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LG그룹 창업자 故 구인회 회장의 도전정신을 소개한다.
구인회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은 화장품 공장을 차리면서였다. 당시 흥아화학에서 생산한 화장품을 도매로 떼어서 서울로 가서 소매로 팔던 구회장이 1947년 화장품을 생산하는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이 사업의 시작이다.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하면서 판촉활동으로 광고모델로는 당시 인기배우이던 디나 더빈을 썼다.
서양배우를 모델로 쓰고 상표도 국제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럭키’ 영어로 L.U.C.K.Y를 썼다. 한글로는 ‘락희’다. 간결하고 산뜻한 이름이다. 한자로는 즐거울 락(樂), 기쁠 희(喜), 락희(樂喜)로 썼다. 이렇게 나온 럭키크림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이렇게 시작한 화장품 사업에서 어느 날 화장품 뚜껑이 깨졌다는 거래처의 항의를 받고 플라스틱 산업을 뛰어든 것이 락희화학, 지금의 LG화학 옛 이름이다.
1959년에는 금성사를 설립해서 국내 최초로 라디오ㆍ선풍기ㆍ텔레비전 등 전기ㆍ전자기기를 생산 수출하였으며 1969년에는 반도체 생산회사인 금성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첨단산업분야에도 진출하였다. 금성전자는 삼성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가전회사였다. 그 후 호남석유 여수공장을 완공함으로써 정유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구인회 회장의 불굴의 도전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원동력이 된 것이다.
럭키와 락희
우리나라가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LG그룹 창업자 故 구인회 회장의 도전정신을 소개한다.
구인회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은 화장품 공장을 차리면서였다. 당시 흥아화학에서 생산한 화장품을 도매로 떼어서 서울로 가서 소매로 팔던 구회장이 1947년 화장품을 생산하는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이 사업의 시작이다.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하면서 판촉활동으로 광고모델로는 당시 인기배우이던 디나 더빈을 썼다.
서양배우를 모델로 쓰고 상표도 국제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럭키’ 영어로 L.U.C.K.Y를 썼다. 한글로는 ‘락희’다. 간결하고 산뜻한 이름이다. 한자로는 즐거울 락(樂), 기쁠 희(喜), 락희(樂喜)로 썼다. 이렇게 나온 럭키크림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이렇게 시작한 화장품 사업에서 어느 날 화장품 뚜껑이 깨졌다는 거래처의 항의를 받고 플라스틱 산업을 뛰어든 것이 락희화학, 지금의 LG화학 옛 이름이다.
1959년에는 금성사를 설립해서 국내 최초로 라디오ㆍ선풍기ㆍ텔레비전 등 전기ㆍ전자기기를 생산 수출하였으며 1969년에는 반도체 생산회사인 금성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첨단산업분야에도 진출하였다. 금성전자는 삼성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가전회사였다. 그 후 호남석유 여수공장을 완공함으로써 정유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구인회 회장의 불굴의 도전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원동력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