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프렌즈(우에노쥬리)-상처뿐인 세상에 소외될 캐릭터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극의 서사에

산야신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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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프렌즈(우에노쥬리)-상처뿐인 세상에 소외될 캐릭터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극의 서사에 감동.

 

 

순전히, 우에노 쥬리 때문에 봤다.
일드가 아직 한국 드라마의 트랜디함에 미치지 못해,
조금은 통속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선입관으로 좋은 드라마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보지 않다가,
우에노 쥬리 때문에 보게 된 것이다.
찾아보니 2008년작이다.
전혀, 촌스럽지도, 통속적이지도 않은,
넓고 깊은 세계관속에 상처받은 청춘의 삶의 고뇌를 잘 보여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포스터가 상징하는 의미가 독특하다.
운명을 상징하는 붉은 실을 칭칭 감은 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포스터와 인트로.

드라마는 시종일관 결론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하게 하며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첫화부터 미치루의 독백에 의해 누군가 죽었음을 암시하며,
그 죽음의 원인과 대상이 누군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되며 각자의 캐릭터를 소개하는데, 이게 참, 난감하면서도, 휴머니티하다.

 

소스케 : 드라마의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갈등의 핵심.
그의 비정상적인 미치루에 대한 집착이 자칫, 캐릭터의 개연성이나 일관성을 헤치며 어설플 수 있었으나,
드라마는 그의 캐릭터를 충분히 설명하고, 마지막까지 그의 선택의 개연성을 설득력있게 풀어 놓는다.
연기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기어린 폭력의 모습도 카메라의 연출이 아니라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게 가장 어색했던 건, 걷는 자세. 왠지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연기 초보자의 걸음걸이라고 할까?
일관된 무표정이나, 때때로 나오는 폭력적인 분노의 모습외에는 캐릭터의 감정 표현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등장 인물 중에서 가장 불안한 연기였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치루 : 매우 예쁜 배우이다. 배우가 누군지 찾아보진 않았지만, 그의 연기 캐릭터는 딱 미치루였다.
순수해 보이는 외모가 말하듯 전형적인 자기 희생적인 여인상을 보여준다.
미치루의 캐릭터는 어렸을 적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그저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 순수하고 착한 여인.
그러나, 그 사랑은 동거를 하면서 시작된 소스케의 의부증-이렇게 말하는게 맞나?-적 증세로 인하여 그 주변 인물들까지 순식간에 불행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루카 : 우에노 쥬리다. 시종일관 역시, 우에노 쥬리였다.
연기에 빈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정말 연기가 최고 였다.
성동일성장애. 드라마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끝까지 성동일성장애로 밀고 가는 걸로 보아, 그게 맞는 거 같다.
중성적 이미지를 위해 머리도 짧게 깎고, 한번도 치마를 입고 나오지 않는다.
미치루를 향한 사랑과 질투, 아픔을 충실하고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기사를 보니 '루카'역으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흔히, 드라마가 망가지는 이유가 캐릭터의 일관성이 극의 진행에 따라 흐트러지거나, 개연성없이 드라마적 요소만 강조하는 경우인데,
이 드라마는 소스케와 미치루, 그리고 루카의 관계를 충실하고 설득력있게 끝까지 몰고 간다.
자칫, '이거 저러면 유치해지는데~'라고 생각하며 조바심 내며 보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저, 캐릭터에 충실하며 사건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마지막까지 좋았던 이유이다.

 

또다른 한 명.

 

 

타케루 : 이 드라마가 캐릭터 설정에 얼마나 공을 드렸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캐릭터다.
타케루는 '노다메'에서 전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롹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철부지 캐릭터로 등장했던 연기자였다.
배우 이름을 살펴 보았더니, 에이타였다.
'노다메'를 볼 땐, 몰랐는데, 이 배우 꾀 잘 생겼다.
연기도 좋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섬세한 연기가 좋았다.
어렸을 적 의붓 누이로 인한 성장애가 생겨 고통받고 있는 그의 상처는
루카를 사랑하고 또한 루카도 그의 마음을 받아 주면서 사랑을 넘어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극적 장치, 쉐어 하우스.

 


드라마를 보고, 쉐어 하우스를 검색해 보았다.
일본에서는 상당히 보편화된 주거 형태라는 생각이 들만큼 많은 검색값이 나왔다.
얼마전, 한국에서도 아파트를 임대하고 월세를 줄이기 위해 서로 알지 못하는 청춘들이 함께 생활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 한국에서도 얼마지나지 않아, 쉐어 하우스형 주거형태가 처음부터 지어지지 않을까 싶다.

쉐어 하우스라는 장치로 인하여, 중심 인물들이 함께 모이고,
드라마는 설득력 있는 개연성을 마련한다.
특히, 미치루를 향한 루카의 마음, 루카를 향한 타케루의 마음, 루카의 마음을 알게되는 미치루.
그리고 그들 사이에 감초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 오구링과 에리.
이 모든 과정에 쉐어 하우스는 훌륭한 극적 장치로 역할한다.

 

긴 11화를 끝까지 보며, 가슴 따뜻한 가족의 탄생을 지켜 보며,
미치루, 루카 그리고 타케루가 한 아이와 함께 할 가족의 이미지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저 캐릭터들의 만남과 그들이 함께 하는 가정이라면 정말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아프고, 상처받고, 갈등하고 그리고 화해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훈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 건,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
새상의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만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캐릭터를,
세상에 당당하게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극의 서사 때문이다.

 

이 드라마, 매우 진보적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