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깐느 마라톤

윤옥환2011.11.26
조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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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에서였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니스깐느 마라톤을 완주하고 5일이 흘렀다.

다리에 통증이 아직 그날의 땀과 감동을 대변하여 주고있다.

 

프랑스인들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매우 힘들었을 마라톤 등록에서부터 참석까지 감사에 감사일 따름이다.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니스 깐느 그리고 그라스 근처는 온통 물난리였다.

도로 곳곳에 파손이 있었으며, 제방들이 붕괴되었다.

 

그러던 심술 가득하던 하늘의 기후가 마라톤 당시에는 드라마처럼 바뀌었다.

'Free  North Korea'

문구를 적어 그라스에서 마음을 다졌다.

그라스와 니스 그리고 깐느 근처에서 많은 프랑스인들의 격려를 받았다.

팔에도 'Liberte Coree du nord'라고 프랑스어로 새겨서 달리는 연도에 관중들에 보여주며 달릴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미리 부탁하여 제작을 의뢰한 플랭카드가 도착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태웠다.

사실 숙소인 그라스에서 니스까지는 약 40킬로이다.

마라톤 당일 새벽 6시까지 마라톤 출발지점에서 갈아입은 옷을 맡기고 출발 준비를 하여야 한다.

 

플랭카드가 오지 않았다.

 

새벽에 그라스에서 니스가는 교통편이나 대중교통을 알아보았지만 방법이 없다.

아비란트와 쇼바나가 당일 새벽에 자동차로 도와주겠다고 하였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다른 방도를 모색하였다.

결국 전날 밤에 니스근처로 미리 가서 지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결심하였다.

플랭카드는 포기하여야 했다.

쇼바나와 아라빈트에게 아침일찍 일어나야하는 번거로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메모를 남겨 안심을 시킨후 말없이 니스로 떠났다.

 

밤이 깊어가는 니스에 도착하였으나 머물 호텔이나 숙소가 없다.

 

밤에 추위가 몸을 엄습하여왔다.

 

프랑스 라디오 음악채널을 맞추어 귀에 꽂고 음악을 들음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결전의 날이 밝아오길!

마라톤의 고통을 이미 여러차례 체험하였기에 마음에 마음을 굳건히하였다.

서울 마라톤, 솔로몬 하프마라톤, 멕시코 마라톤, 두바이 마라톤, 락 하프 마라톤, 프라하 마라톤, 그리고 이제 니스깐느 마라톤 차례이다.

새벽이 아직 멀기만한 새벽 3시경에 니스의 지중해변을 따라서 약하게 몸을 풀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자 마라톤 구간에 안전벽을 설치하는 마라톤 준비 요원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새벽의 공기는 몹시도 차가왔다.

 

새벽의 찬바람은 툰두라 광야의 바람처럼 매섭게 얼굴과 손발을 내려쳤다.

그래도 니스깐느 마라톤을 생애 처음으로 참가한다는 마음으로 위로를 할 수 있었다.

지중해 새벽별은 비수처럼 차갑게 뇌리로 꽂혀왔다.

 

아직 이른시간인지라 옷을 맡기는 절차를 밟지 못하였다.

 

몇중으로 껴입은 옷위에 플라스틱 비옷을 입어 추위를 막아보았다.

 

벤치에 구부려 눈을 붙였다.

 

파도소리가 외롭다.

 

다시 눈을 뜨니 언제 모여들었는지 벌써 마라톤 참가자들이 불어들어 웅성거리며 장터를 이루었다.

몇몇 사람들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다가와서 말을 건네왔다.

 

팔뚝에 새겨놓은 문구를 보여주며 윙크를 하였다.

 

모두 태어난 곳과 언어 그리고 문화는 다르지만 오늘은 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우정과 사랑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거의 모두들 무언가 마시거나 가볍게 몸을 움직여 워밍업을 하였다.

각종의 음료수와 드링크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름도 모를 생소한 것들이었다.

마라토너들을 위한 아이디어 드링크 들이었는데 정보에 어두운 나로서는 바라만 볼뿐이다.

마라톤에 필요한 각종의 미네랄이 섞인 그리고 특수 성분이 배합된 음료였다.

다음에는 이런것들 미리 준비를 하여야 겠다.

이전까지 마라톤때면 이런것들에 무관심하였으나 필요할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마라톤 관계자들이 속속 제자리를 찾아 자리잡았다.

태양을 애타게 기다리는 내 마음은 모르고 마라토너 가족들은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알리가 없는 태평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는 착잡학기만하다.

 

이런저런 절차를 마치고 스타트 라인 근처에서 몸을 스트레칭하였다.

이전의 경험들을 재차 머리에서 재생하여 전략을 세워보았다.

기록에 대한 욕심보다는 남북통일 특히 북한 해방 중요성을 현지인들에게 알리는 홍보역할에 중점을 맞추었다.

 

도로변의 관객들에게 팔을 들어 보여주었다.

 달리는 내내 구호를 외치는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지중해 태양은 금새 달구어진다.

 

추위가 언제 있었냐는듯이 기온이 상승하였다.

 

힘들어하는 마라토너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등을 가볍게 밀어주며 힘을 주었다.

 

프랑스인, 독일인, 이탈리아 그리고 캐나다와 스위스에서 온 마라토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프리카의 탑마라토너들은 이날을 장식하기 위하여 특별히 초대되어 행사를 빛내주었다.

마라톤 시작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지날때면 다시 인사와 격려를 나누었다.

바람은 뒷바람이라서 달리기에 도움이 되었다.

아마도 신기록을 바라는 주최측의 계산된 구간 설정일 것이다.

 

그리도 그리던 태양이 이제는 오히려 걸림돌로 변하였다.

 

다행히 지난번 체코마라톤 당시 고통을 주었던 다리 저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35킬로 지점에서 고비가 왔다.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포기할 수는 없다.

 

욕심으로는 2시간 50분이 간절하였다.

 

연변에 진달래 핀 북녁의 산들을 상상하여 보았다.

 

굶주리는 북한인들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소리없이 말없이 지켜볼 한국의 지인들 그리고 질병으로 병상을 떠나지 못하는 한국의 병든자들도 떠올렸다.

달릴수 있는 다리가 있음에,  지중해의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그리고 아직 살아서 숨쉼에 감사를 한다면 포기할 수는 없다.

 

마음을 다지고 다지지만 시시각각 몰아치는 통증은 인내에 인내를 요구하였다.

평상의 마음을 유지하여야 했다.

얼굴을 평안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고통스런 얼굴을 보일 수는 없다.

니스의 해안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어난 관객들, 야외카페에 자리잡고 지켜보는 사람들, 테라스와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 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파나로마처럼 지나쳤다.

드디어 골인지점을 몇백미터 남겼다.

고통이 환희로 바뀌었다.

42.195킬로를 지나서 마음은 어느새 대한의 벌판과 산야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