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일을 내 수준에서 말했습니다

오택만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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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이 사실에 관하 여서

다시는 말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이 사실에 관하 여서 어디에서도들을 수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당신께 말합니다.

참으로 온 세상은 미혹과 속임수로 가득차 있고, 참된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예언가, 사역자, 선교 단체, 교회, 크리스챤, 문화, 온갖 대중들이

마귀의 궤계 아래서 날뛰고 있고, 참된 사람들 - 택하신 자들 -을 미혹하려 날뛰고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늑대, 이리의 노략질을하는 도적들로 가득한이 시대입니다.

다른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을 런지 모르겠지만, 어느 시대든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 안의 보호와 은총을 입었습니다.

지혜 있고 분별있는 처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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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평화를 모색하다

- 십자군 전쟁, 그 섬뜩한 역사

아시아의 베테랑 선교사가 무슬림들이 십자군 전쟁에 품고있는

증오심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제안했다.

- 스탠 거스리

십자군 전쟁은 과거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무슬림들은 마치 엊그제 일어난 사건처럼 그 기억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간직하고있다. 왜 그런가? 무슬림들을 위해 사역하는 그리스도 인들은 십자군의 잔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워렌 라슨 (워렌 라슨) 교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콜롬비아 국제 대학에있는 즈웨머 무슬림 연구 센터 (이슬람 연구 Zwemer 센터)의 책임 자다. 캐나다에서 출생한 라슨 교수는 무슬림 근본주의를 전공한 학자이며 1969 년부터 1991 년까지 파키스탄의 가장 큰 도시 펀자브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선교사였다 (라슨 부부가 개척했던 교회는 99.9 %가 무슬림인데 데라 가지 칸 지역에 위치해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있다). 현재 라슨 교수는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을 다니며 무슬림들을 위해 사역하고있다.

첫 번째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지도 거의 천년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그 전쟁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왜 그럴까요? 라는 말로서 기억하고있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고 학대하려는 정신적 압박이 문장에 스며있다.

그 이유는 아무 래도 서양의 제국주의가 종식되지 않았다고보기 때문 이겠죠. 서양은 오래전부터 제국주의를 종식 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에 따른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났어도 1492 년에 무슬림들은 스페인에서 추방당했습니다. (-> 추방당한 사실에 대한 뼈아픈 시련이라는 표현으로서 : 원망 요소, 아픈 기억 자체를 다시 강조하는 요소로 표현 공격) 그들에게는 뼈아픈 시련이었습니다. 또한 식민 정책도 한몫을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10 분의 9가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 했으니까요. 그 외에도 이라크와이란, 아프가 니스탄 사태를 비롯해서 중동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 로서도 이슬람 국가에 대한 패망을 선언)

서구 사회는 수십 년 전부터 기독교가 약화되고 급속히 세속화되고 있는데, 무슬림들은 왜 여전히 서구 권을 기독교 제국이라고 생각할까요?

(질문 자체 내에 들어있는 - 세대의 사탄성 동조 내용 - 세속화되고있는 것, 그러므로 놔둬도된다는 생각을 갖는 세대, 아직 기독교 제국이라고 무슬림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박적 표현 : 사탄적 입지에 선 표현)

그 이유는 아직도 서구 권에 그리스도 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슬림들은 개신교 신자들이 조지 W. 부시에게 표를 던져 대통령이되게했고,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한 견해는 아니죠. 이제는 서구 권도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무슬림들이 알아주기 바라지만 아직은 그들의 개념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개념이 바뀌지 않고있다 도대체 무엇을 문제 삼고있는가 :?! 타락을 즐거워하는 사탄의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아니한 시대적 흐름에 기별하여있다)

파키스탄에서 사역할 때 보면 무슬림들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훤히 알고있었습니다. 미국의 성적인 문란 함 이라든지, 사치와 음부 문제 라든지, 그런 게 모두 그리스도 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 했지요.

(표현 속에 박혀있는 =이 세대의 죄악을 미국에 있다고 표현, 읽는이 세대에 속한 자들의 내면을 끌어 간다)

북미 개신교 회들, 특히 미국 교회들이 현명치 못한 얘기들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얘기들은 무슬림과 그리스도 인의 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이슬람을 사탄의 종교라고하면서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발언을했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얘기가 전파를 타고 이슬람 국가로 들어가면 신문 지상의 뉴스 거리가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하는 것이 지요.

(이 부분은 옳은 표현 인것 같다)

언론이나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무슬림들에게 설명해 주면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겠 지요. 하지만 무함마드를 귀신들린 성도착증 자라고 매도한 발언은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너무도 경솔한 처사 였지요.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신중하게 사용해야합니다.

(개인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이 시대의 자유주의 ​​국가들 시민들의 요구 사항이다 그리고 그것에 관하 여서 - '자유'라는 표현 안에 내포되어있는 :. 질서상의 결렬을 '귀신들린 성도착 증자'라는 표현으로 ' 더 고개를 숙인 채로 앞으로 밀어 붙 이듯 나아가는 영적 특유의 관계성 안의 질서상의 매꿈 '을 표현)

무슬림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선교사 들이나 현지 그리스도 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십니까?

(무슬림들의 부정적인 시각 이라고까지 표현 해 버린다)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슬람이 점차 과격 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있을 때보다 반미 사상이 더 고조되어 있다고합니다. 한때 파키스탄에는 5 백 명의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현재는 10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반미 사상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현지 그리스도 인들이당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파키스탄에서도 몇 차례 무슬림들의 집단 난동이있었습니다. 교회를 불태우고, 학교를 공격하고, 특히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받는 박해가 매우 심합니다. (이 부분에 관하 여서 '온전함'을 '미혹'하는 영향에 대한 말을하는 성향이, 그 원함이, 미혹성이 들어 있다고 글쓰려하는데) 얼마 전에는 에티오피아에 갔었는데, 한 소말리아 사람이 저의 통역으로 수고해주었습니다. (통역으로 수고 해줬으며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 하였다라는 표현을 통하 여서이 생각을 다시 끌어 흡수시키고 기독교 -. 무슬림이라는 특정 '종교'틀로서 사람을 분간하려한다, 그러나 분별의 중요한 요소는 거룩이다 진실이다 .)

그 사람은 무슬림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는데, 1994 년 미국이 모가디슈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소말리아를 빠져 나왔다고합니다. 그와 함께 신앙 생활을하던 14 명의 그리스도 인들은 모두 무슬림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 사람만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고 하더군요.

현지 그리스도 인들과 선교사들이 어떻게하면 무슬림들 뇌리에 박혀있는 십자군 전쟁의 부정적인 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먼저 용서를 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현 안에 왠지 무슬림 측에서 용서를 구해야한다는 강하고 드높은 상태가 가득하다. 이는 비난할만한 요소는 아니긴하지만, 힘이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은 배워 둬야한다.)하지만 무슬림들도 역시 잘못이 있습니다 . 잊었을 수도 있고, 아니 잊고 싶을지 모르지만 터키 무슬림들은 1915 년부터 시작해서 아르메니아 그리스도 인의 절반을 죽였습니다. 약 백만 명이 그들 손에 학살 당 했지요. 지난 1500 년간 무슬림과 그리스도 인들은 성공적인 화해를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서방 세계와 그리스도 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슬림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배워야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입지를 굳건히하는 강한 믿음을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인들이 주님의 뜻대로 올바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고해야한다고 말씀하지 않으 셨나요? 예를 들어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대야하는 것처럼 말이죠. 무슬림들은 지하드 (성전)라는 교리를 내세워 어떤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그들이 용서를 구하려고할까요?

(인터뷰 진행자는 방금 선교사의 언변에 이끌려서 기독교 쪽과 미국쪽으로 정신과 내면이 전향되었으며, 그들 안에있는 '주님의 뜻대로'라는 요소에까지 흡수되게되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용서를 구하려 할까라는 표현을 통하 여서 볼 수있는 것은, 인간 자체의 그릇이 갖고있는 포용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원수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슬람 = 질문자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진리를 위해서 우리가 앞장을서야합니다. 정중하게 사과 해야죠. 반드시 용서를 빌어야합니다. (이 글자 안에서, 질문자 자신의 그 용서치 아니하는 내면의 악함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반드시 용서를 빌어야한다는 영을 느낄 수가있다.이 권위 감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경외와 복종의 위대한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겁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 하겠죠. '우리 무슬림들은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데이 사람들은 다르구나.'1979 년 11 월 20 일에 메카 성지의 카아 바가 무명의 반란군에게 점령 당했을 때 당시 우리 가족은 데라가지칸 (파키스탄 중앙에있는 도시 - 역주 )에 살고있었습니다. 호메이니는 카아 바가 미국인과 유대인들에게 점령 당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지요. 그 헛소문이 데라 가지 칸에 전해 지자 무슬림들은 폭도로 변해서 우리가 사는 집에 쳐들어와 자동차와 책들을 불태우고 가구를 때려 부수었습니다. 우리도 죽이려고했지만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목숨은 구할 수있었습니다. (여러각도로 볼 수있다 질문자가 갖고있는 내면의 사악 함의​​ 뿌리와 원인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 그것은 시대의 각종 문화와 세대의 악과 마귀와 죄 - 그것의 폭력 성은 폭도와 같다고 말하며, - 우리 측에서도 죽이려고 했지만, 그 질문자는 주님의 은혜로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슬 라마 바드에 있던 미국 대사관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다시 한번 질문자의 그런 태도 자체가 갖고있는 심각성을인지시킨다) 며칠 후에 카아 바를 점령한 반란군은 미국인과 유대인이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 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경찰과 군인들이 저희를 구조해 주었고 폭도 몇 명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 었죠.

그 후에 우리는 무슬림들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을 용서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라고요. 그랬 더니 평소에 우리를 잘 알던 이웃 사람들이 우리를 껴안아 주더구뇨. 그리고는 "라슨 씨, 당신은 정말 우리와 다른 사람 이군요.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지 않거 든요. 우리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그러니까 수니파와 시아파가 맞붙으면 끝까지 싸우고 서로의 상점을 불태우고 다닙니다. - 세상에 속한 자들의 관계를 여실히 표현하고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용서 하는군요 "

그 순간에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진짜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었죠. 제가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할뿐입니다"라고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클라이맥스!)

자, 이제 그리스도 인들이 어떻게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예언가 들이나 설교가 들이나 미국의 지칭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은 우리가 범접하기 매우 어려운 위대한 권위가 느껴진다. 그들의 주인 이요 권위자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리스도 인들이 전투적 자세를 취하는 것보다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다가서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빛 가운데 혹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에있는 선교입니다. 또한 그것이 화해의 사역이고 그런 사역이 무슬림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원함을 느끼 리라)

'패선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원수를 용서하는 장면은 무슬림들에게 크나큰 감동을주었습니다. 영화를 본 동기가 어떻든 일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원수를 용서하는 장면이 그들에게는 인상적 이었나 봅니다. 수많은 무슬림들이 그 영화를 보았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세상에 속한 자들은 표현상의 핑계를 대며 조롱하려 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속한 자들은 진리 자체로서 진실 자체로서 볼 것이다)

워렌 라슨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콜롬비아 국제 대학에서 즈웨머 무슬림 연구 센터의 책임자로 일하고있다.

스탠 거스리는 <크리스 채 너티 투데이> 지의 편집장이다.

'이슬람과 평화를 모색하다'(이슬람에 놓으려는 평화)는 2005 년 6 월호, 권. 49. 번호 6. <크리스 채 너티 투데이> 지에 실렸던 글이다.

당신은이 글들을 읽으면서 무엇을 발견 하였습니까?

나는이 글 속에서 '미국식', '기독교 발전 방법'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 인간 육체에 속한 본성적, 마귀적 속성에 속한 궤사적 방향으로

사람을 향하 여서 '전진', '전진'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잘못 인정치 않고'

'숙이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육체적'-> '공격적'성향의 교만과 사악함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할 수없고, 그들의 방식에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 이들이 참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입니다.

미국 기독교식 발전 방법, 그들이 갖고있는 본성 - 그것은 정확하게 미혹의 영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 밖이나 안이나 이런 '미혹'의 더러움과 사악함에 온갖 육체에 속한

택함받지 못한 대다수의 인간들이 활개를 치며 날뛰고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 가운데서 어떤 자도이 곳에 있었고,

어디서든 발견할 수가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보는 것,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요, 그들은 진실로 소경입니다. 그들이가는 길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서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