싶었습니다.
파출소에서도 내가 무슨 일을 당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썼었고, 경찰서에서도 말 했습니다. 그러나 형사들 눈에는 그저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볼 뿐이었습니다. 적당히 완료하고 보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가해보였지만 우리에게 관심은 없었고, 남자는 저쪽에서 자숙하는 시간을 가진답시고 술에 취해 자고 있었으며, 대충 얘기를 끝낸 저를 형사는 먼저 보내려고 했습니다. 가면서 아버지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의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속으로 외치며 한심하게 잠이나 자고 있는 인간을 보고 나왔습니다. 눈물이 갑자기 흘러서 그치지도 않았고 나는 혼자였으며,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온 연락은 모두 어머니였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늘 취해 있었지만 그 날도 역시, 소리를 질러대며 내게 욕을 해댔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거기까지 데려가, 너 미친년이냐, 니가 아빠말대로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어떻게 지 애비를 신고해, 싸가지 없는 년 돌아오지마, 니 아빠 찾아 데려와..
등등.. 벌금에 대한 걱정부터 이것저것.. 그냥 나를 무작정 욕했습니다. 제 정신이었든 아니었든, 어쨌든 진심이었던 거고 나는 슬펐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랬는데, 더 이상 우리가 힘들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었고, 이게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도 몰랐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벌금이었겠지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끊임없이 욕을 먹었습니다. 나가 죽어라 나가서 니 애비 데려와라..
그 술취한 와중에도 또 술을 마시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미친 듯이 맞고 살았습니다. 제가 잘못을 했건, 안 했건. 하루는 칼빵이라고, 한창 초등학교 고학년 때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이 팔목 윗 부분 쯤에 칼로 아주 깊게는 아니지만 욕이나 이름 따위들을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그 아이들과는 다른 감정으로 칼빵을 했습니다. 깊지 않은 상처였고 약간은 호기심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지워져서 뭐라고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 놓고도 걸리면 맞아 죽을까봐, 싸인펜으로 덧칠했지만 결국 남자가 알게되고 바로 어머니가 알게돼서 그날은 죽도록 맞았습니다.
나는 나를 걱정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깨를 잡고 닥치는 대로 발로 차고 머리를 박고 때리는 어머니의 옆에서 남자는, 그냥 아주 죽여버려, 라는 말을 하며 담배를 뻑뻑 피워댔습니다. 나무 빗자루, 옷걸이, 잡히는 대로 죽도록 맞고 발로 까이고 쓰러지고 다시 일으켜 세워지며 맞았습니다.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이유가 정확히 뭔지 헷갈릴정도로.
차라리 나는 내가 잘못한 만큼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길 바랐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받는 모든 스트레스를 술을 마시며 나에게 화내고 욕하고 때리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오히려 더 감정만 악화되었지만요.
너무 많아서 전부 기억은 안 나지만, 상처를 보면 기억나는 것은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주 사소하고 말도 안되는, 그러니까 남들이 보면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이유로 내게 욕하고 때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두꺼운 참고서 몇 권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고개가 꺾이는 고통도 당했고, 가만히 앉아서 어머니의 주정을 들어주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예를 하나 들자면 오른손을 거의 쓰는 제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미숙해서 흘리는 것도 아닌데) 숟가락으로 때리다가, 그것을 막고 반항하는 저에게 젓가락으로 허벅지를 찍은 적도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안 나오는 저에게 계속 욕과 폭력을 해댔고, 기억을 못합니다. 다음 날 쯤 이었나, 상처에 대해서 물어 보길래 사실대로 말하면 자책감에 슬퍼하실까 둘러댔지만 결국 말하게 되었고, 술 마시지 말아야지, 끊어야지 했지만 한 번도, 끊으신 적이 없습니다. 늘 머리를 맞고 싸대기에 머리 잡혀서 다 뽑히고 온 몸이 나무빗자루로 맞아서 퉁퉁 붓고, 멍이 들어도 나는 두통에 절은 머리를 싸매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가야 했고, 밤새 울어서 부어버린 얼굴은 그저 라면 먹고 잔 얼굴로 위장됐습니다.
너 왜 그래, 하고 물으면 늘 변명하느라 바빴고 그런 내가 너무 서러워서 하루 종일 고개도 못 들고, 1교시부터 하교 할 때까지 책 속에 얼굴을 묻기도 여러 날이었습니다.
밤새 울고 소리 지르고 정신 없이 학교를 가면 너무 졸린데도 머리가 아파서 자지도 못하고 엎드려만 있었습니다. 어쩌면, 순수하게 나의 지능이 약한 것 외에도 이런 일들로 인해서 나의 기억력도 나빠졌으며, 학업에도 열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변명이지만, 수능때 마저도 집에선 난리가 났고, 나는 다시 잤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으니까요.
저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도 없고 옷도 없어서 왕따도 당해봤고, 그게 저에겐 늘 서러움과 한스러움이었습니다.
초기엔 학교 끝나고 고3때까지 하교 후에 바로 달려가서 고기 집과 술집들을 전전하면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그래봐야 한 달에 3,40만원이었지만 차라리 집에서 그런 고통을 겪는 것보다, 변태 같은 사장이, 악덕 같은 참모가, 술주정하고 난리피우는 손님들이 나았습니다. 늘 발이 붓고 힘들고 때려치고 싶어도 집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이 너무 슬퍼서 울기만 했습니다. 누구에게 힘들다 말해도 그들은 내 고통을 짐작만 할 뿐, 공감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나는 늘 혼자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애인이 생겨도, 그 이상은 도와주지 못할, 감히 위로도 못할 고통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애인은, 분명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줬던 그 애인마저도, 넌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무언가에 빠져있는 것 같아, 내가 도와 줄 수가 없는 거 같아. 라고 했습니다.
나는 늘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나의 사소한 잘못에서 시작 된 난리였든, 부모끼리의 싸움에서 시작 된 난리였든지 간에, 무조건 나에게만 화살이 꽂히고 날 욕하고, 이렇게 니 애비가 나한테 욕하고 때리면 니가 나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살의의 발길을 나에게 돌리며 욕을 퍼부으며 작정하며 나를 정신없게 때리면.. 말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로 하고 집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내가 많이 참고 살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유없이 아주 어릴 때부터 맞아도 나는 가만있었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싸워서 그 상황이 뭔진 잘 몰라도 무서워서 울어도 가만히 맞고만 있었고 돌아가는 세탁기 옆에서 뒤를 틀어막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단 무조건 참았습니다. 내가 옳았고 내가 바른 얘기를 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날 욕하고 때려도 무조건 참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욕먹고 맞아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말리기도 힘들 때에는 왜 나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켜, 왜 나를 낳았어 같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삼류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도 했습니다. 죽여 봐, 엄마 죽이고 나도 죽여 봐, 때려도 돼 안 아프니까 때리라고 매일 그 돈으로 어딜 가서 다 쏟아 붓고 또 이렇게 와서 지랄인데, 그만해. 돈 주니까 바로 사리는 거 봐. 더러워. 추잡해. 미친놈. 같은 말들을 해왔습니다. 절대로 내가 잘 한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말했고, 그것이 절대로 해선 안될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았습니다.
남자에게 받는 스트레스, 같은 스트레스를 받은 어머니에게 또 다시 받는 스트레스, 이 분위기, 상황.. 나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갔고, 어머니는 내 이름을 표독하게 외치며 욕을 하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신발도 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추운 겨울이면 겨울, 여름이면 여름 마다하지 않고 나가며 울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심장을 움켜쥐면서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자해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것은 후에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로 인해서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도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 위해 참은 것입니다. 또한 남자나 어머니로 인해서 이런 피해를 입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머릿속으로, 이 가족이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서 내 기억력이 나빠지고 나의 학창시절을 망치고, 나의 모든 정신을 난도질 한 것에 대해서 피해보상 받고 싶어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리고, 철이 들지 않았지만 그 때처럼 그런 생각은 조금 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슬픔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욕하고 때리는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욕하고 나를 자책했지만, 바깥에서 일주일이면 일주일, 몇날며칠을 꼬박 밤을 새고 돌아와서, 나를 다시 가엾게 맞아주는 어머니를 보다가도, 다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때리고 욕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 나는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남자와 싸우면서 다시 나를 끌어들이고, 술을 마시면 방에 있는 나를 불렀다 보냈다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반복하고 옆에서는 애새끼를 물건 다루듯이 하지마라, 니 맘대로 하지 마라 하는 남자를 보면서.. 그리고 난리 중에 더 이상 욕짓거리들과 행패를 참지 못해서 주먹으로 문과 벽을 치는 나를 어머니마저도 싸움을 멈추고 저거 완전 또라이네, 미친 거 아니야? 정신병자가 여기 또 있네, 저거 완전 또라이네 또라이..하고 욕을 할 때에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참는 것은 참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늘 집안에 불만밖에 없고 반항적인 반항아로 비춰지는 나를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4시간 술에 절어있고, 단 1초도 온화하고 평화가 깃들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 고쳐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나약해진 때를 이용해서 공격하는 남자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울다 잠도 못자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졸업 한 뒤에) 두통이 따르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아르바이트를 가고, 끝나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피시방에 가있고, 살려달라는 어머니의 전화가 오면 일하는 중이라고 회피해버리는 나 자신도 너무 싫습니다.. 가서 도와 줄 수도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싫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꼭 인문계나 특고를 가라는 담임의 말도 거절해가면서 상고를 고집했지만 결국 인문계로 와버렸고, 늘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으로 기억되는 저는, 몇 몇 수업이나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별 거 아닌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고1, 고2 모두 야자 전 시간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도 그 교육비와 교재비가 만만찮아 항상 잠만 자고 어차피 공부는 안 할 거라는 변명만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 모두 공부에 집중하고 대학 갈 걱정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늘 잠만 자고, 고1,2 담임 모두 같았는데 그 선생님도 제게 대학교를 꼭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해야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어차피 가지 않을 테니 돈이라도 버는 심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실음과 쪽으로 가라는 말에도 거절했고 그저 공연 때문에 방과 후 수업은 듣지 못한다고만 했습니다. 그 때는 밴드활동 자체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고, 나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거절해왔고, 늘 담임과는 틀어졌습니다. 그렇게 서로 싫어하던 고3 담임과도 대학 얘기가 나왔을 때, 역시나 저는 밴드나 하면서 살 거라고, 대학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게 싫어했던 담임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중에 담임이 제게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아 나는.. 네 눈을 보면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보인다고.
저는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 가려서 가려지는 눈물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슬픔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남들처럼 대학 가고 싶고, 열심히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 포기하는 이유마저도 거짓말하게 되는 환경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언어 쪽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늘 숨겼던 노래도 장기자랑시간에 어쩌다보니 하게 됐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담임 샘들 모두 실음과를 가라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와 울게 됐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 인생을 포기해도 어머니 인생은 제대로 살아야 하니까요. 나중에라도 내가 열심히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머니는 아직도 가끔 대학얘기를 하면 미안하다고만 하십니다. 저는 늘 괜찮다고 해요. 제가 머리가 아주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오늘도 나는 바깥에 있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밖에서 만났습니다. 여태껏 농 안에 잘 숨겨두었던 집 문서와 어머니가 힘겹게 모든 돈이 적혀있는 통장과 카드를 남자가 알게 됐고, 오늘 30만원을 주지 않으면 집문서도 주지 않고 사채를 쓰겠다는 남자를 겨우 진정시키고 돈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해서 겨우 가져온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치킨 집에 들어가서 만사천원도 비싸다고 하는, 그러면서도 또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시며 말을 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가면 비싸서 추운 겨울에 옷 하나도 제대로 못 사입고, 늘 싸구려만 사오면서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 엄마. 어디만 가면 다 돈이고 비싸다고만 하는 우리 엄마. 내가 사주고 싶어도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는 엄마..
그러면서도 술은 늘 붙잡고 살아야 단 1초라도 안정이 되는 엄마..
여태껏 저 모르게 남자 빚을 갚아 준 것도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여태 남자가 허투루 날려버린 돈만 아니었으면 벌써 집을 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 만큼 어머니께서 몸 사리지 않고 희생해왔으니까요.
이혼하지 않는 이상은, 사채를 썼던 경험이 있는 남자가 다시 사채를 쓴다면 그건 도로 어머니 몫이 되겠지요. 결국은 30만원을 주고 싶지 않아도, 이미 집문서와 한 푼도 없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난 상황에서는 줘야 합니다. 우선은 제가 갖고 있기로 했어요.
그렇게 치킨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갔지만, (원래 같으면 무서워서 여관에서 자자고 했을 텐데 오늘 하루 눈 뜨자마자 여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돈도 아까워하는 어머니는 30만원을 주기로 했으니 별 일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간 겁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열쇠로 열었지만, 평소에는 쓰지 않는 잠금장치는 안에서 잠궜고, 열쇠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계속 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누구냐고 소리를 질러서 저는 딸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좋게 말하며 나 혼자 온 것처럼 해야 열어줄 것 같았고, 살짝 열더니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그 조그만 틈으로 빨리 안 들어와, 하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또 이웃집이 다 알겠구나, 그러나 그건 이미 예전 일입니다. 이제는 신경 쓸 겨를 도 없이.. 정말 죄송하네요.
내가 왜 이러냐며 문을 잡아당기면서 어머니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고 저도 들어갔는데 들어오라면 빨리 들어와야 할 것 아니냐며 빨갛게 눈이 충혈 되어 욕질을 해대는 남자가 정말.. 한심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또 말싸움을 하다가 어머니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을 테니까 가라앉히고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방에 각자 1분정도 있었더니 남자가 ***(어머니 성함)소리치며 불렀습니다. 아마도 돈 갖고 오라는 거겠지요. 문을 잠근 것도, 우리가 밖에 있는 동안 10통이 넘게 전화한 것과 같은 이유였겠지요. 나는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가서 저래도 줘야겠어? 라고 화를 냈고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땅만 보시며 주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났지만 돈을 줘야 진정이 되기에 잠시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돈을 쥐어줬습니다. 계속해서 어머니를 불러대더니 돈을 보고 쥐자마자 아무 말도 않더군요. 참, 치사하고 간사하고 더럽다고 느꼈습니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는 도박사실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집으로 들어가, 니가 왜 따라 나와, 아니 그냥 궁금해서 가보려고, 뭐가 궁금한데, 니가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 할 것도 아니야, 니 애미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엄마가 하라는대로 할 나이야, 내가?, 집에 들어가, 집에 들어가 라는 소리만 몇 번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속 따라갔고, 중간중간 들어가라고 했지만 따라갔습니다. 택시를 타려고 해서 뒷 자석에 앉으려고 문을 열면 다시 닫고, 다시 열고 닫고를 반복하다가 차가 갔고, 니가 왜 타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 차가 왔고, 저는 뒷 차에 타서 저 차 따라가 주세요, 했지만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남자는 차에서 내렸습니다. 끈질기게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다시 택시를 탔고, 이번엔 5초 정도 뒤에 저도 차를 잡고 따라갔지만, 남자는 다시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돈을 지불하고 나왔는데, 아주 웃겼습니다.
현수막에 숨어서 저인지, 아닌지를 보더니 발각되니까 숨기느라 굽혔던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헛기침을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니가 왜 따라오는데, 하고 확성기를 쓰는 듯한 고함을 치며 계속 소리 질러대며 욕했습니다. 저도 또한 계속, 뭐에 미쳤길래 30만원을 쓰러 가는 건데,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하고 집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같이 집에 가면 안 돼? 뭐 하러 가는데, 도박 하러 가? 도박 아니랍니다. 그럼 여자 만나러 가? 진심으론, 계집질 하러 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요.
귀찮다는 듯이 아 맘대로 생각해, 하더라구요. 도박 아니면 여자 아니야? 그럼 여자 만난다고 생각해도 돼? 맘대로 하라고! 알았어. 여자 만난다고 생각할게.
더러워.
한 마디 하고 갔습니다. 정말 더러웠으니까요. 도박이든 여자든, 그 사람 자체가.
뭐에 미쳐서 그 말에 반응도 안 하는건지, 가려고 참는건진 모르겠지만 그것도 너무 우스웠습니다.
제가 집에서 남자를 따라 나간 뒤로 어머니에게 계속 전화가 왔었지만 처음 한두번만 잠깐 나갔다 오는 거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고, 계속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받고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화가 났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 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어머니는, 이혼은 나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용기도 없고 니 애비가 거리에 나앉아서 거지될까봐 못하겠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나와서 살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것은 예전부터 마찬가지였지만요. 그래서 남자에게 방 구해지는 대로 나간다고 한 거고, 반신반의한 남자가 농을 뒤져서 어떻게든 돈을 끌어 모으려는 거였습니다. 도박에도 미쳤지만. 한마디로 막장 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인거죠..
저는 아직 어립니다. 법에 대해서도 모르고, 인터넷으로 뒤져봐도 정확한 설명은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상담을 해야 하는데 무작정 찾아가는 것 보다는 미리 알아놔야 할 것 같고, 증거도 있어야 나중에 어머니에게 유리하게 판정이 가서 집이나 가구 모두, 그리고 피해보상금 까지 뜯고 싶은데 (어머니는 전세금도 남자에게 주고 그냥 나오고만 싶다고 하셨지만 저는 피땀 흘려 모은 돈 그렇게 절대 못 합니다.) 증거도 못 잡고. 아니 솔직히 이 집 재산만 그냥 받고 싶습니다. 그 외의 돈은 바라지도 않을 욕심일 뿐이지요..
그렇다고 때려달라고 하면서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고. 얼마 전에도 말리다가 뺨 두 대를 맞고 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증거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루 이틀 맞은 것도 아니고..
어린 애가 찾아가는 거라고 제대로 안 해줄 것도 같고 돈도 바가지 씌울 것도 같고.. 이래저래 무지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남자를 따라가서 증거를 잡으려다가 실패하면서 오는 길에도, 나쁜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전부터 그랬지만, 칼 들고 남자 앞에서 손목을 그어볼까, 그러나 그건 너무 극단적이고 누가 보면 연민도 갖다 주지 못할 멍청한 행동이기에, 그냥 죽이면 될 거 같은데, 내가 남자 죽이고 감옥 들어가서 평생 썩어도 그렇게 하면 응어리 하나는 풀릴 것 같은데..
엄마는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내 입장에선 그게 최선인 것 같고, 내 인생보다 어머니 인생을 놓게 해주고 싶고.. 이런 말 하면 다들, 자기 낳아준 아비 죽이고 감옥 간 딸 두고 어떻게 편히 살겠냐 하시겠지만 제 입장에선 이미 그게 최선인 것 같아요. 그냥 죽이면 끝나는 거. 아니면 나 죽고 다 죽을까. 불 지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응급실 실려 갈까..그러나 그 상황에서마저도 어머니에게 모든 죄와 책임을 떠밀 남자를 생각하니 못하겠고..
지난 몇 번간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을 하고, 죽일 생각을 하고, 가끔은 아무렇지도 않다가 남자가 나의 심장에 칼을 꽂는 상상이 갑자기 나서,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립니다.
숨 쉬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점점 더 힘들어질까봐, 하는 나약한 변명도 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생각하자 해서 지금 이 글을 올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와 싸우거나 이런 난리들이 나면, 불과 이틀 전쯤에도 난리 나고.. (남자에게 뺨 두 대 맞은 날에) 앉아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기만 하니까 어머니께서 돌부처처럼 울지만 말고 그만 울고 눈물 그치라고.. 너가 그러면 엄마는 어떡하냐고.. 그렇게 세 번을 방을 들어와서 위로해주시다가 문 닫고 나면, 문 앞에서 아직도 제가 우는지 확인하는 엄마.. 이제는 웬만해선 폭력 안 쓰려고 노력하는 엄마. 아니, 사실은 이젠 제가 너무 많이 커서 무섭답니다. 옛날같이 맞기만 하지 않고 막으니까. 표독스럽고 독하다고 하더군요..
엄마한테 못된 말 하고 나서 계속 밤마다 아는 언니와 통화하면서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고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는 자식이 너무 한심하고, 내가 아닌 다른 딸이었으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하고 자책하고 그냥 계속 눈물만 나왔어요. 그 착한 언니는, 너는 네가 어머니께 늘 부족하게 대하고 잘 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모자른 딸 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네가 길 가다가 저거 우리 엄마한테 어울리겠다, 사주고싶다, 이런 말 하는 걸 보면 참 대견하고 어른스럽다고. 한참 나이 많은 나도 그런 생각 못하고, 솔직히 내가 네 상황이라면(힘들 때 이런 저런 얘길 해서 적당히 저의 상황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렇게 못 한다고..
그러면서도 저는 이기적이게도, 나는 아직 20살인데 마지막으로 온화하고 인자한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고.. 나도 사랑받고 살고 싶다고.. 엄마가 날 사랑하는 거 알지만.. 맨 정신으로.. 똑바른 정신으로.. 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저도 알아요, 대부분 갖고 있는 애정결핍에서 더 심하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욱 하게 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꼭 내가 고통 받는 모습 같으니까 더 그렇게 되는 거 같고.. 성격 장애가 생기고, 심해지고.. 트러블 메이커가 돼 가고..
어머니께서 2,3년 전 쯤에 저를 심하게 때리시고 기억을 못하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한 번은 일주일 정도 금주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정말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정말 딴 사람처럼, 이리와서 티비 봐, 엄마랑 같이 티비 보자.. 했던 그 모습이 너무 그리운거에요.. 처음부터 엄마가 무섭고 독한 사람이었으면 그립지나 않았을 텐데.. 원래 엄마의 모습을 너무 잘아니까.. 이렇게 만든 남자가 너무 싫고 밉고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되고..
제가 이 상황에서 바라는 도움이 너무나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응원도 너무 감사하지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법 쪽에 대해서 잘 하는 분과의 상담, 저의 집 같이 협의이혼이 안 되고, 어머니 혼자(제가 같이) 서류 준비를 다 해서 남자 앞에 딱 내놓고 도장만 찍으면 이혼이 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줄 분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어머니 일 다니시는 게 방해되지 않게..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언제 또 사채를 쓸지 모르고 또 피땀 흘린 돈 그것으로 퍼부어어야 하고 또 돈 달라고 하고 또 때리고 악몽이 시작되고 환청이 들리고..
집에서 음악도 못 들어요, 술 취하고 스트레스 받은 어머니께서 또 저를 부르고, 그걸 못 들으면 맞아야 하니까.. 그러다가 환청이 생겼습니다. 가만있다가도 불렀어? 하고 물어보는 저. 병신 같은..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자기연민적인 말들을 너무 많이 늘어놓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냥 적당히 힘든가보네, 인터넷 찾아보면 이혼 서류 필요한 거 나옵니다, 하는 답변들만 달릴까 봐 긴 얘기를 그나마 간략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아직도 억울하고 못 다한 얘기들이 너무 많지만..
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시거나 상담 해 주실 분에게 도움 받고 싶습니다.
무료로 해달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갚을 수 있고, 갚을 거고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속 까지 할 수 있고 사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간이 거의 다 망가져서 매일 헛구역질에 장기능도 거의 없어지고 약에 의존하며 밥은 둘째 치고 음식은 거의 먹지도 않고 술만 먹고 사는 우리 엄마.. 내가 조금만 마시라고 건강 좀 챙기라고 해도 이러다가 죽어 버릴거라고, 내가 벌써부터 혼자 되는 상상을 하게 하는 엄마.. 이 상황에서도 엄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만 하는 나..
술에 절어서 150정도 되는 키에 36,37키로 나가는 비쩍 마른, 오직 일만을 해왔다는 듯이 말해주는 몸에 술로만 채워진 우리 엄마와 저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도와주고 구원해주실 분... 제발 도와주세요.
신을 믿지 않는 제가, 늘 울면서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밤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도록.. 밤새 싸우고 울어서 퉁퉁 부운 눈에 어디도 나가지 못하는 어머니와 저를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단 한 분만이라도.. 절실하게 부탁드립니다. 글이라서 딱딱하게 보이고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내가 힘들고 우리 가정이 이렇다 하고 구구절절 썼다고만 느끼실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살고 싶어서 부탁드립니다. 사람답게, 저는 아직 어리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라도 제가 무슨 일을 다 해서라도 살게 해주고 싶어요, 사람답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너무..순서없게 구걸하듯이 글을 썼나요.. 부들부들 떨면서 정신없게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이 글에 혹시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시거나 안 좋아진 분이 계신다면 미리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이제 날씨도 곧 추워지는데.. 다들 옷 따듯하게 입고 다니시길 바랄게요..
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고.. (욕 나오는 게)당연한 거지만, 무조건적인 남자에 대한 욕은.. 댓글로는 남겨주지 마세요.. 무조건 욕만 하시는 거라면..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모두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한 겨울에도.. 서로의 사랑에 따듯해지는, 그런 겨울 나시길 바랄게요. 너무 이르지만, 크리스마스도 잘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조금 어이없게 인사드리며 글 마치지만.. 다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