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가 그렇게 무시 받을 만한 학과인가요.

참..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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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을 친 현역 여고생입니다.

모의고사보다 내신이 훨씬 더 좋아서, (대입 전형을 수시형, 정시형으로 나누는 것도 웃기지만)

저는 일찌감치 상담 받을 때 부터 수시로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었습니다.

학교에서 나름 상위권에 있는 터라 선생님이나 주위 사람들 모두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추천해줬고,

입사, 수시 1차 모두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학과는, 모두 철학과로 지원했어요.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할 때 제가 철학과 가고 싶다니까 의아해하셨죠.

하지만 제가 철학과 가고 싶은 이유를 말씀드리니까 이해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에 가셔서는 '우리 반 어떤 아이는 쭉 다 철학과 찍었어~ 대학 이름 보고 가는 거야~' 

이렇게 말씀을 하고 다니셨답니다.

그래도, 이해했어요. 선생님이시니까.

근데 문제는, 올해의 '미1친 수시' 때문에 입사나 수시 1차가 거진 다 떨어지고,

수능도 논술 치러 갈 수 있을 정도만 나왔다는 겁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전 수시 2차를 써야만 됐어요.

수시 2차... 예전부터 수시 2차와 수시 1차 대학의 등급은 1~2등급 정도 차이가 난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까 정말 1~2등급은 무슨 2~3등급 차이가 나는 느낌이더라구요.

결국 그나마 나은 여대를 쓰려고 하는데, 전 이번에도 역시 철학과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반대를 하시더라구요.

분명 수시 1차나 입사 때는 아무 말씀 안하시고, 오히려

"그래. 철학과 가서 미학 전공해서 엄마는 네가 진중권 같이 글도 쓰고 그랬으면 좋겠어"

라고 하셨던 분이 말이죠.

전, 제가 철학과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엄청나게 반대를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를 응원해주시는 엄마의 저 한 마디가,

학교의 친구들이 "너 전부 다 철학과 쓴다매? 거기 나와서 뭐해?" 라고 물을 때 마다,

선생님이 다른 반에 가서 "우리 반에는 대학 이름 보고 철학과 다 찍어~" 라고 떠벌리실 때 마다

웃으면서, 철학과에 대한 진지한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엄마는 철학과 비전 있는 과라고 몇 번이나 저를 북돋아 주셨어요.

그랬던 엄마가 이번에는 완강히 반대를 하자, 왜 수시 1차 접수 때랑은 태도가 변하였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 접수한 학교의 철학과는 그나마 이름 있는 학교여서 사회 나와도 큰 무리가 없었을 거다.

그래서 네가 아직 사회를 잘 몰라서 마냥 꿈꾸고 있었던 거, 그냥 방해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낮은 대학이고, 여기 철학과 나와서 뭐하겠느냐.

차라리 영어 영문으로 가서 영어 하나라도 확실히 하는 게 네한테 더 좋다.

라고 하시는 거예요.

네.

저희 엄마 말, 하나도 틀린 거 없습니다.

그런데 전 정말 엄마께 죄송하지만, 실망을 했어요..

이전엔 그렇게 철학과 지원해도 좋다고, 제 꿈을 응원해주셨는데......

오늘 저 말을 들으니 정말.. 진심으로 철학과를 좋게 바라보신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엄마가 좋게 바라보신 건..... 그래요. 대학교 타이틀이었던 것 같아요.

 

철학과 나와서, 취업. 정말 안 되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 장밋빛 인생을 꿈꾸고 있는 것. 압니다.

그래도 저는, 철학을 (특히 미학) 공부해, 앞으로 인문학을 통한 IT 디자인.을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물질 만능 주의가 만연해져버린 현대 사회의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연의 감수성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그런 제 꿈에 저는 정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꿈을 다지게 해주었던 한 주축을 상실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판은... 익명의 공간이니까,(그것이 악용되기도 하지만..)

이 시간대에 제 고민을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생각돼서 이렇게 글을 써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계실라나 모르겠는데) 긴 글 읽어주셨는데 감동도 재미도 없어서 죄송해요...

 

지금 그 대학교에 원서 접수하려고 합니다.

과연... 저는 어느 과에 지원해야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