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수능 듣기 50%에 대한 유감

quirkus2011.12.22
조회239

 

사교육계 영어강사로서, 2014년부터 시행되는 수능의 듣기 비중 확대에 대해 짧은 생각 써봅니다.

 

http://news.nate.com/view/20111221n28949?mid=n0403

 

이 기사에선 듣기를 확대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만, 추측을 해보자면 NEAT체제로 넘어가기 이전의 중간단계를 구축하는 한편, '10년을 배우고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영어'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거겠지요. 영어는 말이고, 말은 많이 듣고, 많이 해야 는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평가원의 선택에 선뜻 한 표를 던지게 되진 않습니다.

 

 

   

1. 듣기가 쉬울 경우

 

이번 2012년 수능 외국어영역이 '물수능'이었다는 데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듣기는 분명 그 어느 해보다 쉬웠습니다. 그냥 들어도 쉬운데, 그마저 EBS에서 100% 출제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1번은 영어듣기(1) 8쪽, 2번은 수능완성 5쪽...... 대조표를 보고있으면 꼭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듣기를 EBS에서 출제할 경우, 말소리를 못 듣는 학생도 열심히 스크립트를 암기해서 문제를 맞출 수 있습니다. 이걸 과연 기회의 균등이라고 봐야할까요? 올해와 같이 '쉬운 문제+EBS반영'이란 방침을 그대로 갖고가면서 듣기의 비중을 50%로 늘인다면, 변별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말 한 마디 못하는 영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2. 듣기가 어려울 경우

 

변덕이 죽을 듯한 교육정책이다보니, 난이도를 어렵게 하고 EBS 반영비율을 0으로 하기로 결정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반드시 혜택을 보는 집단은 원어민이 상주하는 교육기관에 소속되거나, 초중학교때 영어권국가로 1년 이상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 다시 말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상류층 학생들입니다. 이들과 분필수업만 받은 학생들은 출발선부터가 다릅니다. 물론, 노력으로 벌충할 수 없는 부분은 없겠습니다만, 국내파가 그 노력을 하는 사이 유학파는 다른 공부를 하겠지요. 그런데 수능은 우리나라 대입시험 아니었나요? 우리나라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교육받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적어도 불리하다면), 우리나라 교육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3. 기타 여건들

 

학교에서 듣기 수업 시수를 늘이면 되지 않느냐. 위에선 이렇게 말하면서 아무 문제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게 교실을 보여드리고싶습니다.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이 있긴 합니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이것도 유지비가 많이 들어 감축예정이라고 합니다만.) 하지만 30여명이 들어앉은 공간에서 50분이란 시간 동안 그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더구나 외국인 교사의 수업내용이 '내신'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 그 수업은 그저 적당히 때우는 시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한국인 영어교사 중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원은 극소수입니다. 테이프/CD/파일을 들으면 되지 않냐구요? 솔직히 남이 하는 얘기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면서 앉아있는 시간, 참 지루합니다. 음원을 들을 랩실은 구비되어있나요? 헤드폰 상태는 양호한가요?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듣기 장비를 갖고 다니게 할 경우 물품의 구매비용이나 도난위험 등에 대해선 생각해보셨나요?

  

 

'좋은 시설을 갖춘 소수 인원 학급'에 대해서라면, 공교육은 결코 사교육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NEAT의 본격시행과 더불어 1인 1컴퓨터가 필수화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빈부간 교육기회 불균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실효성은 전혀 없었지만 EBS 반영비율을 높인 게 사교육 잡자고 한 짓 아니었나요? 아무리 탁상공론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방향성이란 게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4. 문어 vs. 구어

 

원론적으로, 문어가 학문의 언어라면, 구어는 생활의 언어입니다. 대학은 많아지고 일자리 구하기는 어려워지면서 대학생은 과거 ‘지성인’에서 ‘취업준비생’의 자리로 내려왔습니다. 대입시험에서 문어보다 구어에 비중을 두고 평가하겠다는 취지는 어쩌면 이러한 시류에 부응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사회가 원하는 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능하는 부속이겠죠. 여기까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우리나라에서 한용운이나 이상의 시를 가르치는 사람과, 전화대화 및 상점에서 쓰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교육자로서의 소양이 더 높을까요? 언어능력의 평가가 문어 중심에서 구어 중심으로 갈 경우, 특히 그게 외국어라면 더욱, 교사에게 요구되는 기준치는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국내에서 활동중인 외국어강사 아무개가 자국에서 범죄자였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됩니다. 교육에서 회화의 비중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요. 우리는 그가 입 뚫려서 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언제까지고 Tom의 똥구멍을 빨아야 하는 겁니다.

 

 

 

 

다소 감정적으로 흘렀네요. 저 하나가 여기서 떠든다고 열차가 멈추진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여건은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한 반성 없이 무턱대고 바꾸기만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갑갑해 끄적여보았습니다. 실용, 실용 하는데,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꼭 쓰면서 살아야하는 인구가 얼마나 되나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나중에 써먹지도 않을 것에 너무 많은 돈/시간/노력을 들이느라 다른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