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한 마음에 한 동안 집사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예지가 문득, 처음 콘도에 왔을 때 무수히 손자국이 묻어있던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순간 예지의 두 눈동자가 확대됐다.
“어? 깨끗하네?”
벽면은 하얀색의 벽지에 황홀히 빛나는 황색 등불에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어딜 봐도 손자국 따위는 묻어있지 않았다.
“대체‥ 여기 뭐야?‥ 핏자국은 잘 사라지지 않는데‥ 도배를 했나? 아니,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는데‥”
예지의 두 팔에 스믈스믈 소름이 올라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두려운 듯 발걸음을 빨리하여 호실이 있는 복도로 다다랐을 때,
“철퍽‥”
시원한 소리와 함께 예지의 두 발바닥이 차가움을 느꼈다. 이어 아래를 내려다본 예지의 두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물이 이렇게 많아?”
이상했다. 복도 여기저기에 예지가 밟은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무섭게도 물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호실 문을 향하고 있었다.
“청소한 건가?‥ 청소치고는, 너무 듬성듬성 했는데‥ 그리고 물이 왜 모두 호실 쪽을 가리켜‥ 무섭게.”
그때, 호실 문이 열리고 혜원이가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지의 몸은 벽 뒤쪽으로 숨고 있었다. 그리고
“깔깔깔!!”
문을 닫고 나온 혜원이도 물을 밟았고, 갑자기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역시‥ 동혁이야‥ 정말 내 곁에 있는 거야‥”
그러고는 의미모를 말을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또, 미소를 짓거나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물 위에서 방방 뛰기도 했다. 그런 혜원이의 이상행동에 예지는 말 할 수 없는 분위기에 숨소리마저 삼켰다.
‘동혁이가 같이 있다니, 무슨 소리지?’
예지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동혁이는 분명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들었을 터인데 말이다.
“동혁아‥ 근데‥ 나 떠나야 할 것 같아.”
어느새 복도에 주저앉은 혜원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 조금 무서워‥ 그러니까 오늘이 여기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 될 거야‥ 아! 어디로 가냐면‥ 콘도 뒷산으로 가서 캠핑할 생각이야. 아이들한테 말해서 다 함께‥”
누구와 대화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예지의 마음은 두려움보다는 헤원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예지의 마음을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말 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황홀히 빛나는 황색 등불에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문득 복도 천장을 통틀어 벽 전체에 묻어있는 무수한 손자국을 발견했다.
“헉!”
순간, 숨통이 조여와 숨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은 듯 혜원이의 중얼거림이 갑작스럽게 끊겼고 이내 강한 발자국 소리가 예지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동시에 불안감이 예지를 감싸 안아왔다.
“뭐해‥? 예지야‥?”
섬뜩한 한 마디에, 긴장으로 경직되있던 예지의 몸이 한 순간 전기충격기에 맞은 듯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시선을 옆으로 돌리기 위해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감정을 알 수 없게 정색한 혜원이의 얼굴과, 씰룩거리는 입 꼬리가 보였고 억지웃음을 짓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그러니까‥”
‘실수다.’
말이 버벅거렸다.
“그러니까‥ 뭐‥?”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가슴에 못을 박듯이 파고드는 혜원이의 말에 예지는 정신이 아찔했다.
“밖에, 애들 기다리는데‥ 너가 너무 안 나와서 찾으려고‥ 왔‥어.”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침착하자던 예지의 생활태도 덕분인지, 얼마가지않아 간신히 전달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아‥ 미안. 무슨 옷을 입을까 정하느라고‥ 어때? 예뻐?”
예지의 대답에 안심했다는 듯, 다시 혜원이만의 독특한 웃음을 지으며 빙그르르 돌아 보이며 물었다.
“응‥.”
“왜이리 기운이 없을까?‥ 아니, 기운이 없어진 걸까?‥ 예지는 여기서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게 아닐까?‥ 그래?‥ 그런 걸까?‥”
두려움이 예지를 조여 왔다. 혜원이는 예지의 사소한 태도 하나하나에 잘못을 추궁하듯, 꼬치꼬치 캐 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말들은 다시금 예지의 정신을 흔들었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별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잖아‥ 그리고 예뻐, 정말로.”
소리를 지름으로써, 흐트러져가던 예지의 정신이 화들짝 들었고 침착해졌다.
“그래?‥”
그래도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살며시 뜬 눈초리로 혜원이가 말했다.
“나가자. 애들 기다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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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콘도의 현관문이 열리고, 예지와 그 뒤로 혜원이가 따라 나왔다.
“왜이리 늦게나와!”
지니가 예지와 혜원이를 번갈아 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미안 미안~ 옷 고르고 있었대!”
예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넘어가자, 시간도 빠듯한 처지에 빨리 둘러봐야지.”
재홍이도 타이르듯 지니에게 말했다. ( 종완이와 동건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라고 중얼거렸다. )
“그럼 어디부터 가 볼까!”
들뜨기 시작한 수지가 주먹을 쥐고 하늘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뒷산.”
순간, 뜬금없는 대답을 혜원이가 내뱉었다.
“야‥ 이제 해 저무는데 산은 무슨‥ 뒷산은 내일 아침에 가자‥ 응?”
수지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마음대로 하던가.”
혜원이가 말했다.
“왜 그러냐!‥ 둘이 싸울 것처럼.”
이상한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낀 듯, 종완이가 말했다.
“싸우긴 무슨‥ 유치해!”
수지가 말했다.
“그럼 다수결로 하자. 어때?”
지니가 제법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뒤이어,
“날도 저물어 가는데, 둘러보기보단 노는 게 좋겠어. 앞바다에서 물놀이 할 사람 손들어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이 말에, 몇 초 지나지 않아 혜원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찬성하였고, 가만히 서서 멍하니 있던 혜원이의 손을 지훈이가 꽉잡고 함께 올렸다.
“그럼! 모두 찬성한 거지?”
“응!”
순간 하나의 목소리로 통일된 아이들의 목소리가 섬에 울려 퍼졌다. 잠시 뒤,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콘도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따라 들어가던 지훈이의 뒤에서 혜원이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편] 6화 너의 뒤에는 누구?
웃대 검은토끼님의 작성글입니다.
너의 뒤에는 누구? - 사랑( 망각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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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혜원이가 할 말이 있다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서, 중요하게 할 말이 뭔데?”
예지가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잠시,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동혁이가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혜원이가 말했다.
“아, 정말? 오늘 아침에 없던 게 그 이유였어?”
수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응, 어제 밤에 나한테만 말하고 갔어.”
편안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혜원이가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해?’
지훈이가 침을 삼켰다.
“아쉽게 됐네‥. 여행 끝나고 혼쭐을 내줘야겠어!”
지니가 두 팔을 올려 주먹질 시늉을 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응‥ 그럴 거야‥ 나도 꼭‥”
혜원이가 말했다.
“그럼, 동혁이 부러워하라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섬 좀 둘러보고 신나게 놀자!”
침울한 표정을 지은 혜원이를 보며, 재홍이가 박수를 두 세번 치고는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아, 그래야지? 우리 여기 와서 둘러본 곳이 온천밖에 없잖아?”
예지가 수긍하며 말했다. (온천이라는 말에 혜원이와 지훈이가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아, 그러면 너희들 먼저 좀 내려가 있을래? 난 옷좀 갈아입고 나갈게.”
혜원이가 쓴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잠시 뒤 아이들이 모두 나갔고, 혜원이의 얼굴이 급속히 찡그러졌다.
“뭘 안다고 멋대로 지껄여!‥‥ 동혁이에 대해 뭘 안다고!!”
어느새, 혜원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미약하게 떨리고, 속에서 끓어올라오는 알 수 없는 분노감이 다시금 이성을 휘청하게 흔들었다.
“동혁아‥”
또 다시, 분노가 이성을 침식해 가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번엔 슬픔으로 바뀌어 혜원이를 지속해서 흔들었고, 눈앞은 점차 흐려져갔다.
“누굴 그렇게 찾으시죠?”
그때, 현관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집사 할아버지‥?”
혜원이가 진정되지 않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아이고, 왜 울고 계실까?”
방으로 들어온 집사가 혜원이의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울긴요‥ 막 하품을 하던 참이었어요.”
눈물을 닦으며 혜원이가 말했다.
“여기는 왜 오셨어요?”
잠시 뒤, 진정을 찾은 혜원이가 물었다.
“영, 까마귀가 끼더군요?”
집사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혜원이의 몸에 빠르게 소름이 올랐다.
“무슨‥소리세요‥? 깔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웃기까지 하며 혜원이가 물었다.
“‥‥.”
집사는 그저 싱긋한 미소와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혜원이를 바라보았다. 혜원이의 가슴이 긴장으로 두근거렸고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음부터는 뒤처리를 똑바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집사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무슨‥ 제가 죽인 게 아니에요!!!”
순간, 억울함이 혜원이를 후려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의심이나 받는 스스로의 처지가 찢어발개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무슨 소리시죠‥?”
그 말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혜원이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집사가 말했다.
“지금 제가 동혁이를 죽였다고 의심하시는 거잖아요!!”
집사의 등장에, 이성을 갉아먹어가던 분노에 촉진제를 뿌린 듯 혜원이의 행동은 어느새 폭력적으로 변해있었다. 주변에 있는 가구를 집사를 향해 사정없이 던지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셨나요?”
차가운 미소, 조롱하듯 혜원이를 향해 집사가 조용히 안부를 걱정했다. 그리고,
“시체는 까마귀를 부르는 법이죠.”
의미심정한 말을 남기고, 집사는 그렇게 호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텅 빈 복도에 홀로 남겨진 가엾은 그녀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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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리 안 나오지? 이제 곧 날도 저물텐데.”
지훈이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이들은 콘도 앞 바위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올게, 어휴‥”
예지가 한숨을 쉬며, 콘도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
콘도 홀로 들어간 예지가, 문득 중앙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집사와 마주쳤다.
“여행은 즐거우신가요?”
집사가 먼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예, 덕분에요.”
방긋 웃으며 예지가 말했고, 이어서 계단을 올라가던 중 집사와 스쳐 지나갈 때 순간 강한 비릿내가 코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뒤로돌아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집사를 바라보는 예지.
‘무슨 냄새야?’
그러나, 의심이 들려던 때 비릿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예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저기 말입니다.”
그때, 홀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예지가 뒤돌아 집사를 보고 대답했다. (워낙 홀이 넓어, 집사를 찾느냐고 예지의 눈동자는 이리 저리를 훑었다.)
“모쪼록,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예지를 향해 집사가 말했다.
“무슨 소리시죠?”
“노인의 헛말이지요, 헛헛헛‥”
그 말을 끝으로, 집사는 등을 보이고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사라졌다.
“뭐야?‥”
찝찝한 마음에 한 동안 집사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예지가 문득, 처음 콘도에 왔을 때 무수히 손자국이 묻어있던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순간 예지의 두 눈동자가 확대됐다.
“어? 깨끗하네?”
벽면은 하얀색의 벽지에 황홀히 빛나는 황색 등불에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어딜 봐도 손자국 따위는 묻어있지 않았다.
“대체‥ 여기 뭐야?‥ 핏자국은 잘 사라지지 않는데‥ 도배를 했나? 아니,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는데‥”
예지의 두 팔에 스믈스믈 소름이 올라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두려운 듯 발걸음을 빨리하여 호실이 있는 복도로 다다랐을 때,
“철퍽‥”
시원한 소리와 함께 예지의 두 발바닥이 차가움을 느꼈다. 이어 아래를 내려다본 예지의 두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물이 이렇게 많아?”
이상했다. 복도 여기저기에 예지가 밟은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무섭게도 물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호실 문을 향하고 있었다.
“청소한 건가?‥ 청소치고는, 너무 듬성듬성 했는데‥ 그리고 물이 왜 모두 호실 쪽을 가리켜‥ 무섭게.”
그때, 호실 문이 열리고 혜원이가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지의 몸은 벽 뒤쪽으로 숨고 있었다. 그리고
“깔깔깔!!”
문을 닫고 나온 혜원이도 물을 밟았고, 갑자기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역시‥ 동혁이야‥ 정말 내 곁에 있는 거야‥”
그러고는 의미모를 말을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또, 미소를 짓거나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물 위에서 방방 뛰기도 했다. 그런 혜원이의 이상행동에 예지는 말 할 수 없는 분위기에 숨소리마저 삼켰다.
‘동혁이가 같이 있다니, 무슨 소리지?’
예지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동혁이는 분명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들었을 터인데 말이다.
“동혁아‥ 근데‥ 나 떠나야 할 것 같아.”
어느새 복도에 주저앉은 혜원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 조금 무서워‥ 그러니까 오늘이 여기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 될 거야‥ 아! 어디로 가냐면‥ 콘도 뒷산으로 가서 캠핑할 생각이야. 아이들한테 말해서 다 함께‥”
누구와 대화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예지의 마음은 두려움보다는 헤원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예지의 마음을 그나마 표현할 수 있는 말 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황홀히 빛나는 황색 등불에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문득 복도 천장을 통틀어 벽 전체에 묻어있는 무수한 손자국을 발견했다.
“헉!”
순간, 숨통이 조여와 숨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은 듯 혜원이의 중얼거림이 갑작스럽게 끊겼고 이내 강한 발자국 소리가 예지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동시에 불안감이 예지를 감싸 안아왔다.
“뭐해‥? 예지야‥?”
섬뜩한 한 마디에, 긴장으로 경직되있던 예지의 몸이 한 순간 전기충격기에 맞은 듯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시선을 옆으로 돌리기 위해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감정을 알 수 없게 정색한 혜원이의 얼굴과, 씰룩거리는 입 꼬리가 보였고 억지웃음을 짓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그러니까‥”
‘실수다.’
말이 버벅거렸다.
“그러니까‥ 뭐‥?”
전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가슴에 못을 박듯이 파고드는 혜원이의 말에 예지는 정신이 아찔했다.
“밖에, 애들 기다리는데‥ 너가 너무 안 나와서 찾으려고‥ 왔‥어.”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침착하자던 예지의 생활태도 덕분인지, 얼마가지않아 간신히 전달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아‥ 미안. 무슨 옷을 입을까 정하느라고‥ 어때? 예뻐?”
예지의 대답에 안심했다는 듯, 다시 혜원이만의 독특한 웃음을 지으며 빙그르르 돌아 보이며 물었다.
“응‥.”
“왜이리 기운이 없을까?‥ 아니, 기운이 없어진 걸까?‥ 예지는 여기서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게 아닐까?‥ 그래?‥ 그런 걸까?‥”
두려움이 예지를 조여 왔다. 혜원이는 예지의 사소한 태도 하나하나에 잘못을 추궁하듯, 꼬치꼬치 캐 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말들은 다시금 예지의 정신을 흔들었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별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잖아‥ 그리고 예뻐, 정말로.”
소리를 지름으로써, 흐트러져가던 예지의 정신이 화들짝 들었고 침착해졌다.
“그래?‥”
그래도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살며시 뜬 눈초리로 혜원이가 말했다.
“나가자. 애들 기다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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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콘도의 현관문이 열리고, 예지와 그 뒤로 혜원이가 따라 나왔다.
“왜이리 늦게나와!”
지니가 예지와 혜원이를 번갈아 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미안 미안~ 옷 고르고 있었대!”
예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넘어가자, 시간도 빠듯한 처지에 빨리 둘러봐야지.”
재홍이도 타이르듯 지니에게 말했다. ( 종완이와 동건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라고 중얼거렸다. )
“그럼 어디부터 가 볼까!”
들뜨기 시작한 수지가 주먹을 쥐고 하늘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뒷산.”
순간, 뜬금없는 대답을 혜원이가 내뱉었다.
“야‥ 이제 해 저무는데 산은 무슨‥ 뒷산은 내일 아침에 가자‥ 응?”
수지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마음대로 하던가.”
혜원이가 말했다.
“왜 그러냐!‥ 둘이 싸울 것처럼.”
이상한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낀 듯, 종완이가 말했다.
“싸우긴 무슨‥ 유치해!”
수지가 말했다.
“그럼 다수결로 하자. 어때?”
지니가 제법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뒤이어,
“날도 저물어 가는데, 둘러보기보단 노는 게 좋겠어. 앞바다에서 물놀이 할 사람 손들어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제안을 했다. 이 말에, 몇 초 지나지 않아 혜원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찬성하였고, 가만히 서서 멍하니 있던 혜원이의 손을 지훈이가 꽉잡고 함께 올렸다.
“그럼! 모두 찬성한 거지?”
“응!”
순간 하나의 목소리로 통일된 아이들의 목소리가 섬에 울려 퍼졌다. 잠시 뒤,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콘도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따라 들어가던 지훈이의 뒤에서 혜원이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즐겁지 않은 밤이 될 거야‥. 물은‥ 그가 싫어할 테니까‥”
알 수 없는 말에 지훈이가 혜원이를 뒤돌아보았다.
“‥‥.”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그들을 스쳐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