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1.하늘의 계시록 ⑴

개마기사단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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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성왕(皺牟聖王) 고주몽(高朱蒙)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한 연도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 가운데 북한의 김은택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강좌장 박사 부교수의 주장이 가장 신빙성이 높다.《위서(魏書)》·《북사(北史)》의 내용 중에 전한(前漢) 건국 기원전 206년 이전에 이미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되고《구당서(舊唐書)》에는 시어사 가언충(賈言忠)이 668년 제3차 여당전쟁(麗唐戰爭) 때에 전황을 당황(唐皇) 고종(高宗)에게 보고한 말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는 약 9백년 동안 존속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중심의 역사관으로 서술된『삼국사기(三國史記)』는 출처도 불분명히 고구려가 건국한지 705년만에 망했다고 기록했다.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됐다는 기록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고구려와 백제의 중반기 이전의 삼국사기 기록은 객관성이 결여된 모순 투성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신라 중심의 역사관으로 서술된 김부식(金富軾)·최산보(崔山甫)·김영온(金永溫)·정습명(鄭襲明)·김충효(金忠孝) 등의『삼국사기』는 학계에서 재검토됨이 옳다고 본다.

 

분명한 모순은「광개토호태왕릉비(廣開土好太王陵碑)」에 의하면 시조(始祖)인 추모성왕으로부터 19세손으로 되어 있는데도『삼국사기』는 유일하게 13세손으로 되어 있으니 모든 객관적인 정황을 볼 때『삼국사기』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군주(英雄君主)이고 고구려 왕국을 4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정복전쟁(征服戰爭)의 대지존(大至尊)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께서는 고국원왕(故國原王) 사유(斯由)의 둘째 아들이며 소수림왕(小獸林王) 구부(丘夫)의 아우인 고국양왕(故國壤王) 이련(伊連)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서기 374년 국내성(國內城)의 낙조(落照) 때 갑자기 붉은 용이 나타나 왕제(王弟) 이련의 집 위를 광풍을 일으키며 여러 바퀴 돌고서 승천하더니 잠시 후 이련의 장자인 담덕(談德)이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난 것이다.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에서는 귀인의 탄생을 경축하는 많은 백성들이 이련의 집 앞에 찾아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또한 백두산(白頭山)이 폭음을 울리며 담덕 왕자의 탄생을 천하에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384년에 후사가 없이 죽은 소수림왕의 유언에 따라 이련이 조정의 추대를 받아 고구려 제18대 제왕인 고국양왕으로 등극하는데 이 때는 대륙의 세력 판도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고국양왕의 즉위 시기와 비슷하게 전연(前燕) 문명제(文明帝) 모용황(慕容皝)의 다섯번째 아들이자 전진(前秦) 세조(世祖) 부견(苻堅)의 신하였던 모용수(慕容垂)가 적빈(翟斌)의 정령족(丁零族) 군대를 자기 휘하에 흡수하여 전진에서 독립하고 후연(後燕)을 건국하였다. 후연은 세력 확장을 위해 하북과 요서 지역을 압박했는데 자연히 후연과의 대립 상태가 불가피해지고, 백제 또한 이 기회를 노려 요서 지역으로 진출을 꾀했다.

 

후연을 건국한 성무제(成武帝) 모용수는 고구려의 소수림왕이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틈을 타 군대를 보내 유주와 기주 지역을 점령하게 하였다. 따라서 요수 주변의 영향력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던 두 나라는 심각한 전운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때 담덕 왕자는 5세 때부터 조의선인(早衣先人)들과 함께 5년 동안 무예를 닦고 병법을 배웠으며 태학(太學)의 학자들과도 많은 친분을 맺었다.

 

담덕 왕자가 조의선인들과 함께 동부여의 목단강(牧丹江) 부근에서 사냥을 하던 중에 날이 저물었음 어느 초막에서 선비 한 사람을 만났다. 척 보기에도 그의 인물됨이 범상치 않음을 담덕 왕자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턱수염이 점잖게 보이도록 길러져 인상이 너그러워 보였으며 학문과 높은 기상이 한눈에 보였기에 담덕은 단번에 그에게 빨려들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선비는 안광 또한 매우 빛났다. 담덕이 “몇 사람이지만 하룻밤 신세를 좀 질까 해서 왔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청했더니 담덕 왕자를 유심히 살피던 선비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단순한 사냥꾼들은 아닌 듯하니 어려워 말고 들어오시오.”

 

“참으로 고맙습니다. 어르신.”

 

담덕 왕자는 방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방 한칸에 여러가지 병장기며 병서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장기들이 있는 걸 보니 선비께서는 사냥도 하시나 봅니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서 운둔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질도 하고 시간이 나면 서책을 뒤적이는 게 낙이 되었소이다.”

 

담덕 왕자는 그 많은 책들의 내용이 선비의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선비를 세상에 끌어 내면 그의 학식과 견문이 후일에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더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많은 책들이 큰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어.’

 

고구려의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전쟁의 신 치우천왕(蚩尤天王)께서 자신이 도모하는 큰 일에 큰 도움을 주려고 이끌어 주신 현인(賢人)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피곤도 잊고 새삼스럽게 용기도 생겼다.

 

“문약한 제가 그저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옛 성현의 진리가 책 속에서 있으니 어르신의 큰 지혜를 짐작할 수 있겠나이다.”

 

담덕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선비에 대한 존경심이 뜨거운 가슴 속에 용트림하는 걸 느꼈다.

 

“허어! 과찬이오. 초로에 묻혀 사는 중년의 사내일뿐이외다. 배가 고플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하늘이 점지했는지 뜻밖에도 오늘 멧돼지 한 마리를 포획했으니 저녁상이 풍성할 것 같군요.”

 

겸손하고 기품이 있으며 당당하고 서글서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까마득한 연장자가 손님 대접을 한다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며 말도 높여서 하는 걸 보자 담덕과 조의선인 동료들은 손님이랍시고 엉덩이를 붙이고만 있을 수 없어 모두 밖으로 나가 음식 장만하는 일을 도왔다.

 

얼마 후,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차려진 주안상 주위에 주인과 객들이 둘러앉았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명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덧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된 것 같은 친분도 생겼다.

 

담덕 왕자는 드디어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는 자기가 앞으로 도모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소상히 얘기했다. 조용히 담덕의 얘기를 듣던 선비가 입을 열었다.

 

“첫눈에 공자는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니라고 느꼈소. 하지만 공자가 태왕 폐하의 친조카이자 이련 왕제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오. 공자께서 도모하고자 하는 일은 하늘의 뜻을 가름할 수 있는 자만이 이룩해낼 수 있는 위대한 과업이기도 하지요. 세상에는 하늘의 뜻으로 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이 구분되어 있소. 인간이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은 하늘의 뜻을 빌리기 전까지는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오. 공자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불굴의 의지만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병법은 지혜와 힘으로 이루어지는데 따지고 보면 지혜도 힘의 범주에 속하는 것. 무형이 유형을 만드는 영혼의 힘 말이오. 가장 큰 힘은 지혜와 덕망과 용기의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담덕 왕자가 입을 열었다.

 

“하늘의 뜻은 사명을 띤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저의 신분에 개의치 마시고, 저와 저를 따르는 형제들의 스승이 되어 주실 수 없겠는지요? 목숨을 걸고 뜻을 이룰 것을 맹세하오니 어르신께서는 부디 저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담덕 왕자는 이 선비만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일을 도모하는데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속세를 등지고 서책이나 뒤적인 탓에 입만 살았을 뿐인 사람이오. 그런 나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짐작했던 것처럼 선비는 순순히 응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담덕 왕자는 그 정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어르신께서는 지나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고 계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어느 지인보다도 훌륭하신 분입니다. 일국의 장래가 걸린 일이오니 부다 저의 청을 가벼이 여기지 마소서.”

 

“뜻은 고마우나 이미 초야에 뼈를 묻기로 한 몸, 세상에 나가지 않기로 맹세했소이다.”

 

그처럼 완강하게 고사함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담덕 왕자는 문득 생각했다. 그 때 일행 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연살타(淵薩陀)가 나서며 거들었다.

 

“소인이 나설 일은 아닌 줄 아오나, 어르신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여기 왕자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는 모두 전쟁으로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하늘이 보우해 모두 조의선인이 되어 다소의 무예를 나름대로 익혔습니다. 또한 수련을 하면서 담덕 왕자님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백성들을 아끼는 큰 뜻을 듣고서 감복되어 모시고서 목숨 걸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훌륭하신 어른께서 무슨 연유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업을 사양만 하시는지 납득할 수 없군요.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그만한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비가 애써서 고뇌를 감추며 입을 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오. 사연을 얘기할 수는 없소만 이 사람이 바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오. 그러니 공자께서는 삼가 청을 거두어 주시기 바라오이다.”

 

의문 투성이의 사나이였다. 담덕은 일단 한 걸음 물러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비에게 너무나 성급하게 청한 감이 다소 없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르신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어른과 저의 사명이 합일될 수 있고 없고는 하늘의 뜻이 가려 줄 것이라 믿습니다.”

 

연살타에게 넌지시 눈짓을 보낸 뒤 초가집에서 나온 담덕 왕자는 바람이 울어대는 초겨울 들판의 한가운데로 말을 몰아갔다. 영롱한 별빛이 밤바람을 가르는 대자연 속을 향해 말을 달리면서 담덕 왕자는 생각했다.

 

‘천손(天孫)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떠한 것인지 나는 지금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나는 장차 여러 목숨을 거느리는 위대한 통솔자가 되어야 한다. 싸움 역시 피할 수 없는 나의 숙명이 될 것이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진다는 것은 치욕이요, 굴복이기 때문이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으나 대고구려의 왕자 신분인 나 담덕은 한땅(한반도)를 경락하고 바다 건너 왜국까지 제압한 뒤 중원 대륙을 넘어 서역까지 대해동제국(大海東帝國)을 건설하리라. 이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는 야욕이 아니라 우리 고구려 백성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담덕 왕자는 말과 함께 목단강 물에 목을 축이며 큰 의미의 섭리 하나를 깨달았다. ‘생명이 있는 곳에 물이 있기에 다른 생명들이 모이는 것이다‘라고…….

 

먼동이 훤히 밝아서야 초가집으로 돌아온 담덕은 이 신비로운 선비 하무지(河茂祉)와 담판 끝에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담덕 왕자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하무지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다. 둘째, 형편에 따라 하무지가 군사 훈련에 도움을 준다. 셋째, 담덕 왕자의 휘하에게는 언제든지 자문에 응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당당함과 여유를 잃지 마십시오. 왕자님!”

 

“예, 명심하겠습니다.”

 

담덕 왕자는 대답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조의선인(早衣先人)은 고구려의 전통적인 종교 무사 집단이다. 고구려의 각 부족이 구별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종교 의식과 숭배하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각 부족에서는 모두 조의선인을 두어 종교 의식을 담당하게 했는데 그들은 평소에도 자기 부족의 영토를 떠돌면서 신에게 제사지내고 심신을 수련했다. 그러다가 외침(外侵)을 받거나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사태가 발생하면 평소에 익힌 무술과 전술, 그리고 단결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구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고구려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