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도압성이 지척이었으므로 진가모는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어둠이 사방을 뒤덮었지만 혹시라도 고구려 군사들의 눈에 띌가봐 횃불을 밝힐 수 없었다. 백제 군사들은 어두운 밤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바람에 갈대가 서로 부딪쳐 사각거리는 소리 사이로 냇물이 자갈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갈대숱 너머에 남천이 흐르고 있었다. 병사들의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까지 더해지자 어느새 가락이 생기고 장단이 맞춰졌다. 진가모를 비롯한 백제군은 가락에 몸을 싣고 경쾌하게 나아갔다.
이때 갑자기 갈대숲이 흔들리며 고구려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불덩어리들이 사방에서 춤췄다. 백제 군사들은 싸울 의욕을 잃고 산불에 쫓기는 짐승처럼 사력을 다해 달아났다. 진가모는 사태를 수습해 보려 했지만 두려움 속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진가모를 본 고구려 군사들이 한여름 밤에 등불을 본 나방들처럼 달려들었다. 진가모는 칼을 휘두르며 버텼지만 점점 불어나는 고구려 군사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가모는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대둔산 방향으로 내뺐다.
고구려군 병사들이 그를 추격하려 하자 아불파연이 껄껄 웃으며 만류했다.
“서두르지 말아라. 저 자는 이미 그물에 걸린 물고기나 다름없다.”
진가모는 대둔산 기슭에 이르러서야 고구려군 병사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돌렸다. 뒤따라온 군사를 수습해보니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진가모는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진가모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청목령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첨에게 낯이 서지 않는 일이었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진가모가 지친 군사들을 독려하여 길을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기겁하여 바라보니 군사들 사이에서 철갑을 두르고 검은 뿔이 달린 투구를 쓴 장수가 기창(旗槍)을 꼬나잡고 앞으로 나왔다.
“나는 고구려의 장수 우나굴이다! 백제의 진가모는 순순히 목을 늘여라!”
우나굴은 낮고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위협하면서 기창으로 진가모를 찔러왔다. 진가모는 보검을 들어 우나굴의 기창을 힘겹게 퉁겨내면서 10합 정도 맞서다가 더 이상 못 당하겠다는 듯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났다. 남겨진 백제 군사들도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 가 뒤쫓아 온 고구려 군사들의 창검(槍劒)에 목숨을 잃었다. 오로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자들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해 전장에서 빠져나온 진가모는 금방이라도 고구려 군사들이 쫓아올 것만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청목령성을 향해 마구 달렸다.
진가모는 많은 군사를 잃고 혼자만 살아서 청목령성으로 돌아왔다.
사첨은 그를 본 순간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목을 베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국왕이 지극히 신임하는 신하였고, 자신에게는 상관이었다. 당장 분을 풀기 위해 그를 벨 수는 없었다.
사첨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눌렀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시오?”
“이번에 당한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고야 말리라!”
진가모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결을 하여도 시원치 않은 판에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사첨의 가슴 속에서 피가 다시 한 번 역류(逆流)했다.
“도성으로 돌아가 어라하(於羅瑕)께 이곳의 위기를 알려주십시오. 저는 목숨을 걸고 저들의 남하를 막아보겠습니다.”
진가모가 떠나자 사첨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벽을 보수하는 한편, 식량을 비축하고 병장기(兵仗器)들을 손질했다. 군사들은 사첨의 명령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청목령성은 다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모해갔다.
진가모가 이끌던 백제의 지원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압성을 사수하고 있던 백제 군사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원군이 당도하리라는 희망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왔는데, 그마저도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도압성주 진협은 낙담한 군사들을 다독였지만 한번 상실된 전의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웠다.
수지의에서의 승리를 보고받은 고국양왕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전군을 몰아 도압성을 공략하였다. 이어 당도한 아불파연과 우나굴의 부대까지 합류하니 백제군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먼저 북문이 무너지고 아불파연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성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연이어 서문과 동문도 고구려 군사들이 접수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성주 진협이 직접 지키고 있는 남문뿐이었다. 성의 대부분이 고구려군의 수중에 있는 상태였으므로 남문 역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고구려 군사들이 성벽 위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하나둘씩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통로 전체가 고구려 군사들로 가득 찼다. 진협은 성 안팎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맞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개미 떼처럼 달려드는 고구려 군사들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그는 자신이 명예롭게 목숨을 바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진협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처연히 말했다.
“뼈를 묻기에는 이만한 명당도 없을 듯하구나!”
진협은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고구려 군사들을 향해 버티고 섰다. 어차피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의연한 죽음을 택했다. 뒤에는 그가 외롭지 않을 만큼 많은 부하가 버티고 서 있었다.
칼날이 부딪치며 수없이 불꽃을 토해내는 사이에 진협을 비롯해서 남문을 사수했던 백제 군사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했다. 무심한 바람이 꺾어진 깃대를 세차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도압성이 함락된 후 치악성과 구두성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고구려군에게 점령당했다. 사첨은 잇따른 패전 소식에 청목령성의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했다. 고국양왕은 도압성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므로 이를 벌충하기 위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청목령성으로 달려갔다. 청목령만 넘으면 백제 국왕이 머물고 있는 한성이 지척이었다.
청목령성에 도착한 고국양왕은 연일 싸움을 걸었지만 사첨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청목령성은 도압성과는 달리 험한 산 중턱에 위치하여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커다란 희생을 초래할 수 있었다. 이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다가는 뒤에서 공격을 받을 위험이 컸다.
고국양왕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군사를 나누고 아불파연과 우나굴 두 장수로 하여금 번갈아 공격하게 했다. 공격이 거듭되어도 청목령성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랜 원정에 지친 고구려 군사들의 사기만 떨어져갈 뿐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후연의 10만 군사가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번뜩이며 대릉하(大凌河)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군량미를 실은 수많은 수레바퀴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키며 파도처럼 밀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중원 대륙의 서남부를 장악한 후연의 황제인 성무제(成武帝) 모용수(慕容垂)가 자신의 넷째 아들이며 태자인 모용보(慕容寶)를 주장(主將)으로 삼아 일곱째 아들이자 서자(庶子)인 모용농(慕容農)을 참좌(參佐)로서 보좌토록 하여 10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遼東城)과 신성(新城)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마차에 버티고 앉은 모용보가 좌우를 돌아보며 흡족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 대군이면 요동성쯤이야 하루 아침의 식사거리로 처리할 수 있겠지. 하하하!”
후연군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태자 전하! 지금 고구려왕이 백제 정벌을 위해 4만의 군사를 끌고 남쪽 변경으로 내려간 상황이라 우리가 이렇게 갑자기 요동성을 공략하러 온 것에 무척 당황해하여 미처 대비를 못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고구려왕이 회군하기 전에 우리는 독수리가 억센 발톱으로 토끼를 채어 날아가듯이 요동성을 공취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하남장군(河南將軍) 풍상(馮尙)이 크게 웃으며 모용보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략이 뛰어나고 신중한 성격을 지닌 모용농이 주의를 주었다.
“고구려의 군사들은 싸울 때는 악착같고 성을 지키는 데에 능하다고 하니 결코 얕잡아봐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저 요동성을 지키는 성주 고창(高昌)이란 자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라고 하니 철저한 작전을 세워 요동성을 공략해야 할 것입니다.”
모용보는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깔보는 성격이 있어서 난세의 군주감이 아니라는 평가가 높았다. 그러나 모용농은 예의가 바르고 태도가 의젓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자주 들었으며, 특히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는 아버지 모용수를 닮아 이미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바 있는 양장(良將)이었다. 모용보는 평소 배다른 동생인 모용농이 자신보다 더 많은 칭송을 받고 있는 사실에 대해 늘 불안해하고 시기심을 가졌다. 그는 모용농이 언젠가는 태자의 자리를 빼앗고 자기를 해치려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속에 경계심을 두고 있었다.
담덕 태자는 후연의 군대가 요동벌을 침범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즉시 대대로(大對盧) 고문한(高文漢), 태대형(太大兄) 명림부윤(明臨夫允), 의후사(意候奢) 막공우득(莫共牛得) 등 조정의 주요 대신들을 편전으로 불렀다.
“연나라의 태자가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으로 침공해왔소. 폐하께서 백제와 싸우러 내려가신지 벌써 일곱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환난을 맞으니 참으로 큰일이오. 나는 조정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세 분 대신들의 고견(高見)을 듣고 싶소.”
백제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왕이 도성을 계속 비우자 국왕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귀족들을 중심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흉년까지 겹치자 민심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연의 침입이라는 악재까지 겹쳤으니 담덕 태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빨리 마련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빨리 전령을 보내서 폐하의 친정군(親征軍)을 돌아오시게 해야 합니다. 요동성을 구원할 병력을 파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태대형 명림부윤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뒤이어 고문한이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우리 고구려는 여러 부족이 힘을 합해 세운 나라이옵니다. 시조이신 추모성왕(皺牟聖王)께서 나라를 일으킨 이래 각 부족은 서로 견제하며 나름의 세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들은 왕권이 강할 때는 더할 수 없이 충성스런 신하들이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역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 복속시키느냐가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옵니다. 선왕이신 소수림왕(小獸林王)께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정하신 이유 역시 이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무리를 짓고 나라가 우환에 휩싸일 때마다 왕실을 전복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추진력으로 나라의 앞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하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마음은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대신회의를 소집하여 전황을 설명하고, 국사를 의논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불만은 책임감으로 바뀌게 될 것이옵니다.”
태자는 고문한의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고문한은 계속 조언(助言)을 이어나갔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가뭄과 병충해로 인해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을 돌보는 일이옵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란 말이 있듯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옵니다. 그들이 없고서야 어찌 나라가 유지되겠습니까? 한시바삐 국가적 차원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식량을 주어 구제해야만 나라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후사 막공우득이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족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일도 중요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저 연나라의 군사들을 어떻게 막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4만의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가신 뒤 일곱 달이 넘도록 돌아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연나라의 군사들이 요동성으로 쳐들어왔으니 당장은 요동성으로 보낼 구원병력이 거의 없소이다.”
태자가 고개를 저으며 막공우득의 말을 받았다.
“왜 구원병력이 없습니까? 내 휘하에 친위군으로 조의선인군 1만이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성을 지키는 상비군 1만을 보태 요동성으로 보내면 됩니다.”
“연나라의 군사는 10만입니다. 겨우 2만의 병력으로 어떻게 적군을 막는단 말입니까?”
“전쟁은 병력의 수효로 하는 게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원활한 물자의 보급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연나라의 군사는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터이니 세 분 대신들께서는 다른 대신들을 왕궁으로 불러 회의를 열어 주십시오.”
명림부윤과 막공우득은 태자가 젊은 혈기에 너무 자만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고문한은 태자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이 결코 허풍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마침내 국내성의 왕궁에서 5부의 귀족들이 모여 태자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태자는 귀족들의 얼굴을 한사람씩 일일이 살펴보면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부왕(父王)께서 4만의 군사로 친정(親征)하시어 백제로 떠나신 지 일곱달째 되었으나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국(燕國)의 10만 대군이 요동성과 신성을 침공하여 아국(我國) 고구려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되었소. 나는 즉시 부왕께 전령을 보냈으나 어영군(御營軍)이 회군하여 국내성에 도착할 때까지는 최소 20여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오. 그 사이 요동성과 신성은 더욱 큰 위급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니 나는 이 점에 대해 여러 대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볼까 하오.”
절노부(絶奴部) 욕살(褥薩) 소무(蘇撫)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담덕 태자를 쏘아보았다.
“지금 성상(聖上)께서는 무리한 원정을 떠나시고 농번기(農繁期)에 이를 때까지 백제와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시는 바람에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맡으신 태자께서 스스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시고 우리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백성들은 태자께서 무능하여 군왕의 자질이 없다고 근심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태대형 명림부윤이 크게 놀라며 욕살 소무를 꾸짖었다.
“절노부 욕살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다음 왕위에 오르게 되실 태자 전하께 감히 그런 결례를 범하다니……! 그대는 혹시 역심(逆心)을 품고 있는 것 아니오?”
이때에 관노부(灌奴部) 욕살(褥薩) 부심절(扶沈截)이 소무를 두둔하고 나섰다.
“태대형이야말로 말씀을 가려 하십시오! 절노부 욕살께서는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백성들의 동요와 불안을 말씀하신 것뿐인데 어찌 아무 때나 역심이란 단어를 함부로 갖다 붙이십니까? 지금 성상께서도 도성에 계시지 아니하고 가뭄이 들어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때마침 후연의 대군이 요동벌을 침입했으니 이 누란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당연히 대리청정을 하시는 태자 전하께서 마련하셔야 하는 것이 당연하잖소?”
명림부윤이 다시 한 소리를 하려고 하는데 태자가 눈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태자는 가만히 귀족들을 주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들의 생각이 옳소! 지금 부왕께서는 도압성을 무너뜨리시고 청목령성을 공략하고 계시는데 청목령성을 지키는 백제의 장수 사첨이 지략과 용맹을 갖춘 양장(良將)인지라 이 곳을 뚫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오. 그러나 지금 연나라의 대군이 침범한 상황이므로 전령의 보고를 받는 즉시 회군하실 것이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왕께서 회군하실 때까지 과연 요동성과 신성이 잘 버틸 수 있는가 여부일 것이오. 요동성과 신성이 언제까지 항상 견고하게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요. 그래서 나는 나의 친위군인 조의선인 1만명을 거느리고 직접 요동벌로 진군하려고 하오.”
소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반발했다.
“다음 왕위를 이으실 태자께서 어찌 위험한 전장으로 가신단 말입니까? 아무리 조의선인군이 정예강병이라고는 하지만 적군은 10만의 대군입니다!”
“그래서 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오. 대인들 휘하의 가병(家兵)을 추려서 나라를 위한 싸움에 나설 수 있도록 상비군으로 내준다면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한 몫을 거들게 되는 것이고 연군(燕軍)을 물리쳐 전쟁에 승리한다면 대인들에게도 공로에 따른 포상이 돌아갈 것이오. 나는 1만의 조의선인군에 1만의 상비군을 합쳐 도합 2만의 병력이면 충분히 연군을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2만의 병력으로 10만의 연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인들은 내가 적은 수의 병력으로 적의 대군과 싸우는 데에 아무런 전략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생각하시오? 대인들은 나를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충분히 병법을 익혔고 조의선인들과 함께 고된 훈련을 해온 사람이오. 내가 출전하고 나면 조정은 대대로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오. 대인들은 대대로를 도와 백성들을 위무하고 농사를 망쳐 빈민이 된 사람들에게는 식량을 지급하여 구제하도록 하시오. 이것은 대리청정을 하는 태자로서 내리는 어명이오!”
담덕 태자는 시종일관 자신 있는 언행과 압도적인 기품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귀족들은 태자의 눈빛을 피하며 더는 아무 말도 못했다.
대대로 고문한은 태자의 지시에 따라 전국에 있는 관창에서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다. 백성들은 조정의 어진 정책을 반기며 태자의 덕을 칭송했다.
태자는 5부 귀족들이 동원한 1만의 병사로 상비군을 조직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위군인 조의선인 부대에 합류시켜 도합 2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벌로 출진했다.
『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3.왕재의 웅지 ⑶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도압성이 지척이었으므로 진가모는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어둠이 사방을 뒤덮었지만 혹시라도 고구려 군사들의 눈에 띌가봐 횃불을 밝힐 수 없었다. 백제 군사들은 어두운 밤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바람에 갈대가 서로 부딪쳐 사각거리는 소리 사이로 냇물이 자갈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갈대숱 너머에 남천이 흐르고 있었다. 병사들의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까지 더해지자 어느새 가락이 생기고 장단이 맞춰졌다. 진가모를 비롯한 백제군은 가락에 몸을 싣고 경쾌하게 나아갔다.
이때 갑자기 갈대숲이 흔들리며 고구려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불덩어리들이 사방에서 춤췄다. 백제 군사들은 싸울 의욕을 잃고 산불에 쫓기는 짐승처럼 사력을 다해 달아났다. 진가모는 사태를 수습해 보려 했지만 두려움 속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다.
진가모를 본 고구려 군사들이 한여름 밤에 등불을 본 나방들처럼 달려들었다. 진가모는 칼을 휘두르며 버텼지만 점점 불어나는 고구려 군사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가모는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대둔산 방향으로 내뺐다.
고구려군 병사들이 그를 추격하려 하자 아불파연이 껄껄 웃으며 만류했다.
“서두르지 말아라. 저 자는 이미 그물에 걸린 물고기나 다름없다.”
진가모는 대둔산 기슭에 이르러서야 고구려군 병사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돌렸다. 뒤따라온 군사를 수습해보니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진가모는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진가모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청목령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첨에게 낯이 서지 않는 일이었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진가모가 지친 군사들을 독려하여 길을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기겁하여 바라보니 군사들 사이에서 철갑을 두르고 검은 뿔이 달린 투구를 쓴 장수가 기창(旗槍)을 꼬나잡고 앞으로 나왔다.
“나는 고구려의 장수 우나굴이다! 백제의 진가모는 순순히 목을 늘여라!”
우나굴은 낮고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위협하면서 기창으로 진가모를 찔러왔다. 진가모는 보검을 들어 우나굴의 기창을 힘겹게 퉁겨내면서 10합 정도 맞서다가 더 이상 못 당하겠다는 듯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났다. 남겨진 백제 군사들도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 가 뒤쫓아 온 고구려 군사들의 창검(槍劒)에 목숨을 잃었다. 오로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자들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해 전장에서 빠져나온 진가모는 금방이라도 고구려 군사들이 쫓아올 것만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청목령성을 향해 마구 달렸다.
진가모는 많은 군사를 잃고 혼자만 살아서 청목령성으로 돌아왔다.
사첨은 그를 본 순간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목을 베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국왕이 지극히 신임하는 신하였고, 자신에게는 상관이었다. 당장 분을 풀기 위해 그를 벨 수는 없었다.
사첨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눌렀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시오?”
“이번에 당한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고야 말리라!”
진가모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결을 하여도 시원치 않은 판에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사첨의 가슴 속에서 피가 다시 한 번 역류(逆流)했다.
“도성으로 돌아가 어라하(於羅瑕)께 이곳의 위기를 알려주십시오. 저는 목숨을 걸고 저들의 남하를 막아보겠습니다.”
사첨은 진가모가 어서 눈앞에서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언제 폭발할지 몰랐다.
진가모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묵묵히 사첨의 말에 따랐다.
진가모가 떠나자 사첨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벽을 보수하는 한편, 식량을 비축하고 병장기(兵仗器)들을 손질했다. 군사들은 사첨의 명령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청목령성은 다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모해갔다.
진가모가 이끌던 백제의 지원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압성을 사수하고 있던 백제 군사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원군이 당도하리라는 희망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왔는데, 그마저도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도압성주 진협은 낙담한 군사들을 다독였지만 한번 상실된 전의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웠다.
수지의에서의 승리를 보고받은 고국양왕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전군을 몰아 도압성을 공략하였다. 이어 당도한 아불파연과 우나굴의 부대까지 합류하니 백제군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먼저 북문이 무너지고 아불파연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성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연이어 서문과 동문도 고구려 군사들이 접수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성주 진협이 직접 지키고 있는 남문뿐이었다. 성의 대부분이 고구려군의 수중에 있는 상태였으므로 남문 역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고구려 군사들이 성벽 위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하나둘씩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통로 전체가 고구려 군사들로 가득 찼다. 진협은 성 안팎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맞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개미 떼처럼 달려드는 고구려 군사들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그는 자신이 명예롭게 목숨을 바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진협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처연히 말했다.
“뼈를 묻기에는 이만한 명당도 없을 듯하구나!”
진협은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고구려 군사들을 향해 버티고 섰다. 어차피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의연한 죽음을 택했다. 뒤에는 그가 외롭지 않을 만큼 많은 부하가 버티고 서 있었다.
칼날이 부딪치며 수없이 불꽃을 토해내는 사이에 진협을 비롯해서 남문을 사수했던 백제 군사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했다. 무심한 바람이 꺾어진 깃대를 세차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도압성이 함락된 후 치악성과 구두성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고구려군에게 점령당했다. 사첨은 잇따른 패전 소식에 청목령성의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했다. 고국양왕은 도압성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므로 이를 벌충하기 위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청목령성으로 달려갔다. 청목령만 넘으면 백제 국왕이 머물고 있는 한성이 지척이었다.
청목령성에 도착한 고국양왕은 연일 싸움을 걸었지만 사첨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청목령성은 도압성과는 달리 험한 산 중턱에 위치하여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커다란 희생을 초래할 수 있었다. 이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다가는 뒤에서 공격을 받을 위험이 컸다.
고국양왕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군사를 나누고 아불파연과 우나굴 두 장수로 하여금 번갈아 공격하게 했다. 공격이 거듭되어도 청목령성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랜 원정에 지친 고구려 군사들의 사기만 떨어져갈 뿐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후연의 10만 군사가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번뜩이며 대릉하(大凌河)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군량미를 실은 수많은 수레바퀴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키며 파도처럼 밀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중원 대륙의 서남부를 장악한 후연의 황제인 성무제(成武帝) 모용수(慕容垂)가 자신의 넷째 아들이며 태자인 모용보(慕容寶)를 주장(主將)으로 삼아 일곱째 아들이자 서자(庶子)인 모용농(慕容農)을 참좌(參佐)로서 보좌토록 하여 10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遼東城)과 신성(新城)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마차에 버티고 앉은 모용보가 좌우를 돌아보며 흡족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 대군이면 요동성쯤이야 하루 아침의 식사거리로 처리할 수 있겠지. 하하하!”
후연군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태자 전하! 지금 고구려왕이 백제 정벌을 위해 4만의 군사를 끌고 남쪽 변경으로 내려간 상황이라 우리가 이렇게 갑자기 요동성을 공략하러 온 것에 무척 당황해하여 미처 대비를 못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고구려왕이 회군하기 전에 우리는 독수리가 억센 발톱으로 토끼를 채어 날아가듯이 요동성을 공취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하남장군(河南將軍) 풍상(馮尙)이 크게 웃으며 모용보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략이 뛰어나고 신중한 성격을 지닌 모용농이 주의를 주었다.
“고구려의 군사들은 싸울 때는 악착같고 성을 지키는 데에 능하다고 하니 결코 얕잡아봐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저 요동성을 지키는 성주 고창(高昌)이란 자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라고 하니 철저한 작전을 세워 요동성을 공략해야 할 것입니다.”
모용보는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깔보는 성격이 있어서 난세의 군주감이 아니라는 평가가 높았다. 그러나 모용농은 예의가 바르고 태도가 의젓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자주 들었으며, 특히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는 아버지 모용수를 닮아 이미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바 있는 양장(良將)이었다. 모용보는 평소 배다른 동생인 모용농이 자신보다 더 많은 칭송을 받고 있는 사실에 대해 늘 불안해하고 시기심을 가졌다. 그는 모용농이 언젠가는 태자의 자리를 빼앗고 자기를 해치려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속에 경계심을 두고 있었다.
담덕 태자는 후연의 군대가 요동벌을 침범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즉시 대대로(大對盧) 고문한(高文漢), 태대형(太大兄) 명림부윤(明臨夫允), 의후사(意候奢) 막공우득(莫共牛得) 등 조정의 주요 대신들을 편전으로 불렀다.
“연나라의 태자가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으로 침공해왔소. 폐하께서 백제와 싸우러 내려가신지 벌써 일곱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환난을 맞으니 참으로 큰일이오. 나는 조정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세 분 대신들의 고견(高見)을 듣고 싶소.”
백제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왕이 도성을 계속 비우자 국왕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귀족들을 중심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흉년까지 겹치자 민심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연의 침입이라는 악재까지 겹쳤으니 담덕 태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빨리 마련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빨리 전령을 보내서 폐하의 친정군(親征軍)을 돌아오시게 해야 합니다. 요동성을 구원할 병력을 파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태대형 명림부윤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뒤이어 고문한이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우리 고구려는 여러 부족이 힘을 합해 세운 나라이옵니다. 시조이신 추모성왕(皺牟聖王)께서 나라를 일으킨 이래 각 부족은 서로 견제하며 나름의 세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들은 왕권이 강할 때는 더할 수 없이 충성스런 신하들이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역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 복속시키느냐가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옵니다. 선왕이신 소수림왕(小獸林王)께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정하신 이유 역시 이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무리를 짓고 나라가 우환에 휩싸일 때마다 왕실을 전복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추진력으로 나라의 앞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하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마음은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대신회의를 소집하여 전황을 설명하고, 국사를 의논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불만은 책임감으로 바뀌게 될 것이옵니다.”
태자는 고문한의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고문한은 계속 조언(助言)을 이어나갔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가뭄과 병충해로 인해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을 돌보는 일이옵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란 말이 있듯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옵니다. 그들이 없고서야 어찌 나라가 유지되겠습니까? 한시바삐 국가적 차원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식량을 주어 구제해야만 나라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후사 막공우득이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족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일도 중요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저 연나라의 군사들을 어떻게 막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4만의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가신 뒤 일곱 달이 넘도록 돌아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연나라의 군사들이 요동성으로 쳐들어왔으니 당장은 요동성으로 보낼 구원병력이 거의 없소이다.”
태자가 고개를 저으며 막공우득의 말을 받았다.
“왜 구원병력이 없습니까? 내 휘하에 친위군으로 조의선인군 1만이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성을 지키는 상비군 1만을 보태 요동성으로 보내면 됩니다.”
“연나라의 군사는 10만입니다. 겨우 2만의 병력으로 어떻게 적군을 막는단 말입니까?”
“전쟁은 병력의 수효로 하는 게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원활한 물자의 보급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연나라의 군사는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터이니 세 분 대신들께서는 다른 대신들을 왕궁으로 불러 회의를 열어 주십시오.”
명림부윤과 막공우득은 태자가 젊은 혈기에 너무 자만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고문한은 태자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이 결코 허풍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마침내 국내성의 왕궁에서 5부의 귀족들이 모여 태자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태자는 귀족들의 얼굴을 한사람씩 일일이 살펴보면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부왕(父王)께서 4만의 군사로 친정(親征)하시어 백제로 떠나신 지 일곱달째 되었으나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국(燕國)의 10만 대군이 요동성과 신성을 침공하여 아국(我國) 고구려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되었소. 나는 즉시 부왕께 전령을 보냈으나 어영군(御營軍)이 회군하여 국내성에 도착할 때까지는 최소 20여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오. 그 사이 요동성과 신성은 더욱 큰 위급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니 나는 이 점에 대해 여러 대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볼까 하오.”
절노부(絶奴部) 욕살(褥薩) 소무(蘇撫)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담덕 태자를 쏘아보았다.
“지금 성상(聖上)께서는 무리한 원정을 떠나시고 농번기(農繁期)에 이를 때까지 백제와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시는 바람에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맡으신 태자께서 스스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시고 우리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백성들은 태자께서 무능하여 군왕의 자질이 없다고 근심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태대형 명림부윤이 크게 놀라며 욕살 소무를 꾸짖었다.
“절노부 욕살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다음 왕위에 오르게 되실 태자 전하께 감히 그런 결례를 범하다니……! 그대는 혹시 역심(逆心)을 품고 있는 것 아니오?”
이때에 관노부(灌奴部) 욕살(褥薩) 부심절(扶沈截)이 소무를 두둔하고 나섰다.
“태대형이야말로 말씀을 가려 하십시오! 절노부 욕살께서는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백성들의 동요와 불안을 말씀하신 것뿐인데 어찌 아무 때나 역심이란 단어를 함부로 갖다 붙이십니까? 지금 성상께서도 도성에 계시지 아니하고 가뭄이 들어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때마침 후연의 대군이 요동벌을 침입했으니 이 누란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당연히 대리청정을 하시는 태자 전하께서 마련하셔야 하는 것이 당연하잖소?”
명림부윤이 다시 한 소리를 하려고 하는데 태자가 눈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태자는 가만히 귀족들을 주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들의 생각이 옳소! 지금 부왕께서는 도압성을 무너뜨리시고 청목령성을 공략하고 계시는데 청목령성을 지키는 백제의 장수 사첨이 지략과 용맹을 갖춘 양장(良將)인지라 이 곳을 뚫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오. 그러나 지금 연나라의 대군이 침범한 상황이므로 전령의 보고를 받는 즉시 회군하실 것이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왕께서 회군하실 때까지 과연 요동성과 신성이 잘 버틸 수 있는가 여부일 것이오. 요동성과 신성이 언제까지 항상 견고하게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요. 그래서 나는 나의 친위군인 조의선인 1만명을 거느리고 직접 요동벌로 진군하려고 하오.”
소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반발했다.
“다음 왕위를 이으실 태자께서 어찌 위험한 전장으로 가신단 말입니까? 아무리 조의선인군이 정예강병이라고는 하지만 적군은 10만의 대군입니다!”
“그래서 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오. 대인들 휘하의 가병(家兵)을 추려서 나라를 위한 싸움에 나설 수 있도록 상비군으로 내준다면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한 몫을 거들게 되는 것이고 연군(燕軍)을 물리쳐 전쟁에 승리한다면 대인들에게도 공로에 따른 포상이 돌아갈 것이오. 나는 1만의 조의선인군에 1만의 상비군을 합쳐 도합 2만의 병력이면 충분히 연군을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2만의 병력으로 10만의 연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인들은 내가 적은 수의 병력으로 적의 대군과 싸우는 데에 아무런 전략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생각하시오? 대인들은 나를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충분히 병법을 익혔고 조의선인들과 함께 고된 훈련을 해온 사람이오. 내가 출전하고 나면 조정은 대대로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오. 대인들은 대대로를 도와 백성들을 위무하고 농사를 망쳐 빈민이 된 사람들에게는 식량을 지급하여 구제하도록 하시오. 이것은 대리청정을 하는 태자로서 내리는 어명이오!”
담덕 태자는 시종일관 자신 있는 언행과 압도적인 기품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귀족들은 태자의 눈빛을 피하며 더는 아무 말도 못했다.
대대로 고문한은 태자의 지시에 따라 전국에 있는 관창에서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다. 백성들은 조정의 어진 정책을 반기며 태자의 덕을 칭송했다.
태자는 5부 귀족들이 동원한 1만의 병사로 상비군을 조직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위군인 조의선인 부대에 합류시켜 도합 2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벌로 출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