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들어와서 봐줘.. 내얘기좀 해볼께

ㅇㅇ2011.11.27
조회439
내가 12살이고 형이 16살일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셨다.
나와 형은 엄마에게로 가서 살았다.
엄마는 관리사무소 경리일을 하면서 월 120만원의 월급과 아버지의 양육비 60만원을 가지고
고등학생 형과 학원도 2개나 다니는 나의 뒷바라지를 하셨다.
 
솔직히 우리 찢어지게 못살았다
밥은 개뿔 라면만 주구장창 먹다가 하두 먹을것이 없어서 부침가루만 기름에 튀겨서 먹은 적도 아주많다.
우리는 남들이 소고기나 회 먹는것처럼 햄을 먹었다.
정말 그렇게 거지 같이 살고 형은 버스비가 없어서 집에서 50분동안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다.
내가 중2가 되었을때 반애들 대부분이 핸드폰이 있었다.
나도 핸드폰이 가지고 싶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다.
나는 그말을 했다가 형한테 정말 오지게 맞았다.
우리 생활에 무슨 핸드폰이냐고
전기세도 못내서 티비도 못보고 컴퓨터가 고장나도 못고치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일요일 주말밤에 엄마가 외식을 하자고했다.
나는 좋다고 바로 나갔고 형도 같이 나가게되었다.
엄마는 회를 먹자고 하셨다.
나는 좋아라하고 거의 한 5,6년만에 먹는 회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엄마는 맛잇게 먹던 우리를 보다가 갑자기 눈가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말씀하셨다.
"xx(나의형)아 정말미안하다. 엄마 너무 힘들다. 아빠에게 가라" 이렇게 하셨다.
형과 나는 엄마가 이혼하기전에 아빠에게 정말 많이 맞고 살았는데 엄마도 그사실을 당연히 아는데
그런것들을 아는데도 고3인 형에게 아빠에게 가라는 소리를 하다니....
형은 정말 미안하게도 바로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랑 단둘이 몇개월 살다가 엄마가 갑자기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당시 원룸에서 엄마와 나 , 둘이서 살고있었는데 이사를 가자고 하니
한편으론 기대를 했지만 한편으론 원룸보다 안좋은 곳을 갈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리고 이사갈 집을 한번 가봤는데 정말 놀라웠다..
집이 거의 50평에 육박하는 큰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안에는 어떤 아저씨가 있었다.
엄마는 "새아빠니까 인사해"라고 하셨다...............
정말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5, 6km 되는 곳을 계속 달려서 원래살고있던 원룸에서 이불덮고 하루종일 울었다.
엄마한테 정말 싫다고 무섭다고 다시 아빠가지는거 무섭다고 정말 철없게 떼썻다.
 
그리고 엄마는 새아빠에게 미안하다고 oo이가 싫어하는데 나도 어쩔수없다고 하셧다.
 
그리고 한 1주일후에 형이 갑자기 고3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에 찾아왔다.
형은 나에게 제발 새아빠랑 같이 살라고 햇다.
난 정말 싫다고 계속 울면서 그랬지만 형은 울면서 날 떄리면서 제발 그러라고 햇다.
또 새벽내내 나는 울엇고, 결국 알앗다고 햇다.
 
새아빠와 같이 살게 되고 반에서 30등, 전교에서 320등정도 하던 내가 중2 2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 5등을했다.
정말 난 그때 살맛낫다.
너무 행복햇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새아빠와 엄마는 나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동생이 생길 것 같다고햇다.
새아빠와 엄마사이에 아기가 생긴것이다.
나는 꿈이 교사인데 애기를 낳으면 내가 정말 다 가르쳐주겠다고
동생 학교다니는곳으로 전근갈거라고 하면서 정말 한 2개월정도 즐겁게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기침을 계속 하셨다.
대전 충남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서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기를 임신했을때 산모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입니다." 라고 하셨다.
난 안심을 하면서 앞으로 있을 외고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집에 안계시는것이다
난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쉰목소리로 지금 기침이 심해져서 충남대 병원에 입원 중이고, 내일 바로 집으로 갈테니 안심하고 혼자 밤 잘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믿고 계속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약 1달후에 엄마는 다시 입원을 하셨다.
이번에는 거의 2,3주동안 입원을 하셨고
입원한 도중에 나는 이모와 같이 엄마에게 들렸다.
엄마는 이모에게 "언니 나 폐암인가봐" 하면서 계속 울으셨다.
나는 그말을 듣고 깜짝놀라며
"엄마 그런소리 하지마 진짜" 라고 했다.
 
그리고 정밀검사를 받으신 뒤 중환자실에 입원 하셨다.
나는 학교끝나고 바로 충남대병원으로 갔다.
충대 중환자실은 6시부터 6시 30분까지만 환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의 엄마는 인공 호흡기 같은것을 쓰고 계셨고 날 보면서 두손을 반갑게 흔드셧다. 
그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바로 엄마 옆으로 달려가서
"엄마괜찮아?" 라고했다.
엄마는 호흡기 때문에 말씀을 못하시기 때문에 옆에잇는 작은 보드와 보드마카를 가지고 쓰셨다.
'당연하지 엄만데!'
난 그걸 보고 정말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엄마 이기에 믿었다.
 
그리고 한 1주일후에 엄마는 다시 6시에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항상 있던 자리에 없는 것 이다.
바로 간호사에게 우리 엄마 어디 계시냐고 물어봤다.
그 간호사분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셧다고 하셧다.
나는 정말 놀랐다.
서울 아산병원에 암전문 병동이 있고, 암치료로 유명한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후, 집앞에 강가에 갔다.
거의 8시부터 12시까지 계속 울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말을 걸며 왜 우니? 라고 물어보기도 그럴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새아빠에게 바로 전화를했다.
"왜 나만 안알려줫어요?"
새아빠는 "미안하다 깜빡 잊었다." 라고 하셧다.
나는 계속 울면서 "왜 난 안 알려줫냐고요 왜"
거의 이 말만 5분내내 반복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집에 가서 바로 이불을 뒤집어쓰꼬 누웠다.
정말 잠을 자고 싶엇는데 잠이 안왔다.
거의 새벽 5시가 다 되었을 때 잠이들었다.
 
그리고 주말에 이모와 같이 서울에 올라갔고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을 들어갔다.
면담시간이 되자 마자 바로 나는 손을 소독하고 들어갔다.
엄마가 어디위치에 있는지도 모르는 데도 나는 바로 들어갔다.
난그냥 내발이 가는대로 어느 병실안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엄마가 인공호흡기 에다가 온몸에 주사 같은 것을 꽂은 채로 누워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문열고 나가서 계속 울었다.
정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듯이 면담시간의 1/3을 울었다.
엄마는 보드마카로 
'oo야 울지마, 엄마괜찮아'
라고 쓰셨다.
그것을 보고 난 엄마의 손을잡고 계속울었다.
울면서 나는
"엄마사랑해 진짜사랑해 엄마 내가 엄마사랑하는거 알지?" 라고 했다.
엄마는 
'나도 사랑해 정말로!'
라고 쓰셨다.
난 엄마를 놓고 다시 대전으로 가서 공부를 할 자신이 없어서
4일동안 병원의자에 앉아서 자면서
오전 10시부터 10시30분 까지와 6시부터 6시30분까지 있는 하루 2번의 면담시간만 기다리면서 지냈다.
 
그리고 어느날 의사선생님은 가족들을 불러서
"환자분 뱃속안에 잇는 아기를 낳을 날짜가 잡혔습니다. 솔직히 이 수술중에 환자분이 목숨을 잃으실 확률이 7,80%입니다. 하지만 아기가 계속 환자분의 몸안에 있으면 앞으로 항암치료나 약물치료를 하기가 곤란합니다." 라고 하셨다.
정말 우리는 울고 불며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기를 출산하는 날짜가 하필이면 내가 외고에 원서를 내러가는 날이랑 겹친 것이다.
난 가족들에게 내가 미쳤냐고 절대 안본다고 그따위 외고 필요 없다면서 붙을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전날 보드마카로 내게 한마디 해주셨다.
'oo야 니가 외고 시험 붙으면 엄마 정말 힘이 날 것 같아. 그러니까 꼭봐'
 
정말 나는 가기 싫었지만 진짜 가기 싫엇는데 원서를 내고 바로 서울로 올라온다는 약속하에 갔다왓다.
외고에 원서를 내고, 원래는 입학설명회도 들어야 되지만 그런건 다 떄려 치우고 원서 내고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아산병원에 도착햇다.
 
엄마는 마침 내가 도착햇을 때,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하셨다.
난 엄마에게
"엄마 정말 사랑해. 진짜 진짜 사랑해. 엄마 정말 사랑해."
거의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내내 나는 엄마 사랑한다고 울면서 외쳤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손으로 화이팅을 외쳣다.
난 4시간 내내 아산병원 내에잇는 기도실에서 울면서 정말 난생처음 방언까지 하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4시간 후 의사선생님이 나와서
아기는 성공적으로 낳았지만 산모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3시부터 5시까지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던 엄마는 드디어 나오셧다.
그러나 엄마는 눈을감고 계셧고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난 정말 서럽게 울면서 중환자실안에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따라들어가려햇다.
허나 바로 의사들에게 저지를 당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6시, 환자면담시간이 되고 우리는 손을소독하고 엄마를 보러 갈려고했다.
그런데 방송으로 'ooo(엄마)님 가족분들은 들어오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라고 나왔다.
우린 바로 간호사들에게 항의했다
간호사분들은 환자가 아직 안정을 취해야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다.
난 정말 맘 졸이며 기달렷다.
 
그리고 8시가 됬을 때 갑자기 방송으로 'ooo님 가족분들 들어오세요'라고 나왔다.
우리는 기도를 하고 있다가 바로 중환자실로 엄마를 보러 들어갔다.
엄마는 해맑게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우리는 누구 할 것없이 다 울면서 엄마의 손을 잡았다.
우린 엄마가 해내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했고, 또 기대했다.
 
그리고 난 외고시험을 보러가는 날이 되었다.
엄마가 출산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 나는 조금은 더 맘이 가벼운 채로 대전을 갔다.
하룻밤을 샌 뒤 새벽에 일어나니 부재중전화가 20개는 있었다.
그리고 문자로
'엄마가 새벽에 잠깐 의식을 잃으셨었는데 지금은 다시 되찾으셨으니 걱정마라'
라고 형에게서 왔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외고시험을 보러갔다
하지만 그 문자가 계속 생각이 나서 듣기를 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단어 한개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1초만에 끝난것같은 듣기시험을 마친 뒤 나는 바로 기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형, 외삼촌들, 사촌형,누나,동생들, 이모를 보았는데 하나같이 다 울고있었다.
형은 나에게 잠시 할말이 있다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아산병원 1층에서 긴 의자에 앉아서 형은 내게 말했다.
 
'새벽에 의식을 잃었는데 그 떄 뇌에 피가 안돌아서 엄마 뇌가 활동을 멈췄어'
 
난 그말을 듣고도 무슨말인지 몰라서 다시 되뇌였다.
그리고 한참잇다가 꺠달은 난 형에게 주위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지만 정말 큰소리로 울면서 물었다.
 
"그럼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거야?"
 
형도 또한 울면서 맞다고 했다.
나는 정말 바로 벽에다가 머리를 세게 계속 부딪혔다.
정말 이게 현실인가
엄마가 아들도 못알아보고 말도못하고 반응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셨다니......
 
면담시간이 되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그 전에는 나를 보며 두손을 반갑게 흔들며 계속 껴안고 손 잡아주던 엄마가
눈에 안대를 쓴채로 고요히 가만히 있었다.
30분내내 나는 울면서 여느떄와 같이
엄마 귀에 대고
"사랑해 엄마" 라고 반복했다.
그렇게 면담시간이 끝나고 나는 의사선생님을 뵈었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게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의 일방적인 대화를 하는 생활을 40여일간 하고 중학교 졸업식을 위해 잠시 대전을 내려왔다.

형도 또한 대학교 입시 체육실기시험을 보기위해 같이 지냈고, 시험을 보고 본 당일 날에 형이 하루만 재미있게 놀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서울로 가자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농구경기를 보기위해 경기도 안양으로 가서 재미있게 경기를 관람하고 찜질방에서 잠을잤다.
 
그런데 새벽 5시쯤에 형이 나를 꺠웠다.
그리고 형은 아무말없이 씻고 나가자고 했다.
형과 나는 아무 대화없이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형은 대전행을 끊는것이었다.
나는 형과 안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서울로 다시 올라가 엄마를 보기로 했는데..
 
대전행을 끊었다.
 
대전행을..
 
대전행을 끊는 형을 보고 난 계속 울면서 "서울행끊어야지" 라고 했다
형은 나의 질문에 아무 대답없이 담담히 버스에 올라탔다.
나도 버스를 탔다.
새벽버스에는 우리 둘과 기사 아저씨 밖에 없었다.
난 버스를 타고 대전을 가는 도중에 3시간 내내 울었다.
그리고 대전에 도착하고 형과 나는 택시를 탔고 형은
"충대 장례식장이요"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