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미성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지자 백제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국왕이 도성을 비웠기에 국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고 있던 내신좌평(內臣佐平) 연가려(燕加麗)는 급히 이 소식을 북부전선에 나가 있는 진사왕(辰斯王)에게 알렸다. 그리고 위사좌평(衛社佐平) 국순허(國旬虛)에게 한성의 군사 3천명을 내주어 혈구도로 파견했다. 이와 더불어 당성의 수군 병영에 함대를 이끌고 북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제군의 대처는 고구려군의 침입을 막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백제 조정에서 고구려군의 규모나 전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관미성의 전황을 보고받은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은 해진압(解津押)과 고여준(高呂準) 두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짐이 직접 관미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두 장수는 각각 군사 3천씩을 거느리고 미추홀과 고사야흘차를 지키면서 보급선을 튼튼하게 만들도록 하라. 짐은 조의선인군을 비롯한 군사 1만을 거느리고 동사힐과 주부토를 친 후에 잉벌노(仍伐奴)로 북상해 한성에서 오는 백제의 지원군을 막을 것이다.”
해진압이 나섰다.
“폐하께서 직접 출전하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관미성 공략에 대한 지원은 저희 둘이 하겠습니다.”
“지금쯤 봉화가 올랐으니 관미성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성에 알려졌을 것이고, 조만간 미추홀과 고사야흘차가 함락되었다는 소식도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미성 공략이 지지부진한 판국에 백제군에게 반격의 기미를 준다면 오히려 전세가 우리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짐이 직접 가려는 것이다.”
태왕의 말을 듣고 해진압과 고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왕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직접 동사힐과 주부토로 진격해 두 지점을 무혈점령(無血占領)하고 잉벌노로 쳐들어가 한나절만에 수중에 넣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고구려군은 태왕의 지시에 따라 매복지점에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고 백제군을 기다렸다.
고구려군이 잉벌노를 장악한 다음날에 백제군의 출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성곽 전체에 울렸다. 태왕은 연살타(淵薩陀)와 여석개(呂夕介) 두 장수와 더불어 조의선인(皂衣先人)을 비롯한 정예병들을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와 대치했다.
“폐하, 저걸 보십시오. 백제군의 수효가 고작 수천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석개가 적진을 가리키며 아뢰자 태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 백제군은 아군의 주력부대가 모두 패하 이서에 주둔하고 있는 줄 알고 관미성을 공략하는 아군의 규모를 잘못 판단한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
광개토호태왕은 지휘봉(指揮棒)을 치켜들고 군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백잔의 졸개들을 단숨에 짓밟아라!”
“와아! 와아!”
고구려의 경갑기병대(頸甲騎兵隊)가 연살타를 선두로 일제히 성난 파도처럼 백제군 진영으로 몰려들었다. 고구려군의 대열을 바라본 위사좌평 국순허는 당초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고구려군의 병력이 백제군을 압도하자 크게 당황스러워했다. 고구려군의 형세를 정탐한 첨병(尖兵)들의 보고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석개가 이끄는 고구려의 궁수대(弓手隊)가 반대편에서 화살 공격으로 측면을 교란하자 백제 군사들은 당황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연살타(淵薩陀)가 혼전(混戰) 속에서 우렁차게 고함치며 미첨도(眉尖刀)를 춤추듯이 휘두르니 무수히 많은 백제 군사들의 수급(首級)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졌다. 참으로 대단한 무용(武勇)이었다.
여석개(呂夕介)도 이에 질세라 달아나는 적병들을 뒤쫓아 마참대도(馬斬大刀)를 번뜩이며 마치 낫으로 볏단을 베듯 마구 베고 내리쳐 백제 군사들을 쓰러뜨렸다.
교전이 벌어진 지 몇 시각(時刻)도 지나지 않아 벌써 1천여명의 군사가 희생되자 백제군 장수 국순허(國旬虛)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후… 후퇴하라! 후퇴……”
이 때 국순허의 부장인 은솔(恩率) 경원지(慶原芝)가 상관의 말고삐를 붙잡았다.
“위사좌평! 아니 됩니다. 후퇴라니요? 적군에게 등을 보이며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곧 달을참의 수군이 관미성을 공격하는 고구려군을 치러 올 것인데 우리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관미성은 완전히 고립되고 맙니다. 우리는 관미성의 아군을 위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여기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대장부가 전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치욕이니 후퇴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어리석은 놈!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나는 내 부하들을 개죽음당하게 만들 수 없다. 여기서 버텨본들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무모한 공격만이 능사가 아님을 본관은 잘 알고 있느니라. 어서 날 따라들 오너라!”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국순허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흐르고 있었다. 지금 관미성을 도와주기 위해 고구려군과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전개되는 전투광경을 신나게 즐기던 태왕은 백제군이 후퇴하자 전고(戰鼓)를 치도록 했다. 연살타와 여석개 두 용장이 군사를 거두어 진지로 돌아오면서 태왕에게 물었다.
“왜 추격을 멈추게 하셨습니까? 이대로 몰아친다면 백제군을 완전히 몰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태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백제왕이 중앙군 병력의 대부분을 이끌고 우나굴 장군의 부대와 싸우러 나갔기 때문에 한성에서 관미성을 지원하러 보내는 병력의 규모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소. 이 정도 혼쭐이 난 것만으로도 이제 백제의 조정에서는 다시는 관미성을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오. 지금은 관미성을 함락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저런 조무래기들을 청소하는 일에 아군의 체력을 낭비해서야 되겠소이까?”
연살타와 여석개는 태왕의 진중하면서도 치밀한 계략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태왕이 혈구도에 도착하자 모두루는 그동안의 전황과 함께 관미성 공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관미성은 성벽이 높을뿐 아니라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성주인 묘멱은 백제 국왕의 사위로 주도면밀한 성격에 통솔력이 뛰어나 군민(軍民) 모두 그를 믿고 따르옵니다. 저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섣불리 공성전(攻城戰)을 펼쳤다가는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장군이 생각하기에 관미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시오?”
모두루는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왕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우매한 신하를 벌하지 않으시고, 소장의 어리석은 생각을 물으시니 성은이 망극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모두루는 이처럼 운을 뗀 후 말을 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북서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될 줄로 아옵니다.”
태왕이 말을 받았다.
“북서풍이라…, 그렇다면 화공(火攻)을 쓰자는 이야기시오?”
“그렇사옵니다. 관미성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사옵니다. 그러니 성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북쪽 길뿐이옵니다. 이는 성을 지키는 데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지만 역습을 하거나 달아나고자 할 때는 치명적인 어려움이 따르옵니다. 일단 화공으로 저들의 혼을 빼놓은 후에 육로와 해로를 이용해 공격해 들어간다면 충분히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장군의 계략이 짐의 뜻에 합당하구려. 준비해 둔 투석기가 기능을 발휘할 때가 되었군요. 병사들에게 말똥에 유황과 짚을 섞어 덩어리로 만들라고 하시오.”
광개토호태왕 또한 화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천연의 요새인 관미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뜻이 통했으므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갑자기 말똥에 유황과 짚을 섞어 커다란 환(丸)을 만들라는 명령에 병사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냄새나는 말똥은 무엇에 쓰려고 이러는 건가?”
“글쎄 말일세. 왕명이라니 따라야겠지만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겠네.”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군말 말고 어서 움직여. 해질녘까지는 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나이 많은 병사의 일갈에 불평을 늘어놓던 병사들도 손을 재게 놀렸다.
병사들의 입에서 가벼운 불만이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광개토호태왕과 모두루 장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작업했다. 말똥을 만지는 병사들의 표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5.혈구도해전 ⑵
관미성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지자 백제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국왕이 도성을 비웠기에 국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고 있던 내신좌평(內臣佐平) 연가려(燕加麗)는 급히 이 소식을 북부전선에 나가 있는 진사왕(辰斯王)에게 알렸다. 그리고 위사좌평(衛社佐平) 국순허(國旬虛)에게 한성의 군사 3천명을 내주어 혈구도로 파견했다. 이와 더불어 당성의 수군 병영에 함대를 이끌고 북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제군의 대처는 고구려군의 침입을 막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백제 조정에서 고구려군의 규모나 전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관미성의 전황을 보고받은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은 해진압(解津押)과 고여준(高呂準) 두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짐이 직접 관미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두 장수는 각각 군사 3천씩을 거느리고 미추홀과 고사야흘차를 지키면서 보급선을 튼튼하게 만들도록 하라. 짐은 조의선인군을 비롯한 군사 1만을 거느리고 동사힐과 주부토를 친 후에 잉벌노(仍伐奴)로 북상해 한성에서 오는 백제의 지원군을 막을 것이다.”
해진압이 나섰다.
“폐하께서 직접 출전하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관미성 공략에 대한 지원은 저희 둘이 하겠습니다.”
“지금쯤 봉화가 올랐으니 관미성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성에 알려졌을 것이고, 조만간 미추홀과 고사야흘차가 함락되었다는 소식도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미성 공략이 지지부진한 판국에 백제군에게 반격의 기미를 준다면 오히려 전세가 우리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짐이 직접 가려는 것이다.”
태왕의 말을 듣고 해진압과 고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왕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직접 동사힐과 주부토로 진격해 두 지점을 무혈점령(無血占領)하고 잉벌노로 쳐들어가 한나절만에 수중에 넣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고구려군은 태왕의 지시에 따라 매복지점에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고 백제군을 기다렸다.
고구려군이 잉벌노를 장악한 다음날에 백제군의 출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성곽 전체에 울렸다. 태왕은 연살타(淵薩陀)와 여석개(呂夕介) 두 장수와 더불어 조의선인(皂衣先人)을 비롯한 정예병들을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와 대치했다.
“폐하, 저걸 보십시오. 백제군의 수효가 고작 수천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석개가 적진을 가리키며 아뢰자 태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 백제군은 아군의 주력부대가 모두 패하 이서에 주둔하고 있는 줄 알고 관미성을 공략하는 아군의 규모를 잘못 판단한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
광개토호태왕은 지휘봉(指揮棒)을 치켜들고 군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백잔의 졸개들을 단숨에 짓밟아라!”
“와아! 와아!”
고구려의 경갑기병대(頸甲騎兵隊)가 연살타를 선두로 일제히 성난 파도처럼 백제군 진영으로 몰려들었다. 고구려군의 대열을 바라본 위사좌평 국순허는 당초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고구려군의 병력이 백제군을 압도하자 크게 당황스러워했다. 고구려군의 형세를 정탐한 첨병(尖兵)들의 보고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석개가 이끄는 고구려의 궁수대(弓手隊)가 반대편에서 화살 공격으로 측면을 교란하자 백제 군사들은 당황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연살타(淵薩陀)가 혼전(混戰) 속에서 우렁차게 고함치며 미첨도(眉尖刀)를 춤추듯이 휘두르니 무수히 많은 백제 군사들의 수급(首級)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졌다. 참으로 대단한 무용(武勇)이었다.
여석개(呂夕介)도 이에 질세라 달아나는 적병들을 뒤쫓아 마참대도(馬斬大刀)를 번뜩이며 마치 낫으로 볏단을 베듯 마구 베고 내리쳐 백제 군사들을 쓰러뜨렸다.
교전이 벌어진 지 몇 시각(時刻)도 지나지 않아 벌써 1천여명의 군사가 희생되자 백제군 장수 국순허(國旬虛)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후… 후퇴하라! 후퇴……”
이 때 국순허의 부장인 은솔(恩率) 경원지(慶原芝)가 상관의 말고삐를 붙잡았다.
“위사좌평! 아니 됩니다. 후퇴라니요? 적군에게 등을 보이며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곧 달을참의 수군이 관미성을 공격하는 고구려군을 치러 올 것인데 우리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관미성은 완전히 고립되고 맙니다. 우리는 관미성의 아군을 위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여기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대장부가 전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치욕이니 후퇴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어리석은 놈!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나는 내 부하들을 개죽음당하게 만들 수 없다. 여기서 버텨본들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무모한 공격만이 능사가 아님을 본관은 잘 알고 있느니라. 어서 날 따라들 오너라!”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국순허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흐르고 있었다. 지금 관미성을 도와주기 위해 고구려군과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전개되는 전투광경을 신나게 즐기던 태왕은 백제군이 후퇴하자 전고(戰鼓)를 치도록 했다. 연살타와 여석개 두 용장이 군사를 거두어 진지로 돌아오면서 태왕에게 물었다.
“왜 추격을 멈추게 하셨습니까? 이대로 몰아친다면 백제군을 완전히 몰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태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백제왕이 중앙군 병력의 대부분을 이끌고 우나굴 장군의 부대와 싸우러 나갔기 때문에 한성에서 관미성을 지원하러 보내는 병력의 규모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소. 이 정도 혼쭐이 난 것만으로도 이제 백제의 조정에서는 다시는 관미성을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오. 지금은 관미성을 함락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저런 조무래기들을 청소하는 일에 아군의 체력을 낭비해서야 되겠소이까?”
연살타와 여석개는 태왕의 진중하면서도 치밀한 계략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태왕이 혈구도에 도착하자 모두루는 그동안의 전황과 함께 관미성 공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관미성은 성벽이 높을뿐 아니라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성주인 묘멱은 백제 국왕의 사위로 주도면밀한 성격에 통솔력이 뛰어나 군민(軍民) 모두 그를 믿고 따르옵니다. 저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방어력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섣불리 공성전(攻城戰)을 펼쳤다가는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장군이 생각하기에 관미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시오?”
모두루는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왕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우매한 신하를 벌하지 않으시고, 소장의 어리석은 생각을 물으시니 성은이 망극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모두루는 이처럼 운을 뗀 후 말을 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북서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될 줄로 아옵니다.”
태왕이 말을 받았다.
“북서풍이라…, 그렇다면 화공(火攻)을 쓰자는 이야기시오?”
“그렇사옵니다. 관미성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사옵니다. 그러니 성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북쪽 길뿐이옵니다. 이는 성을 지키는 데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지만 역습을 하거나 달아나고자 할 때는 치명적인 어려움이 따르옵니다. 일단 화공으로 저들의 혼을 빼놓은 후에 육로와 해로를 이용해 공격해 들어간다면 충분히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장군의 계략이 짐의 뜻에 합당하구려. 준비해 둔 투석기가 기능을 발휘할 때가 되었군요. 병사들에게 말똥에 유황과 짚을 섞어 덩어리로 만들라고 하시오.”
광개토호태왕 또한 화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천연의 요새인 관미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뜻이 통했으므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갑자기 말똥에 유황과 짚을 섞어 커다란 환(丸)을 만들라는 명령에 병사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냄새나는 말똥은 무엇에 쓰려고 이러는 건가?”
“글쎄 말일세. 왕명이라니 따라야겠지만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겠네.”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군말 말고 어서 움직여. 해질녘까지는 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나이 많은 병사의 일갈에 불평을 늘어놓던 병사들도 손을 재게 놀렸다.
병사들의 입에서 가벼운 불만이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광개토호태왕과 모두루 장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작업했다. 말똥을 만지는 병사들의 표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