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7시경 해양경찰 특공대원 두 분이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간 故 이청호 경사는 해경 특공대원 출신입니다.
저는 해양경찰 전투경찰순경이고, 이제 전역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 해양경찰 특공대원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인명구조활동할 때도 거침없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분들이고, 각종 폭발물처리나 대테러 훈련 등
거친 훈련들도 다 이겨내시는 분들입닌다.
서남해안(인천~제주)은 항상 중국어선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지역이어서 불법중국어선 단속에도
앞장을 서는데요. 아래의 기사에서 보시는 것처럼 1.8톤, 작은 고무단정(RIB boat)에 8~10명 정도가 승선하여 2~4m의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도 해양주권을 수호하러 달려나간다고 합니다.
그 분들이라고 해서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죽봉, 죽창, 도끼, 쇠파이프, 각목, 단검 등 흉기들을 소지하고 있는 중국어민들에게 우리가 들이밀 수 있는 무기는 제한되어 있고,
혹여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여 중국어민들을 살상하거나
작년 이맘 때처럼 중국어선을 나포하다가 침몰시킨다면
우리 정부가 중국과 빚게 될 마찰 때문에 쉬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솔직히 제가 봤을 때는 공포탄이든 실탄이든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탄을 쏴서 위협사격을 해야 중국의 교양없고 배우지못한 것들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맞혀도 상관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경찰관의 목숨을 위협하는데도 그냥 찌르고 휘두르는대로 맞고 당하는 거, 이제 더이상은
묵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총기사용이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나라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경찰관이 외국인이나 심지어 자국민에게 총을 쏴서 죽여도 범인 체포과정 중 정당하게 이루어진 거라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절대 미국 총기문화를 찬양하는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권력을 그만큼 국가에서 지켜주고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경찰력이 굳건해야 나라 치안이 깨끗하고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이 제대로 서는 겁니다.(시위나 데모 강경진압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태클걸지 마십시오. 제 말뜻은 그런게 아니니까요.)
중국놈들은 우리 해양주권을 수천년 전부터 위협해왔던 시정잡배들입니다.
말로해서 통하지도 않고, 왠만한 무기로는 눈하나 깜짝 안합니다.
뉴스를 보니 우리가 올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허용한 조업가능 중국어선 숫자가
채 2,000척도 되지 않는데, 잠정추정한 결과 20만척 이상이 올해까지 조업을 하였답니다.
20만척... 20만명도 아니고 20만 척입니다. 인해전술을 바다에서도 펼치는 중국입니다.
그런 인해전술을 펼칠 수 없는 우리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지요.
전국 해경서에 있는 모든 경비정을 서해안에만 집중배치 시킬 수도 없는 실정이고,
그렇다고 3교대를 뛰는 서해안 경비함정들을 2교대를 시킬 수도 없습니다.
(한 출동 뛰고 오면 다들 녹초가 되어 오니까요)
그래도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한 몸 오롯히 다 바쳐서 해양주권을 수호하던 그들이었는데..
이번에 순직하신 故 이청호 경사는 부인도 있고, 슬하에 자식도 셋이나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당연히 국가에서 국가유공자로서 충분히 보상해주어야 하겠지만,
어찌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를 잃었는데요.
밑에 기사와 사진을 보니 저도 눈물이 다 났습니다.
한 가정의 듬직한 가장이었고, 한 사람의 멋진 남편이었고, 자식들에겐 항상 든든하고 멋있는
아버지였을 故 이청호 경장, 정말 슬픔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정까지 처참하게 파괴하는 중국어민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 해경이 단속을 하면 그들은 당해야 합니다. 저항하는 순간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며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를 하면 치상죄나 치사죄, 그리고 고의가 있었다면 상해죄와 살인의 죄로 엄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라고 절대 봐줄 필요 없습니다. 눈치 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 해역에서 저지른 범죄는 우리가 단호하게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계속 눈치만 보며 주먹구구식으로 봐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북한은 중국어선들을 나포하는게 아니라 그냥 쏴서 격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어민들이 북한은 무서워하는데 유독 한국만 깔보고 누르려고 하는 겁니다.
일본? 일본도 마찬가지지요. 중국보다 힘이 더 세니까 중국에서 일본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질게 뭐가 있습니까.
불법조업하는 중국놈들은 다 해적으로 간주해야합니다.
진짜 마음속으로는 개보다 못한놈들이라고 부르짖고 싶습니다.
이거 사람을 납치하지만 않았지 하는 짓거리들이 아주 저속하고 추악한게 소말리아 해적이랑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디서 감히 한국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단 말입니까? 이런 놈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조차 없습니다. 남의 권리는 침해해도 되고, 자기 권리는 꼭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중국어민들이 서해안, 남해안을 침범하는 건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일단 돈이 되니까. 여러번 잡혀서 배도 묶이고 벌금도 내긴 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벌이지요. 이런건 정말 주거침입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영해도 자기내들 영해처럼 들락날락 거리는건 더 이상 봐줄 수 없습니다. 외교적 마찰을 빚더라도 할건하고 말할건 말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우리의 아까운 인재를 잃는게 더 비겁하고 옹졸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칼에는 칼, 총에는 총으로 대응해서 한국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어대는 중국놈들에게 '한국은 건들면 안되는 나라'라는 인식을 똑똑히 심어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한비야씨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단 한사람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 전체가 고맙고 좋기도 하고,
반대로 그 나라 전체에 거부감이 생기며
꼴 보기 싫기도 하다.
-한비야의<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에 이렇게 심한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전에는 동북공정을 비롯한 일련의 미친짓들 때문에 중국이 싫긴 했지요.)
그냥 주변국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서는 싫어도 교역을 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서..그나마 중국에 남아있던 좋은 감정들(?)도 싹 가셨습니다.
모든 중국인이 그렇지 않다는거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싹수가 노란놈들 때문에 중국 전체가 싫고 거부감이 들고
모든 중국인, 중국제품은 전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종자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오만 방자를 떨면서 주변국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지.. 두고볼게요, 중국.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 -故 이청호 경장
기자가 만났던 바다사나이 언제나, 누구보다 먼저 중국 어선에 오르던 사람 "中어선 보면 피가 끓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특수구조단·폭발물 처리팀… 특수 임무는 그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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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해 소청도 인근에서 불법 어로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해경 특공대원 이청호경장이 중국어선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쓰러져갔다. 故 이청호경장은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뜨거운 피로 선봉에서 서해를 지키다가 중국에 찔려 숨져갔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저 수평선을 넘어오는 중국 어선들을 보면 피가 끓습니다.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
지난 5월 인천해경 3005함에서 만난 이청호(41) 경장은 말수가 적었다. 각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은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해경의 중국 어선 단속 현장 르포 기사를 쓰려고 2박 3일간 승선했다.
12일 이 경장이 불법 어로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국 선원들의 저항이 갈수록 격렬해져서 걱정입니다. 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지만…" 하고 말하면서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당시 3005함은 출항 하루 만에 소청도 남서쪽 해상에서 쌍끌이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했다. 3000t급 함정을 흔드는 집채만 한 파도 속에서 이 경장은 대원 10여명과 함께 작은 고속 단정(1.8t)에 옮겨 탔다. 안개 때문에 불과 2~3m 떨어진 사람 얼굴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기자는 흔들리는 배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에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던 것 같다. "대원들이 저를 믿고 배에 탑니다." 이 경장은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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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들어간다, 몸조심 하자" - 12일 서해 소청도 인근에서 불법 어로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숨진 고(故) 이청호 경장(가운데)은 언제나 맨 먼저 중국 어선에 올랐다. 사진은 그가 지난 5월 7일 같은 장소에서 출동하기 직전 대원들을 격려하는 장면이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그는 두 시간 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방검복(防劍服)과 헬멧을 벗는 그의 머리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3005함 갑판에서 그가 내쉰 짧은 한숨은 모든 대원이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 그가 숨졌다. 12일 새벽 소청도 앞바다에서 언제나처럼 중국 어선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려다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다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지난 5월 기자가 3005함에 승선했을 때 함장이었던 이병훈(55)씨는 "누구보다 강하고, 쉽게 방심하지 않는 친구인데 어쩌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검색팀장이었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중국 선원 수십명과 망망대해 위에서 싸워야 하는 나포조 10여명의 선봉 역할이었다.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언제나 가장 먼저 중국 어선에 올랐다.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내가 생긴 것이 험악해서 그런지 중국 선원들이 날 보면 겁을 집어먹습니다” 하면서 순하게 웃었다. 1996년 특전사 예비역 중사로 전역한 그는 1998년 순경 특채로 해양경찰이 됐다. 특수 구조단, 특수 해상 기동대, 특공대 폭발물 처리팀 등 언제나 특별한 임무는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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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울지마" -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청호 경장 부인(가운데)이 눈물을 흘리자 아들과 딸이 위로하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2008년 9월 가거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해경대원이 중국 선원이 휘두른 삽에 맞아 사망한 이후 해경 경비함에는 이 경장을 비롯한 특수부대 출신 해경 특공대원들이 전진 배치됐다.
그도 이때 인천해경으로 전입해 나포조에 투입됐다. 지난 4월 중국 어선 나포 공로로 해양경찰청장상을 받았고, 인명 구조 유공 등으로 6차례에 걸쳐 표창도 받았다.
12일 그의 빈소가 차려진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 윤경미(37)씨와 장녀 지원(14), 장남 명훈(12), 차남 명헌(10)이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막내는 “엄마, 울지마” 하며 윤씨를 달랬다.
이 경장의 처형 윤모(43)씨는 “바다에 나가서도 전파가 터지는 곳이면 아이들에게 꼭 전화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씨는 “세 남매는 아빠가 경찰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중국이란 나라 치가 떨리도록 싫습니다.
오늘 10시에 숨진 故 이청호 경사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떠나는 날이라고 하기에는 하늘도 무심하리만큼 날씨가 맑네요.
오늘도 대한민국 영해를 위협하는 중국어선들을 뒤로한 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기가 너무나도
억울하고 힘드시겠지만, 떠나는 길 편히 가십시오.
저 또한 경찰이 꿈입니다. 경찰이 되어 우리나라를 해코지하려는 자들을
체포하고 싶습니다. 마약밀수, 밀매, 인신매매, 불법장기매매, 등 한국을
발판으로 삼아 범죄를 저지르는 외국인들, 그리고 그런 외국인들을 돕는
사람들은 한국인일지라도,
제가 신은 아니지만 경찰이 되어 벌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쓴 글이지만 톡이 되어 조금은 얼떨떨하네요.
이유없는 악플과 욕설은 정중히 거절하겠으나
제게 비판이나 충고를 하실 분들은 얼마든지 해 주세요.
제 생각이 틀렸다면 거침없이 꾸짖어 주십시오.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법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중국에게 유감 따위만 표명하는 너무나도 젠틀(?)한 조치 말고
격앙된 국민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반영한다면 중국에게
외교적으로 정식 항의를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총기사용 여부는 검토할게 아니라 반드시 시행되어야하고,
다시는 제 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나라 정부는 고군분투하여야 할 것입니다.
남편의 얼굴을 잊지 않기위해 사진을 쓸어내리며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내,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차 문을 닫지 못하는 딸..
항상 자랑스럽고 듬직하였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두 아들.
故 이청호 경사의 가족들에게는 절대 그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을것입니다.
평생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그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대한민국 영해 뿐만이 아닌 영토, 영공에서도
이런 슬픈 사건을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하원본-
너무 화가 납니다.
중국이란 나라, 치가 떨리도록 싫습니다.
어제 오전 7시경 해양경찰 특공대원 두 분이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간 故 이청호 경사는 해경 특공대원 출신입니다.
저는 해양경찰 전투경찰순경이고, 이제 전역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 해양경찰 특공대원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인명구조활동할 때도 거침없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분들이고, 각종 폭발물처리나 대테러 훈련 등
거친 훈련들도 다 이겨내시는 분들입닌다.
서남해안(인천~제주)은 항상 중국어선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지역이어서 불법중국어선 단속에도
앞장을 서는데요. 아래의 기사에서 보시는 것처럼 1.8톤, 작은 고무단정(RIB boat)에 8~10명 정도가 승선하여 2~4m의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도 해양주권을 수호하러 달려나간다고 합니다.
그 분들이라고 해서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죽봉, 죽창, 도끼, 쇠파이프, 각목, 단검 등 흉기들을 소지하고 있는 중국어민들에게 우리가 들이밀 수 있는 무기는 제한되어 있고,
혹여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여 중국어민들을 살상하거나
작년 이맘 때처럼 중국어선을 나포하다가 침몰시킨다면
우리 정부가 중국과 빚게 될 마찰 때문에 쉬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솔직히 제가 봤을 때는 공포탄이든 실탄이든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탄을 쏴서 위협사격을 해야 중국의 교양없고 배우지못한 것들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맞혀도 상관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경찰관의 목숨을 위협하는데도 그냥 찌르고 휘두르는대로 맞고 당하는 거, 이제 더이상은
묵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총기사용이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나라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경찰관이 외국인이나 심지어 자국민에게 총을 쏴서 죽여도 범인 체포과정 중 정당하게 이루어진 거라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절대 미국 총기문화를 찬양하는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권력을 그만큼 국가에서 지켜주고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경찰력이 굳건해야 나라 치안이 깨끗하고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이 제대로 서는 겁니다.(시위나 데모 강경진압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태클걸지 마십시오. 제 말뜻은 그런게 아니니까요.)
중국놈들은 우리 해양주권을 수천년 전부터 위협해왔던 시정잡배들입니다.
말로해서 통하지도 않고, 왠만한 무기로는 눈하나 깜짝 안합니다.
뉴스를 보니 우리가 올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허용한 조업가능 중국어선 숫자가
채 2,000척도 되지 않는데, 잠정추정한 결과 20만척 이상이 올해까지 조업을 하였답니다.
20만척... 20만명도 아니고 20만 척입니다. 인해전술을 바다에서도 펼치는 중국입니다.
그런 인해전술을 펼칠 수 없는 우리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지요.
전국 해경서에 있는 모든 경비정을 서해안에만 집중배치 시킬 수도 없는 실정이고,
그렇다고 3교대를 뛰는 서해안 경비함정들을 2교대를 시킬 수도 없습니다.
(한 출동 뛰고 오면 다들 녹초가 되어 오니까요)
그래도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한 몸 오롯히 다 바쳐서 해양주권을 수호하던 그들이었는데..
이번에 순직하신 故 이청호 경사는 부인도 있고, 슬하에 자식도 셋이나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당연히 국가에서 국가유공자로서 충분히 보상해주어야 하겠지만,
어찌 그걸로 충분하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를 잃었는데요.
밑에 기사와 사진을 보니 저도 눈물이 다 났습니다.
한 가정의 듬직한 가장이었고, 한 사람의 멋진 남편이었고, 자식들에겐 항상 든든하고 멋있는
아버지였을 故 이청호 경장, 정말 슬픔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정까지 처참하게 파괴하는 중국어민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 해경이 단속을 하면 그들은 당해야 합니다. 저항하는 순간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며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를 하면 치상죄나 치사죄, 그리고 고의가 있었다면 상해죄와 살인의 죄로 엄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라고 절대 봐줄 필요 없습니다. 눈치 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 해역에서 저지른 범죄는 우리가 단호하게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계속 눈치만 보며 주먹구구식으로 봐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북한은 중국어선들을 나포하는게 아니라 그냥 쏴서 격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어민들이 북한은 무서워하는데 유독 한국만 깔보고 누르려고 하는 겁니다.
일본? 일본도 마찬가지지요. 중국보다 힘이 더 세니까 중국에서 일본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질게 뭐가 있습니까.
불법조업하는 중국놈들은 다 해적으로 간주해야합니다.
진짜 마음속으로는 개보다 못한놈들이라고 부르짖고 싶습니다.
이거 사람을 납치하지만 않았지 하는 짓거리들이 아주 저속하고 추악한게 소말리아 해적이랑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디서 감히 한국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단 말입니까? 이런 놈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조차 없습니다. 남의 권리는 침해해도 되고, 자기 권리는 꼭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중국어민들이 서해안, 남해안을 침범하는 건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일단 돈이 되니까. 여러번 잡혀서 배도 묶이고 벌금도 내긴 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벌이지요. 이런건 정말 주거침입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 영해도 자기내들 영해처럼 들락날락 거리는건 더 이상 봐줄 수 없습니다. 외교적 마찰을 빚더라도 할건하고 말할건 말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우리의 아까운 인재를 잃는게 더 비겁하고 옹졸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칼에는 칼, 총에는 총으로 대응해서 한국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어대는 중국놈들에게 '한국은 건들면 안되는 나라'라는 인식을 똑똑히 심어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한비야씨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단 한사람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 전체가 고맙고 좋기도 하고,
반대로 그 나라 전체에 거부감이 생기며
꼴 보기 싫기도 하다.
-한비야의<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에 이렇게 심한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전에는 동북공정을 비롯한 일련의 미친짓들 때문에 중국이 싫긴 했지요.)
그냥 주변국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서는 싫어도 교역을 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서..그나마 중국에 남아있던 좋은 감정들(?)도 싹 가셨습니다.
모든 중국인이 그렇지 않다는거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싹수가 노란놈들 때문에 중국 전체가 싫고 거부감이 들고
모든 중국인, 중국제품은 전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종자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오만 방자를 떨면서 주변국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지.. 두고볼게요, 중국.
당신네들이란 나라.. 정말 싫습니다. 치가 떨리도록 싫습니다.
-관련기사- 조선일보 11.12.13일자 사회면-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13/2011121300179.html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 -故 이청호 경장 기자가 만났던 바다사나이언제나, 누구보다 먼저 중국 어선에 오르던 사람
"中어선 보면 피가 끓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특수구조단·폭발물 처리팀… 특수 임무는 그의 몫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지난 5월 인천해경 3005함에서 만난 이청호(41) 경장은 말수가 적었다. 각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은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해경의 중국 어선 단속 현장 르포 기사를 쓰려고 2박 3일간 승선했다.
12일 이 경장이 불법 어로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국 선원들의 저항이 갈수록 격렬해져서 걱정입니다. 나도 싸움이라면 자신 있지만…" 하고 말하면서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당시 3005함은 출항 하루 만에 소청도 남서쪽 해상에서 쌍끌이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했다. 3000t급 함정을 흔드는 집채만 한 파도 속에서 이 경장은 대원 10여명과 함께 작은 고속 단정(1.8t)에 옮겨 탔다. 안개 때문에 불과 2~3m 떨어진 사람 얼굴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기자는 흔들리는 배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에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던 것 같다. "대원들이 저를 믿고 배에 탑니다." 이 경장은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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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숨졌다. 12일 새벽 소청도 앞바다에서 언제나처럼 중국 어선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려다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다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지난 5월 기자가 3005함에 승선했을 때 함장이었던 이병훈(55)씨는 "누구보다 강하고, 쉽게 방심하지 않는 친구인데 어쩌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검색팀장이었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중국 선원 수십명과 망망대해 위에서 싸워야 하는 나포조 10여명의 선봉 역할이었다. 조타실에 들어가 선장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언제나 가장 먼저 중국 어선에 올랐다.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내가 생긴 것이 험악해서 그런지 중국 선원들이 날 보면 겁을 집어먹습니다” 하면서 순하게 웃었다.
1996년 특전사 예비역 중사로 전역한 그는 1998년 순경 특채로 해양경찰이 됐다. 특수 구조단, 특수 해상 기동대, 특공대 폭발물 처리팀 등 언제나 특별한 임무는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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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이때 인천해경으로 전입해 나포조에 투입됐다. 지난 4월 중국 어선 나포 공로로 해양경찰청장상을 받았고, 인명 구조 유공 등으로 6차례에 걸쳐 표창도 받았다.
12일 그의 빈소가 차려진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부인 윤경미(37)씨와 장녀 지원(14), 장남 명훈(12), 차남 명헌(10)이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막내는 “엄마, 울지마” 하며 윤씨를 달랬다.
이 경장의 처형 윤모(43)씨는 “바다에 나가서도 전파가 터지는 곳이면 아이들에게 꼭 전화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씨는 “세 남매는 아빠가 경찰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