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매년 6월 현충일 전 주말과 12월 13일 기일전 주말에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시는 삼촌을 봬러 갑니다.
맏이인 저는 올해 일때문에 못 가 부모님과 동생들만 갔다왔는데.. 분위기가 많이 안 좋더군요..
올해 12월 13일은 20주기라 성남시와 삼촌의 모교에서 크게 추모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듣지 못해.. 휴무를 10일 11일로 빼놓아 성남에 가지 못했습니다..
많이 우시더군요.. 저희 집은 부모님과 함께 4남매로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매년 추석, 설날에 어머니는 집에 한번도 못 가셨습니다. 고속도로비와 기름값 등등이 장난이 아니고 왔다갔다 시간과 함께 힘든 점이 많아 1년에 한 두번만 갔었지요..
이번에도 일하시느라 가시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그래서 외삼촌의 기사와 함께 여러가지 자료를 모아 프린트를 하여 파일로 만들어 드리려다 판이 생각나 부탁드립니다. 저희 삼촌이 이렇게나 멋지고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희 어머니와 삼촌에게 소중한 댓글하나만 달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민간인 피해 막으려 끝까지 조종간 잡고 산화/광주 F5A기 사고 이상희대위/추락지점 찾느라 실기/육성테이프로 밝혀져【광주=임종명기자】
지난 13일 광주 상공에서 훈련비행중 공중추돌 사고로 F5A기와 함께 광주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 옆에 추락,숨진 고 이 상희대위(23·1계급추서)는 추돌직후 낙하산 탈출기회가 있었으나 기체가 민가를 덮치는 것을 막기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있다 애기와 함께 산화한 것으로 밝혀져 군내외에 큰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위는 사고당일 하오 3시1분께 F5A번기를 몰고 빨간 마후라를 매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공중사격 비행실습을 마치고 착륙하려다 앞서 착륙을 시도하던 A5A 3번기와 공중추돌했다.
사고직후 3번기에 타고 있던 교관 한 호승대위(29)는 낙하산으로 비상탈출,목숨을 건졌으나 이 대위는 기체가 가옥이 밀집한 덕흥마을을 향해 급강하하자 민가가 없는 추락지점을 택하다 비상 탈출할 시간을 놓쳤다.
덕흥마을앞 미나리밭에 추락,산산조작이 난 기체에서 뒤늦게 찾아낸 녹음테이프에는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이 불가…』라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이 대위가 외친 마지막육성이 녹음돼 있었다.
공중추돌에서 추락까지의 사고순간을 지켜본 이 마을 문구식씨(65)는 『추돌한 비행기중 한대가 추락지점을 찾듯이 방향을 바꿨다』며 『만약 그대로 추락했더라면 덕흥마을 민가를 덮쳐 엄청난 피해가 났을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위가 애기와 함계 추락한 지점은 민가에서 불과 1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나리밭이다.
당시 추락으로 파편이 튀어 이마을 윤형철군(11·극락국교 4) 등 주민 3명이 중화상을 입고 가옥 4채의 울타리 들이 부서지는 피해가 났으나 이 대위의 희생정신이 없었더라면 더 큰 참화가 빚어졌을 것이라고 군관계자들은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아버지 이 주열씨(61·농업)와 어머니 이 원순씨(53)의 장남으로 2남6녀중 일곱째인 이 대위는 어릴적부터 파일럿이 되는게 꿈이었다. 항공대학 항공운항과를 졸업한 지난해 봄 학군 17기로 공군소위로 임관,조종사의 길에 들어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평소 침착하고 성실한 초등·중등·고등비행 훈련과정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했던 이 대위의 순직소식을 들은 동료 및 교관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전투조종사를 잃은 슬픔에 젖어있다.
15일 공군부대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이 대위의 아버지는 『딸 여섯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을 잃어 원망도 컸지만 민가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종석을 지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감췄다.
"미나리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디 갑자기 비행기가 마을 앞 논에 꽝하고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제. 마을로 떨어 졌다믄 난리 나붓제. 건물들 유리창이랑 문짝들이 모두 깨지고 부서지고 조종사 시신도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하나하나 찾아서 시신을 수습했어"-이성춘(74세)
사고 직후 이상희 중위의 부모님과 약혼녀가 찾아와 그의 뜻밖의 죽음에 부모의 오열과 주민들이 함께 울었다.
그 뒤 마을에서는 이상희 중위의 순직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또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고 현장 바로 옆 경로당 옆에 비를 세웠다. 4년 전에 경로당을 신축할 때 이상희 부모님께서 감사의 마음으로 천만원을 기부하였다.
매년 12월 13일, 공군부대에서 찾아와 이상희 중위 비 주변을 정리 하고 마을 주민들과 시간을 갖는다.
비가 있는 곳이 지금은 조합 땅이라 쉽게 옮겨지지는 않겠지만 세월이 흘러 개인 소유로 이전 된다면 비가 이곳에 계속 있을지 알 수 없다.
→처음 보는 내용 이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인 소유로 이전이 되어도 저희 삼촌의 위령비가 없어지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91년도 12월 13일에 돌아 가실적 저희 어머니는 바로 밑 동생을 가지고 있으며 만삭이셨습니다.
해를 끼칠까 싶어 비밀로 했지만 뉴스와 신문에서 크게 보도를 하여 어머니는 23일 일찍 출산을 하셔서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지냈었습니다.
제가 4~5살쯤 이사를 하며 큰 외삼촌께서 저에게 사주신 곰인형을 잃어버려 어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우셨단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박혀있습니다.
외삼촌이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빨간 머플러를 매시기 위한 마지막 훈련에 일어나.. 안타깝습니다. 공군이시라면 빨간 머플러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
예전 TV행복한 동화에 빨간 머플러로 저희 삼촌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 방영이 되었을때 방송국에 전화해서 따로 구입을 해서 온 가족이 시청했을 때에 어머니는 그 날 또 몰래 눈물을 훔치셨지요.. 언제나 웃는 모습이 이쁘시고 강인하신 어머니 시지만 매년 이맘 눈물을 훔치시며, 올해는 더 힘드신 모습이네요.. 저희 어머니 어릴 적에 큰외삼촌과 가장 많이 닮았고 바로 밑이 큰외삼촌이 셨기에 더욱 애정이 강했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크게 이름을 못 남기더라도 건강히 살아만 줬다면 하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12월 13일이 어떤분에게는 생일, 결혼기념일 등 다른 뜻의 날도 있겠지만..
저희 외삼촌의 일도 있었다는 것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한동화 동영상은 바로가기는 찾지 못하여 링크 걸린데 들어가셔서 "빨간 머플러"를 찾으셔야 하구요.. 찾아보니 다른 동영상이 있더라구요.. 저도 이 판을 쓰며 저희 삼촌에 대해 알아가며 더욱 가까워 진 것 같아 좋으면서도 부끄럽습니다..
공군이셨던 故이상희대위..외삼촌의 20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판을 즐겨보며, 나도 다음에 웃긴 이야기를 한번 써보자 했지만..
즐겁지 않은 이야기로 판을 쓰게 됩니다. 길어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판을 쓰는 이유는..
오늘 2011년 12월 13일이 저희 외삼촌의 20주기 입니다.
저희 집은 매년 6월 현충일 전 주말과 12월 13일 기일전 주말에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시는 삼촌을 봬러 갑니다.
맏이인 저는 올해 일때문에 못 가 부모님과 동생들만 갔다왔는데.. 분위기가 많이 안 좋더군요..
올해 12월 13일은 20주기라 성남시와 삼촌의 모교에서 크게 추모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듣지 못해.. 휴무를 10일 11일로 빼놓아 성남에 가지 못했습니다..
많이 우시더군요.. 저희 집은 부모님과 함께 4남매로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매년 추석, 설날에 어머니는 집에 한번도 못 가셨습니다. 고속도로비와 기름값 등등이 장난이 아니고 왔다갔다 시간과 함께 힘든 점이 많아 1년에 한 두번만 갔었지요..
이번에도 일하시느라 가시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그래서 외삼촌의 기사와 함께 여러가지 자료를 모아 프린트를 하여 파일로 만들어 드리려다 판이 생각나 부탁드립니다. 저희 삼촌이 이렇게나 멋지고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희 어머니와 삼촌에게 소중한 댓글하나만 달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부탁 드립니다. 밑에는 저희 삼촌의 기사내용과 함께 여러가지 자료를 묶어보았습니다.
읽어보시고 응원의 댓글 부탁드리며..
저희 삼촌 같은 분들을 다시 한번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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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탈출하겠다…전방에 마을이…탈출불가…”
[한국일보]1991-12-16 23면 1286자 사회 해설
◎ 민간인 피해 막으려 끝까지 조종간 잡고 산화/광주 F5A기 사고 이상희대위/추락지점 찾느라 실기/육성테이프로 밝혀져【광주=임종명기자】
지난 13일 광주 상공에서 훈련비행중 공중추돌 사고로 F5A기와 함께 광주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 옆에 추락,숨진 고 이 상희대위(23·1계급추서)는 추돌직후 낙하산 탈출기회가 있었으나 기체가 민가를 덮치는 것을 막기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있다 애기와 함께 산화한 것으로 밝혀져 군내외에 큰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 대위는 사고당일 하오 3시1분께 F5A번기를 몰고 빨간 마후라를 매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공중사격 비행실습을 마치고 착륙하려다 앞서 착륙을 시도하던 A5A 3번기와 공중추돌했다.
사고직후 3번기에 타고 있던 교관 한 호승대위(29)는 낙하산으로 비상탈출,목숨을 건졌으나 이 대위는 기체가 가옥이 밀집한 덕흥마을을 향해 급강하하자 민가가 없는 추락지점을 택하다 비상 탈출할 시간을 놓쳤다.
덕흥마을앞 미나리밭에 추락,산산조작이 난 기체에서 뒤늦게 찾아낸 녹음테이프에는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이 불가…』라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이 대위가 외친 마지막육성이 녹음돼 있었다.
공중추돌에서 추락까지의 사고순간을 지켜본 이 마을 문구식씨(65)는 『추돌한 비행기중 한대가 추락지점을 찾듯이 방향을 바꿨다』며 『만약 그대로 추락했더라면 덕흥마을 민가를 덮쳐 엄청난 피해가 났을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위가 애기와 함계 추락한 지점은 민가에서 불과 1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나리밭이다.
당시 추락으로 파편이 튀어 이마을 윤형철군(11·극락국교 4) 등 주민 3명이 중화상을 입고 가옥 4채의 울타리 들이 부서지는 피해가 났으나 이 대위의 희생정신이 없었더라면 더 큰 참화가 빚어졌을 것이라고 군관계자들은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아버지 이 주열씨(61·농업)와 어머니 이 원순씨(53)의 장남으로 2남6녀중 일곱째인 이 대위는 어릴적부터 파일럿이 되는게 꿈이었다. 항공대학 항공운항과를 졸업한 지난해 봄 학군 17기로 공군소위로 임관,조종사의 길에 들어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평소 침착하고 성실한 초등·중등·고등비행 훈련과정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했던 이 대위의 순직소식을 들은 동료 및 교관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전투조종사를 잃은 슬픔에 젖어있다.
15일 공군부대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이 대위의 아버지는 『딸 여섯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을 잃어 원망도 컸지만 민가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종석을 지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감췄다.
이 대위는 이날 하오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잘 못된 부분이 있더라구요.. 큰외삼촌은 4녀 2남중 여섯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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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공원, 그곳에 가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 목숨을 버려 순직한 이 대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광주시와 덕흥마을 주민들의 정성으로 마을회관 앞에 추모비를 세웠다.
야탑3동 빌라촌 사이에 있는‘상희공원’은 바로 정식 조종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훈련과정 중 순직한 이 대위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입구의 추모비석과 함께 시민을 위한 공연장과 바닥분수 등 다양한 시설의 공간이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 있던 글과 사진을 퍼왔습니다. 저희 외갓집 바로 뒤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광주 공군기지 안에도 상희공원이 하나 더 조성되어 있습니다.
광주 공군기지안 상희공원은 공군분들께서는 한번씩은 꼭 거쳐 묵념하고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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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디 갑자기 비행기가 마을 앞 논에 꽝하고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제. 마을로 떨어 졌다믄 난리 나붓제. 건물들 유리창이랑 문짝들이 모두 깨지고 부서지고 조종사 시신도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하나하나 찾아서 시신을 수습했어"-이성춘(74세)
사고 직후 이상희 중위의 부모님과 약혼녀가 찾아와 그의 뜻밖의 죽음에 부모의 오열과 주민들이 함께 울었다.
그 뒤 마을에서는 이상희 중위의 순직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또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고 현장 바로 옆 경로당 옆에 비를 세웠다. 4년 전에 경로당을 신축할 때 이상희 부모님께서 감사의 마음으로 천만원을 기부하였다.
매년 12월 13일, 공군부대에서 찾아와 이상희 중위 비 주변을 정리 하고 마을 주민들과 시간을 갖는다.
비가 있는 곳이 지금은 조합 땅이라 쉽게 옮겨지지는 않겠지만 세월이 흘러 개인 소유로 이전 된다면 비가 이곳에 계속 있을지 알 수 없다.
→처음 보는 내용 이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인 소유로 이전이 되어도 저희 삼촌의 위령비가 없어지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추락지점이였으나 현재는 공장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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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12월 16일에 발행됐던 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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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aos1th.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541&
→제 개인 소장 사진을 넣으려 했지만 위 블로그에 저희 삼촌이야기도 있기에 링크 겁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저희 삼촌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으며 안에 전시관이 있는데, 그 곳에는 우리 나라를 지키다 순직하신분들의 유품과 6.25 , 연평대전 , 천안함 사건등의 자료가 전시 되어있습니다.
한번 쯤 가보시면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던 분들이 어떤분들인지 다시 한번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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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6882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417209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121316428220421&outlink=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417115
→ 오늘 성남시에서 행사하는 저희 외삼촌의 내용의 뉴스가 떴네요 . 링크 겁니다^^
솔직히 큰 외삼촌께선 제가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차가운 묘만 본 기억 뿐입니다만....
91년도 12월 13일에 돌아 가실적 저희 어머니는 바로 밑 동생을 가지고 있으며 만삭이셨습니다.
해를 끼칠까 싶어 비밀로 했지만 뉴스와 신문에서 크게 보도를 하여 어머니는 23일 일찍 출산을 하셔서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지냈었습니다.
제가 4~5살쯤 이사를 하며 큰 외삼촌께서 저에게 사주신 곰인형을 잃어버려 어머니께서는 하루 종일 우셨단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박혀있습니다.
외삼촌이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빨간 머플러를 매시기 위한 마지막 훈련에 일어나.. 안타깝습니다. 공군이시라면 빨간 머플러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
예전 TV행복한 동화에 빨간 머플러로 저희 삼촌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 방영이 되었을때 방송국에 전화해서 따로 구입을 해서 온 가족이 시청했을 때에 어머니는 그 날 또 몰래 눈물을 훔치셨지요.. 언제나 웃는 모습이 이쁘시고 강인하신 어머니 시지만 매년 이맘 눈물을 훔치시며, 올해는 더 힘드신 모습이네요.. 저희 어머니 어릴 적에 큰외삼촌과 가장 많이 닮았고 바로 밑이 큰외삼촌이 셨기에 더욱 애정이 강했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크게 이름을 못 남기더라도 건강히 살아만 줬다면 하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12월 13일이 어떤분에게는 생일, 결혼기념일 등 다른 뜻의 날도 있겠지만..
저희 외삼촌의 일도 있었다는 것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한동화 동영상은 바로가기는 찾지 못하여 링크 걸린데 들어가셔서 "빨간 머플러"를 찾으셔야 하구요.. 찾아보니 다른 동영상이 있더라구요.. 저도 이 판을 쓰며 저희 삼촌에 대해 알아가며 더욱 가까워 진 것 같아 좋으면서도 부끄럽습니다..
한 번씩 봐주세요^^
동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1426252
행복한동화
http://cafe.naver.com/wndustns1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619&
→맨 끝에서 두번째에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엄마~ 엄마는 웃는 모습이 제일 이뻐요!! 내일 부터는 우리 다시 웃었으면 좋겠어요..사랑해요♡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가 또 추락해 순직하신 .. 두분의 공군..
고 박정수 중령님..고 권성호 중령님..
어제 중국어선을 단속하다 돌아가신 해경 고 이청호 경장님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시기전에 추천과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