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당신에게 예수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다들 예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야 한다고 하죠. 예수가 필요하다고, 예수를 믿어야만 한다고, 당신에겐 예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왜죠? 왜? 도대체 왜? “왜 예수가 내게 필요한거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가 내게 필요하지?” - 나는 맥주를 원하고, 나는 배우자를 원하고, 나는 돈이 필요하고, 나는 때론 직장도 공부도 원하지, 나는 친구도 원하지만, 나는 예수를 원치는 않잖아! 왜 예수가 내게 필요한가? 왜 예수가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죠. 어떤 창녀가 있었습니다. 지독하게도 창녀였죠. 그녀는 미친듯이 벌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창녀짓을 하는 것에 대하여서 법률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세력들이 그녀를 붙잡았죠. 그녀를 붙잡아온 세력들이 우두머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 할까요?” “응? 놔줘” “예? 뭐라고요?” “놔줘, 지금 차에 태워서 집에다 데려다줘” 당신이 희안하게 생각할지라도 상관없이 그녀는 용서를 받아버렸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사람을 찔렀습니다. 독방에 갇혔지요. 그는 홀로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무참히 살해했지요. 그는 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사람살려요!’ ‘누구없어요?’” “나는 다시 잔혹하게 그를 찔렀습니다. ‘아아!’ ‘아아아!’ 그리고 또 찔렀습니다.” “아아, 나는 그를 무참히 살해해버렸습니다. 나는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지구상을 보면 이런 예가 당신 콧구멍의 코털보다 천배는 많을지도 모르지만, 3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4차원으로 생각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회의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 가능할지도요. ‘그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좋은 사람을 보내주어 만나도록 하죠’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하늘의 사랑을 부어주죠, 그리고 지속하도록 해요’ 그는 참으로 무참히 용서받았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엔 창녀가 있지 못할 것이요, 남색자가 있지 못할 것이라’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말씀하죠. 창녀짓을 하다가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걸려서 돌에 맞아 죽게 생긴 그녀에게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예수가 말이죠. 자기 죄로 말미암아 병에 걸렸던 병자를 예수는 고쳐버렸습니다. 정말 더러운 죄죠, 혐오스러운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법률과 율법과 사회적 시선과 질타와... 다 올바른 것 아닙니까? 공의는 하나님 나라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사이에서 진노와 형벌 대신 용서를 줘버렸습니다. 왜 이런 자들에게까지 용서가 필요합니까? 아무도 용서받지 않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누구라도 형벌대신 용서를 원합니다. 당신에게도 그렇다면 예수가 필요하죠.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휴거 되지 않기를 원치 않죠. 누구라도 들림받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남겨지지 않기를 원하죠. 그래서 예수와 함께 나아감이 필요합니다. 21
+ 당신에게 예수가 왜 필요한가 +
사람들이 당신에게 예수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다들 예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야 한다고 하죠.
예수가 필요하다고, 예수를 믿어야만 한다고, 당신에겐 예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왜죠? 왜? 도대체 왜? “왜 예수가 내게 필요한거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가 내게 필요하지?”
- 나는 맥주를 원하고, 나는 배우자를 원하고, 나는 돈이 필요하고, 나는 때론 직장도 공부도 원하지, 나는 친구도 원하지만, 나는 예수를 원치는 않잖아! 왜 예수가 내게 필요한가?
왜 예수가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죠.
어떤 창녀가 있었습니다. 지독하게도 창녀였죠. 그녀는 미친듯이 벌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창녀짓을 하는 것에 대하여서 법률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세력들이
그녀를 붙잡았죠. 그녀를 붙잡아온 세력들이 우두머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 할까요?”
“응? 놔줘”
“예? 뭐라고요?”
“놔줘, 지금 차에 태워서 집에다 데려다줘”
당신이 희안하게 생각할지라도 상관없이 그녀는 용서를 받아버렸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사람을 찔렀습니다.
독방에 갇혔지요. 그는 홀로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무참히 살해했지요. 그는 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사람살려요!’ ‘누구없어요?’”
“나는 다시 잔혹하게 그를 찔렀습니다. ‘아아!’ ‘아아아!’ 그리고 또 찔렀습니다.”
“아아, 나는 그를 무참히 살해해버렸습니다. 나는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지구상을 보면 이런 예가 당신 콧구멍의 코털보다 천배는 많을지도 모르지만, 3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4차원으로 생각하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회의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 가능할지도요.
‘그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좋은 사람을 보내주어 만나도록 하죠’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하늘의 사랑을 부어주죠, 그리고 지속하도록 해요’
그는 참으로 무참히 용서받았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엔 창녀가 있지 못할 것이요, 남색자가 있지 못할 것이라’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말씀하죠.
창녀짓을 하다가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걸려서 돌에 맞아 죽게 생긴 그녀에게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예수가 말이죠.
자기 죄로 말미암아 병에 걸렸던 병자를 예수는 고쳐버렸습니다. 정말 더러운 죄죠, 혐오스러운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법률과 율법과 사회적 시선과 질타와... 다 올바른 것 아닙니까?
공의는 하나님 나라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사이에서 진노와 형벌 대신 용서를 줘버렸습니다.
왜 이런 자들에게까지 용서가 필요합니까?
아무도 용서받지 않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누구라도 형벌대신 용서를 원합니다.
당신에게도 그렇다면 예수가 필요하죠.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휴거 되지 않기를 원치 않죠.
누구라도 들림받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남겨지지 않기를 원하죠.
그래서 예수와 함께 나아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