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비판 화제 악연시작

썅하이20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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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시민을 인질이나 빽으로 삼은 권력 지향적 인물” “읍소와 압박으로 안철수 교수를 압박해 안 교수를 주저앉혔다” “협찬 인생이 별것 아니라는 박 시장의 대응은 경이롭고, 협찬 중독인 그의 삶은 권력 향유 쟁취 방식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 같은 강 교수의 박 시장 비판은 조선일보에서도 길게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박 시장에 대한 강 교수의 비판의식은 10여 년 전 바로 그 조선일보를 둘러싼 안티조선 운동 시각차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월간 인물과사상 12월호 ‘정치가형 시민운동가의 성공인가: 박원순 현상의 명암’이란 칼럼에서 박원순 시장의 과거 각종 사외이사, 위원회 참여는 돈이 목적이어서 실제로 출석률조차 낮았다고 밝혔다.

NGO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정관계 진출을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박원순 시장이 이번 서울 시장 보선에 뛰어든 데 대해 강준만 교수는 “늘 적절한 기회를 노려온 박원순 시장의 정치동물적 감각이 발동했다”며 “오세훈의 사퇴는 박 시장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고 지적했다.

박원순의 수염은 안철수 압박용?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선언으로 최대의 복병을 만나자 박원순 시장은 안 원장에 읍소와 압박 모두를 구사했다고 강준만 교수는 분석했다. 강 교수는 후보 단일화가 결정된 안철수·박원순 회동에서 박 시장이 수염을 잔뜩 기른 채 나타난 이유에 대해 ‘안 교수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강 교수는 “(박 시장이 수염을 기른 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유는) 면도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철수를 압박하려는 목적이”라며 “박원순은 이미지 정치의 프로다운 면모마저 보였다”고 짚었다. 박 시장의 수염까지도 안 원장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할 정도로 강 교수는 박 시장에 삐딱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또 박원순 시장은 안철수 원장이 출마해도 서울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배수의 진을 치고, 안 원장에 두 차례나 이메일을 보내는 읍소를 더해 안 원장을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고 강준만 교수는 설명했다. 강 교수는 “다소 소심하다는 안철수가 도대체 무슨 수로 박원순의 그런 막무가내식 전법을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안철수의 오른팔이라는 시골의사 박경철이 안철수가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릴만하다”고 말했다.

강준만 교수는 박원순 시장의 협찬 스캔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박 시장은 출마 직전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하면서 1000만 원(일반 판매가 기준) 상당의 물품을 지원받았다. 한나라당이 “박 후보의 인생은 한마디로 ‘협찬인생’”이라고 공격하자 박 시장은 블로그 등으로 미리 협찬 받은 사실을 알렸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원순 시장의 대응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그 사고방식이 경이롭다. ‘협찬 중독’이라 할만하다”며 “박원순 시장의 협찬 인생은 그의 권력 향유 쟁취 방식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민사회가 박 시장을 비판했다는 지적도 강 교수는 전했다. 강 교수는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박 시장에 대해) ‘시민단체의 파쇼’, 박 시장이 짓는 ‘살인미소’에서 미소는 빠지고 살인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주로 공개된 자료에 근거해 글을 쓰는 강 교수가 시민사회에서의 풍문을 그대로 옮긴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대체 강 교수는 언제부터 박 시장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게 된 걸까?

강준만 교수는 진보지식인의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와 기고 거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안티조선 운동의 창시자다. 지금은 안티조선 운동이 종북좌파의 전유물로 인식되지만, 첫 등장 당시만 해도 안티조선 운동의 주 타깃은 조선일보라기보다 위선적 좌파지식인들이었다. 강 교수는 좌파인양 행동하면서 조선일보와 손을 잡는 이들의 위선과 기만을 낱낱이 밝혀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원순 시장이었던 것이다. 백 교수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안티조선 운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박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원순은 명예욕에 사로잡혀 언론과 추악한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

발단이 된 사건은 박원순 시장이 2000년 총선 당시 낙선운동에 나섰을 때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건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낙선운동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는데 박 시장이 그런 조선일보에 기고했으니 강준만 교수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강 교수는 참여연대 기관지인 참여사회 2000년 5월1일자로 박 시장에 공개 칼럼을 기고했다.

“시민단체는 『조선일보』처럼 행동하면 안됩니다. 뒷집의 똥개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 똥개의 의견에 공개적으로 답을 주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타적인 희생정신과 그 실천이 면죄부일 수는 없습니다. 명예욕 또한 권력욕 못지않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시민운동 지도자들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언론에 대해 비굴하게 구는 정도를 넘어 언론과 아주 추악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은 다음과 같이 완곡하게 답변한 바 있다.

“세상은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걸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매도해 버린다면 강 교수님이 말하는 ‘조선일보식’이 될까 두렵습니다. 여전히 강 교수님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용감히 해주시는 분입니다. 곁에 우리의 강력한 비판자를 두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저희들의 잘못을 계속 질책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즉 이 시기까지만 해도 박원순 시장은 조선일보와의 모든 인터뷰와 칼럼기고를 거부하자는 강준만식 안티조선 운동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기 전만 해도 좌파진영에서조차 강 교수의 안티조선에 동의하지 않은 인물이 더 많았다. 앞서 언급한 백낙청 교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전쟁을 선언한 노무현 정권 이후 좌파지식인 99%가 안티조선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백 교수, 조 전 수석 등은 오히려 강 교수보다 더욱 더 앞줄에 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안티조선 운동의 뒤로 물러섰다. 강 교수가 빠지자 안티조선 운동은 노무현 권력의 힘을 믿고 더욱 더 강경해졌다.
그러나 이 시기 박원순 시장은 여느 친노인사들과 달리 차기 대통령이 유력했던 이명박 서울시장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중도적 색채를 갖게 된 것이고, 이런 정치적 행보가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

강준만 교수의 박원순 시장 비판은 조선일보를 비롯 동아일보, 데일리안, 헤럴드경제 등 우파언론들이 집중 인용했다. 박 시장이 취임 초기 허니문 과정에 들어선 시점에서 같은 진영 강 교수의 직설적 비판은 보도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강 교수의 비판은 사실상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더 관련이 깊다. 안티조선 운동에 동의하지 않았던 박 시장이 안티조선 기치를 내걸었던 친노세력과 손잡고 서울시 권력을 쟁취한 반면, 안티조선 창시자인 강 교수는 그에 뒷담화를 치는 위치로 전락해버린, 운동권 역사의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