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대 게시판 하드론 님이 작성하신 작품 입니다. ==================================================================================== '도대체 넌 누구냐........'이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지만 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가위에 눌린게 확실하다.이러지 않고서는 내가 이렇게 돌처럼 굳어버릴 수가 있나?사력을 다해 눈동자를 돌려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그러나 피하면 피할 수록 그의 모습이 더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침은 입에서 흘러내리는게 아니었다.어떻게 저렇게 길게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혀가 목젖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 기다란 혀를 타고 흘러내린 침이 혀끝에서 늘어지고 있었다.그리고 나를 더욱 혼미하게 만든 것은 반쯤 뜨고 있는 그의 눈이었다.왜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한 무엇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이해가 간다.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생각이 이 정도까지 미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구를 지탱하는 근육이 끊어질 듯이 나는 눈을 옆으로 돌렸다.바로 그 때 내 오른손으로 부터 십여센티 떨어져 있는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단축번호 1번.....1번.......1번만 누르면 준혁이가 달려올 것이다.나는 죽을 힘을 다해 손가락을 뻗었다.온몸의 핏줄이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내 모든 정신과 시선은 오로지 그 작은 휴대폰에 집중되어 있었다.'....오늘 밤 잘 버텨봐라. 죽지 말고...'준혁의 말처럼 난 지금 버티고 있었다.이 가위에서 풀려난다면 난 너에게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을 것 같다.'준혁아...너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한거냐?어쨌든 난 지금 이 끔찍한 고통에서 몸부림치고 있다.이겨내려고 말이다.결코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길중이를 내려눕힌 나다.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준혁아......한가지 내가 넘어야 할 고통이 하나 더 다가오고 있다.누군가 복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다.좁고 가파른 계단에서 앞을 살피지도 않은 채, 그 희멀건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한 채.....한 아이가 내려오고 있다.계단의 넓이와 보폭이 맞지않는 걸음을 하고 있다.그냥 내려오고 있다.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 이 아이가 이리저리 나를 살피고 있다.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준혁아...미안하다. 준혁아...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다.어디까지 입이 찢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이 아이가 크게 미소짓고 있단다.사랑한다. 친구야.........'"정신이 들어요?"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병실같은 낯선 방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그리고 의사 복장을 한 남자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 끝에 서 있었다.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내 앞에 보이는 남자는 전에 만났던 입주자였다."이제 정신이 들어요?""다..당신이 여기에 어떻게....."나의 말에 그는 긴 한숨을 한번 쉬더니,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는 한 간호사 복장의 여자를 바라보았다.그 여자 또한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관리실에서 봤던 여자였다.남자는 천천히 발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그리고 사무적인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주저하지 않았다."윤성진이요..."그는 뭔가를 받아적더니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최근에 친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준혁이요...김준혁..."그런데 준혁이가 보이지 않았다.빌어먹을 녀석 친구가 병원에 있는데 오질 않다니....아니면 밤새 간호하고 잠을 청하러 간 걸까?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내게 물었다."목 매단 남자를 봤나요? 어린 아이도?"남자의 질문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저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그...그걸...어떻게...."나의 대답에 그 남자는 간호사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남자는 서류철을 간호사에게 건네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자리를 잡았다.그리고는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당신 누구죠?""윤성진이요...윤성진이라구요"남자는 입을 한 번 굳게 다물더니 말문을 열었다."윤성진씨....당신은 죽었어요.""네? 뭐라구요?""당신은 윤성진이 아니고 김준혁이라구요. 알겠어요?"나는 어이없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지..지금...제게 뭐라 그러시는 거예요?""김준혁씨....그냥 내 말을 듣고만 있어요.당신 친구 윤성진은 죽었어요.3년 전 윤성진씨는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죠.게다가 학교에서 급우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윤성진씨는 더욱 비뚫어진 성격을 형성하게 됩니다.기억 안나요? 같은 급우 한 명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후 윤성진씨는 목매달아 자살을 했구요.그 걸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유일한 친구였던 김준혁 당신이구요.당신은 알콜 중독자인 홀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어요.어렸을 적부터 언제 떠난지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를 마루턱에 앉아 항상 기다리게 일이었어요.그나마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아버지마저 간암으로 죽자, 당신은 윤성진에게 더 집착을 하게 된 겁니다.친한 친구를 잃은 뒤로 당신 또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당신은 이 곳까지 오게 된 겁니다.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을 도피하고자 당신이 선택했던 방법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었죠.당신은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어요.단지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당신 스스로 윤성진 입장에서 만들어낸 강한 김준혁일 뿐이예요.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가죠?당신이 거울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실제 모습이 비치는 것을 싫어해서 입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낯익지 않았어요? 바로 어렸을 적 김준혁씨 당신이예요."갑자기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내 뺨 위로 흘러내렸다."김준혁씨.....다시 기억이 떠오르나요?당신이 이곳에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요.당신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당신은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지우며 윤성진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예요.저는 지금 다섯번째 똑같은 말을 당신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당신의 기억이 도중에 되살아나는지 살피기 위해 당신이 말한 상황을 저와 김간호사가 재연해 주었죠.이것 또한 벌써 세번째나 하는 거예요. 도중에 당신 기억이 돌아올거라 믿으면서....힘들어도 이젠 친구를 떠나 보내세요.윤성진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아요....당신이 윤성진씨를 흉내낸다 하여도 당신은 결코 윤성진이 아니예요.이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세요....김준혁씨..."뜨거운 눈물이 샘 솟듯이 흘러나왔다.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깨물으며, 나는 울음소리를 삼켰다."김준혁씨....젊은 나이에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예요?당신의 완치여부는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힘들어도 과거를 지우지 말아요.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요.당신만 마음가짐을 다진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당신은 다중인격도 아니고...귀신에 씌운 것도 아니예요.이제 친구를 떠나 보내세요. 잡을 수 없을 허상을 찾아 헤매지 마시고, 이제 현실로 돌아와요."나는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그러나 쏟아져나오는 뜨거운 액체는 감출 수가 없었다."김준혁씨....이제 선택하셔야 합니다.다시 윤성진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치료실....아니 당신이 착각하는 그 오피스텔로 돌아갈 겁니다.그러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면 다른 완치단계의 환자들과 생활하며, 아무런 제약없이 퇴원할 때까지 정상인들처럼 살아갈 겁니다."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건넸던 서류철을 받아들더니, 무언가 받아 적으려는 자세를 취했다.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당신은 누구입니까?"나는 눈물이 어느 정도 말라감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나의 대답이 지연되자 남자는 다시 물었다."당신 이름이 뭡니까?"나는 남자의 얼굴과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말을 아꼈다.그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김준혁이요..."나의 말에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당신 친구 윤성진씨는 어떻게 되었죠?""3년 전에 죽었습니다."남자는 흐믓한 표정을 다시 한번 짓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이게 뭔지 알아요? 김준혁씨?"남자가 꺼내 든 것은 빨간색 말보로 담배였다."담배요....""맞아요. 담배죠. 그런데 그냥 담배가 아니예요.당신의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당신이 한대씩 피우던 담배예요.1년 동안 20개피 중에서 이제야 절반 정도 줄었군요.당신같은 골초가 1년 동안 10개피만 피웠다는 것은 그 동안 김준혁보다는 윤성진으로 산 기간이 더 길었다는 말이예요.이 담배맛을 기억하나요?"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담배를 내게 건네는 시늉을 하더니 물었다."밖에 나가서 담배 한대 피울래요?""네...."잔디 정원의 벤치에 앉아 맑디 맑은 하늘을 보며 나는 담배 연기 한모금을 빨아들였다.간만에 맞보는 담배라 그런지 목이 막혀오며 토할 듯이 기침이 쏟아졌다."콜록! 콜록! 콜록!"내 뒤에 서 있는 두 남녀의 소근거림이 들려왔다."박사님......김준혁씨 담배피면서 기침하는 것 처음보네요.""그러게....""그리고 김준혁씨가 핸드폰 1번 단축번호로 설정해 놓은게 있는데 모르는 번호예요.""그래?""뒷자리는 김준혁씨거랑 같구요, 앞자리만 010 이 아니라 016 이예요. 예전 자기 번호인가 보죠?""그런가 보네...그런데 왜 예전 자기 번호를 단축번호 1번으로 했을까?"나는 조용히 입 주위에 말라 붙은 침을 털어냈다.-끝-====================================================================================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쓰시는분이 하드론님 인거 같네요. 내용도 깔끔하고 항상 스토리에 연결고리 및 복선이 재미있게 연결 되있어서요. 42
너구리가 퍼온이야기 [수상한 오피스텔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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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넌 누구냐........'
====================================================================================이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지만 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가위에 눌린게 확실하다.
이러지 않고서는 내가 이렇게 돌처럼 굳어버릴 수가 있나?
사력을 다해 눈동자를 돌려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나 피하면 피할 수록 그의 모습이 더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침은 입에서 흘러내리는게 아니었다.
어떻게 저렇게 길게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혀가 목젖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 기다란 혀를 타고 흘러내린 침이 혀끝에서 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더욱 혼미하게 만든 것은 반쯤 뜨고 있는 그의 눈이었다.
왜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한 무엇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이해가 간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이 이 정도까지 미치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구를 지탱하는 근육이 끊어질 듯이 나는 눈을 옆으로 돌렸다.
바로 그 때 내 오른손으로 부터 십여센티 떨어져 있는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단축번호 1번.....1번.......1번만 누르면 준혁이가 달려올 것이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손가락을 뻗었다.
온몸의 핏줄이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내 모든 정신과 시선은 오로지 그 작은 휴대폰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늘 밤 잘 버텨봐라. 죽지 말고...'
준혁의 말처럼 난 지금 버티고 있었다.
이 가위에서 풀려난다면 난 너에게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을 것 같다.
'준혁아...너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한거냐?
어쨌든 난 지금 이 끔찍한 고통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이겨내려고 말이다.
결코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길중이를 내려눕힌 나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준혁아......
한가지 내가 넘어야 할 고통이 하나 더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 복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에서 앞을 살피지도 않은 채, 그 희멀건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한 채.....
한 아이가 내려오고 있다.
계단의 넓이와 보폭이 맞지않는 걸음을 하고 있다.
그냥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 이 아이가 이리저리 나를 살피고 있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준혁아...
미안하다. 준혁아...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어디까지 입이 찢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이 아이가 크게 미소짓고 있단다.
사랑한다. 친구야.........'
"정신이 들어요?"
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병실같은 낯선 방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의사 복장을 한 남자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 끝에 서 있었다.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에 보이는 남자는 전에 만났던 입주자였다.
"이제 정신이 들어요?"
"다..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나의 말에 그는 긴 한숨을 한번 쉬더니,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는 한 간호사 복장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 또한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관리실에서 봤던 여자였다.
남자는 천천히 발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사무적인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주저하지 않았다.
"윤성진이요..."
그는 뭔가를 받아적더니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최근에 친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준혁이요...김준혁..."
그런데 준혁이가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녀석 친구가 병원에 있는데 오질 않다니....
아니면 밤새 간호하고 잠을 청하러 간 걸까?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내게 물었다.
"목 매단 남자를 봤나요? 어린 아이도?"
남자의 질문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그걸...어떻게...."
나의 대답에 그 남자는 간호사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남자는 서류철을 간호사에게 건네더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 누구죠?"
"윤성진이요...윤성진이라구요"
남자는 입을 한 번 굳게 다물더니 말문을 열었다.
"윤성진씨....당신은 죽었어요."
"네? 뭐라구요?"
"당신은 윤성진이 아니고 김준혁이라구요. 알겠어요?"
나는 어이없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지..지금...제게 뭐라 그러시는 거예요?"
"김준혁씨....그냥 내 말을 듣고만 있어요.
당신 친구 윤성진은 죽었어요.
3년 전 윤성진씨는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죠.
게다가 학교에서 급우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윤성진씨는 더욱 비뚫어진 성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기억 안나요?
같은 급우 한 명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후 윤성진씨는 목매달아 자살을 했구요.
그 걸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유일한 친구였던 김준혁 당신이구요.
당신은 알콜 중독자인 홀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어요.
어렸을 적부터 언제 떠난지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를 마루턱에 앉아 항상 기다리게 일이었어요.
그나마 유일한 보호막이었던 아버지마저 간암으로 죽자, 당신은 윤성진에게 더 집착을 하게 된 겁니다.
친한 친구를 잃은 뒤로 당신 또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당신은 이 곳까지 오게 된 겁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을 도피하고자 당신이 선택했던 방법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었죠.
당신은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단지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당신 스스로 윤성진 입장에서 만들어낸 강한 김준혁일 뿐이예요.
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가죠?
당신이 거울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실제 모습이 비치는 것을 싫어해서 입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낯익지 않았어요?
바로 어렸을 적 김준혁씨 당신이예요."
갑자기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내 뺨 위로 흘러내렸다.
"김준혁씨.....다시 기억이 떠오르나요?
당신이 이곳에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 가요.
당신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지우며 윤성진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지금 다섯번째 똑같은 말을 당신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기억이 도중에 되살아나는지 살피기 위해 당신이 말한 상황을 저와 김간호사가 재연해 주었죠.
이것 또한 벌써 세번째나 하는 거예요.
도중에 당신 기억이 돌아올거라 믿으면서....
힘들어도 이젠 친구를 떠나 보내세요.
윤성진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아요....
당신이 윤성진씨를 흉내낸다 하여도 당신은 결코 윤성진이 아니예요.
이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세요....김준혁씨..."
뜨거운 눈물이 샘 솟듯이 흘러나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깨물으며, 나는 울음소리를 삼켰다.
"김준혁씨....젊은 나이에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당신의 완치여부는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힘들어도 과거를 지우지 말아요.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요.
당신만 마음가짐을 다진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다중인격도 아니고...귀신에 씌운 것도 아니예요.
이제 친구를 떠나 보내세요.
잡을 수 없을 허상을 찾아 헤매지 마시고, 이제 현실로 돌아와요."
나는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쏟아져나오는 뜨거운 액체는 감출 수가 없었다.
"김준혁씨....이제 선택하셔야 합니다.
다시 윤성진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치료실....아니 당신이 착각하는 그 오피스텔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면 다른 완치단계의 환자들과 생활하며, 아무런 제약없이
퇴원할 때까지 정상인들처럼 살아갈 겁니다."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건넸던 서류철을 받아들더니, 무언가 받아 적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눈물이 어느 정도 말라감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나의 대답이 지연되자 남자는 다시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나는 남자의 얼굴과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말을 아꼈다.
그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김준혁이요..."
나의 말에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당신 친구 윤성진씨는 어떻게 되었죠?"
"3년 전에 죽었습니다."
남자는 흐믓한 표정을 다시 한번 짓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김준혁씨?"
남자가 꺼내 든 것은 빨간색 말보로 담배였다.
"담배요...."
"맞아요. 담배죠.
그런데 그냥 담배가 아니예요.
당신의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당신이 한대씩 피우던 담배예요.
1년 동안 20개피 중에서 이제야 절반 정도 줄었군요.
당신같은 골초가 1년 동안 10개피만 피웠다는 것은 그 동안 김준혁보다는
윤성진으로 산 기간이 더 길었다는 말이예요.
이 담배맛을 기억하나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담배를 내게 건네는 시늉을 하더니 물었다.
"밖에 나가서 담배 한대 피울래요?"
"네...."
잔디 정원의 벤치에 앉아 맑디 맑은 하늘을 보며 나는 담배 연기 한모금을 빨아들였다.
간만에 맞보는 담배라 그런지 목이 막혀오며 토할 듯이 기침이 쏟아졌다.
"콜록! 콜록! 콜록!"
내 뒤에 서 있는 두 남녀의 소근거림이 들려왔다.
"박사님......김준혁씨 담배피면서 기침하는 것 처음보네요."
"그러게...."
"그리고 김준혁씨가 핸드폰 1번 단축번호로 설정해 놓은게 있는데 모르는 번호예요."
"그래?"
"뒷자리는 김준혁씨거랑 같구요, 앞자리만 010 이 아니라 016 이예요. 예전 자기 번호인가 보죠?"
"그런가 보네...그런데 왜 예전 자기 번호를 단축번호 1번으로 했을까?"
나는 조용히 입 주위에 말라 붙은 침을 털어냈다.
-끝-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쓰시는분이 하드론님 인거 같네요.
내용도 깔끔하고 항상 스토리에 연결고리 및 복선이 재미있게 연결 되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