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어수선한 터에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마지막 보루(堡壘)라는 사법부조차도 홍역을 앓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과 더불어 사법에 대한 비판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에 드리운 사회적 공론의 장(場)의 미숙함과 천박함이 드러난다. 민주사회에서 비판적 성찰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비판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유죄 판결에 대한 비판은 사법의 근간(根幹)을 훼손시킬 정도다. 특히 야권의 주장대로 BBK사건은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권적 의사표현의 신성한 정치과정을 왜곡(歪曲)시키는 행위는 그 어떤 경우라도 용납하기 어렵다. 특히 선거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 하면 이미 선거는 끝나버린다. 그러므로 선거기간에 이뤄진 온갖 마타도어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만 다시는 이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직 법관들까지 가세한 일탈(逸脫)된 언행이 또 다시 논쟁을 촉발한다. 법관은 대법원장에서부터 초임법관에 이르기까지 엄중하게 그 신분을 보장받는다. 법관의 신분보장 없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인 헌법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의 독립으로 구분된다. 사법부 독립의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다. “법관은 탄핵(彈劾) 또는 금고(禁固)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법관은…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停職)·감봉(減俸)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또한 법관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법관에 대한 특별한 예우는 헌법뿐만 아니라 법률에서 더욱 드러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 2년간 사무관 예우를 받는다. 초임법관은 부이사관급(3급 상당)으로 예우한다. 행정고시 합격 후 국장급인 부이사관이 되려면 2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그만큼 특별한 예우를 하는 것은 법관의 인적 독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법관은 우리 헌법과 법률상 특별한 존재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법관이 보여준 언행은 과연 이들에게까지 특별히 보호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자아내게 한다. 물론 법관들도 나름 소통(疏通)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법관에게만 똑같은 목소리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법관들만이라도 사회의 다원화된 현상에 귀를 기울여 소수자 보호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현실적 구현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법관다운 언행을 해야만 사법에 대한 국민적 신뢰(信賴)도 제고할 수 있다. SNS 공간이나 법원의 게시판은 개인의 내밀한 비밀 영역으로서의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사실상 공개된 공론의 장이다. 그 공간에서 보여준 일부 법관들의 일탈된 언행은 차마 거론하기조차 거북살스럽다. 저자 거리의 언행도 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법관들의 일탈된 행동이 그동안 대한민국 사법부가 쌓아 올린 금자탑(金字塔)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래도 사법부만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나름 헌신해 왔음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신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가고 있다. 법관들의 자기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성낙인/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
사법부에 대한 신뢰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유죄 판결에 대한 비판은 사법의 근간(根幹)을 훼손시킬 정도다. 특히 야권의 주장대로 BBK사건은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권적 의사표현의 신성한 정치과정을 왜곡(歪曲)시키는 행위는 그 어떤 경우라도 용납하기 어렵다. 특히 선거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 하면 이미 선거는 끝나버린다. 그러므로 선거기간에 이뤄진 온갖 마타도어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만 다시는 이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직 법관들까지 가세한 일탈(逸脫)된 언행이 또 다시 논쟁을 촉발한다. 법관은 대법원장에서부터 초임법관에 이르기까지 엄중하게 그 신분을 보장받는다. 법관의 신분보장 없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인 헌법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의 독립으로 구분된다. 사법부 독립의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다. “법관은 탄핵(彈劾) 또는 금고(禁固)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법관은…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停職)·감봉(減俸)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또한 법관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법관에 대한 특별한 예우는 헌법뿐만 아니라 법률에서 더욱 드러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 2년간 사무관 예우를 받는다. 초임법관은 부이사관급(3급 상당)으로 예우한다. 행정고시 합격 후 국장급인 부이사관이 되려면 20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그만큼 특별한 예우를 하는 것은 법관의 인적 독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법관은 우리 헌법과 법률상 특별한 존재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법관이 보여준 언행은 과연 이들에게까지 특별히 보호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자아내게 한다. 물론 법관들도 나름 소통(疏通)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법관에게만 똑같은 목소리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법관들만이라도 사회의 다원화된 현상에 귀를 기울여 소수자 보호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현실적 구현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법관다운 언행을 해야만 사법에 대한 국민적 신뢰(信賴)도 제고할 수 있다. SNS 공간이나 법원의 게시판은 개인의 내밀한 비밀 영역으로서의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사실상 공개된 공론의 장이다. 그 공간에서 보여준 일부 법관들의 일탈된 언행은 차마 거론하기조차 거북살스럽다. 저자 거리의 언행도 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법관들의 일탈된 행동이 그동안 대한민국 사법부가 쌓아 올린 금자탑(金字塔)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래도 사법부만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나름 헌신해 왔음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신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가고 있다. 법관들의 자기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성낙인/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한국법학교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