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TASTEMAKER.

안정원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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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n Stallion

다시 태어난 이탈리아 종마

플레이보이 기업가 라포 엘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한다

 

BARBIE LATZA NADEAU 기자

 

 

라포 엘칸(34)이 자신의 밀라노 스튜디오에서 피아트 500 자동차 앞부분으로 만든 세련된 유리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마치 응축된 에너지 덩어리 같은 인상이다.

  Sitting in his Milan studio at a sleek glass table made from the front half of a Fiat 500 car, Lapo Elkann is a bundle of harnessed energy.

 전 피아트 회장이자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지아니 아넬리의 손자인 엘칸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플레이보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자신의 귀족적 혈통과 야성적인 내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who has slalomed a fine line between his aristocratic lineage and his wild side).

길들여지지 않는 머리카락과 잘 생긴 동안으로 지난해 남성지 GQ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25인(the world`s 25 Sexiest Men)`에 뽑혔다.

매력을 타고났으면서도 놀랍도록 겸손한 그는 이탈리아말로 이른바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지녔다. 우아함과 지성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전혀 노력하지 않고 우연히 그렇게 된 듯이 보이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뉴욕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란 엘칸은 이미 여러 번 다시 태어났다(reinvented himself several times over). 기업가를 꿈꾸던 그는 6년 전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일이 이탈리아의 모든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이 사건에는 부적절한 인물(unseemly characters)이 다수 연루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앰뷸런스를 불러 엘칸의 목숨을 구해준 54세의 복장도착자 매춘부(transvestite prostitute)가 대표적이다. 엘칸은 이탈리아를 떠나 과거를 깨끗하게 씻어냈다.

1년 뒤 우선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귀국했다. 지금은 나아가 국가의 명예까지 되살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전환점에 섰다. 사람들이 허튼소리를 모두 집어치우고 국가의 중요한 일에 달려든다면 그 일을 해낼 만한 잠재력을 모두 갖췄다고 생각한다(I think Italy has all the potential to do it if people can just put aside all the bullshit and stick to what`s important for the nation)." 이탈리아 신세대를 대표하는 엘칸의 말이다.

신세대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메이드 인 이탈이아" 비즈니스 모델에 연연하는 유업의 경제 파탄국(a European basket case)이라는 조국의 이미지를 글로벌 시장의 혁신적인 경쟁자로 바꿔 놓으려 한다. "우리는 '리셋' 단추를 눌러야 한다(We need to hit 'reset'). 세대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나이가 아니라 비전의 변화 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가능한 일이다(If we undersand and accept who we are, we can do that)."

 

  이탈리아에서 내로라하는 독창적 마케팅 인재로 널리 인정받는 엘칸은 2007년 피아트 탄생 50주년을 맞아 피아트 500의 재출시를 배후에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제 그는 피아트사 소유인 페라리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작정이다. 12월초 그는 루카 코르테로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사장과 손 잡고 페라리 맞춤 제작 프로젝트(Ferrari Tailor Made project)를 출범시켰다. 25만 달러짜리 그 스포츠카를 고객의 취향에 따라 철저히 맞춤 제작해 주는 프로젝트다. "비싼 차가 주는 신분 효과는 따분하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독특함을 팔고자 한다(We want to sell uniqueness).

제품 제작에 고객을 참여시킬 생각이다. 진짜 명품은 맞춤제작한 제품이다(Real luxury is customization)." 구매자들이 페인트 색상, 가죽, 계기판 장식을 어떤 종류든 자신의 입맞대로 선택하게 된다. 단지 전체적인 페라리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엘칸은 "우리는 브랜드 DNA의 가치를 보호하면서 고객들이 그 일부를 느끼도록 한다(We protect the values of the DNA of the brand while letting our customers feel part of it)"고 말했다.

    

  엘칸은 확실히 할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았다. 그는 2002년 피아트의 기관홍보 부책임자로 가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뒤 마라넬로와 모데나 공장의 페파리와 마세라티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면서 업무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토리노로 돌아가 피아트, 알파 로메오, 란치아를 거느리는 피아트 그룹 모델들의 범세계적인 브랜드 홍보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엘칸은 피아트 500 재출시 이후 가업을 떠났지만 형 존과 여동생 지네브라와 함께 피아트 모회사 엑소르의 대주주 지분(a majority stake)을 보유한다.

  엘칸은 2007년 자신의 첫 회사를 설립했다. 이탈리아 인디펜던트라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기성복 패션과 안경 모델(인기가수 레이디 가가가 착용하는 세련된 안경 등)을 독자 생산할 뿐 아니라 다른 고급 브랜드와 제휴해 한정판 특산품(specialty products)을 개발한다. 900대만 생산해 판매하는 불투명한 티타늄-회색 스포츠카(opaque-titanium-gray sports car) 알파 로메오 블레라 이탈리아 인디펜던트가 대표작이다. 엘칸은 디자인팀의 다재다능함(versatility)을 즐겨 자랑한다. 자신이 직접 선발한 디자이너들이 60센트짜리 빅라이터부터 4000만 달러짜리 고급 자가용 제트기(luxury private jet)까지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고상한 전통과 기발한 혁신을 혼합시켜 엘칸의 복잡 다양한 개성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도 능하다. 거친 나일론과 탄소섬유 같은 소재를 캐시미어, 리넨과 조화시키는 등 디자인의 한계를 넓혀나간다고 엘칸은 말한다. 이 회사의 상징 제품인 선글라스는 투박한 테에 화려한 털장식 벨벳을 돌렸다. 그는 "우리는 반항아들처럼 규칙을 깨진 않는다(We don't break the rules like rebels)"고 말했다. "우리는 규칙을 깨는 최선의 방법을 이해한 다음 행동에 옮긴다(We break the rules understanding the best way to do so)."

 

  벤처기업을 창업한 이후 엘칸과 그의 파트너들은 새로운 사업부를 다수 추가했다. 가령 인디펜던트 아이디어스라는 커뮤니케이션* 광고 대행사는 다른 기업들의 이미지 쇄신을 돕는다. 2008년 엘칸과 안드레아 테시토레는 LA 홀딩이라는 총괄조직(umbrella group)을 신설했다. 이탈리아에서 구상하고 설립돼 스타일을 모색하는 신규 벤처의 창업보육센터(business incubator) 겸 컨설팅 그룹 역할을 한다. 이 조직을 묘사할 때 엘칸이 싫어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말만 쓰지 않으면 된다. 엘칸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내가 아니라 80년대 재계 거물들이 쓰던 표현('Made in Italy' is from the tycoons of the '80s, not me)"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대표하는 이탈리아는 내가 속하지도 않고 소속감을 느끼지도 않는다(It is people who represent an Italy which I don't belong to and I don't feel a part of)."

  LA홀딩 산하에 있는 엘칸의 사업체는 아이 스피릿 보드카("이탈리아 최초의 오리지널 보드카")부터 사운드 아이덴티티까지 다양하다. 사운드 아이덴티티는 기업들이 음악을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강화하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회사다. 2011년 LA 홀딩 산하 기업의 총 매출은 1200만 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2006년 테시토레와 엘칸이 뉴욕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종이조각 위에 구상한 기업치고는 나쁘지 않은 실적이다. "경제위기 중 회사를 창업할 때는 모든 일을 전략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When you start a company during an economic crisis, you need to be strategic in everything you do)"고 테시토레는 말했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놓았다(We have turned the crisis into an opportunity)."

 

  엘칸은 자신이 지금처럼 성공한 데는 과거의 실패가 어느 정도 밑거름이 됐다고 시인한다. 그는 "과거 잘못이 있었다(I've had my slips)"고 털어놓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I've had my ups and downs, and I don't deny them). 내 개성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적어도 나는 직선적이다(at least I'm straightforward). 내 파멸적인 과거가 내가 바라는 이상형에 도달하도록 나를 압박하고 인도했다. 지금은 내 안의 자신이 평정을 되찾았다(My inner self is now at ease). 나는 약점이 많지만 한가지 강점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300% 몰입한다. 어중간하게 하지않는다(I'm not a middle man)."

 

  엘칸은 대인관계에서도 이처럼 모 아니면 도 식의 딱 부러지는 태도(all-or-nothing attitude)를 좋아한다. 그의 첫 직장은 힘들기로 유명한 국제 외교계였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개인 보좌관으로 일했다. 엘칸은 키신저를 "거의 누구도 꿈꾸지 못할 지능을 지닌 추진력 강한 사람(a driven man who has an intelligence few could dream of having)"이라고 묘사했다. 엘칸은 그 원로 정치가에게서 배운 최대의 교훈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이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그에게서 배웠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즉석에서 이해하는 법"이라고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열쇠다(That is key in whatever you do)."

 

  페라리 맞춤 제작의 경우처럼 엘칸은 명품 설계과정에 고객을 참여시키는 데 거의 병적으로 집착한다. 거기에는 키신저에게서 배운 사고방식의 영향이 크다. 그의 청색 페라리 캘리포니아부터 무광의 녹색 피아트 500까지 그가 소유한 자동차와 모터스쿠터 모두 맞춤 제작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엘칸은 아넬리 가문의 일원으로 세계의 내로라하는 명사 몇몇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rubs shoulders comfortably). 그는 자력으로 스타에 버금가는 존재로 떠올랐다. 패션감각은 2009년 베니티 페어 잡지가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몸에 딱 맞는 할아버지의 고전적인 맞춤 정장에 이탈리아 인디펜던트의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즐겨 맞춰 입는다. 밝은 색 모자든 야한 무늬든 화려함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그의 취향은 톰 포드 등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줬다. "엘칸은 세계에서 가장 스타일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최근 포드가 말했다. "정말 아주 유별난 스타일을 지녔지만 결코 어수룩해 보이지 않는다(He's got wacky-as-hell style, but never looks foolish)."

  하지만 엘칸 자신은 패션 전문가가 아닐라고 한사코 부인한다. "나는 패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패션계 관계자로 간주되고 싶지도 않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 업무가 취향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스타일 산업으로 부르고 싶다(I like to call it the style industry because we try to work on

taste)." 그는 철두철미한 스타일리스트지만 또한 그만큼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그의 매력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명예훈장처럼(wears his mistakes as badges of honor) 그리고 끈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표상처럼 드러내놓고 과시한다. 그는 이탈리아도 현재의 위기를 그런 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탈리아가 새로운 비전을 가지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A

new vision for this country will help it overcome difficulty)"고 말했다. "이탈리아가 정상궤도로 복귀하리라고 기대한다(I hold hope that Italy can get back on track)." 이미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의 말이니 믿어도 좋을 듯 하다. 

 

 

번역 차진우  /  뉴스위크 한국판 2011. 12. 14. p40~43, (1007) 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