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

오택만201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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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인간에 대하여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가령, ‘예수’가 없으면 생명이 없고,

‘예수’가 있으면, 생명이 있는데, 그 영혼의 본질 자체로부터 변화가 일어나서

거듭나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세상 사람들, 안믿는 사람들과 충돌하는 사람들보다

교회 안에서만, 교인들 사이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온순하고 편벽되지 않고 믿음직하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함을 반복함으로서 죽은 믿음의 영역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냥 그대로 자기가 아는 대로 열심히 살아온 논크리스챤의 인격의 깨끗함의 부분은 분명 차이가 있다.

어떤 부분은 크리스챤이 온전하지만,

어떤 부분은, 아주 순결하고 온전함이 논크리스쳔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 안에 있다.

이는 ‘생명’과 ‘생명없는 것’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믿음’과 ‘양심’의 부분이...예수가 곧 하나님의 보내신 자고, 하나님께 나아감이 예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는 동떨어진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양심’ 선과 직결되는 통로로서 해석될 수 있다면, 역시나 예수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악한 것이다.

악하다는 말로서 표현하기보다는, 생명이 없다는 편이 정확한 교리적 설명이다.

그리고, 논크리스쳔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복음전도자들의 경우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그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권능도 함께 있을뿐만 아니라 말씀과 계시 앞에서의 인격적 순수성도 뛰어나다.

히스기야 왕이 바벨론 사신에게 온갖 궁중의 물품과 무기들을 다 보여주었을 때에,

그렇게 자랑한 것에 대하여서 선지자가 책망한다.

날이 이르리니 궁중의 기물과 성전의 기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바벨론으로 옮겨가고 자손들이 바벨론에 노예로, 환관으로 팔려가리라고 한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놀라운 발언을 하는데, “그렇다면 내 생애에는 평안함이 있으리니 그 말이 좋도다” 한다.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이미 선포된 것이니 어쩔 수 없고, 그러므로 기뻐함으로 감사함으로 그 말씀을 받자’ 아니면, ‘나 자신 세대동안만 평안하면 괜찮다’

자기 자신의 후손 대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하나님 나라” 전체를 바라보는 믿음 안에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갈망함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함께 만날 사람들과, 이 땅에 이루어가는 천국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보는 눈과 마음에 두는 부담감이 있어서, 반드시 후손대에 대하여서도 신앙과 믿음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께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징벌 받은 다음 또 정결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남게 되리니 이는 참으로 좋은 일이다’ 라는 놀라운 믿음을 소유한 자가 히스기야였는지도 모른다.

힐송교회는 예배실황을 굉장하게 많은 DVD와 CD로 판매했다.

또 오늘날에도 기독교회들은 굉장하게 많은 서적들과 기독관련 문화 사업들을 벌이고 있다.

예언자 릭 조이너는, 미국 교회의 목사들에 대하여서 잠깐 설명하기를, ‘교인들이 이사가버리면 헌금을 안낼텐데’라는 말로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 한다고 표현함으로서, 열정적이고 신앙 좋은 목회에 열심인 목회자들의 존재를 일부러 감추어두었다.

그리고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크라이스트처치의 참혹함과 일본 지진을 설명하면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 된다” “하나님은 이 (음란) 죄를 매우 미워하신다” 라는 발언을 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하나님 나라의 무기, 하나님 나라의 각종 실력자들,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

소문내고 퍼트리고 알리려는 것은 어느 정도, ‘현 세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내면이 있다.

그리고 그 동기는, “다음 세대, 후손”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배제되어 있으며,

나아가서는 “천국”을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함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에 대하여서

결여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또한, 세상과 벗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말씀도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무기’를

자랑하는 영향력들을 내는 사람의 내면과 정신들에는 ‘성적인 무감각, 열림’들이 발견된다.

물론 전파함을 위하여서, 오늘날 살아있는 동안의 최선을 위하여서 일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이웃에게 전도하지 않으면서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신학생들의 마음도 아시고, 자기 사업에 열정을 다하면서 선교사역을 지원하지 않는 사업가들의 마음도 아시고, 생명을 향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숨겨야할 부분들에 대한 거침없는 발설과 자랑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 영역’의 문을 스스로 열어젖히는 사람들의 심령도 아신다.

예수님은 비유로 설명하셨고, 제자들에게만 비유를 풀어주셨으며, 외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너희에게만 허락되었다고 말씀하셨다.

Pastor Lee.는 말하길, 천년왕국 시대는 사탄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가두어지므로

사람들이 ‘악’에 미혹되지도 않고 ‘악’한 길로 빠져들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선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선이 참으로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아는 일에 대하여서 잘 모르는 세대가 생긴다고 한다. 그럼으로서, 천년왕국이 끝나고 사탄이 잠깐 놓일 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의 미혹과 술수에 빠져든다고 한다.

가정불화가 심했던 사람들은 가정의 행복을 갖게 되면 잘 지키려 노력하게 되고, 그 소중함을 알기에 최선을 다하며 고귀한 감사를 갖는다.

가난, 질병, 전쟁, 불평등,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땀흘려 수고할 필요도 없고, 온갖 동식물과 과일들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의 한번의 꾀임에 넘어가버린 것은 상대성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있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디어를 통하여서 접한 미국인들 크리스챤들의 모습은 굉장하게 선하고, 순결하고, 악독의 요소가 없게 보인다. 가족애와 용서, 남을 해치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경우, 우상숭배가 국교였던 국가에서 크리스챤들이 살아가고 있고, 이는 여러 가지로 ‘상대성’을 경험하게 한다.

그럼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미국 크리스챤”들보다 사회 전체적인 “분별력, 보는 눈, 분석적 판단력, 선과 악에 대한 확고함”이 더 뛰어난 면들도 있다.

가령, 내면의 일들에 관하여서...

그러나 역시나 한편으론 “마음 자체의 선함”이나 “내면의 의지, 거짓과 진실에 대한 개념”자체가 미국 크리스챤들이 훨씬 뛰어나며, 미국인들이 훨씬 뛰어나다고 본다.

우상숭배는 악이며,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이는 사탄의 요소인 ‘악독’과 관련된 것과 ‘거짓’과 관련된 것이 틈타게 하는 원인이 되며, 이것이 만연한 것과 적은 것, 있는 것과 없는 것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