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이 종교생활을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과학을 믿는 편이 훨씬 자신에게 정직하고 옳은 일이 아닐까요?
1.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꾸 교회 가라고 하는데, 도저히 도무지 도대체 못 참겠어요!’
‘목사님이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는데,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더군요’
그러므로, 성경을 믿어야 하죠. 기독교인보다 말입니다!
당신도 성경을 알고 싶으신 것이지 않습니까?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19,20
하나님이 한 분이신줄 아십니까? 마지막 심판 때 지옥 맨 밑바닥에 던져져 영원히 가두어질 마귀 사탄 귀신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믿는다고 하더라도, 혹은 아주 핵심적인 구원에 필요한 진리들을 완벽하게 믿는다고 하더라도, 행함이 함께 있지 않으면 결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한 내용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죽고 나서야 알게 된다면 굉장히 유감이겠지요.
2.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시는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된 것이라야 한다.
기독교회 지도자들 가운데서 몇몇은 사람의 일생엔 신께서 시험하시는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을 PASS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성경의 여러구절을 바탕으로 주장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12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7-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특히 신약성서의 구절들의 인간을 향한 관점은, 전인격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와 새롭게 됨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온전함을 추구하고, 흠도 없고 점도 없게 되기까지 보존되며 자라가기를 명하고, 권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신다고 설명하지요.
3.아브라함의 예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첩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지요.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세기 15:3,4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5,6
상상이 가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함께 별을 보면서 이렇게 멋있는 약속을 해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고! 뜨겁고! 흥분되고! 좌우지간 감동적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세기 17:1-5
그의 아내 사라는 사래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요.
둘 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이름입니다. 아브라함, 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16
이렇게 약속을 통하여서 난 자가 바로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창세기 21:5
그런데, 이 약속의 자녀, ‘이삭’을 여호와께서는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1,2
번제로요! 번제는,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깔고, 그 위에 양이나 소 등의 정해진 짐승을 잡아서 칼로 각을 떠놓고 거기에 불을 붙여서 그 연기를 하늘위로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놀랍게도 이 명령에, 고민하지도, 늦추지도, 다른 사람들과 상담하지도 않고
아브라함은 곧장 순종하여 직행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22: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이삭을 진짜 바치는가 안 바치는가 까지 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9-12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이삭을 제단 위에 묶어 올린 후에 잡으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아주 급하게, 황급하게 소리친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곳엔 이삭 대신 숫양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세기22:13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단순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축복과 언약의 확고케 됨이었습니다.
‘인신 제사를 어떻게 드리나?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인가?’
‘처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상반되지 않나? 이삭을 통해서 번성을 주신다더니, 이삭을 바치라니?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단언컨대,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일을 중지시킨 하늘로서의 음성을 듣고서, ‘아 다행이다 이삭아 지금 풀어줄게, 괜찮니?’ 한 것이 아니라, 곧 눈을 들어 “하나님께 번제할 숫양”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번제 드리고 나서 말하길, ‘이삭을 돌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4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일에 관하여서 준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중심’엔 오직 “하나님 한분”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판단과, 신경과, 정신의 집중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께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오, 내게 맡겨진 수많은 사명과 임무들이여!”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구나” “이 정도의 의무이행이면 됐어 이제 그만” 심지어, “적당히 즐기기도 해야 하고요!” 이런 식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겉과 속과 내면과 판단과 모든 시각과 바라봄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고, 하나님 한분만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집중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실에 대하여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1-24
그리고,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17-19
신약성경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자신의 지, 정, 의를 다하여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하여서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과 태도와 의도를 향하여야 합니다.
4.예수님의 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 4:1,2
마태복음 4장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11
시험의 내용을 잘 보시면, 첫째 육체적 배고픔에 대한 것, 둘째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에 관한 것, 셋째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사탄을 섬길 것이냐에 관한 것이지요.
첫째 시험을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시자, 마귀도 둘째 시험엔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서 미혹하려 합니다. 그러자, 다시금, 예수께서도 기록된 말씀으로서 물리치시지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함 있는 믿음”에 굳건하게 서서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위하여서 교육받고 인도함을 받다보니,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고, ‘교회의 뜻’이라면 순종하며, ‘목회자의 지도’라면 따라가는데, 정작 “말씀에 대하여서 아는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만남과 여러 가지 사역들로 인해 바쁘겠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기도하며, 예배에 참여하고, 갖가지 봉사에 시간을 사용하지요.
정작, 비그리스도인들로서 성경을 읽고 여러 가지로 신에 대하여서 논증하는 사람들은 굉장하게 디테일한 성경지식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삶과 복종의 의지”를 갖고 살아간 사람과, “하나님에 관하여서 알고는 있으되 순종치는 아니한 삶”의 사람 둘 중 누가 과연 하나님의 의롭다 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헌금함에 돈을 넣는 무리들 중에서, 모두들 풍족한 중에 넣었지만 자기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넣은 사람이 가장 많이 넣었다고 증거하셨습니다.
또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는, “당신이 낙원에 이를 때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라는 말 한마디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약속을 받게 되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성경은, 자기 스스로 개인적으로 열정을 갖고 독파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성경 말씀을 확실하고 자세하게 잘 알아야, 한 쪽으로 치우친 일들에 관하여서 바른 분별을 할 수가 있고, 또, 성경을 잘못해석하거나 잘못 가르치는 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고, 마귀는 예수님께 시험할 때도, 성경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사용함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아니하는 것이었기에 예수께서는 또 다른 성경말씀으로, 그 마귀의 것보다 더 윗 범주에서 방향을 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내용의 성경구절로서 시험을 물리치신 것이지요!
마귀가 사용했던 성경구절, 그것은 분명 말씀구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시키고 지옥에 가게 하는 마귀의 목적을 위하여서 사용한 것이었으며, 그 방향은 하나님의 뜻과 상충하는 일이었지요!
성경 전체를 참으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교회나 종교 지도자만을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들을 자기 자신이 직접 읽은 성경보다 신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계속 읽어야 하지요. 성경 전체가 제시하는 방향을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에 관한 것과, 하나님께 속하는 일에 관하여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생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예수님께 하였던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은, ‘사탄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라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사탄을 통하여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누릴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굉장하게 공격적이고 유명한 선교단체의 한국 지부 창설자께서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에 관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행함있는 믿음의 중요성
종교생활을 왜 합니까?
당신이 정치인이 아니라면, 영생을 얻기 위하여서 하는 것일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이 종교생활을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과학을 믿는 편이 훨씬 자신에게 정직하고 옳은 일이 아닐까요?
1.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꾸 교회 가라고 하는데, 도저히 도무지 도대체 못 참겠어요!’
‘목사님이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는데,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더군요’
그러므로, 성경을 믿어야 하죠. 기독교인보다 말입니다!
당신도 성경을 알고 싶으신 것이지 않습니까?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19,20
하나님이 한 분이신줄 아십니까? 마지막 심판 때 지옥 맨 밑바닥에 던져져 영원히 가두어질 마귀 사탄 귀신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믿는다고 하더라도, 혹은 아주 핵심적인 구원에 필요한 진리들을 완벽하게 믿는다고 하더라도, 행함이 함께 있지 않으면 결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한 내용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죽고 나서야 알게 된다면 굉장히 유감이겠지요.
2.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시는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된 것이라야 한다.
기독교회 지도자들 가운데서 몇몇은 사람의 일생엔 신께서 시험하시는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을 PASS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성경의 여러구절을 바탕으로 주장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12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7-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특히 신약성서의 구절들의 인간을 향한 관점은, 전인격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와 새롭게 됨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온전함을 추구하고, 흠도 없고 점도 없게 되기까지 보존되며 자라가기를 명하고, 권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신다고 설명하지요.
3.아브라함의 예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첩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지요.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세기 15:3,4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5,6
상상이 가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함께 별을 보면서 이렇게 멋있는 약속을 해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고! 뜨겁고! 흥분되고! 좌우지간 감동적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세기 17:1-5
그의 아내 사라는 사래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요.
둘 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이름입니다. 아브라함, 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16
이렇게 약속을 통하여서 난 자가 바로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창세기 21:5
그런데, 이 약속의 자녀, ‘이삭’을 여호와께서는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1,2
번제로요! 번제는,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깔고, 그 위에 양이나 소 등의 정해진 짐승을 잡아서 칼로 각을 떠놓고 거기에 불을 붙여서 그 연기를 하늘위로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놀랍게도 이 명령에, 고민하지도, 늦추지도, 다른 사람들과 상담하지도 않고
아브라함은 곧장 순종하여 직행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22: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이삭을 진짜 바치는가 안 바치는가 까지 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9-12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이삭을 제단 위에 묶어 올린 후에 잡으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아주 급하게, 황급하게 소리친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곳엔 이삭 대신 숫양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세기22:13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단순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축복과 언약의 확고케 됨이었습니다.
‘인신 제사를 어떻게 드리나?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인가?’
‘처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상반되지 않나? 이삭을 통해서 번성을 주신다더니, 이삭을 바치라니?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단언컨대,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일을 중지시킨 하늘로서의 음성을 듣고서, ‘아 다행이다 이삭아 지금 풀어줄게, 괜찮니?’ 한 것이 아니라, 곧 눈을 들어 “하나님께 번제할 숫양”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번제 드리고 나서 말하길, ‘이삭을 돌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4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일에 관하여서 준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중심’엔 오직 “하나님 한분”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판단과, 신경과, 정신의 집중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께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오, 내게 맡겨진 수많은 사명과 임무들이여!”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구나” “이 정도의 의무이행이면 됐어 이제 그만” 심지어, “적당히 즐기기도 해야 하고요!” 이런 식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겉과 속과 내면과 판단과 모든 시각과 바라봄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고, 하나님 한분만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집중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실에 대하여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1-24
그리고,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17-19
신약성경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자신의 지, 정, 의를 다하여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하여서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과 태도와 의도를 향하여야 합니다.
4.예수님의 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 4:1,2
마태복음 4장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11
시험의 내용을 잘 보시면, 첫째 육체적 배고픔에 대한 것, 둘째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에 관한 것, 셋째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사탄을 섬길 것이냐에 관한 것이지요.
첫째 시험을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시자, 마귀도 둘째 시험엔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서 미혹하려 합니다. 그러자, 다시금, 예수께서도 기록된 말씀으로서 물리치시지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함 있는 믿음”에 굳건하게 서서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위하여서 교육받고 인도함을 받다보니,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고, ‘교회의 뜻’이라면 순종하며, ‘목회자의 지도’라면 따라가는데, 정작 “말씀에 대하여서 아는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만남과 여러 가지 사역들로 인해 바쁘겠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기도하며, 예배에 참여하고, 갖가지 봉사에 시간을 사용하지요.
정작, 비그리스도인들로서 성경을 읽고 여러 가지로 신에 대하여서 논증하는 사람들은 굉장하게 디테일한 성경지식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삶과 복종의 의지”를 갖고 살아간 사람과, “하나님에 관하여서 알고는 있으되 순종치는 아니한 삶”의 사람 둘 중 누가 과연 하나님의 의롭다 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헌금함에 돈을 넣는 무리들 중에서, 모두들 풍족한 중에 넣었지만 자기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넣은 사람이 가장 많이 넣었다고 증거하셨습니다.
또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편 강도는, “당신이 낙원에 이를 때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라는 말 한마디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약속을 받게 되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성경은, 자기 스스로 개인적으로 열정을 갖고 독파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성경 말씀을 확실하고 자세하게 잘 알아야, 한 쪽으로 치우친 일들에 관하여서 바른 분별을 할 수가 있고, 또, 성경을 잘못해석하거나 잘못 가르치는 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짓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고, 마귀는 예수님께 시험할 때도, 성경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사용함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아니하는 것이었기에 예수께서는 또 다른 성경말씀으로, 그 마귀의 것보다 더 윗 범주에서 방향을 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내용의 성경구절로서 시험을 물리치신 것이지요!
마귀가 사용했던 성경구절, 그것은 분명 말씀구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시키고 지옥에 가게 하는 마귀의 목적을 위하여서 사용한 것이었으며, 그 방향은 하나님의 뜻과 상충하는 일이었지요!
성경 전체를 참으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교회나 종교 지도자만을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들을 자기 자신이 직접 읽은 성경보다 신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계속 읽어야 하지요. 성경 전체가 제시하는 방향을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에 관한 것과, 하나님께 속하는 일에 관하여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생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예수님께 하였던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은, ‘사탄을 섬길 것이냐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라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사탄을 통하여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누릴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굉장하게 공격적이고 유명한 선교단체의 한국 지부 창설자께서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에 관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탄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이 당연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