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 1일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비판, 특히 종편에 참여하지 않은 신문사들의 공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자화자찬하더니 첫발부터 졸속 방송사고' '총체적 코미디' '평균 1%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 '미디어 생태계 파괴' '미디어 대재앙' '막가파식 광고영업' 같은 비판이 지면을 가득 메웠다. 일부 신문은 항의성 백지광고를 냈고 '3불(불시청, 종편 출자기업 제품 불매, 불출연) 운동'을 촉구하는 신문도 있다.
종편 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청자의 반응과 광고 시장 역시 불확실하다. 하지만 비판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쯤 되면 비판 내지 조롱을 넘어 종편의 태생 자체에 대한 저주이자 공격을 부추기는 집단선동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악랄한 욕설을 퍼붓고 그 숨통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이 지독한 적개심의 근원은 이념을 넘어 생존의 악다구니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 시장의 위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자연스러운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 군홧발로 강행된 언론통폐합의 규제를 깨고 주요 일간지들이 '저널리즘'과 '문화콘텐츠'의 활로를 찾아나선 것은 오히려 때늦은 일이었다. 애꿎게도 이 선두주자들의 등에 뒤에 남은 이들의 절망감과 질시가 꽂히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 역시 네 개의 채널이 첫걸음을 떼는 장면을 걱정 반 설렘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새로운 채널번호, 새로운 채널명,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소소한 방송 사고들도 눈에 띄었다. 관계자들의 고생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틀 후인 토요일 밤 프라임 타임대인 8시. DMZ의 철조망을 따라 걷는 작가 김훈의 모습은 투박해서 더욱 진솔했다. 안개 낀 DMZ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웠다. 채널을 돌린다. "나를 낳지 않은 엄마가 어떻게 나를 친자식인 동생과 같이 생각하느냐"는 소녀 아이와 그를 키운 엄마가 눈물범벅으로 마주한 장면에 빠져든다. 다시 채널을 돌린다. 온 가족이 군인인 집안의 대소사를 코믹 터치한 드라마, 스타와 팬 미팅을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을 건너뛰어 100여명이 넘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생생한 인터뷰를 딴 공영방송 다큐에 머무른다.
9시다. 다시 종편으로 건너온다. 벤츠 여검사의 추가비리 사항에 대한 육성취재, 총성이 여전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재스민 혁명을 이끈 모하메드 마헤르와의 인터뷰가 눈을 끈다. 채널을 돌린다. 화면 가득 너울너울 춤추는 수양의 모습, 그가 왕재(王材)임을 알겠노라는 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처자. 숨 막히는 장면이다. 다시 채널을 돌린다. 권위주의적인 심사위원들 앞에서 펼쳐지는 스타 지망생들의 공개 오디션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고, 재앙이며 중단시킬 일이라는 것인가. 종래의 지상파에 종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다양성이 재앙이란 말인가? 이 팽팽한 채널 간의 경쟁이 재앙이란 얘기인가? 비판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논리·양식·절제가 있어야 한다. 필자 역시 종편에 대해 성급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종편은 좀 더 길게 지켜봐야 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종편을 비판하는 다른 신문들의 미래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다만 터무니없는 비판이 안타까와 한마디만 건네고 싶다. "종편, 첫 방송치고 잘했다. 절대 코미디 아니었다. 힘내라 종편."
더 다양하고 경쟁 팽팽해진 방송
더 다양하고 경쟁 팽팽해진 방송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 1일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비판, 특히 종편에 참여하지 않은 신문사들의 공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자화자찬하더니 첫발부터 졸속 방송사고' '총체적 코미디' '평균 1%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 '미디어 생태계 파괴' '미디어 대재앙' '막가파식 광고영업' 같은 비판이 지면을 가득 메웠다. 일부 신문은 항의성 백지광고를 냈고 '3불(불시청, 종편 출자기업 제품 불매, 불출연) 운동'을 촉구하는 신문도 있다.
종편 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청자의 반응과 광고 시장 역시 불확실하다. 하지만 비판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쯤 되면 비판 내지 조롱을 넘어 종편의 태생 자체에 대한 저주이자 공격을 부추기는 집단선동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악랄한 욕설을 퍼붓고 그 숨통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이 지독한 적개심의 근원은 이념을 넘어 생존의 악다구니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 시장의 위기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자연스러운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 군홧발로 강행된 언론통폐합의 규제를 깨고 주요 일간지들이 '저널리즘'과 '문화콘텐츠'의 활로를 찾아나선 것은 오히려 때늦은 일이었다. 애꿎게도 이 선두주자들의 등에 뒤에 남은 이들의 절망감과 질시가 꽂히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 역시 네 개의 채널이 첫걸음을 떼는 장면을 걱정 반 설렘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새로운 채널번호, 새로운 채널명,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소소한 방송 사고들도 눈에 띄었다. 관계자들의 고생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틀 후인 토요일 밤 프라임 타임대인 8시. DMZ의 철조망을 따라 걷는 작가 김훈의 모습은 투박해서 더욱 진솔했다. 안개 낀 DMZ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웠다. 채널을 돌린다. "나를 낳지 않은 엄마가 어떻게 나를 친자식인 동생과 같이 생각하느냐"는 소녀 아이와 그를 키운 엄마가 눈물범벅으로 마주한 장면에 빠져든다. 다시 채널을 돌린다. 온 가족이 군인인 집안의 대소사를 코믹 터치한 드라마, 스타와 팬 미팅을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을 건너뛰어 100여명이 넘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생생한 인터뷰를 딴 공영방송 다큐에 머무른다.
9시다. 다시 종편으로 건너온다. 벤츠 여검사의 추가비리 사항에 대한 육성취재, 총성이 여전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재스민 혁명을 이끈 모하메드 마헤르와의 인터뷰가 눈을 끈다. 채널을 돌린다. 화면 가득 너울너울 춤추는 수양의 모습, 그가 왕재(王材)임을 알겠노라는 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처자. 숨 막히는 장면이다. 다시 채널을 돌린다. 권위주의적인 심사위원들 앞에서 펼쳐지는 스타 지망생들의 공개 오디션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고, 재앙이며 중단시킬 일이라는 것인가. 종래의 지상파에 종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다양성이 재앙이란 말인가? 이 팽팽한 채널 간의 경쟁이 재앙이란 얘기인가? 비판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논리·양식·절제가 있어야 한다. 필자 역시 종편에 대해 성급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종편은 좀 더 길게 지켜봐야 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종편을 비판하는 다른 신문들의 미래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다만 터무니없는 비판이 안타까와 한마디만 건네고 싶다. "종편, 첫 방송치고 잘했다. 절대 코미디 아니었다. 힘내라 종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