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안녕, 언젠가

피오니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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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인간은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게 좋아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해

아무리 뜨거운 사랑 앞이라도 행복을 믿어선 안돼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되는 거야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 버리는 얼음 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

영원한 불행도 없는거야

언젠가 이별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이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로맨스 소설의 매력에서 감정이입에 따른 대리만족이 중요한 요소라 할 진댄, 거기에는 일종의 전형성이 따라오지 싶다. 이를테면 이입된 대상, 즉 주인공의 상대역할에 일상적으로는 흔하지 않아 하나의 로망이 되어버린, 소위 하렘(Harem) 구도가 형성되는 것. 여성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라하면, 생각만 떠올려도 얼굴을 상기시키고 가슴을 설레게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그러나 그 값을 하느라 좀처럼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인물과, 더울때는 시원한 그늘, 추울때는 따듯한 모닥불처럼 늘 그자리에서 든든하게 기댈 구석을 제공하는 훈남이 사랑의 저울 양 쪽에 걸터앉는 경우라 하겠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 작품은 전형적으로 남성을 위한 로맨스 소설로 볼 수 있다. 결혼을 몇 개월 앞두고 해외근무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접근한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여인. 더구나 그녀는 배경을 알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소유했으며, 남자에게 사랑의 행위 이상의 어떠한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정혼자(定婚者)가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그와의 결혼생활을 설레임으로 고대하는 순수하고 정숙하며 아름다운데다 배경도 좋은, 앞의 그녀와는 다른 매력을 보유한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니까.

 

사실 애정구도가 이쯤으로 꼬이다보면, 모랄 센스(Moral Sence)이나 권선징악(勸善懲惡) 차원에서 일이 정처없이 뒤틀려 무책임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거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통해  자발적 비용지불에 이은 교통정리가 상식인데, 이 작품은 묘하게 이를 피해 남자 주인공인 호청년(好靑年) 유타카의 입장에서 최상의 결론이 도출된다. 이를 작위적이라하기엔 저자 츠지 히토나리의 이야기 구성력이 너무 뛰어나, 사실 이야기의 흐름을 쫓다보면 유연하게 치닫는 결론에 꼬투리를 잡을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러니, 이 작품은 꽤 완성도가 높은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로 유명한 우리나라 감독 이재한이 메가폰을 잡고, 「러브레터」 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매력적인 배우 나카야마 미호를 주연으로 내세워 2010년 영화화되었고, 일본 내 꽤 짭짤한 흥행을 거두었다 하니, 이런 로망에 목마른 이(많은 경우 남성이 아닐까 싶은데..)가 일본에도 꽤 있는 모양이다. 아직 영화는 못 봐서 모르겠지만, 기한의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스토리 구성이나 전개 상 영화로 만들기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마침 굿 다운로드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어 일단 다운로드는 받았다. 스토리보다는 나카야마 미호의 변한 모습이 궁금했던게 더 큰 이유지만..)

 

이 작품의 전반을 흐르는 소재는 위에 옮겨적어 놓은 詩다. 개인적으로 詩를 잘 몰라 잘 쓴 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더구나 일본 詩니까 더 그렇다), 이 작품 속에서는 중요한 모티프(Motif)일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에 의해 잊을만 할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詩다. 특히 마지막 구절.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사람 중 어느 쪽이 될 것인가..?'의 문제로 남주인공 유타카와 여주인공 토우코는 종종 대화를 나눈다.  처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겠다..고 한 토우코는 결국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고, 사랑한 기억을 떠올려야한다고 생각한 유타카는, 단정적이진 않지만, 심증상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쪽이 된다. 이것도 사랑이라는 놀라운 '모멘텀'('감정'이나 '존재'라고 하기엔 애매해 붙인 체언(體言). 늘 느끼는거지만 내 단촐한 어휘력이란.. ㅡㅡa)이 가진 아이러니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