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3.왕재의 웅지 ⑸

개마기사단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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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수비를 포기하고 비사성으로 퇴각한 고습해가 요동성에 전령을 보내 상황 보고를 하도록 하자 요동성주인 고창은 일단 비사성의 군사들과 협력하여 수성전(守城戰)을 펼치기로 하고 부하들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하였다.

 

“말객(末客) 여문(呂汶)과 기총(騎總) 탁선(卓宣) 두 장수는 각기 일천 명씩의 병사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백성들을 성 안으로 대피시키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성주님!”

 

“그리고 군위사(軍尉使) 고석목(高晳穆) 장군은 창암성(倉巖城)과 백암성(白巖城)으로 전령을 보내 각기 5천씩의 병력을 차출하여 응원군을 파견하라는 요청을 하시오.”

 

“알겠습니다.”

 

“이 요동벌은 우리 고구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땅이오. 특히 요동성은 고국천왕(故國川王)께서 온전히 고구려의 영토로 만드신 요새로서 우리가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라고 할 수 있소!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 요동성을 사수해야 할 것이오.”

 

고창을 비롯한 요동성의 장수들은 그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요동성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칼을 갈았다.

 

그 무렵 요동성으로 진격하던 후연군은 흑산 부근을 지나다가 뜻하지 않은 복병의 기습을 받아 진군이 멈춰졌으며 곧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진채도 세우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산천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국(燕國)의 선비족(鮮卑族) 놈들을 한 명도 살려 두지 말고 모두 죽여라!”

 

백암성주 창여지(昌余之)의 부하 장수인 루초(婁肖) 의태(意泰)가 군령을 내리자 어둠 속에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고 후연군 병사들은 망연자실했다. 거리나 마을마다 모두 다 텅 비어 있어 후연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모두 도망친 것으로 알고 경계를 늦춘 것이 화근이었다.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도대체 기습공격을 펼치는 고구려군의 병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분간할 수가 없으므로 대응할 엄두나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장수인 자들만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횃불을 밝히고 대응하라!”

 

그러나 화살과 돌멩이들이 계속 날아들어 후연군 병사들을 죽이고 죽여도 달라져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5천~7천 정도나 되는 병사들이 피를 뿌리면서 시체로 변했건만 후연군은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훤히 날이 샐 때까지 죽이고 죽는 살육전은 계속되었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고구려군의 병력이 2만명도 안되는 것으로 확인되자 후연군은 갑자기 기세가 올라 쪽수로 밀어붙여서 승리를 쟁취하고자 살기등등해졌고 반면에 고구려군은 후연의 대군을 보고 기가 질려 멍해지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후연의 하남장군 풍상이 외쳤다.

 

“고구려군은 소수의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총공격하여 몰살시켜라!”

 

“여기서 더 교전한다면 전멸당할 지도 모른다. 모두 백암성으로 퇴각하라!”

 

장수인 의태의 외침을 뒤로 하면서 고구려군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도망쳤으나 후연의 기마병들에게 덜미를 잡힌 고구려군의 목숨은 마치 파리 목숨과도 같았다. 고구려군은 매복작전을 위해 군마(軍馬)를 버리고 보병과 궁수만으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후연군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태는 이대로 도망치면 부하들만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뜻에 이어지는 것인데 어찌 저놈들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 한 놈의 적병이라도 더 요절을 내고 고구려의 용사답게 싸우다 죽어 고국에 묻혀야 영광스러운 죽음이 될 것이다. 그것이 고구려인의 충혼이니라!”

 

의태는 병사들에게 외치면서 환도(環刀)를 세워들고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고구려군 병사들도 그를 따라 추격해오는 후연의 기마병들을 막아서면서 용전분투(勇戰奮鬪)했다. 하지만 거의 모두 후연 기마병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며 죽어가고 말았다. 결국 의태와 몇몇 용사들만 포위된 채 분전을 계속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후연군의 총사령관인 태자 모용보가 미소를 머금고 외쳤다.

 

“적이지만 참으로 대단한 용장이구나. 지금이라도 투항해 우리 연나라의 장수가 된다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의태는 도리어 화를 내면서 모용보 쪽으로 침을 뱉었다.

 

“대고구려의 장수가 어찌 선비족(鮮卑族) 오랑캐 따위에게 목숨을 구걸하겠느냐? 내 비록 여기서 죽을지라도 너는 반드시 황천길로 함께 데리고 가련다!”

 

의태는 환도를 높이 쳐들고 모용보가 탄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모용보의 근위병 20여명이 의태를 향해 창검(槍劒)을 휘둘렀다. 의태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적병들의 창검에 찔리고 베어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고꾸라졌다.

 

모용보와 모용농이 이끄는 후연군은 뜻하지 않았던 백암성의 군사들에게 매복기습을 받아 8천여명에 이르는 병사가 전사하는 손실을 보았으나 여전히 대규모 병력이었으므로 유유히 요동성으로 접근했다. 요동성주 고창은 성루에서 대한 물결처럼 다가오는 후연의 10만 대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남장군 풍상이 요동성주 고창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요동성의 고창 성주는 듣거라! 요동성은 원래 우리 연나라의 영토였다. 옛 주인이 이를 되찾으러 왔으니 즉각 성을 비우고 철수하라. 그리 한다면 병사들의 무모한 희생을 줄일 수 있으리라!”

 

그러자 고창을 시립하고 있던 그의 부관 고석목이 대신 풍상의 말을 받았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너희가 병사들의 수효를 믿고 큰소리치는 모양인데 이 땅은 국조(國祖) 추모성왕(皺牟聖王) 때부터 우리 고구려의 성지(聖地)였느니라! 그런데 감히 너희 오랑캐가 자기들의 영토라고 허튼소리를 하는구나. 우리 요동성의 맹졸(猛卒)들이 감히 너희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으냐? 어림없다.”

 

풍상은 얼굴을 찡그리며 살기(殺氣)를 드러냈다.

 

“오냐! 너희들이 죽음을 선택했으니 우리의 손속이 잔인함을 원망치 말거라.”

 

풍상이 본영으로 와서 요동성의 반응에 대해 보고하자 모용보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젖혔다.

 

“요동성주도 군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나보군. 하지만 상관없다. 요동성의 수비군은 고작 1만 5천여명 정도가 아닌가? 이대로 밀어붙여 요동성을 단숨에 무너뜨려라!”

 

모용농이 주의를 주었다.

 

“아군이 비록 10만 대군이라고는 하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자만하시면 안됩니다. 요동성의 배후에 반드시 고구려의 응원군이 오고 있을 것이니 본군의 10만 가운데 3만 정도를 별동대로 차출해서 응원군을 맞아 싸워야 합니다. 고구려의 응원군을 막는 일은 소장이 하겠습니다.”

 

“뭐 매사에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하라.”

 

모용보는 본군의 병력을 지휘하여 요동성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후연군 병사들은 발석차(發石車)를 늘여세워 커다란 돌멩이를 성벽으로 쏘아 날리고 빗발치듯 불화살을 날렸다. 고구려군은 물에 젖은 흙으로 성벽 위에 쌓아올리며 적군의 불화살 공격을 방어하고 성 밑으로 접근하는 적병들을 향해 쇠뇌를 쏘면서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후연군은 닷새째 요동성을 포위·맹공을 퍼부었지만 사상자만 늘어난 채 답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주 고창의 뛰어난 지략과 능숙한 지휘력으로 요동성은 끈질기게 잘 버티고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절약을 하면서 쏘았으나 화살도 또한 많이 부족해졌다.

 

후연군이 요동성 공략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는 동안에 담덕 태자가 거느린 2만의 군사가 요동성 근처에 당도했다. 백암성(白巖城)과 개모성(蓋牟城)에서 각각 차출된 1만여명의 군사가 태자의 군대를 맞이했다. 태자는 백암성주 창여지에게 전황을 물어보고 작전 지시를 내렸다.

 

“나는 창여지 성주와 함께 적군과 전면전을 벌이겠소. 연살타 장군은 날랜 군사 5천을 뽑아 연나라 군사들의 식량 보급로를 급습해서 화공으로 그들의 곡창(穀倉)을 불태우시오. 이 작전은 신속한 기동력이 담보돼야 성공할 수 있소.”

 

그날 밤 이경(二更) 쯤 되었을 때 난데없이 쇠갑옷으로 무장한 고구려의 기마군단이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번뜩이며 나타나 후연의 군영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족족 후연군 병사들을 잡초 뽑듯이 쳐죽이며 후연군의 대열을 완전히 흩뜨려놓았다. 백암성주 창여지가 통솔하는 고구려의 궁수부대는 불화살을 쏘면서 철기병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뭐야? 본군이 기습공격을 받고 있다고?”

 

응원군이 올 길목을 지키고 있던 모용농이 크게 놀라며 달려와 장검(長劍)을 높이 쳐들며 이리 밀리고 저리 쏠리는 병사들을 다그쳤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했다! 모두 태자 전하를 보호하면서 병력을 정비하라! 적군은 고작 2만~3만밖에 안 되는 오합지졸이다.”

 

그러나 태자가 지휘하는 고구려의 군사들은 특수부대인 조의선인들이 포함된 정예병으로 한 명의 병사가 다섯 명 이상의 적병을 베어넘기는 무서운 용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연군은 고구려의 철기병들 앞에 맥을 못추고 병장기(兵仗器)를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목이 달아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모용보가 애써서 정신을 차리고 전황을 살피는데 후미의 군량 창고에서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태자 전하! 큰일이옵니다. 지금 군량 창고가 고구려군의 화공으로 불타고 있사옵니다!”

 

하남장군 풍상이 다급하게 외쳤다. 모용보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우리의 10만 대군이 작은 규모의 적군에게 이리 농락당하다니……! 도대체 모용농은 응원군을 막겠다고 나가더니 뭘 했단 말이냐?”

 

요동성주 고창은 성루에서 후연군의 진영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후연군의 후방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부관인 고석목과 여문·탁선 등 장수들에게 말했다.

 

“지원군이 적군의 후방을 쳐서 군량 보급창을 불태우고 있소. 우리도 성문을 열고 나가 적진을 교란시켜야 하오. 여기서 제대로 된 협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군보다 수효가 적은 우리 지원군이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소.”

 

“알겠습니다. 성주님!” 

 

“전군은 모두 출정 준비를 하라! 성문을 열고 적진으로 돌격한다.”

 

성문이 열리며 요동성의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나가 후연군을 닥치는 대로 참살했다. 후방에서는 고구려의 궁수부대와 기마군단에 의해 군량 창고가 불타면서 대오가 무너지고 전방에서는 요동성의 군사들이 급습하니 후연군은 전열을 정비할 틈이 주어지지 않고 지리멸렬하기 시작했다.

 

“연군(燕軍)의 본영으로 돌파하라! 연군의 주장인 태자 모용보를 잡아야 한다.”

 

담덕 태자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환도(環刀)를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적병들을 쓰러뜨리고 말을 몰아 전진했다. 조의선인군의 당주인 연살타가 기창(旗槍)을 비껴들고 태자의 뒤를 따라 적진을 후비고 다녔다. 모용농은 고구려군이 후연군의 본영을 노리고 공격하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부하들을 인솔하여 형인 모용보를 찾아 나섰다.

 

“전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적군이 전하를 노리고 있사옵니다.”

 

모용농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모용보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너는 뭘 하는 놈이길래 고구려의 응원군이 오는 길목을 지킨다는 것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전하! 소장의 죄는 나중에 물으십시오. 지금은 여기를 피하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는 10만 대군을 거느린 대연(大燕)의 태자이니라! 여기서 퇴각한다면 내 꼴이 뭐가 되느냐!”

 

“전하, 지금은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잘못되시면 우리 대연국의 앞날은 어찌 되겠습니까?”

 

풍상도 모용농의 말에 동조하며 모용보에게 퇴각을 종용했다.

 

“모용농 왕자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미 대세는 글렀습니다. 지금 퇴각하지 않으면 더 많은 아군이 희생됩니다.”

 

“에잇! 제길…”

 

모용보는 분하고 원통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요동성 공략을 포기하고 군사를 철수시키기로 했다.

 

모용보의 주력군이 퇴각하는 모습을 보고 담덕 태자는 손을 들어 아군의 말발굽을 멈추도록 했다.

 

“더 이상 추격하지 마라! 연나라 군사들이 그냥 물러가게 두어라!”

 

연살타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연나라의 태자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연나라의 태자를 잡을 기회는 이미 놓쳤소. 비록 많은 병사들이 죽었지만 아직 연나라의 군사들은 우리보다 더 규모가 큰 대군이오. 만약 군량 창고를 유린당하지 않았다면 연나라 군사들은 저렇게 쉽게 물러가지 않았을 것이오.”

 

담덕 태자의 현명한 판단에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 전하, 적기에 잘 오셔서 우리 요동성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요동성주 고창이 담덕 태자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태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투철한 애국심으로 결사항전을 벌여 요동성을 지켜낸 고창과 그의 부하들을 격려했다.

 

“그대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이 요동벌은 연나라의 오랑캐들에게 짓밟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오. 오늘 우리는 고구려인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소. 우리는 모두 이 승리를 기뻐하며 즐길 자격이 충분하오!”

 

“와아! 태자 전하 만세! 대고구려 만세!”

 

요동성의 군사들과 조의선인, 그리고 백암성의 군사들도 모두 우렁한 함성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