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지?

gomko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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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참 좋았던 날 문득 얼굴을 내민 이별이었는데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낙엽도 다 떨어져서 어느 덧 첫눈이 다 내렸네

 

그 오랜 시간을 만나면서

단 한번도 헤어짐을 생각해본 적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는

너와 나였는데

 

이별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치?

 

요란할 것도 없이

그 흔한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없이

이젠 그만 내려놓자는 말에

너 역시 아무런 대답없이

너무도 쉬운 일처럼

그렇게 끝이났으니

 

하지만 알아

너도 나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거

 

첫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던 그 날까지

우리는 늘 함께였지만 또 늘 떨어져있어야 했으니까

4년의 원거리 연애가 이제는

너무나 속상하고 어쩌면 속상한 것 이상으로 지쳐있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꽤 잘 이겨냈었는데..

 

 

2007년 1월

우리 첨 만나던 날

널 두고 1년동안 유학을 간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또 한달 쯤 뒤에 귀국한다는 사실

 

그 유학기간동안 둘 사이에 신뢰는 다 깨져버려서 대외적으로만 커플이었지만

CC였기에 쉽사리 정리할 수 없었던 그 관계

 

그 관계가 이어져야만 했던 1년동안

행여나 누가 볼까봐 너의 주변사람들을 피해 걸어야 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에 빠져 살았어야 했지만

언제나 미안한 얼굴로

내 손 꼭 잡아주는 니가 있었기에

더없이 행복했었어

 

너 학교 휴학한 뒤에 그 사람이랑 정리하던 날 있잖아

나 사실 그날 정말 긴 터널을 지나 빛을 보는 기분이었어

너도 더이상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해 연말에 우린 참 티없이 마냥 웃었던 것 같아

 

 

2008년 1월

1년 뒤 정도로 계획하고 있던 시험 준비를 앞당겨서 나는 서울로 상경

너도 일본 유학준비로 집에 있었던 탓에

그때만큼 둘이 붙어있었던 적도 없었던 거 같아

 

3월 24일

유학 떠나던 그 날까지 세 달간

321일동안 얼굴 못봐도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을만큼의 추억들을 쌓아주고 떠났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하늘 아래서도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워주고 떠났는데

이 멍청이는 바보같이 첫 시험에 여지없이 낙방

한국 돌아와서 쉬운 시험 아니라고 다독이며 1년 더 해보라는 말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하지만 1년 후에도 결과는 좋지 못했었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서로가 지치기 시작했던 거

 

 

2010년

내가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우린 또 떨어져 있어야 했고

너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에 바빴고

너는 그 즈음부터 나를 만나러 가면서 집에다 나를 만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거 같아

 

원거리

부모님께 눈치 보이는 연애

난 4학기나 남아버렸는데 넌 어느 덧 졸업

그 모든 것이 서로를 짓눌렀던 거 같아

 

그 압박감 속에 두려움도 자리잡았었구

너 취업이 되서 나보다 먼저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으면 난 어떡하지란 두려움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데 내가 그 기회를 앗아버리는 걸까

아니면 그런 이유로 놓아버리는 건 그저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 비겁한 짓인 걸까

 

그래서인지 필리핀의 한 호텔로 취업이 되어 떠난다는 너의 말에

한편으로는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편해지기도 했다

참 이기적이지?

안 그래도 떨어져 있어서 보름에 한번꼴로 밖에 못 보는데 더 멀리 가버린다니까 속상했지만

내가 2년 남아있던 학교를 마친 뒤 뭐라도 해 놓은 다음에 그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랑 살자고 말할

시간적 여유는 벌었구나 싶었던거야

 

그 만큼 2년의 실패로 나 스스로 자신감이 바닥이 되버린 상황에서

그 해 가을 무렵 난 정말 힘겨웠던 것 같아

취업준비하면서 나 이상으로 힘겨워했던 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할 만큼

 

뭐 미안한 것들이 한 두개겠냐만은

니가 힘든 시간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그 시절은 정말 미안했어

 

근데 왠걸 한달만에 돌아와버리면 난 어떡하니

이번에는 반대로 기쁘기도 했지만 또 앞이 캄캄해지더라

 

 

2011년 1월

넌 다시 여기에서 취업

난 다시 여기에서 두 학기 남아있는 학업

 

4월 29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시작된

정말 사소한 말다툼이었지만

분명 다른때와는 무언가 달랐던 거 같다

평소와는 달리 먼저 다툼을 끝내려는 너

평소와는 달리 다툰 이후로 폰을 꺼버린 나

 

그리고 3일 후 우리의 마지막 통화

이젠 그만 내려놓자

그래 끊을께

...................................................................

 

 

 

잘 지내고 있지?

 

그래도 4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사람인데

얼굴도 못본 채 헤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여름에 집 앞으로 찾아갔을 때

니 예전번호를 누르니까 없는 번호라는 말에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몰라

그나마 니 주변 사람 중에 연락하던 단 한명

그 아이라도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생각도 하기 싫다

 

그 날 나와줘서 고마웠어

4년동안 만난 여자가 이만큼 예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걸 보니

우리 만나던 시간동안 나도 마음이 참 못됐었나 보다

너한테만 너 변했다면서 타박했지만 내가 더 많이 변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요즘은 잘 지내?

그 때 만나는 사람 있냐 물었더니 없다더니

왜 거짓말 했어? 바보같이..

뻔히 언젠가는 알텐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그랬다는 거 알아

근데 좋은 사람 나타나도 좀만 서로 천천히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해버린 나는 뭐가되냐?

하여튼 첨부터 끝까지 아주그냥 지 마음 편한것만 생각해!

히틀러란 별명이 괜히 따라다니는 거 아니라니까

 

요즘에 나는..

여지껏 살면서 젤 열심인 거 같아

아침잠 5분, 쉬는 시간 10분이 아까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 날 차 안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년에 합격해서 그 노래부르던 구찌백 이쁜 포장까지 해서 나타날테니까

그 때 니 곁에 아무도 없다면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하니까

너 분명히

첫 월급으로 사와라

알바 이딴거 용돈 이딴거 모아서 돈지랄하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랬던 거

근데 합격한 뒤에는 니 마음이 변할거야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부디 저 말만은 진심이었기를 바래

 

둘 다 학생 신분이라서 못했던 것들 해주려면

좋은 곳 데려다주지 못하고

맛난 거 먹여주지 못하고

예쁜 거 사주지 못하고

늘 데이트비용도 반씩 부담케 했었던 거

그럼에도 불평 한번 없이 4년동안 늘 한결같이 곁에 있어준거 고마워서라도

다른 이유 다 차치하고 내 마음이 아직 널 향해 있으니까

꼭 다시 니 앞에 설거야

 

그 날 엘레베이터 타고 내려오면서

내 얼굴보면 눈물만 펑펑 쏟아버릴 줄 알았는데

차 안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웃기만 했다 좋아했었잖아

그때처럼

그 여름 날의 재회처럼

내년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이제 절반 쯤 지난 거 같아

다시 남은 절반을 걸어가야 할테지

 

 

 

 

문득 안부를 묻고 싶었는데

내 폰에는 바뀐 너의 번호가 없어서 이런곳에나마 끄적여본다

 

잔병치레 없는 너니까 몸 아플 걱정은 안해

마음 다치는 일만 없이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