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난 판수니임. 매일매일 여기에서 읽는 글은 나에게 땅콩같은 존재임. 요 근래 노쓰패딩이다 뭐도 중.고딩들의 글들이 내 맘을 아프게 했음.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려고함. 익명성을 빌렸으니까 진실만을 말하고 진심만을 말할것임. ------------------------------------------------------------------------------------------- 쓰려고 하니 답답하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학교다닐 때 난 그냥 그저 그런 아이였고, 우리 엄마는 가족을 위해서 사시는 분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아침밥을 거른적이 없고, 엄마는 항상 아침밥을 차려줬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중학교 때 아빠의 실직으로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할 수 없던 우리가족. 그래도 엄마는 한번도 아침밥을 거르게 한 적이 없었다. 난 항상 입버릇처럼 엄마에게 '엄마,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시골에 집 지어줄게.','크면 다 갚을게.'... 딱히 속 썩이는 것도 없었고, 중학교 때야 공부를 워낙 안했지만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열심히했다. 인문계 가라던 엄마에게 인문계가서 꼴지 할바엔 실업계가서 일등하겠다고. 실제로 고등학교 땐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매일 엄마한테 자랑하고 이 때 정말 행복했다. 고2 때. 엄마가 자궁에 혹이 생겨서 수술을 하게되었다. 수술도 잘되었고 회복기간. 문제는 마음의 병이었다. 엄마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평소에 강한 한국 엄마의 모습이지만 엄마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딸인 나도 알고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떠났던 그날은. 원래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날이었지만.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한명 펑크났다고 급히 와달라고했고, 나는 엄마를 혼자 집에 두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사랑해' 오빠에게 전화를 받고 달려왔지만 차갑게 굳어버린 엄마만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이 집에서, 내가 지금 컴퓨터를 하고있는 이 방에서. 엄마는 그렇게 떠났다. 편지 한통도, 메세지 한통도, 전화 한통도 없이. 친척들이 내 잘못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나는 이 일이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왜 그날 나는 엄마를 놔두고 아르바이트를 가버렸을까, 왜 엄마의 마음을 나는 몰랐을까, 왜 난 엄마가 우울증인걸 부정하였을까, 왜 난 엄마가 이겨낼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을까, 난 아직도 죄책감에 살고있다. 보내고 나면 많은 후회만 남는다. 엄마가 가고 난 후 엄마의 모습도 희미해지고 엄마의 목소리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하고 싶어도 우리집은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이 말해주듯 사진하나 없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둘걸, 놀러라도 많이 나갈걸, 엄마랑 좀 더 같이 많은걸 할걸.......... 잘해준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못하고 짜증냈던거만 기억난다. 내가 밉다. 이제 내가 시집갈 때 혼수 같이 보러다닐 엄마가 없고, 엄마표 요리 레시피를 전수해 줄 엄마가 없고, 여자로써 고민상담 할 엄마가 없고, 같이 늙어 갈 엄마가 없다. 이런 슬픔은 한순간에 찾아오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께 잘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리고 살아 계실 때 사진 많이 찍어드리고, 놀러도 많이 갔으면 좋겠다. 엄마를 추억할 사진이 없다는게 난 너무 슬프더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우리 엄마 이쁘지?'라는 말도 해보고싶은데 사진이 없다. 우리 엄마 .. 내가 늙으면 이렇게 늙고싶다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 이쁘고 너무 고왔는데.. 엄마를 보내고 깨달아서 엄마는 내 머리속에 마음속에 있지만. 요즘은 아빠 사진도 찍어드리고 아빠랑 스티커 사진도 찍고 한다. 또 후회하긴 싫으니까 무뚝뚝한 아빠에게 수다스러운 딸자식이 되어본다. 효도는 커서 하는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어야한다. 나처럼 후회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
익명성을 빌어 하는 엄마 이야기.
안녕 여러분 난 판수니임.
매일매일 여기에서 읽는 글은 나에게 땅콩같은 존재임.
요 근래 노쓰패딩이다 뭐도 중.고딩들의 글들이 내 맘을 아프게 했음.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려고함.
익명성을 빌렸으니까 진실만을 말하고 진심만을 말할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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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고 하니 답답하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학교다닐 때 난 그냥 그저 그런 아이였고, 우리 엄마는 가족을 위해서 사시는 분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아침밥을 거른적이 없고, 엄마는 항상 아침밥을 차려줬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중학교 때 아빠의 실직으로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할 수 없던 우리가족.
그래도 엄마는 한번도 아침밥을 거르게 한 적이 없었다.
난 항상 입버릇처럼 엄마에게 '엄마,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시골에 집 지어줄게.','크면 다 갚을게.'...
딱히 속 썩이는 것도 없었고, 중학교 때야 공부를 워낙 안했지만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열심히했다.
인문계 가라던 엄마에게 인문계가서 꼴지 할바엔 실업계가서 일등하겠다고.
실제로 고등학교 땐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매일 엄마한테 자랑하고 이 때 정말 행복했다.
고2 때.
엄마가 자궁에 혹이 생겨서 수술을 하게되었다. 수술도 잘되었고 회복기간.
문제는 마음의 병이었다. 엄마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평소에 강한 한국 엄마의 모습이지만 엄마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딸인 나도 알고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떠났던 그날은.
원래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날이었지만.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한명 펑크났다고 급히 와달라고했고,
나는 엄마를 혼자 집에 두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사랑해'
오빠에게 전화를 받고 달려왔지만 차갑게 굳어버린 엄마만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이 집에서, 내가 지금 컴퓨터를 하고있는 이 방에서.
엄마는 그렇게 떠났다.
편지 한통도, 메세지 한통도, 전화 한통도 없이.
친척들이 내 잘못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나는 이 일이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왜 그날 나는 엄마를 놔두고 아르바이트를 가버렸을까,
왜 엄마의 마음을 나는 몰랐을까,
왜 난 엄마가 우울증인걸 부정하였을까,
왜 난 엄마가 이겨낼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을까,
난 아직도 죄책감에 살고있다.
보내고 나면 많은 후회만 남는다.
엄마가 가고 난 후 엄마의 모습도 희미해지고 엄마의 목소리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하고 싶어도 우리집은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이 말해주듯 사진하나 없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둘걸, 놀러라도 많이 나갈걸, 엄마랑 좀 더 같이 많은걸 할걸..........
잘해준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못하고 짜증냈던거만 기억난다. 내가 밉다.
이제 내가 시집갈 때 혼수 같이 보러다닐 엄마가 없고,
엄마표 요리 레시피를 전수해 줄 엄마가 없고,
여자로써 고민상담 할 엄마가 없고,
같이 늙어 갈 엄마가 없다.
이런 슬픔은 한순간에 찾아오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께 잘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리고 살아 계실 때 사진 많이 찍어드리고, 놀러도 많이 갔으면 좋겠다.
엄마를 추억할 사진이 없다는게 난 너무 슬프더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우리 엄마 이쁘지?'라는 말도 해보고싶은데 사진이 없다.
우리 엄마 .. 내가 늙으면 이렇게 늙고싶다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 이쁘고 너무 고왔는데..
엄마를 보내고 깨달아서 엄마는 내 머리속에 마음속에 있지만.
요즘은 아빠 사진도 찍어드리고 아빠랑 스티커 사진도 찍고 한다.
또 후회하긴 싫으니까 무뚝뚝한 아빠에게 수다스러운 딸자식이 되어본다.
효도는 커서 하는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어야한다.
나처럼 후회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