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이것이 나의 첫번째 스토리이다.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라는 것을 약간씩 접해본 나로서, 완전히 내 머리속을 하얀 백지로 만들고, 계속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이 있다. 처음으로 쓰는 스토리텔링의 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지, 논쟁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몫은 나의것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법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자유로운 영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 기독교의 마태복음 23장 39절에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적혀있다. 기독교는 자신의 몸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라 하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웃인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뜻일것이다. 유교학적으로 표현하면, '신체발부수지부모' 라는 것과 의미가 일맥상통할 것이다. 기독교가 유교와 같은 근본인것처럼 오해를 할수 있겠지만, 그런 쓸떼없는 논쟁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지 인간의 뜻에 맞지 않다면 취하지 않았을것이라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will)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완전히 해체 하여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자유로와야 비로서 새롭게 자유로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이 태어난 이유와 죽는이유 를 '왜?'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타인과 자신을 두고 저울질을 한다면 백이면 100%,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은 자신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라는 드라마 처럼 세종대왕이 대의(大意)를 중요 하게 생각하는 예외적인 인물이 있을꺼라 생각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실제는 내가 당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의 이기 전에 어린시절부터 태종 이방원의 무력과 힘에 대항해 자신에게 필요한것을 위해 무력보다 더 큰 힘을 갖고자 글자를 만들기를 다짐하지 않았던가. 저울질을 해보면 어쩔수 없는것이 사람이다. 불교의 천수경 참회게에는,, 我昔所造諸惡業 (아석소조제악업) 皆由無始貪瞋癡 (개유무시탐진치) 從身口意之所生 (종신구의지소생) 一切我今皆懺悔 (일체아금개참회) 라고 적혀 있다. (해석) - 지난세상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은, - 무시 이래 탐심 진심 치심 때문에, -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것일세, - 제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 여기서 불교의 탐(貪).진(瞋).치(癡) 라는 삼독심 (三毒心)중에, 다른 뜻보다 치심( 癡心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본다면, 삼독심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탐심(탐하는 마음)과 진심(성내는 마음) 의 밑바닥에 근원 적으로 치심이(어리석은 마음)이 존재한다, 는 뜻이 된다. 곧, '나'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치심은, '나의 사랑'이라고 것에 빠져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와 타인을 저울질 하면 당연히 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것며, 그것을 인정하고 경계하고자 했던 마음이 불교 인 것이다. 나와 이(利)가 뜻이 맞으면 탐심을 내고 나와 맞지 않으 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진심을 내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조금 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기부와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생각 한다는 설문조사는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주) -Noblesse oblige 라는 명목 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기부 를 해야한다면서 나와 타인중에 자신을 저울질 하는 것은 아니던가, 라고 의구심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http://news.nate.com/view/20100405n05696 http://news.nate.com/view/20111124n13443 http://www.mosf.go.kr/news/news01.jsp?boardType=general&hdnBulletRunno=60&cvbnPath=&sub_category=&hdnFlag=&cat=&hdnDiv=&select=subject&keyword=%EA%B8%B0%EB%B6%80&hdnSubject=%EA%B8%B0%EB%B6%80&date_start=2008-11-18&date_end=2011-11-25&&actionType=view&runno=4011328&hdnTopicDate=2011-11-24&hdnPage=1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하고, 후에(나중에) 타인을 사랑할수 있을까? 나의 자유의지는 수많은 관계에 형식화 되어 있지는 않은가? 저울은 한곳으로 치우쳤는데, 과연 평행을 이룰수 있을까?? 진정, 큰 뜻이라는 대의와 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기부와 봉사라는 단어가 자신의 죄를 씻는 또는 마음의 평안을 갖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하기전, 나를 있게 한 선조들과 부모를 사랑하라고. 친구와 후배, 부모, 연인, 종교 등의 관계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곳으로 치우쳐진 저울이라면, 평행을 맞추려고 쓸떼없이 노력 하지 말고, 아깝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 하지 말라고. 꿈은 밤에 꿈을 꿔도 몇시간씩 꾸는데, 현실에서조차 꿈은 그만 꿈꾸고 현실에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고, 기부와 봉사라는 단어로 수직적인 위, 아래를 정하지 말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라는 수평적인 개념으로 살아가라고, 이것이 나의 첫번째 스토리이다.
마태복음과 참회게
이것이 나의 첫번째 스토리이다.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라는 것을 약간씩 접해본 나로서,
완전히 내 머리속을 하얀 백지로 만들고, 계속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이 있다.
처음으로 쓰는 스토리텔링의 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지,
논쟁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몫은 나의것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법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자유로운 영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
기독교의 마태복음 23장 39절에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적혀있다.
기독교는 자신의 몸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라 하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웃인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뜻일것이다. 유교학적으로 표현하면,
'신체발부수지부모' 라는 것과 의미가 일맥상통할 것이다.
기독교가 유교와 같은 근본인것처럼 오해를 할수 있겠지만, 그런
쓸떼없는 논쟁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지 인간의 뜻에
맞지 않다면 취하지 않았을것이라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will)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완전히 해체 하여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자유로와야 비로서 새롭게
자유로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이 태어난 이유와 죽는이유
를 '왜?'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타인과 자신을 두고 저울질을 한다면 백이면 100%,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은 자신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 라는 드라마 처럼 세종대왕이 대의(大意)를 중요
하게 생각하는 예외적인 인물이 있을꺼라 생각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실제는 내가 당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의 이기
전에 어린시절부터 태종 이방원의 무력과 힘에 대항해 자신에게
필요한것을 위해 무력보다 더 큰 힘을 갖고자 글자를 만들기를
다짐하지 않았던가. 저울질을 해보면 어쩔수 없는것이 사람이다.
불교의 천수경 참회게에는,,
我昔所造諸惡業 (아석소조제악업)
皆由無始貪瞋癡 (개유무시탐진치)
從身口意之所生 (종신구의지소생)
一切我今皆懺悔 (일체아금개참회)
라고 적혀 있다.
(해석) - 지난세상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은,
- 무시 이래 탐심 진심 치심 때문에,
-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것일세,
- 제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
여기서 불교의 탐(貪).진(瞋).치(癡) 라는 삼독심 (三毒心)중에,
다른 뜻보다 치심( 癡心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본다면, 삼독심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탐심(탐하는 마음)과 진심(성내는 마음) 의 밑바닥에 근원
적으로 치심이(어리석은 마음)이 존재한다, 는 뜻이 된다.
곧, '나'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치심은,
'나의 사랑'이라고 것에 빠져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와 타인을 저울질 하면 당연히 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것며, 그것을 인정하고 경계하고자 했던 마음이 불교
인 것이다. 나와 이(利)가 뜻이 맞으면 탐심을 내고 나와 맞지 않으
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진심을 내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조금 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기부와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생각 한다는 설문조사는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주)
-Noblesse oblige 라는 명목 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기부
를 해야한다면서 나와 타인중에 자신을 저울질 하는 것은 아니던가, 라고 의구심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http://news.nate.com/view/20100405n05696
http://news.nate.com/view/20111124n13443
http://www.mosf.go.kr/news/news01.jsp?boardType=general&hdnBulletRunno=60&cvbnPath=&sub_category=&hdnFlag=&cat=&hdnDiv=&select=subject&keyword=%EA%B8%B0%EB%B6%80&hdnSubject=%EA%B8%B0%EB%B6%80&date_start=2008-11-18&date_end=2011-11-25&&actionType=view&runno=4011328&hdnTopicDate=2011-11-24&hdnPage=1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하고, 후에(나중에) 타인을 사랑할수 있을까?
나의 자유의지는 수많은 관계에 형식화 되어 있지는 않은가?
저울은 한곳으로 치우쳤는데, 과연 평행을 이룰수 있을까??
진정, 큰 뜻이라는 대의와 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기부와 봉사라는 단어가 자신의 죄를 씻는 또는 마음의 평안을
갖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하기전, 나를 있게 한 선조들과 부모를 사랑하라고.
친구와 후배, 부모, 연인, 종교 등의 관계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곳으로 치우쳐진 저울이라면, 평행을 맞추려고 쓸떼없이 노력
하지 말고, 아깝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 하지 말라고.
꿈은 밤에 꿈을 꿔도 몇시간씩 꾸는데, 현실에서조차 꿈은 그만
꿈꾸고 현실에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고,
기부와 봉사라는 단어로 수직적인 위, 아래를 정하지 말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라는 수평적인 개념으로 살아가라고,
이것이 나의 첫번째 스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