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2실먹은 아줌마 입니다 몇년전에 딸아이 덕분에 이런곳에 고민올리고 도움 받는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미흡한 타자 실력이라 오타도 많이 날겁니다 양해부탁 드리며 몇글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위로는 두형제 분이 있으며 그중에 저희 신랑은 막내 아들 입니다 딸이 없는 집안이고 아들래미 3형제를 아버님 없이 훌륭하게 키워내셨지요 큰형님. 작은형님. 모두저에게 있어서 형님들이시나 나이상으로 제가 제일 나이가 많지요.. 저는 어릴적 고아원에서 자라났고 성인이 되서야 제가 자라난 고아원에서 교사로 있었습니다 거기서 매주 봉사오는 한사람과 사랑을 했고 지금의 저의 남편과 결혼까지 했지요 모아돈 돈도 없었고 부모형제 하나 없는 저를 고생했다며 따뜻히 감싸주신 분도 저의 시어머니셨어요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고운손 망가진다며 이왕 늙은손 내가 하겠다 하시며 딸처럼 살뜰히 아껴 주셨어요 몇년 같이 살고 싶다고 해도 너 불편하다며 그렇게 따로 보금 자리를 만들어 주셨구요 신종플루로 병원에 2주일간 입원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각종 티비에 그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아오시던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던 저 몰래 그렇게 밖에서 사흘나흘 우시고 또 우셨다는것을 딸래미로 통해서 들었지요 그뿐이 아니였지요.. 저희 어머니 정말 대단했지요 결혼하고 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보약이니 뭐니 다 지어주시고 간호하기 바쁘셨죠.. 부녀간이 되어 가는 과정중 왜 힘든일이 없었겠습니까.. 말한마디 건네기도 힘들었고 안부전화 드리는것 조차 힘들었으니 그 세월 말로 다 못합니다 저도 여러 새댁들처럼 시어머니를 미워해보기도 했고 남편에게 투정도 부려봤으니까요 엄마품이 많이 그리웠을까요 남들은 부부싸움 하면 친정으로 간다고 하지만 전 그흔한 친정도 없었으니 갈곳이라곤 시댁 뿐이였어요 그렇게 싸울때마다 어머니 찾아뵙고 하소연도 하고 어떤날은 소주 한잔씩 주고 받으며 그렇케 부등켜 안고 운적도 여러날이 되니 이젠 시어머니라는 감정보다 진짜 제 친정엄마가 된듯한 기분이였지요 첫째를 가지고 분만했을 당시도 제맘을 어찌 알았는지 "애미야" 친정엄마 생각나지?울지마라라 넌 내 딸이다 .. 그렇게 저를 안고 울어 주셨지요 솔직히 제새끼를 제가 키워 본적은 손꼽아 볼수 없어요 저 힘들다고 어머니께서 늘 손주들 봐주셨으니까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목뼈와 허리뼈가 금이 갔어요 숨쉬는건지 사는건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사소 호흡기에 의존 하고 산지도 2달이 되었을거예요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그렇게 지내셨는데 재발이 되었나 보더라고요 제가 병원에서 어머니 연락 안온다고 투덜 거릴때 제 시어머니 제가 걱정할까봐 말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그렇게 퇴원을 하고 재활치료를 할때쯤.. 그제서야 어머니 재발한것을 알고 울벼불며 병원을 들어선 순간.. 전 ..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여리다여리다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선 산소호흡기와 셀수도 없는 바늘을 꼽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어서 눈한번 드기 어려워 하시는데 그옆을 지키고 있는건 큰형님도 아닌 작은형님도 아닌 생정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간병인이라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어찌나 불화통이 터지던지요 떨리는마음 울먹거리는 마음을 잡고 큰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어찌 그럴수가 있냐고 생사가 오가는 분이신데 어찌 그런분을 혼자 놔두냐고 ..그렇게 울면서 따졌더니.. 간병인 해줬자나 그것도 너 힘들까봐 작은 동서랑 둘이서 돈합쳐서 붙여 준거라고 내가 안간줄 아냐고.. 어머니 곁에 가긴 갔답니다 간호사 말로는 저도 본거는 1~2번 뿐이랍니다 1~2번 이랍니다 1~2번..이랍니다 숨이 허덕이고 하루하루 생명의 끈을 겨우 잡고 계시는 어머닌데 겨우 1~2번이랍니다 누굴 욕한들 무엇합니까 저또한 아프다는 핑계로 그제서야 어머니 곁을 갔는데 누구를 탓하겠나요 그냥 울었습니다 그냥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머니 옆에 다가가 나즈막한 소리로 울며 말했습니다 엄마..내 왔다..왜 이러고 있어.. 제소리를 들었을까요.. 눈에선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저는 그 눈물에 또 통곡했습니다 간병이고 나발이고 돌려 보내고 그날로 엄마곁에서 하루하루 이런예기 저런예기 어떤 날은 노래도 불러드리고 또 어떤날은 얼른 일어나시라고 땡강도 부려보고.. 그래서 일까요 또 어떤날은 저에게 몇마디도 하고 또 어떤날은 농담도 하시고 그렇게 퇴원하면 꼭 저랑 온천가자며 약속을 했는데 딱 일주일 되었네요 오늘까지.. 그렇게..눈을 감으셨어요 마지막날 침대에서 같이 자자며 저를 올리시더니 저에게 처음으로..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아들보다..너를 더 의지하고 살았다고.. 넌 내 딸인거 잊지말라고.. 이제 너무 힘들다..병원비도 많이 나올테고 너 힘들다 느낌이 조금 이상했지만..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날 잠자리에 들었지요 새벽이 되서야 숨을 안쉬는 엄머니를 느끼고 부랴부랴 간호사에게 달려 갔습니다 몇가지 확인을 하시고 얼마 못가 담당 선생님들이 오십니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번을 엄마 엄마 하고 깨웠는데도 참 편안하게도 계시더라고요.. 처음으로..사랑한다고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큰형님 작은형님 아주버님들..그렇게 한번을 겨우겨우 오시던 분들이 통곡을 하고 우시더군요 한소리 했습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길 임종하지 못한 자식들...평생 가슴에 대몫을 박고 살거라고요.. 제가 주제 넘었나요.. 네 압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 너무 힘들게 가셨어요 그렇게 보고 싶다고 저에게 한번 와달라고 부탁했는데도 그분들,.바쁘다는 이유로 안오셨으니까요 그렇게 어머니를 땅에묻고 제 마음에 묻고 요즘은 우울증으로 병원을 오가며 겨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웃기게 들릴수도 있고 가식적이다..그럴수도 있는 일일 테지만..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저도 따라 가고 싶습니다 꿈에서도 한번 와주실줄 알았는데 한번을 보여주지 않는 내 어머니 아니 내 엄마.. 살아 생전 여행한번 못보내 드린게 이렇게 뼈져리게 아픕니다 며느님들..자식님들.. 부모님 언제 가실지도 모르는데 바쁘더라도 한번 더 챙겨 보시고 마음을 열어 보듬어 주세요 힘없고 병들면..내색은 안할지라도 자식들이 제일 보고싶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언젠간 만나겠지요.. 내일은 어머니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생전 저랑 마셨던 소주 한병들고 이런 저런 얘기하러 가는 날이지요 빨리 보고 싶어지네요 40
시어머니를 보내 드렸습니다
올해 52실먹은 아줌마 입니다
몇년전에 딸아이 덕분에 이런곳에 고민올리고 도움 받는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미흡한 타자 실력이라 오타도 많이 날겁니다 양해부탁 드리며 몇글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위로는 두형제 분이 있으며 그중에 저희 신랑은 막내 아들 입니다
딸이 없는 집안이고 아들래미 3형제를 아버님 없이 훌륭하게 키워내셨지요
큰형님. 작은형님. 모두저에게 있어서 형님들이시나
나이상으로 제가 제일 나이가 많지요..
저는 어릴적 고아원에서 자라났고 성인이 되서야 제가 자라난 고아원에서 교사로 있었습니다
거기서 매주 봉사오는 한사람과 사랑을 했고 지금의 저의 남편과 결혼까지 했지요
모아돈 돈도 없었고 부모형제 하나 없는 저를 고생했다며 따뜻히 감싸주신 분도 저의 시어머니셨어요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고운손 망가진다며 이왕 늙은손 내가 하겠다 하시며
딸처럼 살뜰히 아껴 주셨어요
몇년 같이 살고 싶다고 해도 너 불편하다며 그렇게 따로 보금 자리를 만들어 주셨구요
신종플루로 병원에 2주일간 입원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각종 티비에 그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아오시던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던 저 몰래
그렇게 밖에서 사흘나흘 우시고 또 우셨다는것을 딸래미로 통해서 들었지요
그뿐이 아니였지요..
저희 어머니 정말 대단했지요
결혼하고 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보약이니 뭐니 다 지어주시고
간호하기 바쁘셨죠..
부녀간이 되어 가는 과정중 왜 힘든일이 없었겠습니까..
말한마디 건네기도 힘들었고
안부전화 드리는것 조차 힘들었으니 그 세월 말로 다 못합니다
저도 여러 새댁들처럼 시어머니를 미워해보기도 했고
남편에게 투정도 부려봤으니까요
엄마품이 많이 그리웠을까요
남들은 부부싸움 하면 친정으로 간다고 하지만 전 그흔한 친정도 없었으니
갈곳이라곤 시댁 뿐이였어요
그렇게 싸울때마다 어머니 찾아뵙고 하소연도 하고
어떤날은 소주 한잔씩 주고 받으며 그렇케 부등켜 안고 운적도 여러날이 되니
이젠 시어머니라는 감정보다 진짜 제 친정엄마가 된듯한 기분이였지요
첫째를 가지고 분만했을 당시도
제맘을 어찌 알았는지 "애미야" 친정엄마 생각나지?울지마라라 넌 내 딸이다 ..
그렇게 저를 안고 울어 주셨지요
솔직히 제새끼를 제가 키워 본적은 손꼽아 볼수 없어요
저 힘들다고 어머니께서 늘 손주들 봐주셨으니까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목뼈와 허리뼈가 금이 갔어요
숨쉬는건지 사는건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사소 호흡기에 의존 하고 산지도 2달이 되었을거예요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그렇게 지내셨는데 재발이 되었나 보더라고요
제가 병원에서 어머니 연락 안온다고 투덜 거릴때 제 시어머니 제가 걱정할까봐 말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그렇게 퇴원을 하고 재활치료를 할때쯤.. 그제서야 어머니 재발한것을 알고 울벼불며 병원을 들어선
순간.. 전 ..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여리다여리다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선 산소호흡기와 셀수도 없는 바늘을 꼽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어서 눈한번 드기 어려워 하시는데
그옆을 지키고 있는건 큰형님도 아닌 작은형님도 아닌 생정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간병인이라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어찌나 불화통이 터지던지요
떨리는마음 울먹거리는 마음을 잡고 큰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어찌 그럴수가 있냐고
생사가 오가는 분이신데 어찌 그런분을 혼자 놔두냐고 ..그렇게 울면서 따졌더니.. 간병인 해줬자나
그것도 너 힘들까봐 작은 동서랑 둘이서 돈합쳐서 붙여 준거라고
내가 안간줄 아냐고..
어머니 곁에 가긴 갔답니다
간호사 말로는 저도 본거는 1~2번 뿐이랍니다
1~2번 이랍니다
1~2번..이랍니다
숨이 허덕이고 하루하루 생명의 끈을 겨우 잡고 계시는 어머닌데 겨우 1~2번이랍니다
누굴 욕한들 무엇합니까
저또한 아프다는 핑계로 그제서야 어머니 곁을 갔는데
누구를 탓하겠나요
그냥 울었습니다
그냥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머니 옆에 다가가 나즈막한 소리로 울며 말했습니다
엄마..내 왔다..왜 이러고 있어..
제소리를 들었을까요..
눈에선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저는 그 눈물에 또 통곡했습니다
간병이고 나발이고 돌려 보내고 그날로 엄마곁에서 하루하루 이런예기 저런예기 어떤 날은 노래도 불러드리고 또 어떤날은 얼른 일어나시라고 땡강도 부려보고..
그래서 일까요
또 어떤날은 저에게 몇마디도 하고 또 어떤날은 농담도 하시고
그렇게 퇴원하면 꼭 저랑 온천가자며 약속을 했는데
딱 일주일 되었네요 오늘까지..
그렇게..눈을 감으셨어요
마지막날 침대에서 같이 자자며 저를 올리시더니
저에게 처음으로..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아들보다..너를 더 의지하고 살았다고..
넌 내 딸인거 잊지말라고..
이제 너무 힘들다..병원비도 많이 나올테고 너 힘들다
느낌이 조금 이상했지만..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날 잠자리에 들었지요
새벽이 되서야 숨을 안쉬는 엄머니를 느끼고 부랴부랴 간호사에게 달려 갔습니다
몇가지 확인을 하시고 얼마 못가 담당 선생님들이 오십니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번을 엄마 엄마 하고 깨웠는데도 참 편안하게도 계시더라고요..
처음으로..사랑한다고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큰형님 작은형님 아주버님들..그렇게 한번을 겨우겨우 오시던 분들이
통곡을 하고 우시더군요
한소리 했습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길 임종하지 못한 자식들...평생 가슴에 대몫을 박고 살거라고요..
제가 주제 넘었나요..
네 압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 너무 힘들게 가셨어요
그렇게 보고 싶다고 저에게 한번 와달라고 부탁했는데도 그분들,.바쁘다는 이유로
안오셨으니까요
그렇게 어머니를 땅에묻고 제 마음에 묻고
요즘은 우울증으로 병원을 오가며 겨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웃기게 들릴수도 있고
가식적이다..그럴수도 있는 일일 테지만..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저도 따라 가고 싶습니다
꿈에서도 한번 와주실줄 알았는데
한번을 보여주지 않는 내 어머니 아니 내 엄마..
살아 생전 여행한번 못보내 드린게 이렇게 뼈져리게 아픕니다
며느님들..자식님들..
부모님 언제 가실지도 모르는데
바쁘더라도 한번 더 챙겨 보시고
마음을 열어 보듬어 주세요
힘없고 병들면..내색은 안할지라도 자식들이 제일 보고싶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언젠간 만나겠지요..
내일은 어머니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생전 저랑 마셨던 소주 한병들고 이런 저런 얘기하러 가는 날이지요
빨리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