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램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썼던 글. 지금 보면 참 오글오글한 글이다.
사실 여행을 준비하던 그 당시 내 상황은 사실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전방십자인대 수술 후 1년도 안되는 시점이었던지라 무릎상태도 좋지 않았고, 비행기 티켓팅이 이미 되어있는 상황이라 시간 및 장소 제한도 있는데다가, 그 때문에 그동안 머물던 밴쿠버가 아닌 토론토에서 여행을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스키를 타다가 파열된 전방십자인대.
거기에다가 자전거가 취미였기는 하지만, 1주일 이상의 장기여행은 경험 해보지도 못했던 나.
그럼에도 최저예산을 추구한다며, 텐트만으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던 의욕만 앞서던 그때. 지금 생각하면 참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속 마음은 이랬다.
“일단 저질러 보고 못하겠으면 자전거 처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딱 갈 수 있을 만큼만 가보자.”
그리고 3월 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한 여행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북동미 지역과 서유럽, 동유럽을 거쳐 일본까지 총 21개국, 약 18,000km를 완주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 후 한 달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시작 2일만에 혹한으로 원계획을 수정하였고, 부족했던 장비와 나의 체력, 날씨 등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일정에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그저 의욕만 앞서고,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겨우겨우 뉴욕까지 약 2,300 km을 완주하게 된다.
얼어 붙어있던 나이아가라 폭포. 이 장관을 본 나는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남쪽이라고 큰 차이가 없었다. 클리브랜드에서 만난 스노우스톰.
이 과정에서 warmshower.org 라는 자전거 여행자만의 Hospitality 사이트들을 알게 되었고, 카우치서핑등과 병행하여 경비도 절감하고, 현지문화를 체험하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여행이 장기화 될 수록 여행기술과 노하우가 생기며 몸과 마음이 점점 편해져 갔다.
여행 2주정도가 지난 이 시점부터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던 듯 하다.
아마도 미국에서의 25일이 나에게는 엄청난 경험이 되었던 듯 하다. 하루만 더 버텨보자, 달려보자 하며 나를 달래고 달래 뉴욕까지 도착했다. 유럽에 넘어간 후에는 힘든일이 있어도 처음보다는 계속 괜찮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쉽게 쉽게 생각 할 수 있었다.
잘 곳을 못 구하면 메모리얼 파크(공동묘지)가 최고지요. 편안한 밤, 조용한 밤.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미국 발 음모론의 시발점이라는 이야기가 있음.
내 첫번째 웜샤워 호스트 맥스와 마야. 텐덤바이크(2인용 자전거)로 미국 동서횡단을 한 커플이다.
챕터 1의 목적지였던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장. 이 날 밤도 눈이 왔다.
북미쪽에서의 여행은 보고싶은 곳을 보면서 다니는 ‘자전거 여행’이 아닌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자전거’ 여행 이었다. 하지만 유럽으로 넘어가서 부터는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곳을 보는 ‘자전거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이동수단으로써의 자전거, 한계는 분명히 있었기에 보고 싶었지만 못 본 곳도 있고, 생각도 못했지만 멋지던 곳도 있다.
마침 런던에 도착한 날이 대규모 집단 시위가 있던 날이라 볼수있던 재미있던 광경.
하얀 절벽으로 유명한 영국 남부해안 세븐 시스터즈. 침좀 뱉으시던 언덕.
프랑스 Montreuil. 보기에는 운치있지만 전날 밤 텐트가 강풍으로 성벽아래까지 날라갔던 참사가.
기괴하다면 기괴한 에펠탑.
보르도에서 재워주셨던 분들의 추천으로 가본 Dune du Pilat. 처음보는 장관이었다.
스페인 San Sebastian. 이날도 문화유산 위에서 캠핑.
마드리드로 가는 길. 길은 좁았지만 풍경이 정말 예술이었다.
세고비아로 넘어가는 길의 작은 도시 Coca의 성.
돈키호테가 돌진했다는 바로 그 풍차. 왼쪽에 작은 동상이 돈키호테.
이탈리아에서 만난 프랑스 커플 코코와 멜. 여행 중 3번이나 우연히 만나게 되었었다. 거기다 동갑.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처음에는 박물관이 바티칸인줄 알았다.
정말 보고 싶었던 피사의 사탑. 기울어지는 것을 그대로 위로 쌓았다고 한다.
자전거 이고다니다가 포기했던 베네치아. 악몽이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 이때 이미 피부색이 동남아쪽이다.
스위스 진입. 저 뒤에 눈 덮인 산을 보면서 설마 저걸 넘어야 되는 건 아니겠지? 했으나….
결국 2,000m 이상 고개 3개를 넘었다. 여행 중 최고봉 푸르카파스.
여행 중 어떤 나라가 최고였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풍경 쪽의 답이 되어 주던 스위스.
빙하호수 색이 참 묘하던. 이 다운힐에서 시속 82km. 최고속을 기록을 찍었다.
취리히에서 다시 만난 프로 마술사 성효형. 유럽여행 최고의 직업은 예술가들이 아닐까?
지구에서 6번째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이날 자전거로 하루 4개국, 3개의 국경을 통과했다. 스위스-리히텐슈타인-오스트리아-독일
독일은 이렇게 운하가 잘 되어있었다. 네덜란드부터 독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화물선이 다닌다.
가기 전에는 역사가 우리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분단상황 빼고는 일본에 가까웠던 듯 하다.
독일이 유럽에서 저지른 만행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일과 유사하다.
하지만 독일은 일본과는 다르게 역사 왜곡을 하지 않는다. 독일인이라 다른 유럽인들 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히틀러와 나치문양을 그리는 것은 타부라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 2차대전시 모국 독일이 벌였던 만행들이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역사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한다. 그 반면 일본친구들은 서구열강 세력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과 중국을 근대화 시켰다고 교육시키는 판국이니, 피해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 우리도 서울이 반으로 잘라져 있었다면 통일이 빨라지지 않았을까?
정리하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이미 프롤로그라고 하기도 뭐한 상황.
HK 자전거 세계여행 시즌 1 - 프롤로그 1
안녕하세요? 저는 HK라고 합니다.
이번에 여행을 마치고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친구들의 권유에 이곳에도 올려봅니다. 블로그 글을 그대로 복사해 오는 것이라 음슴체를 사용치 못한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루 한편 정도를 목표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이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여행/휴가 카테고리에 올리다가 친구가 거기는 버려진 게시판이라며 이쪽에 올려야 하는 거라는 말에 이사왔씁니다... -.-
현재 이곳과 SLR클럽과 자여사, 5불당 4곳에 글을 올리고 있구요..
프롤로그만 3편 같이 올리고, 내일부터는 몇 일간 2편씩 올려볼께요..
자신과 한 약속이 있기에 반응 시원치 않아도 계속 씁니다 ㅋㅋㅋㅋ
블로그 : http://hk-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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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램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썼던 글. 지금 보면 참 오글오글한 글이다.
사실 여행을 준비하던 그 당시 내 상황은 사실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전방십자인대 수술 후 1년도 안되는 시점이었던지라 무릎상태도 좋지 않았고, 비행기 티켓팅이 이미 되어있는 상황이라 시간 및 장소 제한도 있는데다가, 그 때문에 그동안 머물던 밴쿠버가 아닌 토론토에서 여행을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스키를 타다가 파열된 전방십자인대.
거기에다가 자전거가 취미였기는 하지만, 1주일 이상의 장기여행은 경험 해보지도 못했던 나.
그럼에도 최저예산을 추구한다며, 텐트만으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던 의욕만 앞서던 그때. 지금 생각하면 참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속 마음은 이랬다.
“일단 저질러 보고 못하겠으면 자전거 처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딱 갈 수 있을 만큼만 가보자.”
그리고 3월 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한 여행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북동미 지역과 서유럽, 동유럽을 거쳐 일본까지 총 21개국, 약 18,000km를 완주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 후 한 달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시작 2일만에 혹한으로 원계획을 수정하였고, 부족했던 장비와 나의 체력, 날씨 등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일정에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그저 의욕만 앞서고,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겨우겨우 뉴욕까지 약 2,300 km을 완주하게 된다.
얼어 붙어있던 나이아가라 폭포. 이 장관을 본 나는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남쪽이라고 큰 차이가 없었다. 클리브랜드에서 만난 스노우스톰.
이 과정에서 warmshower.org 라는 자전거 여행자만의 Hospitality 사이트들을 알게 되었고, 카우치서핑등과 병행하여 경비도 절감하고, 현지문화를 체험하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여행이 장기화 될 수록 여행기술과 노하우가 생기며 몸과 마음이 점점 편해져 갔다.
여행 2주정도가 지난 이 시점부터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던 듯 하다.
아마도 미국에서의 25일이 나에게는 엄청난 경험이 되었던 듯 하다. 하루만 더 버텨보자, 달려보자 하며 나를 달래고 달래 뉴욕까지 도착했다. 유럽에 넘어간 후에는 힘든일이 있어도 처음보다는 계속 괜찮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쉽게 쉽게 생각 할 수 있었다.
잘 곳을 못 구하면 메모리얼 파크(공동묘지)가 최고지요. 편안한 밤, 조용한 밤.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미국 발 음모론의 시발점이라는 이야기가 있음.
내 첫번째 웜샤워 호스트 맥스와 마야. 텐덤바이크(2인용 자전거)로 미국 동서횡단을 한 커플이다.
챕터 1의 목적지였던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장. 이 날 밤도 눈이 왔다.
북미쪽에서의 여행은 보고싶은 곳을 보면서 다니는 ‘자전거 여행’이 아닌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자전거’ 여행 이었다. 하지만 유럽으로 넘어가서 부터는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곳을 보는 ‘자전거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이동수단으로써의 자전거, 한계는 분명히 있었기에 보고 싶었지만 못 본 곳도 있고, 생각도 못했지만 멋지던 곳도 있다.
마침 런던에 도착한 날이 대규모 집단 시위가 있던 날이라 볼수있던 재미있던 광경.
하얀 절벽으로 유명한 영국 남부해안 세븐 시스터즈. 침좀 뱉으시던 언덕.
프랑스 Montreuil. 보기에는 운치있지만 전날 밤 텐트가 강풍으로 성벽아래까지 날라갔던 참사가.
기괴하다면 기괴한 에펠탑.
보르도에서 재워주셨던 분들의 추천으로 가본 Dune du Pilat. 처음보는 장관이었다.
스페인 San Sebastian. 이날도 문화유산 위에서 캠핑.
마드리드로 가는 길. 길은 좁았지만 풍경이 정말 예술이었다.
세고비아로 넘어가는 길의 작은 도시 Coca의 성.
돈키호테가 돌진했다는 바로 그 풍차. 왼쪽에 작은 동상이 돈키호테.
이탈리아에서 만난 프랑스 커플 코코와 멜. 여행 중 3번이나 우연히 만나게 되었었다. 거기다 동갑.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처음에는 박물관이 바티칸인줄 알았다.
정말 보고 싶었던 피사의 사탑. 기울어지는 것을 그대로 위로 쌓았다고 한다.
자전거 이고다니다가 포기했던 베네치아. 악몽이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 이때 이미 피부색이 동남아쪽이다.
스위스 진입. 저 뒤에 눈 덮인 산을 보면서 설마 저걸 넘어야 되는 건 아니겠지? 했으나….
결국 2,000m 이상 고개 3개를 넘었다. 여행 중 최고봉 푸르카파스.
여행 중 어떤 나라가 최고였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풍경 쪽의 답이 되어 주던 스위스.
빙하호수 색이 참 묘하던. 이 다운힐에서 시속 82km. 최고속을 기록을 찍었다.
취리히에서 다시 만난 프로 마술사 성효형. 유럽여행 최고의 직업은 예술가들이 아닐까?
지구에서 6번째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이날 자전거로 하루 4개국, 3개의 국경을 통과했다. 스위스-리히텐슈타인-오스트리아-독일
독일은 이렇게 운하가 잘 되어있었다. 네덜란드부터 독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화물선이 다닌다.
가기 전에는 역사가 우리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분단상황 빼고는 일본에 가까웠던 듯 하다.
독일이 유럽에서 저지른 만행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일과 유사하다.
하지만 독일은 일본과는 다르게 역사 왜곡을 하지 않는다. 독일인이라 다른 유럽인들 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 히틀러와 나치문양을 그리는 것은 타부라고 한다. 역사 교과서에 2차대전시 모국 독일이 벌였던 만행들이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역사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한다. 그 반면 일본친구들은 서구열강 세력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과 중국을 근대화 시켰다고 교육시키는 판국이니, 피해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 우리도 서울이 반으로 잘라져 있었다면 통일이 빨라지지 않았을까?
정리하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이미 프롤로그라고 하기도 뭐한 상황.
우짰든 프롤로그 2편에서 계속 됩니다.
자전거 세계여행 시즌 1 – 프롤로그 3자전거 세계여행 시즌 1 – 프롤로그 2자전거 세계여행 시즌 1 – 프롤로그 1여행 중간에 썼던 여행 개요 및 중간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