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올해 스물아홉의 딸입니다.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혼을 돕고싶습니다. 오늘도 밤새 답답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일찍 글 씁니다. 아빠란 사람은 오늘도 안들어 왔습니다. 어쩌면 다행입니다. 엄마가 20대 초반에 아빠를 만나, 반 강제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행복했던 순간보단 지옥같던 순간들이 더 많았을 거고, 지금도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결혼을 안해주면 친정집에 불을 질러버린다는 아빠의 협박에 엄마는 동거를 시작했고 물론 처음엔 좋았지만 힘든날이 더 많았다고 지난날을 하나뿐인 자식인 저에게 털어놓을 때가 많습니다. 벌써 30년이나 이렇게 살았는데 왜 엄마는 진작 이혼을 하지 못했냐구요? 엄마의 말로는 저 때문에, 그리고 못배워서 라고 얘기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저를 정말 애지중지 키워주시면서 힘들때마다 절 생각하면서 참으신거예요. 엄마에게도 내가 없으면 안되고, 저에게도 엄마가 없으면 안되는거죠. 그리고 배우지 못해서 이혼을 하면 엄마는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답니다. 배운게 없어서 ... 그런 엄마의 이혼을 이제와서라도 돕고 싶은 이유는 오로지 단하나. 아빠 때문 입니다. 아빠때문에 엄마도 마음앓이 많이 하시지만, 자식인 저도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혼기가 차가면서 점점 엄마 걱정이 많아지더라구요. 제가 시집을 가면 엄마는 이집에 아빠랑 단둘이 살아야 하는데 의지할 사람 없이 얼마나 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지 뻔히 보이는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봐온 아빠의 이혼사유를 적어보겠습니다. 1. 폭언과 폭행. 어쩌면 이혼사유에 가장 먼저 올라야 할 것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게 주사, 폭언, 폭행 이었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을 기억해보면 아빠의 주사와 폭언은 정말 빈번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소리소리 지르고 남한테 시비걸고, 경찰서에 몇번 찾으러 간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이 취한채로 오면 정말 욕이란 욕은 다 나옵니다. 그 폭언은 모두 엄마와 저를 향했던 거죠. 어릴땐 자는 저를 깨워서 세워두고 욕을 한적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술이 깨면 기억을 못한다는 것.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술이 깨면서 없어집니다. 기억을 못하니 술이 취하면 무한 반복 되는 거죠. 폭행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고등학교 2학년 구정연휴였던것 같습니다. 시골이 경상도 쪽이어서 힘들게 연휴를 마치고 올라왔는데, 아빠는 이미 취해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술이 부족하다며 엄마를 재촉해 술을 사오라고 한 아빠가 안방에서 여자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여자였습니다. 근데 엄마가 들어와서 그 소리를 듣게 된겁니다. 엄마 성격상 따지거나 화내는 것 보다 말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듯 넘어가는 성격이신데 그날은 너무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셨는지 정말 너무 한 것 아니냐며 화를 낸다기 보단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아빠의 폭언과 폭행이 시작됬고 엄마는 뺨이며 혁대로 아빠에가 맞았습니다. 정말 그때는 충격이 컸지요. 그 전에도 몇번의 손지검은 있었지만 이정도로 심한적은 없었는데.. 엄마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몸이 굳었습니다. 쇼크가 온거지요. 전 그때 엄마가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아빠는 저에게 욕조에 따뜻한물 받아서 엄마에게 들어가 있으라고 하라면서 엄마가 사온 술을 혼자 마시다가 몇시간이 지난후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가슴뛰고 무서웠는데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직도 너무 아픕니다. 저도 벌써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아직도 아빠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가슴이 뛰고 무섭습니다. 견딜만큼 견디고 겪을 만큼 겪어봤어도 폭언은 정말 아직도 힘들어요. 집행유예를 선고받으신 이후 2년간은 조심해야 하는데, 술먹고 택시기사를 때리고 욕한적이 많아서 술취하면 엄마는 데리러 갈테니 어디냐고 말을 하라고 해도 아빠는 폭언만 내뱉습니다. 한번은 여기있다고 해서 찾아가면 없고 또 전화하면 다른데 있다고 해서 가보면 또 없어서 정말 제가 살고있는 도시를 2시간도 넘게 헤맨적이 있습니다. 2. 가족 보다는 남이 먼저. 아빠를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나 같은 라인의 이웃들)은 모두 아빠같은 사람이 없다고, 너무 좋겠다며 말을 합니다. 이중인격이지요. 아빠가 산악회를 다니고 있었을때 엄마도 몇번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산악회 사람들. 특히 아주머님들이 엄마에게 너무 부럽다며, 저렇게 다정다감한 신랑이랑 살아서 얼마나 좋겠나며 이야기를 했답니다. 엄마랑 저는 정말 어이가 없는 거죠. 아파트 지하 1층에서 장을 보고 셋이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저는 양손가득 물건을 들고 있었고 아빠는 한손에 보온병만 들고있었는데, 같은 라인 아주머니가 한손에 조금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오시니까 들어드리겠다면서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빠란 사람입니다. 본인 부인은 하루종일 부업으로 얼마 안되는 돈 벌겠다며 엉덩이가 푹 패이도록 앉아서 일만하는데 거기다 대고 한다는 소리가 아빠친구 부인은 뇌종양인데 밖에서 식당일 하는거 너무 안쓰럽다며, 너는 행복한 줄 알라고, 그 알량한 손기술로 편히 벌어먹는거라며 그렇게 말합니다. 저희엄마 절대 편히 돈버는거 아닙니다. 부업 하는데 1개당 2천원짜리 하루에 20개 하는데 다른사람보다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하느라 남들 엉성하게 3-40개 할시간에 20개 밖에 못하는 겁니다. 사장도 인정해서 샘플이나 외국나갈껀 엄마한테 꼭 맞깁니다. 그런데도 남의 일이 더 중요하고 남이 더 불쌍하답니다. 제가 고등학생때 이질에 걸린적이 있어서 정말 쓸개즙까지 다 토하고 기운없어서 일어나기만 해도 어지러워서 계속 토만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나중엔 계속 정신 못차리니까 엄마는 놀래서 응급실 데려가야겠다고 했는데, 그때 아빠는 초상집 가야한다면서 그 밤에 저와 엄마를 버리고 나가더라구요. 집에서 200미터 떨어진 응급실에 잠깐 데려다 주고 가면 안되냐고 엄마가 말해도 빨리가봐야 한다며 엄마랑 저는 그 거리를 택시잡아타고 가야했습니다. 살다보니 이것보다 더 남을 생각하는 아빠를 보며 전 정을 뗀지 정말 오랩니다. 3. 견디기 힘든 아빠의 성격. 아빠는 평소성격은 소심합니다. 겉으로 남한테 웃는 얼굴로 대하지만 아주 작은거라도 거슬리는게 있다면 그걸 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주사로 집에와서 풉니다. 남들은 가장은 밖의 일은 밖에 두고 가정에 돌아오면 가정에 충실한 다는데, 둘중 아무것도 못합니다.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친할아버지가 바람나서 친할머니와 따로 살면서 다른 할머니랑 살았습니다. 그건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랬고, 새할머니도 저를 손녀로 많이 아끼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친할머니는 정말 예뻐해 주셨고요. 제가 여섯살 되던 해에 친할머니가 자살을 하셨습니다. 그맘때의 기억은 거의 없는데 할머니가 자살하신건 정말 충격이었는지 장례식장부터 할머니의 관히 뭍히는 그 날의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 날씨 이런건 모두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자살을 선택하신건 본인이 지병도 있으시고, 외롭기도 했고 여러가지 복합적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신걸 모두 할아버지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 후 재산문제가 엄청난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더러 자꾸 시골에 내려가서 장사를 하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가시면 자연스레 우리가 상속받아야 된다며 엄마를 들볶았습니다. 그 이유때문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저와 엄마는 바쁜 주말에 왕복 7시간 넘게 걸려가며 주말일을 도와주고 오고, 전 여름방학에 보름이상 거기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새할머니가 아빠가 땅을 다 가로챌까바 3개의 지번으로 나뉜 땅중에 2개를 본인명의로 돌렸습니다. (이건 지금생각해도 미스테리.. 그때 할아버지는 의식도 거의 없으시고 반신마비셨는데 어떻게 명의를 이전했는지... 참 뒤구린 얘깁니다.) 나중에 지번중 하나, 그것도 진입로도 없는 맨 구석의 산으로 된 지번만 아빠에게 상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이 아파트도 할아버지가 아프시게 되면 집으로 모셔야 한다며 우리에겐 거의 상의도 없어 혼자 이 집을 보러와서 얼른 계약하자며 아빠가 개인택시 판돈과 전에 살던집을 판돈 그리고 대출을 받아서 왔습니다. 집은 정말 좋습니다. 저도 여기서 떠나기 싫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땅문제가 본인 생각처럼 안되자 엄마를 들볶기 시작합니다. 주사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스토리죠. '니가 시골에 혼자라도 내려가서 그 일도우면서 땅 못빼돌리게 했어야 했다.' '니가 그렇게 해서 날 병신만들어서 지금도 내가 고생하며 산다.' '니가 내 앞길 다 망친거다.' 이 세문장. 정말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장사를 도우러 내려간걸로 따지만 아빠보단 엄마와 제가 더 많이 갔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수술중 반신 마비 오셨을때 아빠는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 인데 간병하러 일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금요일 낮에 올라오면 엄마랑 제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병원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셨는데도 힘들단 소리 안하고 자기부모보다 어쩌면 시부모가 더 편할 때도 있다며 '아버지,아버지' 하시면서 열심히 간병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툭하면 못하겠다고 그냥 올라와 버리고 술먹고 폭언하고.... 그 해 겨울 엄마와 저는 우리집보다 할아버지 계신 대전의 병원을 더 많이 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간병했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땅문제가 나오면서 악몽은 정말 더 해갔지요. 그러니까 아빠 나이 56세인 지금 자기는 열심히 일했고, 노후준비가 다 된줄 알았는데 아직도 일을 해야하니까 너무 갑갑하고 짜증이 난답니다. 돈없는건 누구에게나 힘든일입니다. 노후보장이 안되었다면 자식인 저로써도 고민이 많죠. 하지만 힘이 있고 정신이 있을 때 어떤 일을 꾸준히 해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등산을 월화수목금 이렇게 다니고 주말엔 쉰다던지 이런거 말입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더 활기차다고 생각하는데 56세에 저런말 할 때마다 숨은 왜 쉬나 하는 생각듭니다. 그리고 끝없는 여자. 바람피웠던 여자가 미국으로 떠나게되던 몇달은 첫사랑 실패한 어리아이처럼 엄청 방황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힘들면 따라가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집으로 국제우편으로 편지까지 보내왔길래 엄마가 보면 속상할 까바 찢어서 화장실 변기에 버리거나 태워버리거나 한적 몇번 있습니다. 엄마랑 전 차라리 바람을 피우는게 났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바람을 피는 동안에는 사람이 활기차 있더라구요. 옷을 좋은걸 사달라고 해서 돈 쓰는건 좀 짜증나지만. 온 신경이 바람피는 여자에게 쏠려있으니 저희한테 별 피해가 안옵니다. 엄마는 여자로써의 그런 수모보단 엄마로써의 길을 택했다며 이젠 별로 자존심 상하지도 않는다고 자식보며 사는거라 괜찮다며 애써 위로하십니다. 차라리 몸이 편한게 났다면서....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단골 노래방을 두고 도우미를 불러서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도 있어서 노래방 여자사장이랑 친하게 지내더라구요. 무슨 일만 있으면 거기로, 술을 먹었어도 집으로 안오고 거기서 술 한잔 더하다 잠들고.... 거기서 아빠 쓰러져서 자고 있다고 하면 데려오는데 집에 데려다 놓으면 엄마한테 한다는 소리가 " 그여자 질투하면 안돼." 싸구려양주 비싸게 팔아먹는 그런여자, 남자들한테 샐샐 거리면서 그러는 여자. 그런 여자랑 엄마가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정말 술, 여자 빼면 인생에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빠입니다. 친구를 협박해서 형집행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눈먼 돈을 친구가 준다는데 안주니까 협박했답니다. 친구가 협박했다고 녹취해서 경찰에 신고했고 2004년 늦겨울에 아빠가 잡혀들어갔습니다. 그 친구도 나쁜게, 일부러 우리는 경기도에 사는데 서울에 있는 경찰서에 신고했고 합의서 써주면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주겠다는 엄마와 약속했지만 검찰로 넘어가는날 9시까지 합의서와 탄원서 등을 제출(그 친구는 쓰지도 않고 우리가 쓴것에 도장만 찍어서 9시에 제출만 하면 되는것이었어요.)해준다고 했다가 다시 또 못하겠다는걸 몇번 번복했고 마지막날 제가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꿇고 울면서 싹싹 빌었습니다. 자존심 한번 구기면 아빠를 봐서라기 보다 우리엄마 덜 힘들 수 있다면 하는 심정에서.. 두시간.. 그렇게 무릎꿇고 빌었는데 그 친구라는 사람 웃으며 계속 처다보기만 합니다. 알았다고, 내일 해줄테니 그만 하라고 일어나라고 해서 합의서를 넘겨주고, 합의금도 언제까지 주겠다는 서류도 써서 줬습니다. 근데 당일 안왔습니다. 연락도 안되었고 검찰로 넘어가서 방법은 변호사였습니다. 집이 아빠명의라 검찰에 있는 아빠를 꺼내다 대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기저기서 2천만원 정도 빌려서 변호사 사서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처음엔 거기서 살면서 죄를 뉘우쳐 봐야 정신차린다고 변호사고 뭐고 냅두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자꾸 꺼내달라고 한다며 엄마는 마음이 약해서 변호사를 사기로 했고, 저도 구치소에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자고 엄마의 선택을 따랐습니다. 나와선 정말 달라지겠지 했었고, 엄마는 아빠가 나왔을 때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마음 추스리고 , 별 탈없이 집에 돌아왔으니까 마음 편히 가지고 살자고. 다른거 욕심내지 말고 살자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 재산문제+본인이 교도소 다녀온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심해졌어요. 이젠 교도소를 들어가게 된 것마저 남탓을 하더라구요. 반성이 전혀 안된거죠. 교도소 다녀온거 몇사람 모르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서 자존심상해서 사람도 싫고 자긴 대인기피증이랍니다. 그러면서 누가 술먹자면 잘 나가서 술마시고 들어와서 또 폭언으로 이어지는 무한반복. 정말 답이 안나오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엄마는 정말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엄마가 가정을 위해 희생 한 것을 아빠와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다른 아이들에게 했다면 정말 멋진아빠와 자랑스런 아이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빠한테 집안일 같은거 도와달란 소리 안합니다. 아빠가 누워서 먹을 거 달라, 약달라 해도 군소리 없이 수발들어준 사람입니다. 쓰다보니 마음이 답답해서 막 쏱아냈는데요. 이런 일 말고도 정말 속상한 일 많이 겪은 엄마입니다. 그러면서도 이혼하면 아빠가 보복할까바 두려움 때문에 이혼은 겁내고 있습니다. 이런 엄마가 당당히 이혼하고 아빠에게 떨어져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 아빠가 엄마의 부업을 못마땅히 여겨서 어제 또 폭언 쏟아붙고 나가서 .. 엄마의 부업장소를 오늘 작은 옥탑방으로 옮기게 될 건데요. 상황봐서 저랑 엄마도 짐 대충 챙겨서 그리고 나갈 생각이예요. 집에 엄마가 정성스레 키운 예쁜꽃들이랑 화분들, 정든 제 방을 버리고 추운 곳으로 갈 생각하니까 눈물 나지만 아빠때문에 뒤로하고 나오려고 마음 잡았어요. 4
엄마의 이혼을 돕고싶어요.
전 올해 스물아홉의 딸입니다.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혼을 돕고싶습니다.
오늘도 밤새 답답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일찍 글 씁니다.
아빠란 사람은 오늘도 안들어 왔습니다. 어쩌면 다행입니다.
엄마가 20대 초반에 아빠를 만나, 반 강제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행복했던 순간보단
지옥같던 순간들이 더 많았을 거고, 지금도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결혼을 안해주면 친정집에 불을 질러버린다는 아빠의 협박에 엄마는 동거를 시작했고
물론 처음엔 좋았지만 힘든날이 더 많았다고 지난날을 하나뿐인 자식인 저에게 털어놓을 때가
많습니다. 벌써 30년이나 이렇게 살았는데 왜 엄마는 진작 이혼을 하지 못했냐구요?
엄마의 말로는 저 때문에, 그리고 못배워서 라고 얘기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저를 정말 애지중지 키워주시면서 힘들때마다 절 생각하면서 참으신거예요.
엄마에게도 내가 없으면 안되고, 저에게도 엄마가 없으면 안되는거죠.
그리고 배우지 못해서 이혼을 하면 엄마는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답니다. 배운게 없어서 ...
그런 엄마의 이혼을 이제와서라도 돕고 싶은 이유는 오로지 단하나. 아빠 때문 입니다.
아빠때문에 엄마도 마음앓이 많이 하시지만, 자식인 저도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혼기가 차가면서 점점 엄마 걱정이 많아지더라구요. 제가 시집을 가면
엄마는 이집에 아빠랑 단둘이 살아야 하는데 의지할 사람 없이 얼마나 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지 뻔히 보이는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봐온 아빠의 이혼사유를 적어보겠습니다.
1. 폭언과 폭행.
어쩌면 이혼사유에 가장 먼저 올라야 할 것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게
주사, 폭언, 폭행 이었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을 기억해보면 아빠의 주사와 폭언은 정말 빈번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소리소리 지르고 남한테 시비걸고, 경찰서에 몇번 찾으러 간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이 취한채로 오면 정말 욕이란 욕은 다 나옵니다. 그 폭언은 모두 엄마와 저를
향했던 거죠. 어릴땐 자는 저를 깨워서 세워두고 욕을 한적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술이 깨면 기억을 못한다는 것.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술이 깨면서 없어집니다.
기억을 못하니 술이 취하면 무한 반복 되는 거죠.
폭행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고등학교 2학년 구정연휴였던것 같습니다.
시골이 경상도 쪽이어서 힘들게 연휴를 마치고 올라왔는데, 아빠는 이미 취해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술이 부족하다며 엄마를 재촉해 술을 사오라고 한 아빠가 안방에서
여자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여자였습니다. 근데 엄마가 들어와서
그 소리를 듣게 된겁니다. 엄마 성격상 따지거나 화내는 것 보다 말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듯 넘어가는 성격이신데 그날은 너무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셨는지 정말 너무 한 것 아니냐며
화를 낸다기 보단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아빠의 폭언과 폭행이 시작됬고 엄마는 뺨이며
혁대로 아빠에가 맞았습니다. 정말 그때는 충격이 컸지요. 그 전에도 몇번의 손지검은 있었지만
이정도로 심한적은 없었는데.. 엄마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몸이 굳었습니다.
쇼크가 온거지요. 전 그때 엄마가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아빠는 저에게 욕조에 따뜻한물
받아서 엄마에게 들어가 있으라고 하라면서 엄마가 사온 술을 혼자 마시다가 몇시간이 지난후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가슴뛰고 무서웠는데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직도 너무 아픕니다.
저도 벌써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아직도 아빠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가슴이 뛰고
무섭습니다. 견딜만큼 견디고 겪을 만큼 겪어봤어도 폭언은 정말 아직도 힘들어요.
집행유예를 선고받으신 이후 2년간은 조심해야 하는데, 술먹고 택시기사를 때리고 욕한적이
많아서 술취하면 엄마는 데리러 갈테니 어디냐고 말을 하라고 해도 아빠는 폭언만 내뱉습니다.
한번은 여기있다고 해서 찾아가면 없고 또 전화하면 다른데 있다고 해서 가보면 또 없어서
정말 제가 살고있는 도시를 2시간도 넘게 헤맨적이 있습니다.
2. 가족 보다는 남이 먼저.
아빠를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나 같은 라인의 이웃들)은 모두 아빠같은
사람이 없다고, 너무 좋겠다며 말을 합니다. 이중인격이지요.
아빠가 산악회를 다니고 있었을때 엄마도 몇번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산악회 사람들.
특히 아주머님들이 엄마에게 너무 부럽다며, 저렇게 다정다감한 신랑이랑 살아서 얼마나
좋겠나며 이야기를 했답니다. 엄마랑 저는 정말 어이가 없는 거죠.
아파트 지하 1층에서 장을 보고 셋이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저는 양손가득 물건을 들고 있었고
아빠는 한손에 보온병만 들고있었는데, 같은 라인 아주머니가 한손에 조금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오시니까 들어드리겠다면서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빠란 사람입니다.
본인 부인은 하루종일 부업으로 얼마 안되는 돈 벌겠다며 엉덩이가 푹 패이도록 앉아서
일만하는데 거기다 대고 한다는 소리가 아빠친구 부인은 뇌종양인데 밖에서 식당일 하는거
너무 안쓰럽다며, 너는 행복한 줄 알라고, 그 알량한 손기술로 편히 벌어먹는거라며
그렇게 말합니다. 저희엄마 절대 편히 돈버는거 아닙니다. 부업 하는데 1개당 2천원짜리 하루에 20개
하는데 다른사람보다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하느라 남들 엉성하게 3-40개 할시간에 20개 밖에
못하는 겁니다. 사장도 인정해서 샘플이나 외국나갈껀 엄마한테 꼭 맞깁니다.
그런데도 남의 일이 더 중요하고 남이 더 불쌍하답니다.
제가 고등학생때 이질에 걸린적이 있어서 정말 쓸개즙까지 다 토하고 기운없어서 일어나기만
해도 어지러워서 계속 토만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나중엔 계속 정신 못차리니까 엄마는 놀래서
응급실 데려가야겠다고 했는데, 그때 아빠는 초상집 가야한다면서 그 밤에 저와 엄마를 버리고
나가더라구요. 집에서 200미터 떨어진 응급실에 잠깐 데려다 주고 가면 안되냐고 엄마가 말해도
빨리가봐야 한다며 엄마랑 저는 그 거리를 택시잡아타고 가야했습니다.
살다보니 이것보다 더 남을 생각하는 아빠를 보며 전 정을 뗀지 정말 오랩니다.
3. 견디기 힘든 아빠의 성격.
아빠는 평소성격은 소심합니다. 겉으로 남한테 웃는 얼굴로 대하지만 아주 작은거라도 거슬리는게
있다면 그걸 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주사로 집에와서 풉니다.
남들은 가장은 밖의 일은 밖에 두고 가정에 돌아오면 가정에 충실한 다는데,
둘중 아무것도 못합니다.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친할아버지가 바람나서 친할머니와 따로 살면서 다른 할머니랑 살았습니다.
그건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랬고, 새할머니도 저를 손녀로 많이 아끼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친할머니는 정말 예뻐해 주셨고요. 제가 여섯살 되던 해에 친할머니가 자살을 하셨습니다.
그맘때의 기억은 거의 없는데 할머니가 자살하신건 정말 충격이었는지 장례식장부터 할머니의
관히 뭍히는 그 날의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 날씨 이런건 모두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자살을 선택하신건 본인이 지병도 있으시고, 외롭기도 했고 여러가지 복합적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신걸 모두 할아버지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 후 재산문제가 엄청난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더러 자꾸 시골에 내려가서 장사를 하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가시면 자연스레 우리가 상속받아야 된다며 엄마를 들볶았습니다.
그 이유때문에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저와 엄마는 바쁜 주말에 왕복 7시간 넘게 걸려가며
주말일을 도와주고 오고, 전 여름방학에 보름이상 거기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새할머니가 아빠가 땅을 다 가로챌까바 3개의 지번으로 나뉜
땅중에 2개를 본인명의로 돌렸습니다. (이건 지금생각해도 미스테리.. 그때 할아버지는 의식도 거의
없으시고 반신마비셨는데 어떻게 명의를 이전했는지... 참 뒤구린 얘깁니다.)
나중에 지번중 하나, 그것도 진입로도 없는 맨 구석의 산으로 된 지번만 아빠에게 상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이 아파트도 할아버지가 아프시게 되면 집으로 모셔야 한다며
우리에겐 거의 상의도 없어 혼자 이 집을 보러와서 얼른 계약하자며 아빠가 개인택시 판돈과
전에 살던집을 판돈 그리고 대출을 받아서 왔습니다. 집은 정말 좋습니다.
저도 여기서 떠나기 싫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땅문제가 본인 생각처럼
안되자 엄마를 들볶기 시작합니다. 주사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스토리죠.
'니가 시골에 혼자라도 내려가서 그 일도우면서 땅 못빼돌리게 했어야 했다.'
'니가 그렇게 해서 날 병신만들어서 지금도 내가 고생하며 산다.'
'니가 내 앞길 다 망친거다.'
이 세문장.
정말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장사를 도우러 내려간걸로 따지만 아빠보단 엄마와 제가 더 많이 갔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수술중 반신 마비 오셨을때 아빠는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 인데
간병하러 일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금요일 낮에 올라오면 엄마랑 제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병원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셨는데도 힘들단 소리 안하고 자기부모보다
어쩌면 시부모가 더 편할 때도 있다며 '아버지,아버지' 하시면서 열심히 간병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툭하면 못하겠다고 그냥 올라와 버리고 술먹고 폭언하고....
그 해 겨울 엄마와 저는 우리집보다 할아버지 계신 대전의 병원을 더 많이 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간병했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땅문제가 나오면서 악몽은 정말 더 해갔지요.
그러니까 아빠 나이 56세인 지금 자기는 열심히 일했고, 노후준비가 다 된줄 알았는데
아직도 일을 해야하니까 너무 갑갑하고 짜증이 난답니다.
돈없는건 누구에게나 힘든일입니다. 노후보장이 안되었다면 자식인 저로써도 고민이 많죠.
하지만 힘이 있고 정신이 있을 때 어떤 일을 꾸준히 해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등산을 월화수목금 이렇게 다니고 주말엔 쉰다던지 이런거 말입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더 활기차다고 생각하는데
56세에 저런말 할 때마다 숨은 왜 쉬나 하는 생각듭니다.
그리고 끝없는 여자.
바람피웠던 여자가 미국으로 떠나게되던 몇달은 첫사랑 실패한 어리아이처럼 엄청 방황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힘들면 따라가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집으로 국제우편으로 편지까지 보내왔길래 엄마가 보면 속상할 까바
찢어서 화장실 변기에 버리거나 태워버리거나 한적 몇번 있습니다.
엄마랑 전 차라리 바람을 피우는게 났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바람을 피는 동안에는 사람이 활기차 있더라구요. 옷을 좋은걸 사달라고 해서 돈 쓰는건
좀 짜증나지만. 온 신경이 바람피는 여자에게 쏠려있으니 저희한테 별 피해가 안옵니다.
엄마는 여자로써의 그런 수모보단 엄마로써의 길을 택했다며 이젠 별로 자존심 상하지도
않는다고 자식보며 사는거라 괜찮다며 애써 위로하십니다.
차라리 몸이 편한게 났다면서....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단골 노래방을 두고 도우미를 불러서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도 있어서 노래방 여자사장이랑 친하게 지내더라구요.
무슨 일만 있으면 거기로, 술을 먹었어도 집으로 안오고 거기서 술 한잔 더하다 잠들고....
거기서 아빠 쓰러져서 자고 있다고 하면 데려오는데 집에 데려다 놓으면 엄마한테 한다는 소리가
" 그여자 질투하면 안돼."
싸구려양주 비싸게 팔아먹는 그런여자, 남자들한테 샐샐 거리면서 그러는 여자.
그런 여자랑 엄마가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정말 술, 여자 빼면 인생에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빠입니다.
친구를 협박해서 형집행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눈먼 돈을 친구가 준다는데 안주니까 협박했답니다.
친구가 협박했다고 녹취해서 경찰에 신고했고 2004년 늦겨울에 아빠가 잡혀들어갔습니다.
그 친구도 나쁜게, 일부러 우리는 경기도에 사는데 서울에 있는 경찰서에 신고했고
합의서 써주면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주겠다는 엄마와 약속했지만
검찰로 넘어가는날 9시까지 합의서와 탄원서 등을 제출(그 친구는 쓰지도 않고 우리가 쓴것에 도장만
찍어서 9시에 제출만 하면 되는것이었어요.)해준다고 했다가 다시 또 못하겠다는걸 몇번
번복했고 마지막날 제가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꿇고 울면서 싹싹 빌었습니다.
자존심 한번 구기면 아빠를 봐서라기 보다 우리엄마 덜 힘들 수 있다면 하는 심정에서..
두시간.. 그렇게 무릎꿇고 빌었는데 그 친구라는 사람 웃으며 계속 처다보기만 합니다.
알았다고, 내일 해줄테니 그만 하라고 일어나라고 해서 합의서를 넘겨주고, 합의금도 언제까지 주겠다는
서류도 써서 줬습니다.
근데 당일 안왔습니다. 연락도 안되었고 검찰로 넘어가서 방법은 변호사였습니다.
집이 아빠명의라 검찰에 있는 아빠를 꺼내다 대출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기저기서 2천만원
정도 빌려서 변호사 사서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처음엔 거기서 살면서 죄를 뉘우쳐 봐야 정신차린다고 변호사고 뭐고 냅두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자꾸 꺼내달라고 한다며 엄마는 마음이 약해서 변호사를 사기로 했고,
저도 구치소에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자고 엄마의 선택을 따랐습니다.
나와선 정말 달라지겠지 했었고, 엄마는 아빠가 나왔을 때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마음 추스리고 , 별 탈없이 집에 돌아왔으니까 마음 편히 가지고 살자고.
다른거 욕심내지 말고 살자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 재산문제+본인이 교도소 다녀온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점점 더 심해졌어요. 이젠 교도소를 들어가게 된 것마저 남탓을 하더라구요.
반성이 전혀 안된거죠.
교도소 다녀온거 몇사람 모르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서 자존심상해서 사람도 싫고
자긴 대인기피증이랍니다.
그러면서 누가 술먹자면 잘 나가서 술마시고 들어와서 또 폭언으로 이어지는 무한반복.
정말 답이 안나오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엄마는 정말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엄마가 가정을 위해 희생 한 것을 아빠와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다른 아이들에게 했다면 정말 멋진아빠와 자랑스런 아이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빠한테 집안일 같은거 도와달란 소리 안합니다. 아빠가 누워서 먹을 거 달라, 약달라 해도
군소리 없이 수발들어준 사람입니다.
쓰다보니 마음이 답답해서 막 쏱아냈는데요.
이런 일 말고도 정말 속상한 일 많이 겪은 엄마입니다.
그러면서도 이혼하면 아빠가 보복할까바 두려움 때문에 이혼은 겁내고 있습니다.
이런 엄마가 당당히 이혼하고 아빠에게 떨어져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 아빠가 엄마의 부업을 못마땅히 여겨서 어제 또 폭언 쏟아붙고 나가서 .. 엄마의 부업장소를 오늘
작은 옥탑방으로 옮기게 될 건데요. 상황봐서 저랑 엄마도 짐 대충 챙겨서 그리고 나갈 생각이예요.
집에 엄마가 정성스레 키운 예쁜꽃들이랑 화분들, 정든 제 방을 버리고 추운 곳으로
갈 생각하니까 눈물 나지만 아빠때문에 뒤로하고 나오려고 마음 잡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