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통과를 계기로 일부 판사들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개인의견 표출이 언론에 잇달아 크게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의견 표출 방법이 지나치게 과격하여 진중함을 잃었으며, 대통령을 조롱하고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등 정도(正道)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른 한편 언론에서는 단신 정도로 취급되었지만 사법정의의 관점에서는 주목받아야 할 판결들이 근자에 내려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옥고(獄苦)를 치른 인사들에 대하여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재심(再審)을 받아들여 무죄 또는 위헌 판결 등 명예회복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현상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법관이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인 '용기'라는 면에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전자는 법관의 용기가 너무 지나쳐 '만용'에 이른 것이고, 후자는 원래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법관이 용기를 갖지 못하여 '비겁'을 보였던 것이다. 법관의 진정한 용기란 '말해야 할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정의(正義)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가지 현상 모두 '중용(中庸)'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먼저 후자는 그 시대의 특수성을 아무리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것으로 지식인의 배신행위였음이 명백하다. 당시 잘못된 판결을 하게 된 것이 법관의 잘못이라면 그 법관이 비난받을 일이고, 수사기관의 잘못이라면 그 원인과 책임자를 지금이라도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재발(再發) 방지 차원에서도 필요할 것이다.
요즘 논란이 되는 전자의 경우는 세 가지 측면에서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적인 면이다. 법관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성숙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갈 길을 밝혀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행에도 특별히 유념하여 품위를 유지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당연하다. 비속어를 남발한다거나, 남의 약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무분별(無分別)한 언행은 한 인간으로서도 옳지 않은 일이며 법관에게는 더구나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는 법관으로서 직업적인 면이다. 직업인으로서의 법관이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은 불편부당(不偏不黨)이다. 이는 법관으로서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편파적일 것 같은 모습이나 외향을 보여주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관도 자기의 정치적 의견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그 자체로서 이미 재판이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강조해 둘 것은 헌법상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는 것은 법관의 개인적인 소신에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직업적인 양심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만약 어느 법관의 정치적 소신이 우리 헌법의 기본원칙과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때는 그 직(職)을 떠나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셋째는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몸가짐이다. 법조계의 어느 대선배께서 오래전에 신임 법관들에게 들려주신 일화가 있다. 그분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잘 다듬은 옷과 깨끗한 신발을 신고 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무성한 논두렁 밭두렁길을 지나 학교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옷과 신발이 이슬에 젖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옷과 신발이 점점 이슬에 젖게 되면서 "어차피 젖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는 일부러 이슬 먹은 풀들을 발로 차고 지나가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분 말씀의 취지는 법관으로서 처음 출발하면서 지녔던 맑은 생각이 세월이 흘러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약간 흐려지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몸가짐을 바르게 지켜가라는 것이었다.
법관의 통념에서 벗어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법관들은 우선 인격적 수양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또 만일 그러한 언행의 원인이 그들의 정치적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진지한 직업적 고민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원인이 앞서 든 세 번째에 해당된다면 그 대선배님의 말씀대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올바른 법관의 길을 찾아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속어 쏟아내는 일부 법관의 '만용'
비속어 쏟아내는 일부 법관의 '만용'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의 못 세운 예전 판사들과
과격하게 정치·사회적 견해 밝히는 요즘 판사들은 모두 中庸 갖추지 못해
미숙한 언행에 공정성까지 잃은 법관들, 몸가짐 바르게 해야
최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통과를 계기로 일부 판사들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개인의견 표출이 언론에 잇달아 크게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의견 표출 방법이 지나치게 과격하여 진중함을 잃었으며, 대통령을 조롱하고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등 정도(正道)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른 한편 언론에서는 단신 정도로 취급되었지만 사법정의의 관점에서는 주목받아야 할 판결들이 근자에 내려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옥고(獄苦)를 치른 인사들에 대하여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재심(再審)을 받아들여 무죄 또는 위헌 판결 등 명예회복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현상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법관이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인 '용기'라는 면에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전자는 법관의 용기가 너무 지나쳐 '만용'에 이른 것이고, 후자는 원래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법관이 용기를 갖지 못하여 '비겁'을 보였던 것이다. 법관의 진정한 용기란 '말해야 할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정의(正義)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가지 현상 모두 '중용(中庸)'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먼저 후자는 그 시대의 특수성을 아무리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것으로 지식인의 배신행위였음이 명백하다. 당시 잘못된 판결을 하게 된 것이 법관의 잘못이라면 그 법관이 비난받을 일이고, 수사기관의 잘못이라면 그 원인과 책임자를 지금이라도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재발(再發) 방지 차원에서도 필요할 것이다.
요즘 논란이 되는 전자의 경우는 세 가지 측면에서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적인 면이다. 법관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성숙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갈 길을 밝혀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행에도 특별히 유념하여 품위를 유지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당연하다. 비속어를 남발한다거나, 남의 약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무분별(無分別)한 언행은 한 인간으로서도 옳지 않은 일이며 법관에게는 더구나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는 법관으로서 직업적인 면이다. 직업인으로서의 법관이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은 불편부당(不偏不黨)이다. 이는 법관으로서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편파적일 것 같은 모습이나 외향을 보여주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관도 자기의 정치적 의견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그 자체로서 이미 재판이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강조해 둘 것은 헌법상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는 것은 법관의 개인적인 소신에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직업적인 양심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만약 어느 법관의 정치적 소신이 우리 헌법의 기본원칙과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때는 그 직(職)을 떠나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셋째는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몸가짐이다. 법조계의 어느 대선배께서 오래전에 신임 법관들에게 들려주신 일화가 있다. 그분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잘 다듬은 옷과 깨끗한 신발을 신고 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무성한 논두렁 밭두렁길을 지나 학교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옷과 신발이 이슬에 젖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옷과 신발이 점점 이슬에 젖게 되면서 "어차피 젖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는 일부러 이슬 먹은 풀들을 발로 차고 지나가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분 말씀의 취지는 법관으로서 처음 출발하면서 지녔던 맑은 생각이 세월이 흘러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약간 흐려지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몸가짐을 바르게 지켜가라는 것이었다.
법관의 통념에서 벗어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법관들은 우선 인격적 수양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또 만일 그러한 언행의 원인이 그들의 정치적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진지한 직업적 고민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원인이 앞서 든 세 번째에 해당된다면 그 대선배님의 말씀대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올바른 법관의 길을 찾아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